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eric Academy's Shaman RAW novel - Chapter 68
제68화
성기사단에서 예배당으로 돌아온 직후, 나는 주술과 축복 연습에 매진했다.
밥을 먹을 때나 화장실에 갈 때를 제외하곤 계속 방에만 틀어박혀 있었다. 말 그대로 폐관 수련이었다.
목적은 당연히 체득의 경지 어쩌고 하는 그거다.
물론 진전은 없었다. 수련을 하다 잠깐 누웠더니 기절하듯 잠이 들어버렸고, 일어나 보니 아침이었다.
나는 부랴부랴 준비를 마치고 학교로 향했고, 그날도 별일 없이 수련을 하며 보냈다.
그리고, 마침내 수요일.
[오늘은 컨디션이 아주 좋구나.]교복을 입으며 나갈 준비를 하고 있으니, 렉바가 대뜸 말을 걸어왔다. 말투가 평소와 약간 달랐다. 목소리 톤도 높고, 발음도 왠지 어눌한 느낌.
“어제 잠을 많이 잤으니까요.”
신경이 쓰일 만큼 큰 변화는 아니었으므로, 대수롭지 않게 넘기며 대답했다. 그러면서 나는 가방에 필요한 것들을 집어넣었다. 교과서, 성서, 그리고 성물.
[그래. 잠을 많이 자는 건 좋지. 하지만 너무 많이 자면 안 된, 안 된다!]“……네? 평소에는 더 자라고 난리를 치시더니.”
[아, 내가. ……내가 그랬던가? 흠. 기억이 안 나는군.]준비를 마치고 예배당으로 나가려는 찰나, 렉바의 목소리에서 이질감을 느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이건 렉바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다른 로아가 렉바를 흉내 내는 듯한 목소리였다.
그리고, 이런 짓을 할 만한 로아는 단 한 분밖에 없었다. 렉바를 성대모사 하고, 대놓고 렉바를 조롱해도 아무런 타격이 없는 로아.
“바론 삼디. 언제 왔어요?”
[……흠! 렉바 이놈은 쓸데없이 목소리가 두꺼워서, 성대모사 하기가 쉽지 않단 말이지.]그제야 바론 삼디가 제 목소리를 드러냈다. 렉바 성대모사를 하면서 나를 놀라게 할 생각이었던 듯하다.
성대모사라고 하기도 창피할 만큼 퀄리티가 떨어지는 흉내이긴 했지만 말이다.
“그래서 무슨 일이에요?”
나는 신발을 신으며 물었다.
[무슨 일이긴. 네가 닷새에 한 번 오라고 하지 않았느냐. 설마 약조한 것을 잊은 건 아니겠지?]“아. ……당연히 기억하고 있었죠! 와줘서 고마워요.”
솔직히 까먹었다. 바론 삼디가 못마땅하다는 듯 침음을 뱉으며 입을 열었다.
[뭐, 아무튼 본론부터 말하자면. 오늘 하루는 이런저런 일이 많을 거다.]“이런저런 일?”
[일은 많지만, 큰일은 없다. 평이한 하루라 보는 편이 낫겠군.]평이한 하루. 그 말에 약간 기분이 좋아졌다. 평이한 하루라면 내가 그토록 바라 마지않던 하루가 아닌가.
내가 빙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자, 바론 삼디가 말을 이었다.
[조언을 하자면, 혼자 다니지 말고 반드시 사람 한 명과 같이 다니는 편이 좋을 듯하다. 또한, 뒤를 조심해라. 그럼, 나는 이만 간다!]“뒤? 갑자기 뭔 뒤를 조심……. 아, 갔네.”
바론 삼디는 그 말을 마지막으로 떠났다. 보랏빛 안개가 내게서 도망치듯 빠르게, 너풀너풀 흘러갔다.
혼자 다니지 마라. 뒤를 조심해라.
문자 그대로 뒤를 조심하라는 것인지, 아니면 배신을 조심하라는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혼자 다니지 말라는 건 도대체 무슨 뜻인지 가늠할 수조차 없었다.
당장은 무슨 의미인지 알 수 없지만, 기억해 둬서 나쁠 건 없겠지.
혼자 다니지 마라, 뒤를 조심해라, 혼자 다니지 마, 뒤를 조심…….
