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eric Academy's Shaman RAW novel - Chapter 78
제78화
대강당은 벌써 북적북적했다. 임명식이 시작되기까지는 아직 10분이나 남아 있었으나, 학생들은 일찍부터 대강당에 모여 친구들과 수다를 떨고 있었다.
“너도 재선출 시험 봤었다고 그랬나. 누가 될 거 같아, 너는?”
“글쎄……. 어차피 구준혁이랑 도선우 중 하나 아니냐?”
“음. 솔직히 둘 중 하나만 고르라면 나는─”
끼이이이이익─!
단상 위에서 날카로운 소리가 울려 퍼졌다. 교사들이 음향 장비를 점검하던 도중 생긴 잡음이었다.
학생들이 인상을 찌푸리며 귀를 막았다. 단상 위에 오른 교사 하나가 마이크를 잡고 입을 열었다.
“아, 아. 곧 임명식이 시작될 예정이니, 자리에 앉은 학생들은 모두 정숙 바랍니다.”
“으……. 나 저 쌤 싫더라.”
“그치. 학생이랑 사귄다는 소문도 돌고─”
“어이, 거기! 정숙하라니까!”
교사들 험담을 하는 학생들. 그런 학생들에게 다짜고짜 고함을 지르는 교사. 반면 자리에 앉아 조용히 휴대폰을 하는 학생들과, 묵묵히 음향을 점검하는 교사들도 있었다.
그 모든 풍경들을 바라보며 한수련은 진저리를 쳤다.
“으…… 진짜 시끄럽네.”
“애새끼들이 다 그렇지 뭐.”
곁에 있던 여민서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 한수련은 오묘한 눈으로 여민서를 쳐다보았다. 그 ‘애새끼’들과 자신이 같은 나이라는 사실을 여민서는 자각하지 못하고 있는 듯했다.
“근데, 강대만이랑. 성하연이랑. 김진서랑. 다 어디 갔냐?”
여민서가 고개를 둘러보며 말했다.
“김진서는 오늘 병결 냈다는데. 강대만이랑 성하연은 잘 모르겠네.”
한수련이 고개를 갸웃대며 말했다. 여민서가 헛웃음을 흘렸다.
“걔는 맨날 병결이야. 꼼수는 꼼수대로 다 부리네, 아주.”
“에이. 진짜 아플 수도 있잖아.”
“지랄. 지금쯤 체육관에서 샌드백 치고 있을걸.”
여민서가 혀를 찼다. 한수련은 입술을 삐죽인 채 고개를 끄덕였다. 김진서가 뭘 하고 있든 자신이 알 바는 아니라는 듯한 얼굴이었다.
그들이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멀찍이 강대만이 걸어왔다. 그 뒤로 10m쯤 간격을 둔 채 성하연이 터벅터벅 걸어오고 있었다.
“음. 좀 늦었군!”
강대만이 제 팔을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4월인데도 그는 벌써 하복을 입고 있었다. 더위를 많이 타는 체질이기도 했지만, 자신의 근육을 자랑하기 위함이 컸다. 강대만을 본 여민서의 얼굴이 와락 구겨졌다.
“그냥 오지 말지 그랬냐?”
“안 된다. 나는 개근상을 받는 게 목표니까!”
강대만과는 오래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손해였다. 여민서는 강대만 뒤를 졸졸 따라오던 성하연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녀는 공포에 질린 듯한 얼굴로 슬금슬금 뒷걸음을 치고 있었다.
“……여기 귀신이라도 있냐? 뭐 해?”
“아니, 그. 저거 좀 치워주시면 안 될까요.”
성하연이 손가락으로 강대만을 가리켰다. 사람이 아니라 흉물 따위를 가리키듯 무례한 손짓이었다. 그녀의 표정에는 명백한 공포와 혐오가 떠올라 있었다. 성하연은 남자를 무서워했고, 그중에도 특히 강대만을 제일 무서워했다.
“치운다고 치워지는 게 아니야, 저건.”
여민서는 체념한 듯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옆에 있던 한수련이 의아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댔다.
“근데 대만이 은근 멋있지 않아? 몸 좋잖아.”
“너 뭐 눈깔이 발가락에 달렸냐? 몸만 좋잖아, 몸만.”
“……저도 잘 모르겠네요.”
여민서가 한수련의 말을 결코 인정할 수 없다는 듯 진저리를 쳤다. 성하연은 대답을 피하듯 고개를 반대편으로 돌렸다.
