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eric Academy's Shaman RAW novel - Chapter 83
제83화
바사르 상가에서 발생한 화재는 서울동부성기사단에 의해 순식간에 진압되었다.
나태하기로 유명한 성기사단 중, 특히 일 못하기로 유명한 서울동부성기사단이 이토록 빠르게 화재를 진압할 수 있었던 이유로는 두 가지 정도를 꼽을 수 있었다.
첫째는 새롭게 부임한 단장 한대호였다.
다른 성기사들이 미처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고 얼 타는 동안, 한대호는 단신으로 27명의 시민들을 구출해냈다.
또한 한대호는 근래 빈번하게 발생하는 화재에 대응하기 위해 소방 훈련 시수를 두 배로 늘렸다. 덕분에 이번 화재를 빠르게 진압할 수 있었다.
그리고, 둘째는 이름 모를 견습 성기사였다.
불길이 치솟는 건물 안으로 용감하게 돌입을 시도한 견습 성기사는, 2층의 화재를 진압하였을 뿐 아니라 무려 12명의 시민을 구해냈다. 한대호에 비하면 절반도 못 미치는 수였지만, 견습 성기사임을 감안하면 어마어마한 공이었다.
“그래서, 이번에 파견 온 놈 이름이 뭐라고?”
한대호는 곁에 있던 아무 부하 성기사나 붙잡고는, 이번에 파견 온 견습 성기사의 이름을 물었다.
다른 성기사단에서 채 가기 전에 얼른 영입을 해버릴 생각이었다. 부하 성기사는 질문을 듣고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댔다.
“저어, 다시 한 번만 말씀해주실 수 있으십니까?”
“이번에 피렌체에서 파견 온 견습 성기사 놈 이름이 뭐냐고. 새끼가 칭찬 좀 해주려고 했더니, 관등 성명도 안 대고 지 혼자 홀랑 사라져선…….”
“단장님, 저기…… 이번에 파견 온 성기사 없습니다. 아직 파견 시즌이 아닌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뭐라는 거야, 인마. 그럼 내가 본 건 귀신이냐? 파견 온 놈이 왜 없어?”
한대호가 답답한 마음에 호통을 쳤다. 그놈이 절대 다른 성기사단으로 가게 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 괜히 조급한 마음이 들었다.
아니, 다른 성기사단으로 가는 거면 차라리 다행이었다. 갑자기 진로를 틀어 성전사가 되겠다고 설치기라도 하면 그만큼 속 쓰린 일이 없을 것 같았다. 그 전에 얼른 잡아다가 영입을 해야 했다.
그런 한대호의 마음과 달리, 부하는 금시초문이라는 듯 한참 고개를 갸웃댈 뿐이었다.
“단장님, 정말 귀신 보신 것 아닙니까……? 파견 시즌은 7월경인데, 지금은……. 게다가 학생들 지금 한창 시험 준비하고 있을 때라, 파견 같은 거 올 여유 없습니다.”
“뭐? 야, 너. 나랑 같이 건물 들어가서, 2층 화재 진압하고 11명인가 12명인가 구조한 놈 있잖아. 못 봤어? 그놈이 지 입으로 지가 견습 성기사라던데?”
“아, 봤습니다. 근데 그거 피두호 성기사님 아니셨습니까?”
“피두호 그놈은 어제 야간하고 집 가서 자고 있는데? 아니, 뭐야. 파견 시즌이 아니면 뭐…… 내가 본 게 진짜 귀신이라고?”
한대호가 어이가 없다는 듯 헛웃음을 토했다.
귀신이 성기사를 사칭하고, 건물로 들어가서 12명의 시민을 구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말이 안 되는 이야기였다. 그야말로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였다.
고심하던 한대호 곁으로, 중앙성기사단 지원 팀 서넛이 우르르 달려왔다.
“동부성기사단장 한대호 맞으십니까?”
“……아, 예. 단장 한대호 맞습니다.”
한대호는 바삐 생각을 정리하고 지원 팀을 향해 꾸벅 인사를 했다.
그는 입으로는 웃고 있었지만 미간에는 깊게 주름이 파여 있었다. 교계(敎階)로 따지면 기껏해야 사제나 주교일 놈들이, ‘님’ 자는 쏙 빼놓고 한대호, 한대호 하며 부르는 것이 영 못마땅했던 까닭이었다.
