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eric Academy's Shaman RAW novel - Chapter 71
제71화
여민서는 시험이 시작된 즉시 쪽지를 확인했다.
1차 관문의 합격 조건은 ‘시간 내에 방주에 들어가는 것’. 방주는 산 위에 있었기에, 응시자들은 필연적으로 산을 등반해야 한다.
계산을 마친 여민서는 성하연과 한수련에게 지령을 전달한 뒤, 축복을 사용하여 초원을 헤집고 다녔다.
“……이 정도면 되나?”
곧, 그녀는 적당한 바위를 찾아냈다. 낮고 넓은, 흡사 철판과 같은 바위. 그녀는 바위 위에 몸을 실은 뒤, 축복진을 그려 충돌시켰다.
뻐엉─!
충돌에 의한 폭발. 그로 일어난 충격파에 의해, 바위가 하늘로 붕 떠올랐다. 여민서는 바위에 몸을 붙인 채 하늘을 날았다.
“커흡, 후. 후…….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 후.”
여민서가 하늘을 날며 중얼거렸다. 그녀의 입에서는 피가 쏟아지고 있었다.
폭발에 의해 내장이 조금 터지고, 다리뼈가 부러진 것 같았지만 상관없었다. 방주 안에서는 다쳐도 다친 게 아니었고, 죽어도 죽은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죽거나 다치는 꿈을 꾼다고 해서, 실제로 죽거나 다치는 게 아닌 것처럼. 방주 내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전부 환상에 불과했다. 통증도 전부 착각에 불과했다.
꽈앙!
그렇게 하늘을 날던 여민서의 몸이 산꼭대기 근처에서 추락했다. 운석이 떨어지는 듯한 굉음이 일었다. 여민서는 만신창이가 된 몸을 억지로 일으켰다.
“이런 씨, 바 진짜. 쓸데없이 아프네.”
물론, 환상이라고 해도 통증은 있었다. 여민서는 부러진 다리와 팔, 그리고 내장이 터진 것으로 추정되는 배를 만지작거리며 비틀비틀 꼭대기를 향해 걸었다.
한 걸음 떼는 것조차 버거울 만큼 아프고 부상이 심했지만, 축복진과 치유진을 통해 응급 치료를 하자 그나마 걸을 만은 했다.
본래 부상을 입은 몸으로 축복진과 치유진을 써서 자가 치유를 하는 건 자살행위였다.
회복을 위한 체력을 신성력을 사출하는 데 써버리면, 당장은 괜찮을지 몰라도 훗날 그 반동으로 올 후유증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여민서는 개의치 않았다. 어차피 이 모든 것은 환상에 불과했으니까.
“후.”
곧, 여민서는 꼭대기에 도착했다. 하늘에서는 비가 쏟아져 내렸고, 내려다본 초원에는 서서히 물이 차오르고 있었다.
초원에는 혼비백산하며 산을 향해 달리는 아이들이 보였다. 그 모습이 마치 비를 피해 도망치는 개미들처럼 보였다.
여민서는 빗속에서 성물, 떨기나무 조각에 신성력을 불어넣었다. 그녀는 떨기나무 조각을 두 개 들고 있었다. 하나는 성하연에게, 하나는 한수련에게 연결된 것이었다.
지금 신성력을 불어넣은 것은 한수련에게 연결된 조각이었다.
“아, 아. 한수련. 들리냐? 들리면 대답.”
– 어어~ 들리는데? 왜?
“어디로 오는 중이냐?”
– 지금 구준혁이랑 ‘지름길’로 해서 가는 중~ 작전 이상 없음!
“오케이.”
여민서가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자선의 성호 재선출 시험은, 이 역시 불법적으로 입수한 정보이지만, 1차 관문과 2차 관문으로 나뉜다.
1차 관문에서 탈락자를 걸러내고, 2차 관문의 기록을 집계하여 최종적인 성적을 산출하고, 그 성적을 기준으로 자선의 성호를 뽑는다.
여민서가 세운 계획의 목적은 1차 관문에서 도선우와 구준혁을 제외한 모두를 탈락시키는 것. 그리하여 2차 관문에서 그 두 사람이 맞붙게 하는 것이었다.
