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eric Academy's Shaman RAW novel - Chapter 8
제8화
“아~ 안 그래도 손목 통증 때문에 죽겠는데. 이거 참 불미스러운 일이 생겼네요, 그쵸?”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저희 dBP 기업에서 책임지고 치료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원하신다면 그 경비들을 죄다 물고기 밥으로 줄 수도 있습니다.”
“예? 아니……. 뭐 그럴 것까지는 없습니다. 치료비만 대주시면 뭐.”
삼촌이 머쓱하다는 듯 머리를 긁적이며 말을 이었다.
“아무튼, 계약 내용 확인부터 할까요?”
삼촌이 신난 듯이 계약서를 꺼내 배정환에게 건넸다. 배정환은 금싸라기라도 받는 양 호들갑을 떨며 계약서를 받아 들었다.
“첫째, dBP 기업에서 생산한 양질의 성물 세 개를 부두교에 후원한다.”
삼촌은 채무자 앞에 선 채권자처럼 득의양양한 얼굴로 계약 조건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말투와 얼굴만 보면 사채업자라고 해도 믿을 정도였다.
“둘째, 계약서에 명시된 금액을 헌금으로 바친다. 물론, 전액 현금으로만 받습니다. 기록이 남으면 안 되는 일이라.”
“네, 물론입니다.”
“참, 그리고 부두교에 대한 정보는 절대로 발설하시면 안 됩니다. 교주님의 신변에 이상이 생기면 아내분 생명도 위태로워질 가능성이 있거든요?”
“그럼요. 당연합니다. 제가 어찌 은인분들 등에 칼을 꽂겠습니까.”
배정환은 지금 우리가 하는 말이면 뭐든 들어줄 각오가 되어 있었다. 혼수상태에 빠진 아내를 살려낸 것이 우리였으니 당연했다. 배정환의 눈에 우리는 신이나 다름이 없었다.
“뭐, 이 정도면 됐습니다. 헌금은 다음 예배 참석하실 때 주시면 되고, 성물 후원에 관해선 다음 주중에 일정을 잡도록 하죠.”
삼촌은 그렇게 말하곤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다. 나는 그런 삼촌을 붙잡아 앉혔다.
배정환의 아들. 즉, 배성현에 대해 몇 가지 할 말이 있었다.
“아드님이 피렌체 학생이시지요?”
내 말을 들은 배정환이 깜짝 놀란 듯이 눈을 치켜떴다. 곧 그의 눈동자가 미친 듯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입술마저 파르르 떨렸다.
내게 두려움을 느끼는 듯했다.
“예, 맞습니다.”
“아드님이 최근 밤늦게 들어온다거나 그러지 않나요?”
“그, 그걸 어떻게……!”
배정환의 얼굴에 두려운 기색이 한층 짙어졌다.
“하하, 교주님께서는 종종 우리의 마음을 꿰뚫어 보기도 한답니다.”
삼촌은 얼굴색 하나 바뀌지 않고 거짓말을 했다.
내게 마음을 엿보는 재주는 없다. 그냥 배성현의 평소 행실이 어떤지 알고 있었을 뿐이다. 배성현이랑 같은 학교를 다니고 있으니까.
뭐 어쨌거나 이건 중요한 게 아니다.
“아드님을 위해 쓰는 돈을 조금 줄이시는 편이 좋겠습니다. 가령 용돈이라거나, 피렌체에 내는 기부금 같은 것 말입니다.”
“예? 혹시 이유를 여쭤도 괜찮을까요?”
“대가 없이 주어지는 돈이, 아드님을 비행의 길로 이끌고 있습니다. 아드님의 미래를 생각해서라도 쓰는 돈을 줄이는 편이 좋을 듯합니다. 따끔하게 혼을 내주시는 것도 좋겠네요.”
“교주님께서는 종종 우리의 미래를 내다보기도 한답니다, 하하하.”
내가 말하자, 옆에서 삼촌이 거들었다. 내 앞날도 모르는데 남의 미래를 내다보긴 개뿔. 이진성 삼촌은 뭐 하러 저런 말도 안 되는 거짓말을 하는 거래.
