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eric Academy's Shaman RAW novel - Chapter 85
제85화
“으스스하네.”
한대호는 계단을 내려가고 있었다. 불이 났던 바사르 상가의 지하로 내려가는 길이었다. 옆에는 종교 오타쿠 부하 성기사, 오희진이 함께였다.
오희진은 옆구리에 클립보드를 끼고 있었다. 거기에는 사탄교와 부두교, 셈족교와 기타 여러 가지 종교의 교리와 특징들이 정리되어 있었다.
“저, 단장님.”
한대호 뒤를 따르던 오희진이 대뜸 물었다.
“왜? 빨리 말해, 이 새끼야. 뜸 좀 들이지 말고.”
“저번 일 말입니다. 괜찮은 겁니까?”
두루뭉술한 물음이었다. 한대호는 뒤늦게 오희진의 저의를 파악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화재 진압 후, 한대호는 곧바로 견습 성기사 사칭범의 신원을 파악했다. 이름이 도선우이며 피렌체 1학년이라는 것 외에 별다른 특이 사항은 없었다. 애초에 이름과 학교만 알아낼 생각이었기에 그 이상 뒤를 캐지는 않았다.
직후 한대호는 피렌체 교사들 중 친분이 있는 김복동에게 연락을 하여, 도선우가 화재 진압에 있어 큰 도움을 주었으며, 무려 12명의 시민을 구조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교사들 사이에서 도선우의 행적이 알려진 것도 한대호 덕이었다. 다만 한대호는 도선우가 입원하여 사경을 헤매고 있다는 소식까지는 듣지 못했다.
“괜찮지. 내가 거짓말한 것도 아니고.”
한대호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대답했다.
“하지만 단장님, 진짜 견습 성기사도 아니고, 견습 성기사를 사칭한 학생 아닙니까. 그런 놈한테 장비를 준 것도 모자라서 큰 도움을 받았다는 건, 저희 성기사단의 인식을 크게 실추시키는─”
“이 새끼가 별 걱정을 다 하네. 나도 다 생각이 있으니까 그냥 조용히 있어.”
한대호는 그렇게 말하며 가볍게 웃어 보였다. 도선우의 활약을 이리저리 떠벌리고 다니면, 오희진의 말 대로 성기사단의 인식이 크게 안 좋아질 가능성이 있었다.
허나, 더 이상 떨어질 이미지도 없다는 게 한대호의 생각이었다. 세간의 비판은 받아들이면 그만이지만, 도선우 같은 인재를 놓치는 건 크나큰 손해였다.
한대호는 훗날 있을 의뢰 실습과 파견 실습에서 도선우를 서울동부성기사단으로 영입할 생각이었다. 피렌체 측에 도선우의 행적을 기꺼이 알린 것도 이를 위한 포석이었다.
“단장님 말씀이시니…….”
오희진은 마지못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옆구리에 끼워져 있던 클립보드를 들어 의미 없이 그것을 훑어보았다. 그는 시간이 날 때마다 그것을 훑어보는 버릇이 있었다.
철퍽…….
그때, 어디선가 불길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한대호와 오희진의 시선이 한곳을 향했다.
그곳에는 하체가 잘린 채 팔로 바닥을 기어 다니는 남자가 있었다. 모습이 반시체나 다름이 없었다. 그가 기어온 길로 창자가 실처럼 길게 늘어져 있었다.
“귀, 귀신……!”
오희진의 얼굴이 파랗게 질렸다.
“인마, 정신 차려!”
한대호는 그런 오희진의 뒤통수를 치며, 얼른 남자에게 다가갔다. 오희진의 말대로 귀신일 수도 있었지만, 폭발에 의해 하체가 날아가 버린 선량한 시민일지도 모를 일이었다.
……폭발이 일어난 지 벌써 나흘이 지난 지금, 아직까지 살아 있는 시민이 있을 리가 없었지만.
“서울동부성기사단장 한대호입니다. 괜찮으십, 윽!”