지금, 여민서가 폭사(爆死)를 각오해 가면서까지 산꼭대기를 선점한 것도 전부 그 계획을 위해서였다.
– 근데 너 징계 기간 아니야? 이래도 되남? 걸리면 어떡해?
“뭘 어떡해. 걸리면 정학 먹겠지. 그럼 학교 좀 쉬다 나오지 뭐. 안 그래도 쉬고 싶었는데.”
– 너 진짜 미친년이구나? 일단 알겠어~
한수련이 쾌활하게 말하며 통신을 끊었다. 조각에 붙은 불씨가 차츰 작아지며, 한수련의 목소리도 멀어졌다.
여민서는 징계 처분 중에 있다. 그 와중에 재선출 시험에 대한 정보를 불법적으로 입수했다는 것까지 걸리면, 어지간한 징계로 끝나지는 않을 것이다. 최소 정학, 심하면 퇴학까지 고려해 볼 만한 문제였다.
그럼에도 여민서는 두려워하지 않았다. 걸리지 않을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보는 이로 하여금 불쾌감을 일으키는 기묘한 웃음을 입에 걸친 채, 묵묵히 축복진을 그렸다.
“여기도 준비됐네.”
그녀는 자신이 그린 축복진을 바라보며, 흡족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도합 12개의 축복진을 이어 붙인 융합 축복진이었다.
그러나 가동은 되지 않는다. 애초에 가동을 위해 그린 축복진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여민서는 축복진을 완성한 즉시, 성하연과 연결된 조각에 신성력을 불어넣었다. 떨기나무에 불이 붙고, 곧 성하연의 목소리가 잡음과 함께 들려왔다.
“성하연. 들려? 들리면 대답.”
– 아…… 뭐…… 도와…….
“……뭐야, 들리는 거야 마는 거야. 야, 대답!”
여민서가 재차 불러도, 잡음만 새어 들 뿐 대답은 없었다. 그래도 성하연의 목소리가 들리고, 도선우의 목소리가 들리긴 했다.
일단 도선우에게 접근하긴 한 모양인데, ‘지름길’까지 안내하는 데에 성공한 건지는 알 수 없었다.
“야, 야! ‘지름길’로 오는 중이야? 들려? 듣고는 있냐?”
– 고맙…… 꺼…….
“야, 아빠 빽 믿고 설치는 벌레야! 어, 이래도 대답을 안 해?”
여민서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연결이 된 것 같긴 한데, 아무래도 저쪽에서는 자신의 말이 들리지 않는 듯했다.
뭐, 성하연 목소리도 들리고 도선우 목소리도 들리고 하니. 대충 계획대로 흘러갔다고 치는 편이 나을 것 같았다.
여민서는 트인 길 아래, 빗발을 뚫고 끙끙대며 올라오는 아이들을 바라보았다. 오만상을 쓴 채, 아등바등 경사를 기어 올라오는 모습이 퍽 우스꽝스러웠다.
강을 거슬러 오르는 연어를 보는 곰의 심정이 이러할까. 먹잇감들이 제 발로 함정에 기어들어 오고 있으니, 절로 웃음이 새어 나왔다.
“자아…….”
여민서가 신성력을 사출하며 낮게 중얼거렸다.
“올라오느라 수고했고, 미안하다.”
퍼버벙─!!
여민서가 그린 축복진이, 아까 그려 두었던 융합 축복진에 닿아 합쳐졌다. 축복진은 얽히고설켜 끝내 충돌을 자아냈다.
무려 12개의 축복진이 동시다발적으로 충돌하여, 연쇄 폭발을 일으키고 있었다.
쿠구구구구…….
산꼭대기에 널린 자갈과 바위, 그리고 비에 맞아 무겁고 걸쭉하게 변한 진흙이 묵직한 비명을 흘렸다. 그것들은 곧 덩어리가 되어 산 아래로 흐물흐물 굴러갔다.
덩어리는 능선을 타고 흘러 덩치를 불려갔으며, 끝내는 뿌리 깊은 나무를 통째로 뽑아 휩쓸 정도로 거대한 파도가 되었다.
여민서가 그토록 공을 들여 일으킨 산사태는, 길을 타고 오르던 아이들을 휩쓸고 내려갔다.
