Cleric Academy's Shaman RAW novel - Chapter 65
제65화
“반지 뭐냐? 너 여자 친구 생겼어?”
“아니? 아빠 유골 반지.”
“……뭐, 뭔. 아빠, 아니 아버님 유골로 왜 반지를 만들어.”
“부두교는 이렇게 해.”
나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본다. 달빛이 찬란한 날이다. 바람은 서늘하다.
그러고 보니 곧 겨울이다. 한숨을 쉬자 입에서 하얀 입김이 뿜어져 나온다.
“죽음 자체를 하나의 물건으로 보관하는 거야.”
“그럼 그 반지에 너희 아버님 영혼이 들어 있다, 그렇게 보는 거야?”
“아니지. 아빠 영혼은 지금 ‘보이지 않는 세상’을 여행하는 중이지.”
“……뭐라는 거야? 부두교는 진짜 이해할 수가 없다. 이해할 생각도 없지만.”
눈앞의 남자가 기지개를 켠다.
나이는 17살에서 18살. 아무리 높게 잡아도 19살 정도.
어쨌거나 나와 비슷한 또래인 것 같다. 왠지 모르게 낯이 익다.
나는 웃으며 입을 연다.
“나중에 자식 낳으면 물려줘야 돼, 이거.”
“자식은 무슨. 결혼은 할 수 있고?”
“결혼…… 글쎄다.”
나는 왼쪽 새끼손가락에 낀 반지를 본다. 정중앙에 박힌 유골 보석이 달빛에 반짝인다.
왠지, 보석 너머로 시선이 느껴지는 것만 같다.
나는 그 시선을 응시하고, 시선은 나를 응시한다. 시선과 눈이 마주친다.
“어떻게든 되겠지, 뭐.”
빠직.
그 순간, 보석에 금이 간다. 균열 틈으로 어둠이 흘러나온다.
어둠은 균열이 되고, 균열에서 다시 어둠이 흘러나오고, 그 어둠은 다시 균열이 된다.
그렇게 세상이 수십 수백 조각으로 쪼개진다.
이윽고 세상은 가루가 되어 사라진다. 흩어진 세상 뒤, 까마득한 암흑이 나를 반긴다.
* * *
“커헉! 욱……!”
눈을 떴다.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팠다. 심장이 메마른 소리를 내며 뛰고 있었다. 속이 메스꺼웠다.
나는 이마를 바닥에 처박은 채로 한참이나 헛구역질을 했다. 의지와 상관없이 눈물이 흘렀다. 흘러나온 눈물은 뺨을 타고 흘러 바닥을 적셨다.
“하, 하아. 후우…….”
[무슨 일이지? 갑자기 쓰러지더니, 일어나서는 헛구역질을 하고.]“렉바. 방금 환각이, 환각? 환각 주술은 아닌데. 이게 뭔 개같은…….”
[일단은 진정하고 숨부터 골라. 호흡이 과하다.]눈앞에 까만 공이 둥실둥실 떠다녔다. 현기증이 온 것 같았다.
나는 렉바의 말대로, 마음을 차분히 먹고 숨을 골랐다. 시야를 방해하던 까만 공이 천천히 사라지며, 이윽고 시야가 정상으로 돌아왔다.
“후…….”
겨우 제정신을 되찾은 뒤, 이마에 맺힌 땀을 털어냈다. 이마뿐만 아니라 온몸이 식은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그러나, 지금 내게는 땀을 닦아낼 힘조차 없었다. 손끝 하나 까딱하기도 힘들 정도로 걸쭉한 무기력감이 온몸에 산개해 있었다.
“렉바.”
나는 간신히 입을 떼어 렉바를 불렀다.
[말하기 전에 물 먼저 마셔라. 땀을 너무 많이 흘렸어. 탈수 증세가 올지도 모른다.]“이따가 마실게요. 내가 얼마나 기절해 있었죠?”
[글쎄. 표현하기도 어려울 만큼 짧은 시간이다. 2초정도.]2초. 순간 어이가 없어 헛웃음이 나왔다. 하지만 그건 중요한 게 아니다.
불어오는 바람에 시리던 손끝. 찬란하게 빛나던 달. 밤하늘을 유유히 떠다니다 산산이 흩어진 입김. 가을 특유의 매캐하고도 시원한 냄새까지.
