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eric Academy's Shaman RAW novel - Chapter 77
제77화
일과를 마치고 예배당으로 왔다. 들어가자마자 제일 먼저 보인 것은 삼촌이었다.
삼촌은 식탁 위에 계산기를 두고 열심히 뭔가를 계산하고 있었다. 물어볼 것도 없이 돈과 관련된 것이리라 짐작하며, 나는 삼촌을 지나쳐 방문을 열었다.
“어어, 뭐야. 언제 왔냐? 뭐 좀 하느라고 들어온 줄도 모르고 있었네.”
“방금 왔어.”
“그래? 아, 맞다. 선우야.”
삼촌이 한창 두드리던 계산기를 식탁 위에 툭 내려놓으며 나를 불렀다.
“그, 뭐더라. 칭호? 성호? 그거 임명식이 내일이랬나?”
“아, 응. 내일이지.”
“반응 왜 이래? 언제는 무조건 따야 한담서 호들갑을 다 떨더니. 시험 잘 못 봤냐?”
“그냥…… 그럭저럭.”
“나 어릴 때 누나가 성적 물어보면 맨날 그럭저럭이라 그랬는데. 잘 못 봤나 보네.”
삼촌이 장난스레 말했다. 나는 쓴웃음을 흘렸다. 삼촌은 스틱을 뜯어 믹스커피를 타며 말을 이었다.
“뭐 아무튼. 혹시라도 그, 칭호? 성호? 그거 따면 말해. 기부금 대야 한다고 그랬지?”
“아……. 어. 근데 기대는 하지 마. 어차피 안 될 거 같으니까.”
“기대한 적은 없는데? 그냥 돈 필요하면 말하라는 거지.”
삼촌이 무신경하게 말했다. 삼촌과의 대화는 언제나 돈이라는 주제로 귀결됐다.
종종 삼촌이 왜 저렇게 악착같이 돈을 모으나 궁금하기도 하다. 돈에 대한 탐욕은 인간이라면 당연히 가지고 있는 것이지만, 삼촌은 그 탐욕이 너무 과했다. 삼촌이 돈을 탐하는 모습은 탐욕이 아니라 집착에 가까웠다.
뭐, 다 이유가 있겠지. 그렇게 악착같이 벌어들인 돈은 대부분 나와 부두교를 위해 썼으니까.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며 방으로 들어가려던 찰나, 어쩐지 예배당이 휑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삼촌. 누나 어디 갔어?”
“누나? 아, 지아? 걔 요즘 바쁜 거 같던데. 밤마다 이리저리 싸돌아다니고.”
“……왜?”
“글쎄. 뭐 조사할 게 있다고 그랬던 거 같은데.”
삼촌이 대수롭지 않게 말하며 앉았다. 그러곤 다시 계산기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숫자를 누를 때마다 울리는 경쾌한 음정이 예배당에 가득 울렸다.
예배당에 들어서면 언제나 맨 처음 인사를 해주던 강지아가 없으니, 어쩐지 예배당이 텅 빈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그 원인을 짐작할 수 없는 공허감을 억지로 털었다.
생각해 보면 강지아는 예배당 전속 가정부 따위가 아니었다. 그녀는 정보원이었다. 정보원이 조사를 위해 밖으로 나서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풀썩.
눅눅한 침대에 몸을 눕힌 채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았다. 자선의 성호 재선출 시험을 본 지도 벌써 나흘이 지났다.
자선의 성호를 누구로 할 것인지에 대한 토의는 지금까지 계속 이어졌다.
그리고 마침내 내일.
내일이 바로 시험 결과를 발표하는 날이자, 동시에 자선의 성호 임명식이 있는 날이었다.
내일 임명식은 1시에 시작되며, 그 전까지는 수업이 없는 관계로 학생들은 1시까지만 등교를 하면 됐다. 덕분에 아침에 시간이 남았다. 잠을 더 자거나, 혹은 아침 헬스를 조지면 될 것 같았다.