원래 같았으면 고함을 지르며 곧바로 갈굼에 들어갔겠지만, 중앙성기사단은 엄연히 교황청에 소속된 직할 단체였다. 서울동부가 결코 작은 성기사단은 아니었지만, ‘중앙’에 비해 위상이 초라한 건 사실이었다.
“근데, 중앙성기사단분들이 여긴 무슨 일로?”
한대호는 부글부글 끓는 속을 가까스로 삭이며 빙긋 미소를 지었다.
중앙성기사단 지원 팀의 팀장격으로 보이는 성기사가 품을 뒤적거리더니, 이윽고 웬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중앙에서 보낸 지원에 대한 청구서입니다. 확인하시고, 빠른 시일 안으로 회신 부탁드립니다.”
“아~ 예, 예. 청구서. 중앙은 이게 있었지. 네, 감사합니다. 살펴 가십쇼, 예~”
한대호는 그들이 건넨 청구서를 구깃구깃 주머니에 쑤셔 넣고는, 얼른 지원 팀을 구급차에 태워 복귀시켰다.
“도와준 건 X도 없으면서 청구는 무슨, 지X을 하고 앉았네.”
지원 팀을 태운 차가 이윽고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졌을 무렵, 한대호는 잔뜩 열이 뻗친 듯 날카로운 투로 혼잣말을 중얼댔다.
용의 꼬리냐 뱀의 머리냐, 그 선택의 기로에서 뱀의 머리를 택하고 서울동부성기사단으로 온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는 읊조림이었다.
“같은 성기사끼리 너무한 거 아닙니까? 한 것도 없으면서 청구서는 무슨, 허.”
그런 한대호 곁으로 부하가 따라붙어 덩달아 중앙 욕을 해댔다. 다른 성기사단과 달리, 중앙성기사단으로부터 오는 지원은 반드시 청구서가 따라붙었다.
중앙의 인력은 귀하고, 그 귀한 인력을 보내 주었으니 상응하는 보답을 해주어야 한다는 것이 중앙의 논리였다.
때문에 중앙성기사단은 수많은 다른 성기사단의 눈엣가시였다.
“뭐 어쩌겠냐. 중앙이라는 놈들이 다 그렇지. 그래도 사제 새끼들에 비하면 우리네들은 천사여, 천사.”
“아, 맞습니다. 저번에 빌라 화재 진압하셨을 때도, 갑자기 사제단이 찾아와서는 감 놔라 배 놔라 난리 치지 않았습니까?”
“그랬지. 하여튼 사제 새끼들 오지랖 하나는…… 아.”
부하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던 한대호의 눈이 번뜩 뜨였다. 그의 머리를 섬광처럼 스쳐 간 얼굴이 있었다.
빌라 화재 당시, 유품인지 뭔지를 가져오겠다고 불길에 뛰어들었던 그 미친놈.
“……맞네, 그 새끼.”
“그 새끼라면 피두호 성기사님 말씀이십니까?”
“아니 아니, 그놈 말고.”
한대호가 고개를 저었다. 그의 입가에는 희미한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그, 아주 착하게 미친놈 하나 있어.”
* * *
한창 임명식이 진행되고 있는 대강당은 혼란으로 가득했다. 자선의 성호로 발탁된 도선우가 불참했다는 소식 때문이었다.
“죽었나?”
“이 정도면 임명 거부라 봐야지. 다른 사람으로 뽑는 게 맞지 않나…….”
“걔 원래도 지각 자주 하잖아. 아직 집에서 자고 있는 거 아님?”
이곳저곳에서 추측이 무성했다. 도선우는 학생들의 입에서 오르내리며 시체가 되거나, 불량 학생이 되거나, 혹은 임명을 거부한 배짱 좋은 미친놈이 되거나 했다.
“……두 놈이 다 뭐 하는 거야, 진짜.”
혼란 속에서, 정인아는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휴대폰을 내려놓았다.
임명식이 시작된 지 벌써 30분이나 지났다. 그럼에도 도선우의 모습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문자를 보내고 SNS 메시지를 보내도 답장이 없었고, 전화를 걸어도 받지 않았다.
불참한 것은 도선우만이 아니었다. 구준혁도 불참이었다. 그 역시 도선우와 마찬가지로 전혀 연락이 되질 않았다.
정인아는 착잡한 마음을 연신 한숨으로 토해내고 있었다.
끼이이익─!
그때, 단상 위 마이크의 전원이 켜지며 날카로운 소음이 일었다. 소란은 종식되었고, 내려앉은 침묵 속에서 이사장 김창원은 마이크를 쥐었다. 미간에 주름이 깊게 잡혀 있었다.