느꼈던 모든 감각이 온몸에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환각 종류는 아니지.”
반지에 박힌 유골 보석이 깨지면서, 그 균열로 주술의 안개가 흘러나왔고, 그것이 내 의식을 앗아갔다.
그리고 나는 꿈을 꾸었다.
마치 누군가의 기억을 엿보는 듯, 몽환적이며 동시에 뚜렷한 꿈.
“‘기억 주입’이네.”
단순히 생각하면, 환혹 중에서도 기억 주입 주술일 가능성이 높았다. 나는 그 주술을 통해 아버지의 기억을 엿보고 온 것이다.
반지에 주술을 담은 것도 아버지겠지. 아마 내가 반지를 착용하면 주술이 발동되도록 설계를 해둔 것이리라.
“……하하.”
상급 주술에도 끄떡 않던 내가, 고작 한 가닥 안개에 취해 주술에 걸렸던 것도, 아버지의 주술이었기 때문이라고 하면 앞뒤가 맞는다.
렉바가 ‘주술의 괴물’이라고 평할 만큼, 아버지는 주술과 부두 마력을 잘 다루는 분이셨다.
내 주술 저항력이 아무리 세다고 해도 아버지의 주술에 저항할 수는 없다.
반대로, 내 주술 저항력을 뚫어낼 만큼 강한 주술을 시전할 수 있는 건 아버지밖에 없다.
[혼잣말하고, 웃고. 광인(狂人)이 따로 없군. 도대체 뭘 보고 왔길래 그러는 거냐.]“아버지의 기억을 본 것 같아요.”
[도명준? 그놈 기억을 보고 왔다는 말이냐?]우리 아버지 성함이 도명준이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반지에 기억 주입 주술이 걸려 있었어요.”
[기억 주입……. 그 주술을 물건에 담았다는 말인가. 내가 생각한 것보다 더한 놈이었군.]기억 주입은 일단 환혹 주술로 분류되어 있으나, 등급은 분류되어 있지 않다. 하급도, 중급도, 상급도, 최상급도 아니다.
등급 외.
기억 주입은 아버지 말고는 사용할 수 없는 주술이었기에 등급을 매겨도 의미가 없다. 때문에 등급 외 주술로 분류되었다.
애초에 주술의 분류를 아버지가 하긴 했는데, 이건 사족이고.
지금 당장, 내게 중요한 것은 이런 게 아니었다.
“왜.”
나는 아버지의 기억 너머로 보았던 ‘그 남자’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아버지와 무척 친한 친구처럼 보였던 남자. 칠흑과도 같이 검은 머리칼에, 시체처럼 창백한 피부를 가진 그 남자.
성유다.
아버지의 기억 너머, 아버지의 친구였던 그 남자는 분명히 성유다였다.
전 이단 심문관이자, 추기경이며, 성하연의 아버지. 원수라는 말로도 부족하나, 표현이 마땅치 않아 원수라 부르기로 한 놈.
“친구였으면, 이 개같은 새끼가…….”
그렇다면, 성유다는 자신의 친구였던 아버지의 몸에 ‘직접’ 기름을 붓고, 불을 붙이고, 끝내 죽인 놈이라는 말이 된다.
수만 명의 부두교도를 살해한 대량살인범인 줄은 진작 알고 있었지만, 친구를 제 손으로 직접 죽인 배신자인 줄은 몰랐다.
단순한 개새끼인 줄 알았는데, 까고 보니 아주 구체적인 씹새끼였던 것이다.
“하.”
나는 한숨을 푹 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순간 눈앞이 핑핑 돌았다. 수분 부족도 있고, 이런저런 심리적인 요인에 의해 현기증이 도진 듯했다.
왼손으로 벽을 짚어, 가까스로 방을 나왔다. 강지아가 내 모습을 보고는 화들짝 놀라 뒷걸음을 쳤다.
“교주님. 일은 다 끝내셨습니까?”
“아직이요. 그, 냉장고가 어딨지. 물 좀 마시려고 하는데.”
“아, 그건 제가. 제가 떠다 드리겠습니다.”