그렇게 모인 그들은 대강당 맨 앞에 준비된 ‘7인의 성호 전용석’으로 간 뒤 각자의 자리에 앉았다.
친절, 절제, 순결, 근면 네 자리가 채워졌고 겸손, 자선, 인내는 공석으로 남았다.
“겸손 이 새끼는…… 학교를 오기는 오냐?”
여민서는 ‘겸손’이라 적힌 자리를 바라보며 어이가 없다는 듯 말했다. 겸손의 성호, 속칭 ‘그놈’은 지난 한 달간 단 한 번도 학교에 오지 않았다.
“오늘 온다고 하더군. 조금 늦을 수도 있다고는 했지만.”
듣고 있던 강대만이 말했다. 임원 중 누구도 ‘그놈’의 연락처를 몰랐으나, 오직 강대만만은 그의 연락처를 알고 있었다. 그가 온다는 말에 한수련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오, 드디어 온대? 나 걔 얼굴 모르는데. 잘생겼어?”
“그냥 싸가지 없게 생겼어.”
“싸가지 없게 생긴 건 뭐야……? 저기, 하연아. 너도 걔 얼굴 본 적 있지 않아?”
‘싸가지 없게 생겼다’라는 말로 묘사를 일축하는 여민서를 뒤로한 채, 한수련은 성하연에게 고개를 돌렸다. 성하연은 다소 난처하다는 듯 시선을 피하더니,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본 적은 있어요. 부모님이 아는 사이라.”
“오. 어때? 잘생겼어?”
“그냥…… 양아치처럼 생겼어요.”
“…….”
한수련이 실망한 듯 고개를 떨궜다. 싸가지 없게 생겼다, 양아치처럼 생겼다고 하니 도대체 어떻게 생긴 건지 감이 잡히질 않았다. 잘생겼다는 말은 없는 것으로 보아 기대할 만한 외모는 아닐 것 같았다.
툭.
임원들이 의미도 없는 대화로 시간을 보내던 도중, 갑자기 강당 불이 꺼졌다. 여민서는 휴대폰을 들어 시간을 확인했다. 12시 58분. 곧 임명식이 시작될 시간이었다.
강당에 내려앉은 어둠 사이, 피렌체 이사장인 김창원이 뚜벅뚜벅 단상 위로 올랐다.
“쿨럭, 커흠, 아. 그럼, 지금부터. 자선의 성호 재선출 시험에 대한 결과 발표와 임명식이 있겠습니다.”
대강당의 모든 불이 꺼져 있었으나, 오직 단상을 비추는 조명만은 켜져 있었다. 학생들은 전부 입을 다문 채 결과가 발표되기만을 기다렸다. 곧, 이사장이자 대주교급 성직자인 김창원이 입을 열었다.
“자선의 성호 재선출 시험은 ‘방주의 관문’을 통해 이뤄졌습니다. 2차시에 걸친 관문을 통해 학생들의 역량을 평가하여, 공명정대한 방식으로─”
서두는 지루하고 뻔했다. 시험은 관문을 통해 이뤄졌고, 공정하게 심사를 진행했다. 관문을 통해 피렌체 학생들의 역량이 얼마나 뛰어난지 알 수 있었다…… 등등, 형식적인 말들.
“─그리하여, 재선출된 35기 자선의 성호를 발표하도록 하겠습니다.”
학생들의 입에서 하품이 나올 무렵, 김창원은 본론으로 넘어갔다. 지루함에 꾸벅꾸벅 졸고 있던 학생들의 눈이 번뜩 뜨였다. 공석 3개를 제외한 4인의 임원들도 모두 눈을 반짝이며, 재선출된 자선의 성호가 누구인지를 궁금해했다.
“35기 자선의 성호로 재선출된 이 학생은, 방주의 관문에서 무척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 주었습니다. 남들과 다른 특별한 방법으로 관문을 돌파해내는 기지. 무엇보다, 자신보다 먼저 동료를 챙기는 이타적인 태도까지.”
김창원의 말이 이어졌다.
“자선의 성호로 발탁된 이 학생이, 앞으로 ‘성하(聖下)의 창’으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해내기를 축원하며─”
곧, 발탁된 자선의 성호의 이름이 불릴 차례였다. 학생들의 눈이 초롱초롱 빛났다.
“자선반 도선우 학생. 단상 위로 올라와 주시기 바랍니다.”
───!
단상 아래로 우레와 같은 박수와 함성이 쏟아졌다. 도선우가 자선의 성호로 발탁된 것에 의문을 품는 이들도 적지 않았지만, 대부분은 진심으로 도선우를 축하해주고 있었다.