[요즘 주술 수련이 뜸하구나. 부지런히 하는 게 좋을 터인데.]눈을 감고 잠깐 낮잠을 청하려던 차, 렉바의 목소리가 나를 깨웠다. 안 그래도 잠이 안 왔는데, 렉바 덕분에 더더욱 잠이 안 올 것 같았다. 나는 하는 수 없이 일어나 부두 마력을 사출하고, 주술진을 그렸다.
“근데 이거 해도 해도 느는 느낌이 안 드는데. 제가 하고 있는 게 맞기는 해요?”
“그러니까, 이게 노력이 맞냐 이 말이죠. 노력이 아니라 헛짓거리면 결국 의미가 없잖아요.”
[자신을 조금 더 믿어라.]렉바가 격려하듯 말했지만, 아무래도 영 확신이 들지 않았다.
‘체득의 경지’에 이르기 위해 주술진을 그리고, 주술의 안개를 내 몸에 흘려보내기를 며칠. 그 며칠 동안 진전이라고 할 만한 결과가 전혀 없었던 것이다.
“주술이 통하지를 않으니 뭐가 되고 있기는 한 건지도 모르겠고…….”
[그건 네 저항력이 너무 강해서 그렇다. 계속 노력하다 보면 언젠가 스스로에게 주술을 거는 것도 가능해질 것이며, 나아가 ‘체득의 경지’에 이를 수도 있을 것이다.]“아, 네.”
렉바의 조언은 영 믿음이 안 갔지만, 그래도 일단은 하던 대로 계속 노력을 해보기로 했다. 주술진을 그리고, 안개를 내 몸에 흘려보내고, 다시 주술진을 그리기를 반복.
얼마나 지났을까, 어느덧 방 안이 보랏빛 안개로 가득 차 있었다.
“……오늘은 여기까지만 할게요. 피곤하네.”
[그래. 충분한 수면을 취하지 않고 부두 마력을 과도하게 사출하면 현기증이 오지. 그만 자도록 해라. 건강을 관리하는 것도 하나의 노력이야.]“건강 관리까지 해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네요. 새겨듣겠습니다.”
[비아냥거리지 마라.]렉바의 말을 무시하고 눈을 감았다.
* * *
“죽, 여. 죽여. 죽여, 주.”
누군가 나를 향해 걸어오며 말한다. 목각 인형처럼 삐걱대는 걸음. 손가락이 부러져 덜렁거리고 있으며, 팔 가죽이 찢어져 날개처럼 펼쳐져 있다. 잔인하고 끔찍한 외형. 나는 괴물이 다가오는 반대 방향으로 무작정 도망친다.
철퍽.
괴물이 나를 쫓는다. 철퍽, 걸음에서 질척거리는 소리가 난다. 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하염없는 암흑을 헤치며 도망친다.
철퍽.
그러나 나는 곧 걸음을 멈춘다. 더 이상 도망칠 구석이 없었다. 막다른 길.
철퍽, 철퍽.
발소리가 가깝다.
“죽여……. 죽여. 주…… 나, 죽여, 를, 주…….”
괴물이 같은 말을 반복하며 내게 다가온다. 나는 뒷걸음질 쳤다.
철퍽!
곧, 돌부리 같은 것에 발이 걸려 넘어졌다. 바닥은 피와 살점으로 흥건하다. 괴물은 여전히 나를 향해 다가오고 있다. 가죽을 날개처럼 펼친 끔찍한 외형이, 나를 향해 천천히 다가오고 있다. 의미를 알 수 없는 정체불명의 말을 중얼거리며.
“죽여. 주, 죽여…… 세, 주. 나, 니이이임…….”
괴물이 내 코앞에 멈춰 선다. 그러나, 괴물은 나를 공격하지 않는다. 괴물은 그 자리에 무릎을 꿇고 주저앉는다. 한참 고개를 숙인 채 알 수 없는 혼잣말을 중얼거리던 괴물이, 이윽고 고개를 든다.
“아, 으, 아아, 아아아악─!”
“주, 죽. 주, 를, 나……!”
괴물의 얼굴을 본 나는 더욱 공포에 질린다. 비명을 질러도 비명은 나오지 않는다. 나오는 것은 채 비명이 되지 못한 쇳소리. 비루하고 비참한 좌절의 음성.