강지아가 분주하게 종종걸음을 치며 냉장고로 가더니, 곧 물을 한 잔 떠서 내게 가져다줬다.
나는 그녀에게 잔을 받아 단숨에 들이마셨다. 물을 마시고 나자 겨우 살 것 같았다. 한참 나를 괴롭히던 현기증도 곧 멎었다.
“고마워요.”
“아닙니다. ……그, 굉장히 오랫동안 하시네요. 벌써 1시간째입니다.”
빈 잔을 강지아에게 건네주자, 그녀가 난데없이 뜬구름 잡는 소리를 했다.
왠지 모르겠지만 굉장히 당혹스럽다는 듯한 얼굴이었다. 강지아가 이토록 뚜렷한 표정을 짓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나는 의아함에 고개를 갸웃대며 입을 열었다.
“오래 걸리는 일이니까요?”
“아, 물론. 사람마다 오래 걸리기도 하는 일이지만, 너무 과하게 하시면 아무래도 체력에 무리가 가지 않을까 하여…….”
“1시간이면 그렇게 오래도 아닌데? 이 정도는 괜찮아요.”
부두교 의식은 보통 반나절, 길게는 사흘까지도 이어진다. 1시간이면 엄청나게 빨리 끝낸 셈이었다.
강지아는 이런저런 감정이 뒤섞인 복잡한 표정을 지으며 떨떠름하게 입을 열었다.
“체력이 아주 조, 좋으시네요.”
칭찬인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한 오묘한 말투였다.
“……뭐 요즘 운동도 하니까. 아무튼 다시 들어갈게요.”
떨떠름한 얼굴로 나를 응시하는 강지아를 뒤로한 채, 얼른 방 안으로 들어왔다.
방은 흩어지지 않은 안개로 가득했다. 공기는 몹시 묵직하고 탁했다. 숨 한번 쉬기조차 힘들 만큼.
그럼에도 나는 굳이 안개를 헤치고 방을 가로질러, 침대로 향했다. 잘 생각은 아니었다.
침대에 걸터앉은 채, 손가락에 낀 반지를 내려다보았다. 보석은 아버지가 남긴 주술의 여파로 금이 가 있다.
아버지는 이 반지에, 정확히는 중앙에 박힌 보석에 주술을 담았다. 보석은 할아버지의 유골로 만들어졌다는 듯하다.
아무래도 다른 물건보다는 주술을 담기가 쉬울 것 같았다.
……그렇다면.
나도 이 반지에 주술을 담을 수 있지 않을까?
아버지가 한 것처럼, 나 또한 이 반지에 주술을 담을 수 있다면. 주술진을 그리지 않고도 주술을 사용하는 것이 가능해질 것이다.
CCTV가 가득한 도심이나, 혹은 피렌체에서 주술을 사용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성공만 한다면, 곧 있을 자선의 성호 재선출 시험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아니, 성공할 수만 있다면 자선의 성호를 따내는 것쯤 일도 아니게 될 것이다.
[허나, 성공할 가능성이 낮다. 네 아비와 비교했을 때, 너는 실력이 모자라도 한참 모자라니까.]“알아요.”
그러나 어디까지나 성공했을 때의 이야기.
렉바의 말대로 나는 아버지에 비하면 실력이 한참 부족하다. 성공할 가능성이 희박했다.
“그래도 도전은 해봐야죠.”
그렇다고 도전하기도 전에 포기할 생각은 없다.
나는 부두 마력을 사출했다.
* * *
“하연아.”
성유다가 날카롭고 싸늘한 눈빛으로 성하연을 바라보았다.
성하연은 그 앞에서 손을 다소곳이 모은 채,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얼핏 보면 부녀 관계가 아니라 주종 관계처럼 보였다. 그만큼 수직적이고 경직된 분위기였다.
“실기 평가 성적이 많이 저조하던데.”
“…….”
“1차 시험…… 중간고사라고 하나. 아무튼, 실기가 저조하면 필기로 메꾸면 돼. 너무 상심하지는 말고.”
성유다가 선심 쓰듯 말했다. 딴에는 나름 위로라고 건넨 말인 듯했지만, 성하연에게는 전혀 위로처럼 들리지 않았다.