“자선의 성호로 발탁될 ‘예정’이었던 도선우 학생의 불참으로 임명식에 차질이 생긴바, 공지에 앞서 지루하셨을 학생분들께 사과의 말씀을 드립니다.”
김창원이 바짝 날이 선 투로 말했다. 자선의 성호로 발탁된 도선우가 아닌, 자선의 성호로 발탁될 ‘예정’이었던 도선우로 발언이 정정되어 있었다.
정인아는 침을 꿀꺽 삼키며 다시금 도선우에게 전화를 걸었다. 역시나 받지 않았다.
“현재 도선우 학생과 연락이 닿지 않는 관계로 임명이 무기한 지연되고 있으므로, 이에 교사들이 회의를 거쳐 결정한 바를 말씀드리도록 하자면─, 쿨럭, 쿨럭!”
김창원이 말하던 도중 기침을 했다. 기침은 몹시 무겁고 거칠었다. 뒤에 있던 치유 사제나 교사들이 황급히 다가와 김창원에게 손수건을 건넸다. 김창원은 손수건으로 입을 막은 채 연신 기침을 했다.
가까스로 기침이 멎고 난 뒤에도 김창원은 한참이나 숨을 가다듬었다. 입에서 떼어낸 손수건이 피로 흥건히 젖어 있었다.
김창원 이사장이 오랜 지병을 앓고 있으며, 그 병세가 근래 들어 유독 악화되고 있다는 것은 교사들은 물론 학생들마저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슬슬 가실 때가 됐나 보다.”
“뭐? 이, 이 미친년아. 제발 목소리 좀 낮춰.”
곧 죽을 듯 기침을 하는 김창원을 보며 여민서가 나지막이 읊조렸고, 그것을 들은 한수련이 질겁하며 그녀의 입을 막았다.
그 옆에 앉은 강대만은 팔짱을 끼고 졸고 있었고, 성하연은 한쪽 눈썹을 찌푸린 채 의아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대고 있었다.
불참?
성하연은 문득 방주에서 만났던 도선우를 떠올렸다.
폭포를 거슬러 오르던 그와 자신의 제안을 매몰차게 거절했던 그의 눈빛은 집념으로 이글거리고 있었다.
그런 도선우가 아무런 이유도 없이 임명식에 불참할 것 같지는 않았다. 필시 무슨 이유가 있으려니 싶었지만, 그 이유가 무엇인지는 전혀 짐작이 가질 않았다.
“이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교사 및 장로와의 회의 결과, 임명식에 불참한 것은 명백한 임명 거부의 의도로 보이며, 이에 따라…….”
김창원은 거기서 말을 잠깐 멈추고 호흡을 가다듬었다.
지병 탓에 말을 길게 하기가 벅찬 것이리라 하고 교사들과 학생들은 짐작했다. 강당에는 여전히 고요한 적막만이 아득하게 흐르고 있었다.
“……결정을 불가피하게 번복하게 되었습니다.”
끝내, 이어진 김창원의 말로 강당의 정적은 더욱 깊어졌다.
결정을 번복한다. 그것은 다시 말해 도선우가 자선의 성호로 발탁되지 못하였음을 의미했다.
좌석에 앉은 학생들은 여전히 침묵하고 있었으나, 그들 사이에서는 분명히 묘한 기류가 흐르고 있었다.
자선의 성호가 다시금 공석이 되었다.
그것은 좌석에 앉아 강당 위를 동경의 시선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었던, 대다수의 평범한 학생들에게 또다시 기회가 찾아왔다는 뜻이었다.
일부 학생들은 기대감에 찬 눈을 반짝이며 대놓고 기뻐하는 기색을 보이고 있었다.
정인아는 그런 그들을 보며 불쾌감을 느꼈다. 임명식에 불참한 것은 도선우의 잘못이 맞았지만, 그렇다고 그걸 저렇게 대놓고 기뻐하는 놈들을 보니 문득 부아가 치밀었던 것이다.
“뭐야, 기껏 왔는데. 재미없게.”
“……깜짝이야. 누, 누구세요?”
그때, 정인아의 옆에 앉아 있던 누군가가 혼잣말을 읊조렸다. 정인아는 화들짝 고개를 돌렸다.
분명 아까만 해도 옆에 아무도 없었는데, 어느새 처음 보는 남자가 자신의 옆자리를 꿰차고 앉아 있었다.
“어? 여기 혹시 자리 있어? 그럼 비켜주고.”