괴물의 얼굴은 내게 너무나 익숙하다.
“교주님, 나를 죽여주세요.”
강지아 누나.
“흐, 아아악……!”
비명을 지르며 잠에서 깼다. 온몸이 식은땀으로 푹 젖어 있었다. 꿈에서 보았던 그 끔찍한 풍경이 여전히 눈앞에 생생했다. 그나마 꿈이라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 만큼, 그 꿈은 내게 지독한 공포를 안겨주고 있었다.
종종 가위에 눌린 적은 있지만, 이토록 끔찍하고 잔인하고 생생한 악몽을 꾼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심장이 터질 기세로 맹렬히 뛰고 있었다.
놀란 마음은 진정될 기미가 보이질 않았다. 아무리 숨을 고르고 심호흡을 해도 동요는 사라지지 않았다.
“……바론 삼디.”
지금 내 곁에 너풀거리는 이 보랏빛 안개가 원인일 것이다, 라고. 나는 감히 짐작했다.
이윽고 보랏빛 안개는 내 코를 타고 머리로 들어왔다. 바론 삼디의 목소리가 머릿속을 울리기 시작했다.
[무서웠다면 미안하구나! 하지만 제법 재밌지 않았나?]“재미없으니까 앞으로는 이런 거 하지 마세요. 절대로.”
[이런!]바론 삼디는 침울한 기색이 묻어나는 투로 말을 이었다.
[늘 말로만 예언을 전하니, 통 진부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말이야. 오늘은 꿈으로 해본 것이다. 재미가 없었다면 앞으로는 삼가도록 하지.]“네, 앞으로는…… 네?”
나는 하려던 말을 멈추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머물던 졸음이 순식간에 달아났다.
늘 말로만 예언을 전하니, 통 진부하다. 그래서 오늘은 꿈으로 해보았다. 뭘 꿈으로 해보았다는 걸까. 예언을? 그렇다면, 방금 내가 꾼 꿈이 바론 삼디의 예언이라는 뜻.
그것을 깨달은 순간, 등골이 차갑게 시렸다. 소름이 끼쳤다. 솜털이 바짝 섰다.
“이게 예언이라구요?”
[그래. 오늘의 예언은 무척 직접적이지. 방금 네가 본 것은 반드시 일어날 미래이다.]“반드시라니, 그게. 그게 무슨.”
[네 선택에 따라, 너는 모든 것을 잃을 수도 있고 하나만을 잃을 수도 있다. 오늘, 너는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될 거다. 나머지는 네 몫이다…….]내 몸에서 빠져나온 보랏빛 안개… 바론 삼디가 환풍구를 타고 떠났다. 안개와 함께 목소리도 덩달아 멀어졌다. 방 안에 그가 남긴 흐릿한 자취가 남아 있었다.
나는 바론 삼디의 예언을 곱씹었다. 반드시 일어날 미래. 선택. 모든 것을 잃을 수도, 얻을 수도 있다. 선택의 기로.
그가 입에 담은 단어를 재차 떠올리는 것만으로 현기증이 일었다. 머리가 어지러웠다. 구역질이 나올 것만 같았다.
휴대폰으로 시간을 확인했다. 11시 42분. 임명식은 1시. 슬슬 준비를 하고 나가야 할 시간이었다. 나는 문을 열고 뛰쳐나오듯 방을 나왔다. 어제와 같은 자리에 삼촌이 책을 읽고 있었고, 강지아는 없었다.
강지아가 없었다.
“누나 어디 갔어?”
“아까 너 자고 있을 때 나갔는데.”
삼촌은 시선을 책에 고정한 채 무신경하게 말했다. 강지아는 나갔다. 어디로 나갔을까. 어디에서 무엇을 하기에 그녀는 괴물이 되어버린 것이며, 나에게 죽여 달라고 애원하게 되는 것일까.
“조만간, 방법을 찾아 연락드리겠습니다.”
문득 며칠 전에 강지아가 내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비단 이 말만이 아니었다. 강지아가 내게 했던 모든 말들이 뇌리에 스치듯 떠올랐다가 이내 사라졌다. 그럴수록 마음은 점점 더 조급해졌다.