헌데, 배정환은 그런 삼촌의 거짓말을 철석같이 믿는 듯했다. 그의 눈이 믿음과 신앙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하긴 종교에 빠진 인간들은 무슨 말이든 곧이곧대로 믿는 경향이 있으니까. 교주인 내가 할 말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강요는 아니고, 그저 아드님 미래를 생각하여 드리는 조언입니다.”
나는 태연자약하게 거짓말을 늘어놓는 이진성 삼촌을 슬쩍 째려보며 말했다.
“아이고, 집사람 살려주신 것도 감사한데 아들놈까지 신경 써주시니. 정말, 정말 감사하다는 말밖에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아닙니다. 그럼 이만 가도록 하겠습니다.”
나는 그 말을 마지막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엘리베이터에 탄 뒤 가면을 벗자, 이진성 삼촌이 기다렸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야, 근데 그 아들 얘기는 왜 한 거야?”
“그냥. 아들 성격이 좀 이상하거든.”
“왜? 걔가 너 괴롭히냐, 혹시?”
“나는 아니고. 다른 애 괴롭히고 있더라고.”
“허, 그래? 회장 아들이면 돈도 많을 텐데. 왜 그런대냐.”
이진성 삼촌이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인상을 찌푸렸다. 나 역시 배성현을 이해할 수 없기는 매한가지였다.
돈 많은 집안에서 부족함 없이 자란 애가, 도대체 왜 다른 친구를 괴롭히고 다니는 건지.
마지막에 배정환에게 굳이 쓸데없는 이야기를 건넨 것도, 배성현의 행실이 조금 고쳐지길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이렇게까지 했으니 배성현도 알아서 사리겠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며 dBP병원을 나왔다. 그리고 주차장에 주차되어 있던 삼촌의 차에 몸을 실었다.
배정환과 약속한 대로, 오늘 자 dBP병원의 CCTV 기록은 전부 말소될 것이었다.
* * *
배정환의 의뢰를 마치고 남은 주말. 나는 자취방에서 홀로 신성력을 연마하고 있었다.
하급 축복진을 연성하는 것은 성공. 그러나 중급 축복진을 연성하는 것에는 번번이 실패했다.
참고로 나를 제외한 피렌체 학생들은 모두 중급 축복을 다룰 줄 안다. 나만 뒤쳐졌다는 뜻이었다.
그렇게 중급 축복진을 그리기에 열중하기를 한 시간.
“됐다!”
비로소, 중급 축복진을 그리는 데 성공했다.
[되긴 뭐가 돼. 실패다.]그러나, 내가 그린 축복진에서는 축복의 빛이 흘러나오지 않았다. 허공에 그려진 축복진은 이내 색을 잃고 파사삭 무너졌으며, 동시에 기대로 부푼 내 마음도 무너지고 말았다.
“하.”
나는 한숨을 푹 쉬며, 괜스레 부두 마력으로 주술진을 그려보았다.
중급은 물론, 상급 주술진마저 너무나 손쉽게 그려졌다. 그려진 주술진에서는 영롱하고 신비한 보랏빛 안개가 자욱하게 퍼져 나오고 있었다.
부두 마력을 다루는 건 이렇게나 쉬운데, 신성력을 다루는 건 왜 이리 어려운 걸까. 나는 신성력에 재능이 없는 건가. 신성력에 재능이 없으면 고위 성직자는 어떻게 될 것이며, 그 이전에 졸업은 어떻게 할 것인가.
마음 한편에 숨어 있던 불안과 절망이 고개를 들었다.
[괜찮아. 너는 부두 마력에 재능이 있지 않으냐!]한창 절망에 빠져 있던 내게 렉바가 말했다. 늘 그렇듯 위로가 되지는 않았다. 공허함만 커질 뿐이었다.
내일 있을 ‘그 수업’을 생각해서라도, 오늘 안에 중급 축복진을 연성하는 것에 성공해야만 했다.
허나 몇 번을 반복해도 실패만 쌓일 뿐, 성공의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다시!]그렇게 잦은 실패에 마음이 무너질 무렵이면, 렉바의 목소리를 듣고 다시 마음을 다잡았다.
의지를 가지고 노력하면 못 이룰 일은 없다, 그렇게 믿으며.