“역시! 근면한 자에게는 복이 따르는 법이지. 이것은 도선우의 승리가 아니라 ‘근면’의 승리라고 할 수 있다.”
박수를 치며 근면의 가치를 칭송하는 강대만.
“결국 돌고 돌아 도선우네. 하긴 구준혁은 너무 멍청했으니까.”
반드시 구준혁을 내정해야 한다며 강력 주장 했으나, 막상 도선우가 되니 자기합리화를 시도하는 여민서.
“도선우보다 구준혁이 잘생겼는데……. 아깝네.”
장난스레 아쉬운 티를 내는 한수련.
“아…….”
멍하니 탄식을 뱉는 성하연까지.
누군가는 기쁘게, 또 누군가는 무덤덤하게, 또 누군가는 슬프게 박수를 쳤다. 결과가 마음에 들든 들지 않든, 도선우가 자선의 성호가 된 것은 이미 확정이었다. 좋든 싫든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곧, 단상 위로 누군가 뛰어 올라갔다. 어둠에 가려 누구인지는 보이지 않았지만, 아무래도 도선우일 가능성이 높았다.
“─헉, 허억, 후아, 하우. 이, 이사장님. 저기, 도선우가 아직 학교를 안 와서…….”
그러나, 올라온 것은 도선우가 아닌 하예진이었다. 그녀는 숨을 몰아쉬며 김창원에게 경위를 설명했다. 도선우는 학교에 오지 않았으며, 전화를 걸어도 받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단순 지각인가요? 아니면 불참?”
김창원이 굳은 얼굴로 말했다. 그는 지각을 무척이나 싫어하기로 유명했다.
하예진은 마지막으로 도선우에게 전화를 걸어 보았으나, 역시나 그녀의 전화도 받지 않았다. 그녀는 붉게 상기된, 그러나 침울한 얼굴로 김창원을 바라보았다.
“지금 이게. 여, 연락이 안 돼서. 파악이 잘─”
“연락이 안 된다.”
김창원이 못마땅하다는 듯 입술을 비틀었다.
* * *
부두교 교주, 도선우를 노리는 사탄교도 세력의 은거지를 알아내기 위한 강지아의 조사는 성공했다. 그러나, 반쪽짜리 성공에 불과했다.
그녀는 자기 나름의 수사 기법과 추리를 통해, 사탄교도의 은거지가 있을 법한 곳의 후보를 추렸다. 그 뒤 건설 회사, 관련 행정부의 정보를 해킹하여 후보를 좁혀갔고, 이내 사탄교도의 은거지가 어디인지 찾는 데에 성공했다.
그럼에도 그녀의 조사가 ‘반쪽짜리’인 이유. 그것은 그녀가 정보를 검토하는 과정에서 사탄교도에게 붙잡혀 버렸기 때문이었다.
“‘재료’가 이렇게 제 발로 들어오는 경우는 무척이나 드문데……. 아무래도 오늘 운세가 좋았던 모양입니다.”
사탄교도가 말했다. 사탄교도는 붉은 로브를 입고 있었다. 목에 버터를 한 바가지 쑤셔 넣은 것처럼 말투가 느끼했다. 얼굴에는 표정이 없었는데, 다른 이의 얼굴 가죽을 머리에 뒤집어쓰고 있던 까닭이었다.
사탄교도의 손길이 강지아의 볼을 쓰다듬었다. 강지아는 소름 끼치는 감각에도 사탄교도를 노려보는 것 외에는 아무런 저항도 할 수 없었다. 그녀의 몸은 손끝 하나 움직일 수 없도록 견고하게 묶여, 병원 의자 위에 올라가 있었다.
“나는 이 ‘의식’이 하나의 여행이다, 그렇게 생각을 해요. 몸과 마음을 새것으로 만드는 일종의 수행인 거죠.”
“…….”
“너무 그렇게 쳐다보지 마세요. 가족과 인사를 할 여유도 드렸잖아요? 만일 ‘그분’이 이 자리에 계셨으면, 가족과 이야기를 나눌 여유 같은 건 처음부터 없었을 거라구요.”
사탄교도는 그렇게 말하며 메스로 자신의 손가락을 죽 그었다. 갈라진 손가락에서 피가 철철 흘렀다. 그러곤 만족스럽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강지아는 그 광경을 미처 바라보지 못하고 눈을 질끈 감았다.
“눈 감지 마세요. 보셔야죠. 그러려고 온 거 아닌가요?”