남자에게 다가간 한대호가 갑작스러운 악취에 뒷걸음을 쳤다. 악취는 남자의 몸에서부터 나고 있었다. 정말 지독한 악취였다.
“군, 단장니임…… 군단장니이임…… 살려, 주십시오…… 군단장니이이임…….”
남자는 군단장을 부르며 앞을 향해 하염없이 기어가고 있었다. 멀리서 볼 때는 하체만 없는 줄 알았는데, 가까이서 보니 머리까지 반으로 잘려 있었다. 단면에서는 시체 썩은 내가 났고 강한 약품 냄새가 났다.
“포르말린…….”
충격으로 넋을 잃은 한대호의 뒤로, 오희진이 나지막이 말했다. 포르말린은 박제의 방부제로 주로 사용되는 약물이었다.
박제?
한대호는 문득 불길함과 불쾌감을 느꼈다.
“군단장니이임……. 살려 주십시오…….”
불룩.
오희진이 구토를 참으려 입을 막고, 한대호가 질린 얼굴로 남자를 바라보고 있을 때였다.
남자의 잘린 머리 단면이 불룩 솟아올랐다. 솟아오른 부분은 울룩불룩 형태를 바꾸더니, 이윽고 당장이라도 터질 듯 팽창하기 시작했다.
한대호는 그것을 보며 본능적인 위기감을 느꼈다.
“……어, 엎드려!”
퍼엉─!
한대호가 오희진을 향해 달려들었다.
폭발과 함께 남자의 살점과 이빨 조각, 그리고 톱밥과 솜이 여기저기에 튀었다. 폭발이 크지는 않았지만, 날아든 톱밥과 이빨 조각이 한대호의 몸 이곳저곳에 박혔다.
한대호는 고통에 얼굴을 찡그리면서도 결코 소리를 내지는 않았다.
“다, 단장님! 괜찮으십니까?”
뒤늦게 정신을 차린 오희진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의 손은 치유진을 그리고 있었다. 치유진은 완성되지 못하고 반쯤 그려졌다가 무너지기를 반복했다. 놀란 마음이 아직 진정되지 않은 탓이었다.
한대호는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치유진을 그리던 오희진의 팔을 저지했다.
“됐다, 됐어. 되지도 않는 걸 뭐 하러 하고 있냐.”
“아닙니다, 상처가…….”
“별거 아니야. 화상도 아니고, 하루 자면 나아.”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하며 한대호는 몸에 박힌 파편들을 털어냈다. 파편이 박혔던 부위로 피가 솟아 옷을 적셨다. 피는 멎지 않고 계속 흘렀다. 나중에는 한대호의 옷이 전부 빨갛게 물들었다.
폭발한 남자는 기어 오면서 무수한 흔적을 남겼다. 톱밥이나 솜, 피와 머리카락, 그리고 미끈미끈한 액체들이 남자가 기어온 길을 표시해주고 있었다. 한대호와 오희진은 그 흔적을 따라 걸었다.
탄내가 진동하는 어두컴컴한 복도를 지나, 바닥면이 미끌미끌한 계단을 내려왔다. 도착한 방에는 남자에게서 났던 것과 같은 약품 냄새가 진동하고 있었다.
“……냄새 한번 독하네.”
한대호가 코를 틀어쥔 채, 앞장서 걸으며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곳곳에 창백한 살점들이 흩어져 있었고 바닥에는 정체불명의 액체가 가득 깔려 있었다. 폭발에 의해 벽면이 까맣게 그슬렸거나, 천장이 무너져 내린 곳도 있었다.
그 뒤를 따르던 오희진은 끼고 있던 클립보드를 훑어 읽는 중이었다. 한대호는 집중 상태에 들어간 오희진의 어깨를 툭툭 쳤다.
“사탄교 냄새가 나는데. 네가 보기엔 어떠냐?”
“제가 보기에도 사탄교 맞는 것 같습니다. 2년 전 그놈입니다.”