아마 휩쓸린 것만으로도 사망 판정을 받아, 그 즉시 탈락 처리되어 방주에서 추방될 것이었다.
이 거대한 산사태로부터 안전한 길은, 오직 하나. 여민서가 설정한 ‘지름길’뿐이었다.
‘지름길’의 위치는커녕 지름길의 유무조차 모르는 다른 아이들은 죄다 산사태에 휩쓸려 탈락될 것이며, 성하연과 한수련에 의해 지름길로 안내를 받은 도선우와 구준혁만이 살아남을 것이다.
그리하여 1차 관문을 통과할 자는 오직 도선우와 구준혁, 둘뿐. 2차 관문에서 둘 중 누가 승리할 것인지는 하늘과 자본에 맡기면 그만이었다.
“와, 좀 아프겠다.”
여민서가 아이들을 내려다보며 중얼거렸다. 아이들은 절규하며, 비명을 지르며, 절망이 들어찬 얼굴로 산사태에 휩쓸려 내려가고 있었다.
* * *
산사태가 몰려오고 있었다. 아무리 낙관적으로 생각해도, 도저히 피할 수 없을 만큼 거대한 산사태가. 당장이라도 나와 서하린을 덮칠 듯 위협적인 기세로 몰려오고 있었다.
“어, 아, 이게, 어?”
서하린은 눈앞에 펼쳐진 재앙에 현실감을 느끼지 못한 듯, 멍한 눈으로 중얼거렸다. 그녀가 내뱉은 말은 전부 의미를 갖지 못하고 흩어져 사라졌다.
콰과과과과─!!
“──……?”
곧, 산사태가 자아낸 폭음이 가까워지자 서하린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게 되었다. 산이 무너지는 소리로 사방이 가득 채워져 있었다. 이따금 들려오는 비명은 산사태에 휩쓸린 아이들의 것이었다.
나는 코앞까지 닥친 산사태를 잠깐 멍하니 바라보았다. 시간이 잠시 느리게 흐르는 듯한 착각이 일었다.
설마, 아까 성하연이 했던 말이 진짜였나.
이 길은 함정이며, 이 길로 가면 반드시 탈락할 것이라던, 성하연의 그 허무맹랑한 주장이 결국은 사실이었다는 말인가? 지름길을 알고 있다던 성하연의 말도 진실이었나? 결국 성하연이 맞았고, 성하연을 믿지 못한 나는 틀렸던 건가?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
보수.
[산사태! 보수는 산사태를 좋아한다. 시끄러우니까.]“──.”
불러낸 보수가 헛소리를 읊었으나 무시했다. 나는 그에게 지시를 하나 내렸다.
[……선지자의 명이니 따른다. 그러나 위험하다. 선택에 번복은 없는가?]평소와는 달리, 차가운 보수의 경고. 그러나 선택에 변함은 없다. 나는 그의 권능을 사용했다.
일순 끓어오르는 피. 비에 젖어 차갑게 식었던 몸이 뜨겁게 달궈진다. 털이 쭈뼛쭈뼛 선다. 눈알 뒤쪽이 찌릿하게 아프다.
잘은 모르겠지만, 안압이 높아져 시신경이 손상된 것 같다. 눈앞이 흐릿해서 잘 보이지 않는다.
[권능이 선지자의 한계를 넘었다. 부하가 올 거다.]“──.”
[괜찮지 않다. 시력을 잃을지도 모른다.]아니, 괜찮다. 방주 내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환상이니까.
설령 시력을 잃더라도, 꿈에서 시력을 잃은 것이나 다름이 없다. 지금 몸이 찢어질 듯 아픈 것도 전부 환상통에 불과하다. 전부, 방주를 나가면 알아서 치유될 부상.
보수의 권능을 최대한도까지 끌어 쓸 수 있는 것도, 몸 상태를 걱정할 필요가 없는 지금뿐이었다.
콰과과과과─!!
산사태가 나를 덮치기 전, 아주 찰나의 짧은 시간. 나는 서하린의 손목을 잡아챈 뒤, 가까운 나무를 타고 올라갔다.
산사태의 기세에 못 이긴 나무가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위태롭게 휘청거리고 있었다. 급한 대로 나무를 타고 오르기는 했지만, 여기서 계속 버티고 있을 수는 없을 것 같다.