나는 바론 삼디의 예언을 새기며 밖으로 나왔다. 이른 아침, 거리에는 졸린 눈으로 등교하는 학생들과 출근길에 오른 직장인들이 많았다. 날씨는 조금 흐렸다.
파악!
그렇게 골목을 걸으며 천천히 학교로 향하던 중, 누군가 나를 뒤에서 밀었다.
사탄교도인가? 대낮부터?
나는 전투태세를 취하며 고개를 돌렸다.
다행히 사탄교도는 아니었고, 정인아가 생글생글 웃는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얼굴에 장난기가 만연했다.
“일찍 나왔네?”
“……어. 눈이 일찍 떠져서.”
“웬일로? 암튼 같이 가자.”
해맑게 눈웃음을 치며 말하는 그녀를 보자, 빳빳하게 굳은 몸이 녹아내리듯 풀렸다.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정인아와 함께 걸었다. 그녀는 오늘따라 기분이 무척이나 좋아 보였다.
“오늘 재선출 시험이지? 너도 신청했다고 그랬나?”
정인아가 물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응. 구준혁도 신청했다고 그러던데. 너는?”
“나는…… 나는 신청 안 했어. 잘 볼 자신도 없고. 시험공부나 열심히 하려구.”
정인아가 허탈하게 웃으며, 들고 있던 수첩에 시선을 돌렸다. 암기 과목인 ‘로마니카 종교학’에 나오는 개념을 정리해 둔 수첩이었다.
등교 시간을 이용하여 틈틈이 공부를 하는 듯했다. 집중력이 무척 좋았다.
그러고 보니 나는 시험공부를 하나도 안 했다. ‘로마니카 종교학’이나 ‘성서 이해’와 같은 인문 과목은 기본 실력으로 어찌어찌 반타작은 할 수 있겠지만, ‘신성역학’이나 ‘신성물질학’과 같은 자연 과목이 문제였다.
진단평가 때처럼 렉바의 도움을 받을 수도 없다. 렉바는 인문학 백과사전이지만, 자연학에 있어서는 백지나 다름이 없다.
“어? 저거 구준혁인가?”
그럼 내일부터 공부를 하도록 하자! 그렇게 다짐한 순간, 정인아가 눈을 게슴츠레 뜨며 말했다.
나도 그녀의 시선을 따라 길 건너편을 바라보았다. 너머에는 구준혁이 있었다. 그는 상가 유리창 너머로 자기 얼굴을 보며 머리를 다듬고 있었다.
“구준혁 맞네.”
“그치? 맞지? 야─! 구준혁─!”
정인아가 부끄럽지도 않은 듯 외쳤다. 한창 머리를 만지던 구준혁이 화들짝 놀라 이쪽을 바라보았다. 어쩐지 얼굴이 멍했다.
신호가 초록불로 변한 뒤, 우리는 횡단보도를 건너 구준혁에게 갔다. 구준혁은 당황한 듯 뒷걸음치다, 곧 언제 그랬냐는 듯 넉살스러운 웃음을 지어 보이며 입을 열었다.
“뭐야, 너네. 왜 같이 오냐?”
“오다 만났어. 너는 여기서 뭐 해?”
정인아가 물었다. 구준혁은 걸으면서도 내내 창문 너머로 반사된 자기 얼굴을 응시하고 있었다. 한참 강박적으로 머리칼을 다듬던 구준혁이 입을 열었다.
“바람 때문에 머리가 이 지경이 돼갖고…… 아, 너 빗 없냐? 이거 손으로는 커버가 안 되네.”
“빗? 없는데?”
정인아가 태연하게 대답했다. 구준혁이 흘깃 그녀의 가방을 쳐다보았다.
정인아의 가방 옆면에는 보란 듯이 꼬리 빗이 꽂혀 있었다. 구준혁은 실실 웃으며 그것을 쏙 빼 갔다.
“……어? 야 이, 미친놈아 뭐 해! 그거 앞머리 빗인데!”
“앞머리고 뒷머리고는 모르겠고. 아무튼 빗이니까 좀 쓰겠습니다~”
구준혁이 빗으로 제 머리를 다듬으며 놀리듯 말했다.