“그래, 2년 전 그놈인 건 알겠는데…….”
한대호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박제는 없었고, 박제‘였던’ 살점들만 주위에 가득했다.
2년 전에 있었던 박제 사건 당시, 범인은 자신이 만든 박제를 무척이나 애지중지했다. 예술가가 자신의 작품을 목숨보다 소중하게 여기듯이.
그랬던 범인이 그토록 애지중지하던 박제를 전부 폭파해버린 이유는 무엇일까. 아니, 폭파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문득 한대호의 머릿속에 떠오른 의문이었다.
“단장님! 여기로 와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오희진의 다급한 목소리가 한대호를 상념에서 끄집어냈다. 한대호는 뛰다시피 걸으며 오희진이 있는 방향으로 갔다. 걸음에서는 철퍽거리는 소리가 났고 바닥이 미끄러워서 몇 번이나 넘어질 뻔했다. 그렇게 도착한 그곳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뭐야? 왜 와보라고 한 건데?”
“저, 저기. 보이십니까.”
오희진이 삿대질로 바닥을 가리켰다. 바닥에 웬 빛나는 가루 같은 것이 액체 위를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빛은 희미한 보라색을 띠고 있었다. 한대호는 고개를 갸웃댔다.
“저게 뭔데?”
“뼛가루입니다. 그때 봤던, 빛이 나는 뼛가루 말입니다.”
“그러니까, 그때가 언젠데. ……너 설마, 성전 말하는 거냐?”
성전 당시, 부두교의 선지자는 전투 도중 갑자기 허공에 뼛가루를 뿌리기 시작했다. 뿌려진 뼛가루에서는 보랏빛 안개가 흘러나왔다.
안개를 들이켠 교황군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전부 의식을 잃고 그 자리에 쓰러졌다.
한대호는 당시 징집된 교황군 중 하나였으므로, 그때의 풍경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흐느적거리며 춤을 추듯 뼛가루를 뿌리던 선지자와, 그에 맞춰 흐물흐물 쓰러지던 교황군들. 한대호마저도 그 안개에는 속수무책으로 의식을 잃어버렸었다.
“네, 성전 당시 그 뼛가루 말입니다. 부두교의 교주가 여기를 왔다 간 것 같습니다.”
“……너, 그거 확실하냐? 그냥 박제에서 나온 뭐, 톱밥 가루 이런 거 아니야?”
“단장님도 아시잖습니까. 부두교에서 쓰는 뼛가루는 느낌이 다릅니다. 애초에 폭발로 사라져야 했을 뼛가루가 여기 아직도 남아 있는 것부터 말이…….”
오희진이 파르르 입술을 떨며 말끝을 흐렸다.
그의 말대로 부두교의 뼛가루는 보통 뼛가루와 느낌이 달랐다. 그것은 불에 태워도 타지 않았고, 아무리 흩어 놓아도 어느새 보면 모여 있고는 했다. 흘러나오는 보랏빛은 서늘하기 그지없었다.
죽음 그 자체를 가루로 만들면 그런 느낌이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그럼, 사탄교랑 부두교가…….”
“…….”
한대호가 말끝을 흐렸다. 그의 머릿속에는 한 가지 불길한, 그러나 너무나도 확실한 추리가 떠오르고 있었다.
이곳에서 사탄교와 부두교간 전투가 이뤄졌다. 왜 사탄교와 부두교가 싸우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 어쨌거나 전투 도중 수세에 몰린 사탄교는 최후의 저항으로, 여기 있던 박제를 전부 폭파했다. 그렇게 생각하면 앞뒤가 맞을 듯했다.
“3대 교주가 움직였다는 뜻이 되나.”
그 말인즉, 성전 이후 7년간 잠잠했던 부두교의 교주가 활동을 시작했다는 뜻.