* * *
이윽고 다음 날, 아침이 밝았다. 잠을 제대로 못 자서 그런지 머리가 핑핑 돌았다. 학교로 가는 걸음이 납덩이처럼 무거웠다. 자칫 정신을 놓으면 금방이라도 다리가 풀릴 것 같았다.
중급 축복진을 기어코 그려 내겠다며 밤을 지새운 것이 문제였다.
그래도 어찌어찌 늦지 않게 도착하였고, 정신없이 아침 조회가 흘러갔다. 그리고 기다리던 ‘그 수업’이 시작되었다.
“반갑습니다~ 인사는 조회 때 했으니 넘어가고. 바로 수업 시작할까요?”
하예진의 활기찬 목소리가 수업의 시작을 알렸다. 하예진은 분필을 들어 칠판에 무언가를 적었다.
현재 진행 중인 수업의 과목명이었다. 이름 그대로 신성력에 대해 배우는 시간이었다. 내가 밤을 지새워 가며 축복진을 그렸던 이유이기도 했다.
“우리 반으로 수업을 들어오는 건 처음이네요. 뭐 아무튼, 다들 알다시피 이 시간에는 축복을 비롯해, 신성력을 활용하는 방법 세 가지를 배울 겁니다.”
하예진은 그렇게 말하며 신성력을 사출, 두 개의 축복진을 그렸다. 하예진의 신성력은 일개 학생들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질이 좋았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두 개의 축복진을 그리는 데 걸린 시간이 고작 3초도 채 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과연 피렌체 교사는 수준이 다르구나. 새삼 감탄이 나왔다.
“저는 방금, 두 개의 축복진을 그렸습니다. 얼핏 보기에 둘은 같아 보입니다. 하지만 둘은 명백히 다른 종류의 축복진입니다. 본질부터 다르죠.”
하예진이 설명을 이었다.
“그럼 여기서 질문. 이 둘을 구분하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설명할 수 있는 사람?”
하예진이 방긋방긋 웃으며 학생들을 둘러보았다. 학생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고개를 떨구며 그녀의 시선을 피했다. 그렇게 몇 초간 자선반 교실에 싸늘한 적막이 흘렀다.
지지부진한 수업 태도에 하예진이 실망한 듯 얼굴을 굳히려는 찰나.
“저, 알 것 같습니다.”
누군가 손을 들었다. 모두가 놀란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정인아는 엷은 미소를 머금은 채 입을 열었다.
“축복의 중심, ‘핵’의 형태가 조금 다른 것 같습니다.”
“더 정확히. 조금만 더 자세히, 설명해줄 수 있을까요?”
굳어가던 하예진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핵의 형태를 먼저 말씀드리자면, 하나는 구형인 반면 하나는 타원체에 가깝습니다. 에, 음. 그리고…….”
“좋아요, 좋아요. 더 설명할 수 있나요?”
발표를 하던 정인아의 얼굴이 눈에 띄게 붉어졌다. 자신을 바라보는 아이들의 시선을 의식한 듯했다.
하예진은 그런 정인아의 심정도 모른 채 그녀를 더욱 부추겼다.
“핵의 형태가 구형인 쪽은 축복진, 타원체인 쪽은 치유진인 걸로…… 정확하지는 않지만, 그렇게 보입니다.”
“완벽해요!”
하예진이 함박웃음을 지으며 박수를 쳤다. 학생들은 하예진을 따라 쭈뼛쭈뼛 박수를 쳤다. 정인아는 갈채를 받으며 수줍은 듯 자리에 앉았다.
“여기 두 축복진은 같은 모양처럼 보이지만, 핵의 형태가 아주 약간 다릅니다. 그리고, 핵의 형태를 살짝 바꾸는 것만으로 축복진의 본질이 바뀌기도 하죠. 지금까지는 다들 감으로 축복진을 그려 왔겠지만, 이 핵의 형태에 유념하며 축복진을 그리면 더 정밀하고 완성도 있는 축복진을 그릴 수 있을 겁니다.”
하예진이 신나게 설명을 했다. 요약하면, 축복진을 그릴 때 핵에 신경을 쓰면 더 편하다는 거였다.