“아악……!”
내게 손목을 붙들린 서하린이 제 어깨를 붙잡으며 비명을 질렀다. 그녀의 손목을 끌어오던 와중 어깨가 빠져버린 모양이었다. 보수의 권능을 두르고 있는 와중이라 힘 조절을 할 수가 없었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기는 하다. 허나, 그래도 서하린이 고통에 휩싸인 채 비명을 지르는 모습을 가만히 보고만 있기도 마음이 불편했다.
나는 고통을 호소하는 서하린을 나무 위에 눕혔다.
빠각!
그리고, 아버지의 반지를 나무에 내리쳤다. 반지에 박힌 보석에 쩍, 금이 갔다. 균열 너머, 내가 부여한 주술의 안개가 스멀스멀 흘러나왔다. 안개는 의식을 반쯤 잃은 서하린을 향해 나아갔다.
“아……?”
곧, 서하린이 외마디 비명을 내지르며 의식을 잃는다. 그러나 눈을 감고 있지는 않다.
게슴츠레 벌어진 눈꺼풀 사이 엿보인 눈동자는 초점이 흐릿하다. 그 눈동자는 무의식 너머의 무언가를 좇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내가 반지에 담은 주술은 환혹, 그 중에서도 ‘환각’ 주술. 그것도 무척 강도가 높은 환각이다.
환각은 혼절과 달리, 의식은 존재한다. 그 대신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가 흐릿해지며, 인지 능력이 정상 이하로 떨어지게 된다. 눈앞에 어떤 상황이 펼쳐져도 의문을 가질 수 없는 상태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교묘히 명령을 내리면 상대를 조종하는 것도 가능하다.
혼절 주술과 달리 다방면에 활용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선택한 주술이었는데……. 안타깝게도, 지금 당장은 서하린을 재우는 수면제가 되어버렸다.
조금 아쉽기는 하지만, 어차피 서하린을 재우기는 해야 했다. 서하린은 ‘그 가설’을 증명하기 위해서 반드시 곁에 둘 필요가 있었다.
앞으로 십여 분간 서하린은 저대로 계속 자고 있을 것이다. 어쨌거나 급한 불은 끈 셈이었다.
“……하, 씨X.”
그럼에도 욕이 절로 튀어나왔다. 진짜 문제는 서하린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콰과과과과─!!
꼭대기로부터 쏟아지는 진흙, 돌, 자갈, 나무. 한번 일어난 산사태는 기세를 타고 계속해서 쏟아졌다. 시간 내에 산을 올라 방주에 들어가야만 하는데, 도저히 시간 내에 산사태가 종식될 기미가 안 보였다.
그렇다고 나무를 타고 갈 수도 없었다. 산사태에 나무가 전부 휩쓸려 사라진 까닭이다. 지금 내가 밟고 있는 이 나무가 마지막이었다.
[보수가 추천하는 방법은, 이 산사태를 뚫고 나가는 것이다.]보수가 방법을 제시했다. 산사태를 뚫는 것.
보수의 권능. 그것도 시신경과 맞바꾸어, 출력을 최대로 올린 보수의 권능이라면 충분히 가능할지도 모른다. 아니, 분명 가능하다.
“…….”
그러나 산사태의 기세가 만만치 않다. 스치는 것만으로 살갗이 찢겨 나갈 것이다. 설령 그렇지 않더라도 어마어마한 고통을 감수해야 할 것이다. 두려움이 앞섰고, 끝내는 의심이 들었다.
산사태를 뚫고 산을 오르는 것이 가능할까? 보수가 터무니없는 방법을 제시한 것은 아닐까?
우지끈!
상황은 내게 생각할 틈을 주지 않았다. 나무가 산사태의 기세에 못 이겨 부러지고 말았다.
결단을 내려야 할 때였다.
* * *
“……뭐야, 사람이 왜 이렇게 없어?”
꼭대기에 오른 구준혁이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의문을 토했다. 지름길을 통해, 마침내 그를 산꼭대기까지 안내해 준 한수련이 빙긋 웃으며 입을 열었다.
“글쎄. 왜일까?”