부모님의 복수를 위해 칼을 갈던 그가 비로소 칼을 뽑아 들었다는 건 결코 긍정적인 소식이 아니었다. 그것은 사탄교와 로마니카교와 부두교, 이 세 종교가 3파전을 시작했다는 뜻이나 다름이 없었다.
2차 성전이 시작되려는 건가……. 한대호는 바닥에 흩어진 뼛가루를 보며 차갑고 서늘한 불길함을 느끼고 있었다.
* * *
‘불은 이제 괜찮아. 불은…….’
‘지금 가면 안 늦어요. 갈 수 있어.’
[아직도 자고 있네? 슬슬 깨어날 때도 됐는데.]‘딱 한 번 정도는, 더 써도 괜찮─’
쿵.
뭔가 무너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눈이 떠졌다.
꿈에서 느꼈던 감정과 보았던 풍경이 뇌리에 생생하게 남아 있었다. 꿈에서 나는 불길을 향해 뛰어들었다. 몸은 두려움에 떨리고 있었다.
불은 두렵지 않았으나, 대신 다른 것이 두려웠다.
타오르는 연기와 흩어지는 의식 속에서 떠오르는 장면이 있었다. 하나는 형틀에 걸린 아버지가 불길에 타오르는 장면이었다. 하나는 고양이가 터진 배에서 내장을 흘리며 죽어가는 장면이었다.
공포에 쫓겨 사람들을 구했고 시간에 쫓겨 대강당으로 향했다. 고통이 찾아오면 도취 주술을 써서 고통을 잊었다.
대강당에 이르러 암흑이 찾아왔고, 나는 다시금 불길로 뛰어들어 사람을 구했다. 그러는 와중에도 아버지와 고양이의 모습이 계속 눈앞에 어른거렸다.
그러한 반복이 꿈속에서 계속 이어졌다. 눈을 뜨자 온몸이 식은땀으로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심장이 건조하고 딱딱한 소리를 냈다. 소리는 몸 곳곳을 맴돌았다.
“어……?”
그때,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놀란 듯한 투였으나 그 소리는 맑고 청아했다.
뻣뻣하게 굳은 목을 억지로 들자 김진서가 보였다. 그녀는 보고도 못 믿겠다는 듯 나를 위아래로 한참이나 훑어보는 중이었다.
나는 그런 그녀를 뒤로하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여기는 아마 병원인 것 같았다. 김진서는 병원복을 입고 있는 것으로 보아, 그녀와 나는 같은 병원에 입원한 듯했다. 상가가 폭발했던 그날로부터 며칠이나 지났는지는 알 수 없었다.
“오늘이…… 며칠이지.”
그녀의 얼굴을 보자 설명할 수 없이 복잡한 감정이 물밀듯 밀려왔지만, 최대한 태연한 척을 하며 날짜를 물었다. 김진서는 대답 없이 한참 나를 바라보기만 하다, 이내 병상에 폭 얼굴을 파묻었다.
“19일.”
그녀가 말했다. 맑은 목소리가 병상 이불에 울리고 있었다.
설마하니 5월 19일은 아닐 거고, 4월 19일이겠거니 싶었다. 그렇다면 임명식으로부터 대충 일주일 정도가 흐른 셈이었다.
어지간히 오랜 시간 동안 자고 있었구나, 새삼 감탄이 나왔다.
김진서는 고개를 훌쩍 들더니, 가느스름한 눈으로 나를 노려보았다.
“죽은 줄 알았잖아.”
“다행히 안 죽었네.”
“……죽은 줄 알았다니까.”
무슨 대답을 바라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나는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내 시선을 피하려 흘깃 고개를 돌리는가 싶더니, 다시 고개를 틀어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어깨 아래로 늘어진 머리칼은 정리가 안 되어 헝클어져 있었고, 눈가가 조금 붉었다. 눈동자가 금방이라도 울 듯 그렁그렁했다.
“울었어?”
“뭐라는 거야. 내가 왜 울어.”
“아니, 지금도…….”