중급 축복진조차 제대로 못 그리는 내게는 무척 유용한 정보였다. 나는 하예진의 말을 노트에 옮겨 적었다.
“이렇듯, 신성력은 축복진이나 치유진을 그려 사용합니다. 자, 그럼 여기서 다시 질문!”
이윽고 하예진의 질문 타임이 돌아왔다. 학생들은 질문의 내용이 뭔지 듣기도 전에 미리 고개를 떨구고 있었다.
“축복진과 치유진 외에, 신성력을 사용하는 방법은 없을까요?”
“제가 대답하겠습니다.”
이번 대답은 배성현이었다.
“오, 좋아요. 그럼 설명해 주세요.”
“축복진과 치유진 외에, ‘기적’이라는 방식으로 신성력을 사용할 수도 있습니다.”
“네, 좋습니다.”
하예진이 만족스럽다는 듯이 빙긋 웃었다. 아까와 같은 박수는 없었다. 배성현은 그것이 마음에 안 들었는지, 인상을 와락 구기며 자리에 앉았다.
“여러분들은 아직 축복진과 치유진만 다룰 줄 알지만, 수준이 높아지면 ‘기적’이라는 것을 다룰 수도 있게 됩니다. ‘기적’이 무엇이냐 하면, 이건 말보다 직접 보여드리는 게 편하겠네요.”
하예진이 양손을 가슴에 다소곳이 모았다. 그녀가 눈을 감고 기도하듯 중얼거리자, 하예진의 몸에서 꾸물꾸물 신성력이 흘러나왔다.
그것은 이내 구름이 되었다. 색은 검고 탁했으며, 비를 잔뜩 머금은 듯이 묵직했다.
먹구름이었다.
먹구름은 이내 교실 천장을 가득 메꾸었고.
촤아아아아─!
곧,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이처럼, 성인들과 하늘에 계신 위대한 분께서 과거에 보이신 기적을 미약하나마 재현하는 것. 정확히는 ‘기적 재현’이지만, 우리는 간단하게 줄여 ‘기적’이라 부릅니다. 어우, 이거 생각보다 빗발이 드세네.”
하예진은 그렇게 말하며 다시금 손을 가슴에 모았다. 그녀의 몸에서 신성력이 흘러나왔고, 신성력은 이내 작은 태양이 되어 우리를 비추었다.
햇살은 비를 맞아 홀딱 젖은 우리를 따스하게 말려주었다.
“여러분은 아직 ‘기적’을 사용할 수 없을 겁니다. 물론 그렇다고 낙담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 나이에 기적을 사용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니까요. 노력하다 보면 여러분도 언젠가 ‘기적’을 사용할 수 있게 될 겁니다.”
하예진이 빙긋 웃으며 말을 이었다.
“뭐, 시간이 지나도 재능이 없으면 사용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지만. 아무튼! 그럼 옷도 말릴 겸, 잠깐 쉬도록 할까요? 1분 정도.”
열정적으로 수업을 이어가던 하예진이 휴식을 제안했다. 하예진의 수업은 템포가 너무 빨라서 듣는 것만으로 기가 쭉쭉 빨려 나갔다.
듣는 우리 입장에서도 이렇게 힘든데, 수업을 하는 하예진은 더 힘들 터.
휴식을 제안하는 하예진의 심정이 이해가 갔다.
“다들 옷도 마른 것 같으니, 다시 수업을 시작해 보도록 하죠.”
1분이 지나자, 하예진은 다시 기운을 차리고 수업을 재개했다. 경이로운 회복력이었다.
그녀는 수업에 한해 에너지가 넘치는 사람이었다.
“지금부터 설명할 건 신성력을 잘 다루는 두 사람이 필요한데. 음, 음. 누가 좋을까.”
하예진이 매의 눈으로 학생들을 둘러보았다. 나는 창문을 바라보며 딴청을 피웠다.
그러다 무심코 하예진과 눈이 마주쳤다. 마주친 그녀의 눈이 일순 반짝였다.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아무래도 진단평가에서 높은 성적을 받은 두 사람이 좋겠네요.”
그리고, 불길한 예감은 으레 빗나가지 않는 법이다.
“도선우, 배성현. 두 학생은 잠깐만 앞으로 나와 주세요.”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