남자는 날카롭게 치켜 솟은 눈매로 정인아를 훑어보듯 응시하며 말했다.
“……아뇨, 그건 아닌데.”
그 끈적하고 불쾌한 눈빛에 정인아는 가볍게 진저리를 치고는, 설레설레 고개를 저었다. 남자는 빙긋 웃었다. 남자의 웃음에는 비릿하고 끈적한 구석이 있었다.
“근데, 너 몇 반이야? 처음 보는 얼굴인데.”
“…….”
“몇 반인지도 안 알려주네. 그럼 끝나고 뭐 해? 집은 어디? 근처?”
남자가 능글맞은 투로 물었다. 정인아는 입을 다문 채 고개를 떨궜다. 도선우도 구준혁도 없는 지금 낯선 남자의 난데없는 접근. 당황을 넘어 당혹스러운 상황이었다.
“크흠, 흠.”
때마침 단상 위로 김창원이 목을 가다듬는 소리가 들렸다. 정인아는 그 소리에 새삼 감사를 느끼며 고개를 들었다. 정인아에게 끈덕지게 말을 걸던 남자도 단상 위로 고개를 돌렸다.
“하여, 임명식은 이것으로 종료하도록 하겠습니다. 자선의 성호 재선출에 대해서는 회의를 거친 뒤, 추후 결과를 알려드릴 예정이니─”
김창원이 낮게 깔린 목소리로, 임명식의 종료를 선포한 그 순간.
쿠웅!
뒤편에서 들려온 둔탁한 소리에 학생들이 일제히 고개를 돌렸다.
거칠게 문을 열어젖히며 강당으로 들어온 그는, 비척비척 무거운 걸음을 이끌며 학생들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
김창원은 말없이 그를 바라보았다.
땀에 젖은 머리칼. 거친 호흡. 누군가의 피가 검게 눌어붙어 누덕누덕해진 옷. 붉게 충혈된 눈은 단상 위 김창원을 또렷이 응시하고 있었다.
그는 당장 의식을 잃어도 이상할 게 없는 그 몸을 이끌고 강당을 가로질러 단상을 걸어 올라왔다.
뚜벅, 뚜벅, 뚜벅…….
그의 걸음은 힘이 없었고 놋쇠를 매단 듯 무거웠다. 계단을 오르는 그의 걸음 소리가 유난히 요란했다. 강당에 내려앉은 침묵은 여느 때보다도 깊었다.
털썩.
그가 단상 정중앙에 쓰러지듯 주저앉았다. 숙인 고개에서 잿가루 같은 것이 후두둑 떨어졌다. 김창원은 미간을 찌푸린 채 그를 내려다보았다.
가까이서 보니 상태가 더더욱 말이 아니었다. 만신창이라는 말로도 표현이 부족했다. 그것은 산송장이나 다름이 없었다. 단상 위를 걸어 올라온 것이 신기하다고 느껴질 정도였다.
“늦었습니다. 죄송합니다.”
그가 고개를 숙인 채 말했다. 목소리는 분명하게 떨리고 있었으나 말에는 전혀 끊김이 없었다. 김창원은 마이크를 쥐었다. 그리고 입에 가져다 댔다. 허나 쉽사리 입이 떼어지지 않았다.
“……도선우.”
가까스로 떼어낸 입은 단상 위를 올라온 그의 이름을 부르고 있었다.
“끝났나요.”
도선우가 말했다. 김창원은 차마 대답하지 못했다.
“임명식은…….”
쿵.
도선우의 마지막 말은 끝을 맺지 못했다.
그 말을 마지막으로 도선우는 쓰러졌다. 강당을 가득 메운 침묵 사이로 둔탁한 소리가 가득 울려 퍼졌다. 시간이 멈추기라도 한 듯 아득한 침묵이 흘렀다.
모두가 입을 벌린 채 쓰러진 도선우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는 동안, 오직 두 명의 학생만은 웃고 있었다. 하나는 여민서였고, 다른 하나는 정인아의 옆에 앉았던 남자였다.
“그래……. 이 정도는 돼야 올 맛이 나지.”
남자가 웃음을 머금은 채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정인아는 그제야 상황을 파악하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단상으로 달려갔다.
정인아를 시작으로 다른 학생들도 뒤늦게 상황을 파악하기 시작했고, 어느덧 강당은 혼란으로 가득 찼다.
“이사장님! 따, 따님분이…….”
김창원의 딸, 김진서가 병원에 입원했다는 소식이 들려온 것은 그때였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