정인아가 이리저리 손을 뻗으며 구준혁에게서 빗을 빼앗으려 들었다. 구준혁은 몸을 이리저리 틀어가며 정인아로부터 도망을 쳤다.
둘은 한참이나 티격태격하더니, 나중에는 누가 잘못했고 누가 잘했고 하며 시시비비를 따지며 싸우기 시작했다. 질리도록 봐왔던 광경이었다.
“음.”
나는 그 모습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사탄교도는 피렌체에 잠입해 있다. 아마도 자선반, 즉 우리 반일 가능성이 높다.
바론 삼디는 주위에 있는 사람을 경계하라고 말했다. 생각보다 훨씬 가깝고 친한 사람이 사탄교도일 가능성도 있었다. 아니, 그럴 가능성이 제일 높다.
허나, 아무리 그래도 구준혁과 정인아는 아니지 않을까.
그저 아니라고 믿고 싶을 뿐인 걸지도 모르겠다. 저 둘은 기필코 사탄교도가 아닐 것이라 믿고 싶지만, 생각해 보면 저 둘이 사탄교도가 아니라는 보장도 없었다.
“……”
둘을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는 나. 그리고 해맑은 얼굴로 장난을 주고받는 정인아와 구준혁.
그 사이에 어쩐지 벽이 쳐져 있는 것만 같았다. 넘을 수 없고, 부술 수도 없는 높고 견고한 벽.
나는 생각을 비우고 학교로 걸음을 옮겼다.
* * *
똑똑.
들려온 노크 소리에, 한수련이 벌떡 일어났다. 그녀는 학생회실 의자 3개를 이어 붙여 침대를 만들고, 그 위에서 퍼질러 자는 중이었다.
일어나 문을 열자 여민서가 성큼성큼 학생회실 내부로 들어왔다.
“무슨 일?”
한수련이 졸린 눈을 비비며 말했다. 여민서는 대답하지 않고 자리에 앉아, 가져온 서류 두 장을 책상 위에 펼쳐 놓았다. 그러고는 매서운 눈빛으로 서류를 빠르게 훑어보았다.
한수련은 의아하다는 듯 여민서의 곁으로 와서 서류를 읽었다. 그러던 한수련의 눈이 놀란 듯 휘둥그레 커졌다.
“너 이걸 왜, 아니. ……어떻게 떼 온 거야?”
“방법이 있어.”
여민서가 가져온 서류는 다름 아닌 성적 증명서. 그것도 자신의 것이 아닌, 구준혁과 도선우의 성적 증명서였다.
서류에는 진단평가 성적부터 지금까지 봐온 실습 성적이 쭉 나열되어 있었다.
여민서는 한참 서류를 읽다, 두통을 몰아내려는 듯 관자놀이를 눌렀다.
“……한수련.”
“어?”
“둘 중 뭐가 더 어색하냐?”
여민서가 서류 두 장을 한수련에게 건네 보여주었다.
한수련은 떨떠름한 기색으로 서류를 살폈다. 아무래도 남의 성적을 맘대로 엿본다는 게 마음에 걸리는 듯했다.
그렇게 처음에는 죄책감을 느끼는 기색이 만연하던 한수련의 얼굴에 곧 의문이 떠올랐다. 끝내 그녀는 죄책감 따위는 잊고, 의아함만이 가득한 얼굴로 서류를 살폈다.
“도선우…… 성적이 왜 이래? 오류?”
“좀 이상하지?”
한수련이 아무리 봐도 의아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댔다. 구준혁은 성적이 중상위권에서 변하지 않는 반면, 도선우의 성적은 기복이 너무 심했다.
진단평가는 1등. 악마종 퇴치 실습도 1등인데, 반면 체력 시험은 12등. 융합 축복진 발표 실습도 1등인데, 치유 실습에서는 거의 꼴등.
“일관성이 없네?”
한수련이 나지막이 읊조렸다.
도선우의 성적에는 일관성이 없다.
악마종 퇴치 실습에서 1등이면 체력 시험도 1등이거나, 그에 준하는 높은 성적을 받았어야 정상인데 그것도 아니고.
진단평가가 1등이면 융합 축복진 발표나 치유 실습에서 높은 성적을 받아야 정상인데 그것도 아니고…….