어딘가 미심쩍은 대답이었으나, 구준혁은 크게 의문을 갖지 않고 성큼성큼 나아갔다. 이윽고 그는 바위에 얹어진 커다란 방주 앞에 다다랐다. 방주는 너무나 커서, 마치 산 위에 산 하나를 더 얹어 놓은 것처럼 보였다.
“이야……. 실감나게 잘 해놨네.”
구준혁이 방주를 훑어보며 새삼 감탄을 흘렸다.
퍼억!
그 순간, 구준혁의 등 뒤로 매서운 발차기가 쇄도했다. 발차기는 한수련의 것이었다. 구준혁은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채, 그대로 노아의 방주 안으로 굴러 떨어졌다.
“……너 지금 뭐─”
촤르르르륵─!
배신감에 찬 눈으로 한수련을 멀뚱멀뚱 올려다보던 구준혁. 그 주위로 새하얀 빛무리가 쏟아졌다. 끝내 구준혁은 빛무리와 동화되어 사라졌다.
– 응시번호 065626 구준혁, 방주 입성. 1:02:32.72.
그러자, 방주에서 기계음이 들려왔다. 구준혁이 1차 관문을 통과하고, 성공적으로 2차 관문으로 넘어갔음을 알리는 안내음이었다.
임무를 마친 채 만족스러운 듯 빙긋 미소를 짓던 한수련의 뒤로, 여민서가 성큼성큼 걸어왔다.
“뭐야, 구준혁 보냈어?”
“응, 방금.”
“오케이, 그럼 하나는 됐고. 도선우 쪽은…….”
말끝을 늘이며 고개를 두리번거리던 여민서의 눈이 커졌다. 멀찍이 지름길을 통해, 성하연이 걸어오고 있었다. 다만, 그 곁에 도선우가 없었다.
도선우를 데려오기로 한 성하연의 곁에 도선우가 없다…….
여민서의 얼굴이 기괴하게 뒤틀렸다.
“야. 도선우 어딨냐?”
“설득해도 안 오겠다고 고집을 부리던데요. 저도 어쩔 수 없었어요.”
“그걸 설득해서 데려오는 게 네 역할 아니냐? 내가 역할에 대한 개념을 여태까지 잘못 생각하고 있었나?”
“그러니까, 제가 구준혁 쪽에 붙겠다고 했잖아요.”
여민서가 으르렁대자, 성하연이 한 치 미동도 없는 얼굴로 맞받아쳤다.
한수련은 부동자세로 그 언쟁을 지켜보고만 있었다. 말리는 게 정상이지만, 지금은 어쩐지 말릴 마음이 안 났다.
어차피 방주 내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환상. 둘이 싸우는 걸 지켜보는 것도 나름 재밌는 볼거리일 것 같았다.
“그러니까, 지금, 도선우가 지름길이 아니라, 이 씨X 산사태가 일어난 쪽으로 오고 있다?”
“네.”
성하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미안한 기색은 없다. 애초에 미안할 필요를 못 느끼는 듯한 얼굴. 여민서의 얼굴이 와락 구겨졌다.
“하, 표정 봐라. 아빠 믿고 까부는 것도 적당히 하지?”
여민서가 부모를 들먹이자, 미동조차 없던 성하연의 얼굴이 불쾌감으로 꿈틀댔다. 당장 싸움이 일어나도 이상할 게 없는 험악한 분위기.
그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한수련은 한 걸음 물러난 채 가만히 싸움을 구경하며 생각했다.
‘진짜 사이 더럽게 안 좋네.’
7인, 아니 이제는 6인이 되어버린 학생회 임원들은 전부 사이가 안 좋았다.
특히 여민서는 조금이라도 마음에 안 드는 게 있으면 일단 싸움부터 걸고 봤다. 한수련은 언제나 그 싸움을 중재하는 입장이었다.
“얘들아, 우리끼리 싸우지 좀─”
“말하는 거 보니, 그쪽은 믿을 아버지도 없으신가 봐요.”
“…….”
와오.
싸움을 말리려 들던 한수련이 우뚝 걸음을 멈춘 채, 여민서의 표정을 살폈다. 지금껏 본 얼굴 중에 가장 기괴하게 일그러져 있다. 성하연을 멍하니 바라보는 눈동자는 텅 비어 있었다.