“연락. 누나한테 연락 온 거 없어?”
“없는데? ……너 왜 그러냐? 무슨 일 있어?”
삼촌이 내 얼굴을 가만히 응시하며 말했다. 읽던 책은 이미 덮은 뒤였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무슨 일이 있는 것은 아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아직’ 무슨 일이 일어나지는 않았다.
“혹시 누나한테 연락 오면─”
띠링!
그때, 불현듯 들려온 경쾌한 휴대폰 알림음이 내 말을 끊었다. 나는 휴대폰을 들었다. ‘(알 수 없음)’에게서 문자가 와 있었다.
[바사르소망-5]의미를 알 수 없었다. 웬 암호 같았다. 띄어쓰기가 없어서 더욱 이해하기 어려웠다. 심장이 바짝 마른 이상한 소리를 내고 있었다. 거인이 사막을 걸어가는 듯한 소리였다.
놀란 마음을 추스를 틈도 없이, 곧바로 전화가 걸려왔다. 전화는 문자와 마찬가지로 ‘(알 수 없음)’에게서 걸려오고 있었다.
“……여보세요?”
전화를 받았다. 받지 않을 수 없었다. 수화기 너머로 잡음과 철퍽거리는 소리가 섞여 들려왔다. 철퍽, 철퍽. 꿈에서 들었던 것과 똑같은 소리. 순간 구역질이 나오려는 것을 가까스로 억눌렀다.
– 들리시나요?
곧, 잡음이 멎고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물어볼 것도 없이 강지아의 목소리다.
“네.”
– 들린다면 다행입니다. 교주님, 오늘이 자선의 성호 임명식이라고 했나요? 몇 시까지 가시나요?
강지아의 말투는 태연했다. 하지만 목소리가 아주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좀처럼 평정을 잃지 않는 강지아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다는 건, 그녀가 처한 상황이 결코 일반적인 상황은 아니라는 것을 의미했다.
가슴 깊숙한 곳에서 묘한 불안이 솟아오르고 있었다. 자꾸만 환상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1시까지 가면 돼요.”
– 슬슬 준비하고 나가셔야 할 시간이네요. 일단, 제가 지금 경황이 없어서 용건만 전하도록 하겠- 하겠습니다.
그녀의 목소리가 잡음으로 이따금 끊겼다. 그녀는 지금 전파가 잘 통하지 않는 곳에 있는 것 같았다. 깊은 산중이나 지하.
“어디예요?”
– 문자로 사탄교의 은거지가 있는 곳을 알려 드렸습니다. 준비를 마친 뒤 훗날 찾아가시면 될 듯합니다. 지금 오시면 안 됩니다. 반드시 만반의 준비를 갖춘 다음 오셔야 합니다.
“지금 누나는 어딘데요?”
– 참, 윤아는 익히지 않은 음식을 좋아합니다. 생선회나 육회 같은 걸 주면 잘 먹을 겁니다. 씻길 때는 샤워 타월을 사용하지 않는 게 편하실 겁니다.
강지아는 내 말을 무시하고 제 할 말만 했다. 백지에 먹물을 붓듯 불길함이 마음을 차츰 메우고 이내 완전히 잠식되고 있었다.
철퍽거리는 발소리가 들렸다.
– 바알의 아가리는 창고로 들어가서 오른쪽으로 가면 바로 있는 장롱, 3번째 칸에 보관해 두었습니다.
“어디냐니까.”
– ……이만하면 용건은 전부 전한 것 같습니다. 감사했습니다. 이제 끊겠습니다.
“끊지 마.”
전화는 아직 끊기지 않았다. 강지아의 숨소리가 수화기 너머로 가늘게 뻗쳐오고 있었다. 나는 내 방 서랍에 넣어둔 아버지의 상자를 가방에 집어넣었다.
교복은 입는 데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렸다. 당장 입을 수 있는 편한 옷으로 빠르게 갈아입었다. 수화기 너머 강지아가 잡음과 함께 입을 뗐다.
– 교주님, 이제 정말로 끊겠…….
“묻잖아. 어디냐고.”
– …….
대답 없는 강지아.
나는 예배당을 나섰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