실습을 매번 다른 사람이 친 것처럼, 성적이 천차만별이었다. 다른 사람?
“대련 실습은 왜 또 3승 0패야?”
서류를 훑어보던 한수련이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듣고 있던 여민서의 몸이 살짝 굳었다. 한수련은 그 미묘한 변화를 즉시 감지해 냈다.
“네가 대련 실습에서 2승 1패 했다고 그랬나?”
“…….”
“혹시 그 1패가 도선우한테 진 건 아니지?”
여민서가 말없이 얼굴을 구겼다. 한수련이 당장이라도 웃음을 터트릴 듯 입꼬리를 꿈틀거렸다.
반응을 보아하니, 전승가도를 달리던 여민서의 전적에 1패라는 오점을 남긴 것은 도선우가 맞는 듯했다.
“진짜? 도선우한테 졌어? 진짜 도선우한테 졌다고?”
“……닥쳐라.”
“우와~ 무섭다~ 근데 진짜 졌어? 썰 좀 풀어주면 안 돼? 응? 응?”
한수련이 놀리듯 꼬치꼬치 캐물었다. 여민서가 얼굴을 굳힌 채 죽일 듯 한수련을 노려보았을 때서야 그녀는 놀리는 것을 멈추었다. 하지만 입꼬리가 실룩거리는 것은 차마 숨길 수 없었다.
여민서는 순간 한수련의 얼굴에 주먹을 꽂아 넣고 싶다는 강한 충동을 느꼈지만, 이내 그만두었다.
한참 여민서를 놀리던 한수련은, 이내 미소를 억지로 숨기며 자리에 털썩 앉았다. 그러곤 도선우의 성적이 나열된 서류를 다시금 훑어보았다.
“뭐…… 다시 보니까 막 이상한 것 같지는 않네.”
한수련이 빙긋 웃으며 말했다. 여민서는 의아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댔다.
“어딜 봐서?”
“아니 뭐, 좀 기복이 심한 타입일 수도 있잖아. 가령 체력 시험 때는 컨디션이 별로였는데, 악마종 퇴치 실습 때는 컨디션이 좋았다든가. 그런?”
“야, 아무리 기복이 심해도 그건─”
“아니면 그냥 성적에 별 관심이 없는 타입이거나?”
한수련이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 여민서가 잠깐 고심하듯 고개를 떨궜다.
성적에 관심이 없는 타입이라. 아니, 그런 타입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도선우는 열정이 과한 타입이다. 뭐든 열심히, 최선을 다하려 노력하는 타입. ……허나, 그렇다면 대련 실습 당시 기권을 하려고 했던 건 뭐지?
“아니, 하. 아니다.”
여민서는 생각을 하다 말고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비록 실격패이긴 했지만, 그녀는 도선우와 대련을 해서 졌다. 심지어는 징계까지 먹었다. 교내 봉사 15일.
저지른 것에 비해 처벌이 약하기는 했지만, 어쨌거나 징계를 받았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었다.
여민서는 그때 기억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내장이 뒤틀리는 것처럼 불편했다.
“그냥 운이 좋았을 수도 있겠네. 애들 사이에서 도선우 유명하잖아? 거품이라고.”
“개소리. 거품이라 해놓고 언빌리’버블’ 이 지랄 하고 있더구만.”
도선우가 처음 이름을 알린 것은 진단평가 성적이 공개되었을 때였다. 필기 수석으로 피렌체에 입학한 성하연을 제치고 1등을 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이번 대련 실습에서 도선우는 여민서를 이기고 3승 무패라는 쾌거를 이뤄냈다.
이는 안 그래도 유명하던 도선우의 평판이 더욱 좋아지는 계기가 되었다. 오죽하면 ‘실력 하나만큼은 김진서 바로 다음이다─’라는 의혹까지 나돌 정도였다.
“에이, 그건 다 장난이지. 진짜 거품이라 생각하는 애들이 더 많아.”
물론, 호평에는 언제나 혹평이 따르는 법. 도선우에 대한 소문은 전부 거품이며, 실습 성적이 좋은 것도 전부 운이 좋았기 때문이라 평가하는 사람도 많았다.
“뒤에서 말빨이나 조질 줄 아는 새끼들 말은 내 알 바 아니고. 너는 어떻게 생각하냐?”