여민서도, 성하연도 모두 선을 넘어버렸다. 이건 말린다고 말려질 싸움이 아니었다.
둘이 주먹다짐을 하든 칼부림을 하든, 일단 자신이 말릴 수 있는 수준의 싸움이 아니라는 것만은 확실히 알 것 같았다.
“……알아서 해라, 그냥.”
한수련이 체념하고 돌아섰다. 여민서의 손끝에서 신성력이 흘러나왔다. 성하연은 팔짱을 낀 채, 때릴 테면 때려보라는 듯 여유로운 얼굴로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수틀리면 패는 게 버릇인가요? 짐승도 아니고.”
“어, 너 같은 애들은 좀 맞으면 정신을 차리더라. 아빠한테 맞아본 적이 없어서 모르나?”
“……본인 수준 따라, 말도 참 저급하게 하시네요.”
“너는 사람 급 나누는 그 X 같은 말투를 좀─!”
카가각─!
분노에 차 성하연을 향해 달려들던 여민서의 걸음이 멈췄다. 자신이 일으킨 산사태로 무너진 길 쪽에서, 무언가 갈리는 듯한 소리가 나고 있었다.
카가가가각─!
소리는 꼭대기를 향해 다가오며 가까워졌다. 성하연도, 여민서도, 멀찍이 상황을 지켜보던 한수련도 그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무시하고 지나치기에는 너무나 크고 이질적인 소리였던 탓이다.
여민서가 사출한 신성력을 거둔 채, 자신이 일으킨 산사태 너머를 바라보았다.
산사태가 휩쓸고 간 탓에 가파르게 깎인 길. 장대와 같은 빗줄기가 그 길을 타고 모여 하나의 폭포를 형성하고 있었다.
폭포는 빗살만큼이나 물살이 강했다. 이 폭포를 뚫고 등반을 하는 건 불가능했다.
불가능, 해야 했다.
마치 그 생각을 비웃는 것처럼, 누군가가 폭포를 거슬러 올라오고 있었다.
웬 널빤지 같은 것을 방패로 삼아 폭포를 막으며, 묵묵히 꼭대기를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카가가각…….
이윽고, 소리가 멈췄다.
폭포를 거슬러 꼭대기로 올라온 남자가, 방패로 삼았던 널빤지를 무신경하게 휙 버리며, 대치하고 있던 여민서와 성하연을 지나쳐 말없이 방주를 향해 걸어갔다.
“…….”
성하연은 그 남자를 바라보았다.
몸에 성한 데가 하나도 없었다. 옷은 찢어져 있었고, 살갗은 까졌거나 벗겨져 있었다.
폭포에 젖어 축 처진 머리칼이 얼굴에 덕지덕지 붙어 있었고, 그 너머 멍한 눈으로 피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저거 진짜, 미친 새끼─”
– 응시번호 041666 도선우, 방주 입성. 1:09:12.67.
여민서가 도선우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헛웃음을 흘렸다. 정말이지 감탄이 나올 정도였다.
– 응시번호 032811 서하린, 방주 입성. 1:09:13.02.
그때, 연이어 방주에서 안내음이 울려 퍼졌다. 그것을 들은 여민서가 눈을 부릅떴다.
“……아니, 이거 완전 미친 새끼 아니야?”
도선우의 등 뒤로, 기절한 누군가가 매달려 있었다.
도선우는 짐덩이를 등에 메고, 널빤지 하나만으로 물살을 막으며, 폭포를 거슬러 산꼭대기에 오른 것이었다. 온몸이 찢어지고 피눈물이 뚝뚝 흐르는 와중에도.
여민서는 지나간 도선우의 멍한 눈빛을 떠올렸다. 그녀는 전에도 같은 눈빛을 목격한 적이 있었다. 김진서와 구준혁이 새 마수에게 물려가자, 돌 하나로 마수를 격추하였던 그때.
– 응시번호 041666 도선우, ‘2. [비공개 조건]’ 충족.
– 응시번호 032811 서하린, ‘2. [비공개 조건]’ 충족.
그는 불가능해 보이는 일을 가능하도록 만들 때, 언제나 그런 눈빛이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