그녀의 눈망울에는 눈물이 이슬처럼 맺혀 있었다. 김진서는 그것을 뒤늦게 눈치채고는, 눈물을 감추려는 듯 다시금 병상에 얼굴을 파묻었다. 눈물이 멈추었을 무렵 그녀는 고개를 들었다. 촉촉했던 눈망울은 어느덧 건조해졌으나 눈시울은 여전히 붉었다.
“안 울었어.”
묻지도 않았다.
“그래……. 근데, 19일이면.”
속으로 날짜와 요일을 어림했다. 19일이면 아마 월요일. 병실 벽면에 걸린 시계는 10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학교는 8시 15분까지……. 늦었다. 나는 찌뿌드드한 몸을 억지로 일으켜 세웠다.
누워 있을 때도 짐작은 했지만, 일어나서 보니 내 몸은 생각한 것보다 더 처참한 상태였다.
몸 곳곳에 붕대가 감겨 있었고, 왼팔에 주삿바늘이 몇 개나 꽂혀 있었다. 근데 그런 것치고는 생각보다 아픈 곳이 없었다. 이만하면 당장 퇴원해도 별문제가 없을 정도였다.
터업.
그렇게 병상에서 일어나려던 내 손목을 김진서가 붙잡았다. 그녀는 엄청난 힘으로 나를 다시 병상에 눕혔다.
“왜 일어나. 어디 가려고.”
“학교 가게.”
“억지 부리지 마. 아프면 쉬어.”
“이제 안 아파. 그러니까 퇴원 좀─”
그렇게 말하며 다시 몸을 일으켜 보았으나, 김진서가 곧바로 저지했다.
그녀는 멍한 듯, 졸린 듯 게슴츠레한 눈으로 나를 멀거니 쳐다보았다. 그 눈빛이 조금 공허하게 비어 있었다.
콰악.
그 순간, 돌연 그녀가 내 손목을 물었다.
“뭐, 뭐 해. 야, 진짜, 진짜 아파─!”
“응. 아프지.”
그녀가 나를 보며 싱긋 웃었다. 맑고 투명한 미소였다. 목소리는 평소와 다를 바 없었지만 그 어조가 어쩐지 신비로웠다. 꿈에서 들을 수 있을 법한, 일상과 완전히 동떨어진 느낌의 말투였다.
“아프면 그냥 누워 있어. 어디 갈 생각 하지 마.”
“…….”
손목에 그녀의 잇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김진서는 그 자국을 어루만지며 천진하게 웃고 있었다.
그러나, 그토록 맑은 미소를 머금고 있던 그녀의 어깨는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무엇인가에 두려움을 느끼고 있다는 뜻이었다.
“그래…….”
나는 마지못해 병상 위로 몸을 내던지듯 눕고 눈을 감았다.
김진서는 내가 떠나지 않기를, 병상에 얌전히 누워 치료를 완전히 마치고 퇴원하기를 바라고 있었다. 그녀는 지금 나를 진심으로 걱정해주고 있으며, 어쩌면 내가 의식을 잃었던 일주일간 나를 극진히 간호해 주었을 것이다.
그것을 깨닫자, 문득 견딜 수 없는 자괴감이 몰려왔다. 나는 이불을 머리끝까지 올려 덮고 눈을 질끈 감았다. 폭발로 인해 연기와 불길이 치솟던 그날의 기억이 어둠 속에서 선명하게 떠올랐다.
“뭐 하는 거야.”
김진서가 이불 너머에서 손가락으로 내 몸을 쿡쿡 찌르며 물었다. 살았나 죽었나 확인을 해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아니야.”
올려 덮은 이불을 내리지 않은 채 대답했다. 지금 당장은 그녀의 얼굴을 태연하게 마주할 자신이 없었다.
정확히는, 그녀의 얼굴을 볼 때마다 몰려드는 죄책감을 견뎌낼 자신이 없었다.
내가 그녀를 구한 이유가 너무 더러웠기 때문이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