“뭘 어떻게 생각해? 거품인지 아닌지, 그거?”
여민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한수련은 제 턱을 매만지며 고민하는 시늉을 하다, 힐끗 시계를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뭐……. 소문이 원래 실력보다 좀 부풀려진 거 같긴 해. 근데 딱히 깊게 생각한 적이 없어서 모르겠네. 애초에 깊게 생각할 필요도 없고.”
“하긴.”
“거품이면 이번 시험에서 알아서 나가떨어지겠지.”
한수련의 말에 여민서가 고개를 천천히 끄덕거렸다. 맞는 말이었다. 소문이 어떻든 그건 중요한 게 아니었다. 진짜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가 중요했다.
허나, 여민서는 도선우의 그 ‘진짜 실력’을 가늠해 낼 자신이 없었다.
몸소 대련을 해본 결과, 남들보다 확실히 운동 신경이 좋은 것은 알겠다. 단순히 운동 신경만 비교한다면 강대만과도 호각일 것이었다.
그러나, 미처 승부가 나기 전에 자신의 돌발 행동으로 대련이 종료되었고, 결과적으로 자신이 실격패를 당해버린 탓에 도선우의 진짜 실력이 뭔지, 그가 숨기고 있는 패가 무엇인지까지는 알아낼 수 없었다.
“슬슬 갈까? 곧 시작할 거 같은데.”
한수련이 여민서를 불렀다. 한창 상념의 바다를 헤엄치던 여민서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시계를 봤다. 점심시간이 끝나고 곧 오후 수업이 시작될 무렵이었다.
그리고, 오늘 오후 수업은 자선의 성호 재선출 시험으로 대체된다. 응시자가 아닌 학생은 그대로 하교하면 되지만, 응시자의 경우 대강당에 모이기로 되어 있었다.
“어. 가자.”
여민서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목적지는 당연히 대강당.
그녀 역시 재선출 시험 응시자였으나, 자선의 성호가 되고 싶어서 시험에 응시한 것은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내정자인 구준혁과 도선우를 돕기 위해 시험에 응시한 것이었다.
‘다시 확인해 볼 필요도 있고.’
또한, 도선우의 진짜 실력을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해 보고 싶기도 했다.
날던 새 마수를 돌팔매질로 격추하고, 대련에서 믿을 수 없을 만큼 뛰어난 운동 신경을 보여줬던.
그러나 성적은 매 순간 천차만별이며, 마찬가지로 아이들의 평가도 천차만별로 갈리는.
존재 자체가 미스터리나 다름이 없는 그 새끼.
도선우 그놈의 실력을 다시 한번 눈으로 확인해 볼 필요가 있었다. 필요가 있었다기보다, 확인을 해보고 싶었다.
물론 이번 자선의 성호 재선출 시험은 성물 반입이 허가되어, 자본이 부족한 도선우 입장에선 무척 불공정한 싸움이 될 것이었다. 100m 달리기에서 남들보다 3초 늦게 출발을 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는 상황.
이토록 불공정한 상황에서, 도선우는 어떤 방식으로 발버둥을 칠 것이며, 또 어떻게 상황을 뒤집을 것인가.
상상하니 웃음이 나왔다.
“민서야, 그, 너는 웬만하면 웃지 마. 애들이 보기 불편하대.”
“……남이사 웃든 말든. 어떤 새끼가 불편하다 그러는데? 나한테 직접 와서 말하라 그래.”
“어, 사실 내가 불편해. 그래서 직접 말했어.”
한수련이 뻔뻔스레 웃으며 말했다. 여민서가 어이가 없다는 듯 멍한 눈으로 그녀를 쳐다보았다.
그렇게 한참을 말없이 삭막하게 걷던 그들은, 이내 대강당 앞에 도착했다.
사람이 엄청나게 많았다. 응시자부터, 응시자를 응원하러 온 친구들, 인원을 통솔하기 위해 배치된 교사들까지. 어림잡아 200명은 족히 모인 것 같았다.
“아, 저기 있네.”
그때, 한수련이 인파 너머 누군가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너머에는 도선우, 그리고 구준혁이 있었다. 곧 경쟁자가 될 둘이 사이좋게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보며, 여민서는 알 수 없는 위화감을 느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