마치 ‘실기가 개판이니 필기로 반드시 메꿔라─’라는 말처럼 들렸다.
안 그래도 무겁던 어깨가 더욱이 무겁게 짓눌려, 몸이 바닥에 내려앉아 버릴 것 같았다.
“알겠습니다.”
그 중압감 속에서, 성하연은 가까스로 대답했다. 그녀는 몸을 돌려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려고 했다.
“하연아. 지망 과는 어디로 정했니.”
그러나, 이어진 성유다의 질문에 성하연의 발이 묶였다. 성하연은 억지로 표정 관리를 하며 고개를 돌렸다.
“사제 쪽으로 가려고 하고 있어요.”
“사제. 사제라……. 그래, 적성에 맞는 쪽으로 가는 편이 낫겠지.”
성유다가 제 눈썹을 어루만지며 말했다. 마음에 들지 않는 듯한 기색이었다.
성하연은 대답하지 않고 그저 고개만 끄덕였다. 어떻게든 억지로 웃음이라도 지어보려 했으나, 전혀 웃음이 나오질 않았다.
“학교생활은 어떠니.”
이어진 성유다의 질문. 성하연은 적당한 대답을 늘어놓으며 대충 얼버무렸다. 그럼에도 성유다의 질문은 끊이지 않았다.
교우 관계는 어떠니, 선생님과 관계는 어떠니, 공부는 어떻게 하고 있니, 곧 있을 의뢰 실습은 어디로 갈 생각이니…….
성유다는 하나같이 틀에 박힌 진부한 질문을 던졌다. 이에 맞서, 성하연도 틀에 박힌 진부한 대답만을 했다.
이윽고, 끝나지 않을 것 같던 성유다의 질문 세례도 끝이 났다. 성하연은 고개를 꾸벅 숙이며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려 했다.
“……하연아. 피렌체 1학년에 ‘정화의 피’를 가진 학생이 있는 것 같던데.”
허나, 이번에도 성유다가 성하연의 발목을 잡았다.
성하연이 우뚝 멈춰 선 채로 침을 꿀꺽 삼켰다. 이마에서 식은땀이 흐르고 있었다. 성하연은 떨리는 마음을 가다듬으며 가까스로 입을 열었다.
“그래요?”
“반은 자선반이고, 이름은 도선우라고 그러던데. 혹시 아는 이름이니?”
“아니요. 누구인지 모르겠, 어요.”
성하연은 거짓말을 했다. 그녀는 거짓말을 하면 티가 많이 나는 타입이었다.
그러나 성유다는 성하연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 그는 처음부터 성하연을 보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성하연을 자신의 방으로 불러들인 순간부터 지금까지, 성유다는 단 한 번도 성하연을 바라보지 않았다.
“모르면 이제부터 친해지면 되겠구나. 도선우라는 아이와 친해지도록 해. 지금 친해지면 나중에 편할 거다.”
성유다는 ‘당연히 그래야 한다는 듯’ 도선우와 친해지라고 말했다.
정화의 일족이 정화의 피를 가진 아이와 친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으며, 그것에 협상이나 반항의 여지가 끼어들 틈은 없었다.
훗날, 정화의 일족은 정화의 피를 가진 자와 반드시 혼인을 해야만 했으니.
“……네.”
성하연은 마지못해 대답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입에서 피 맛이 났다.
그녀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 피가 나도록 강하게 입술을 깨물고 있었다. 고통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리고, 방에 소설이니 만화책이니 쓸데없는 책이 많던데.”
“…….”
“그런 것에 너무 심취하지는 마라. 너는 지금 그 누구보다도 열심히 공부를 해야 할 때이니, 다른 것에 에너지를 쏟지 않는 편이 좋아.”
성유다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러곤 성하연에게 성큼성큼 걸어왔다.
성하연은 지레 겁을 먹고 고개를 떨궜다. 두려움으로 어깨가 잘게 떨리고 있었다.
“네가 정화의 일족이라는 사실을 기억해라.”
성유다가 덜덜 떠는 성하연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자신의 딸을 바라보는 눈빛에는 일말의 애정조차 담겨 있지 않았다.
“……네, 알겠습니다.”
대답하는 성하연의 목소리가, 금방이라도 울 듯이 위태로웠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