“잠깐, 손. 손대지 마……!”
“에이. 칼 대는 것보다는 손대는 게 낫잖아요. 안 그래요?”
사탄교도가 피가 철철 흐르는 손끝으로 강지아의 눈꺼풀을 억지로 들어 올렸다. 피 묻은 강지아의 눈가에서 눈물이 흘렀다. 마치 피눈물을 흘리는 것처럼 보였다.
아마 나는 이 자리에서 죽을 것이다. 아니, 죽는 것보다 더 모진 수모를 겪게 될지도 몰랐다.
은거지로 들어오는 길, 그녀는 수많은 박제를 보았다. 인간의 몸에서 피를 빼고 내장을 파낸 뒤, 그 자리를 솜으로 채운 박제였다.
그녀는 자신 또한 그렇게 되리라 짐작했다. 편안한 죽음은 결코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후회는 없었다.
교주님에게 위치를 알리는 데까지는 성공했기 때문이다.
방금 보낸 ‘바사르소망-5’라는 문자는 사탄교도의 은거지가 ‘바사르’ 상가 ‘소망’관 ‘-5’층. 즉 지하 5층에 있다는 뜻이었다. 급하게 보내느라 무슨 암호처럼 되어 버렸지만, 교주님이라면 어렵지 않게 해석해낼 수 있을 것이다.
죽을 때 죽더라도, 임무는 완수하고 죽는 셈이었다. 교주님께 도움이 됐다면. 그거면 됐다. 그리 생각하며 강지아는 웃었다.
“역시, 당신도 좋아할 줄 알았어요. 웃으니까 보기 좋네요. 자, 아프면 말하세요~”
사탄교도는 그렇게 말하며, 직후 들고 있던 메스로 강지아의 팔을 죽 그었다. 순식간이었다.
“으, 흐으으윽……!”
강지아는 난생처음 느껴보는 고통에, 채 비명이 되지 못한 신음을 흘렸다. 그러나, 자신의 팔 가죽이 찢어지고 그 속살이 드러나는 모습을 보는 고통에 비하면 그것은 예사였다.
사탄교도는 고통에 몸부림치는 강지아를 보며 즐겁다는 듯 킬킬댔다. 그리고 강지아의 반대편 팔에 메스를 가져다 댔다.
“가만히 있어요. 진짜 예쁘게 만들어줄 테니까.”
“아, 잠, 아……!”
강지아가 말이 되지 못한 소리를 하염없이 뱉었다. 죽음의 공포 앞에서 그녀는 언어 능력을 상실하고 있었다. 죽음 앞에서도 초연할 수 있으리라 자만했던 자신을 떠올렸다. 초연할 수 없었다.
누구라도 죽음 앞에서는 침착을 잃을 수밖에 없었다.
“자, 다시. 아프면 말하─”
터엉!
사탄교도가 메스로 강지아의 팔을 그으려던 순간. 사탄교도의 은거지, 피비린내 가득한 병실 문이 열렸다.
정확히 말하자면, 문은 열린 게 아니라 부서진 것이었다. 사탄교도는 의아한 듯 부서진 문 쪽을 바라보았다. 누군가 성큼성큼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강지아는 다가오는 그를 보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교, 주님……?”
강지아가 도선우를 바라보며 절망적으로 읊조렸다. 도선우는 아무 말 없이 주술진을 그렸다.
중급 복원.
메스에 의해 갈라졌던 살가죽이 안개에 닿더니, 마치 마술처럼 치유되었다. 경이에 가까운 복원 주술이었다. 어쩐지 전보다 실력이 더 좋아진 것 같았다.
그럼에도 강지아는 전혀 기쁘지 않았다. 그녀는 오히려 절망하고 있었다. 이곳은 너무 위험했다. 준비도 없이 갑자기 와서 상대할 수 있는 놈들이 아니었다. 설령 교주님이라도 혼자 상대하기에는 벅찬 놈들이었다.
“제, 제가. 오늘, 오늘은 오지 말라고─!”
“조용히.”
도선우의 말에 강지아는 입을 다물었다. 도선우의 눈빛이 전에 없이 무섭게 번뜩이고 있었다. 검고 탁한, 그러나 무엇보다 날카로운 빛으로.
“누구 맘대로 교주한테 오라 가라 명령질이야.”
살기를 가득 머금은 그 눈은 사탄교도로 향하고 있었다. 도선우는 곧바로 부두 마력을 사출했다. 뿜어진 부두 마력을 따라 그의 눈동자가 보랏빛으로 일렁였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