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eric Academy's Shaman RAW novel - Chapter 86
제86화
8명, 아니 9명의 사람을 건물 밖으로 대피시켰을 무렵. 나는 시계를 보았다. 시침이 1시를 반쯤 넘어가고 있었다. 임명식에 가기에는 이미 너무 늦은 시각이었다. 지금 출발해봐야 지각이었다.
그때에는 사람 목숨보다 더 중요한 것이 어딨냐며, 그깟 임명식 따위 과감히 포기하고 건물에 남은 사람들을 구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다. 내 몸을 움직이는 것은 나름의 정의감과 의협심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나는 불길을 뚫고 건물에 돌입했다.
그곳에서 나는 김진서를 보았다.
당시 상황이 정확하게 기억나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때 그녀는 아마 울고 있었던 것 같다. 슬퍼서 울고 있었거나, 혹은 연기를 마셔 기침을 하다 눈물이 나왔거나. 뭐가 됐든, 그녀의 눈에 눈물이 맺혀 있었다는 사실만은 확실했다.
“…….”
나는 그녀가 우는 모습을 보며 웃었다. 정확히는 나도 모르게 웃음이 새어 나왔다.
김진서는 이사장의 딸이다. 몸을 내던져 그녀를 구한다면, 이사장 김창원의 눈에도 좋게 보일 것이다.
이왕 만신창이가 된 몸, 더 험하게 굴려서 너덜너덜하게 만들어 버리면 나름 동정을 살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리하면, 임명식에 늦더라도 참작을 해주지 않을까. 내가 만일 자선의 성호로 발탁되지 않았을 운명이었더라도, 이번 일을 통해 자선의 성호가 될 수 있지는 않을까…….
그따위 추잡한 생각으로, 나는 김진서를 보고 웃었던 것이다.
“뭐 하는 거야. 계속 그러고 있으면 더워.”
김진서가 이불 너머에서 나를 쿡쿡 찔렀다. 아까 손목을 문 것도 그렇고, 그녀는 꼭 놀아달라는 고양이처럼 행동했다.
이제야 깨닫는 거지만, 나는 그녀와 고양이를 동일시했던 것 같다.
나는 김진서를 구하고 싶어서 구했던 것이 아니었다. 죽어버린 고양이에 대한 후회와 속죄…… 조금 더 적나라하게 말하자면, 고양이의 대체품으로서 그녀를 구했다.
김진서를 구하는 것을 통해, 죽어버린 고양이를 잊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내가 김진서를 보고 느꼈던 착잡한 감정은 다름 아닌 죄책감이었고, 목적이 아닌 수단으로 그녀를 구했던 나 자신에 대한 혐오였다.
[이런 머저리 같은 놈을 보았나.]어둠 속에서 렉바가 말했다. 이불 너머에서는 여전히 김진서가 나를 찌르는 중이었다. 그 강도가 점점 세지고 있었다. 렉바가 말을 이었다.
[네 말대로라면, 목적에 의한 악행은 정당화할 수 있느냐?]“…….”
[수단이니 목적이니, 그것은 중요한 게 아니야. 행동이 결과적으로 선했는지, 악했는지가 중요하지. 수단에 의한 행동일지라도, 그것이 선행이라면 선행이지.]하지만, 수단에 의한 선행을 진정 선행이라고 할 수 있을까. 수단이 된 선행의 목적이 선하지 않더라도? 그렇다면, 만약 수단이 된 악행의 목적이 선하다면 그것은 선행일까.
[너는 철학자가 아니라 한 종교의 교주이다. 선과 악의 기준은 네가 정하는 것이 아니지.]렉바의 말투는 조금 격앙되어 있었다. 나는 잠자코 이불 속에서 렉바의 말을 들었다.
[그것이 수단에 의한 것이든 목적에 의한 것이든, 교리적으로 보았을 때 선행이라면 그것은 선행이다.]렉바는 그것으로 말을 마쳤다.
그의 목소리가 머릿속을 완전히 떠나갔을 무렵에도 나는 이불 속에서 한참 어둠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말이 옳은 말인지, 아니면 그럴듯한 궤변인지조차 내게는 판단할 재간이 없었다.
수단이나 목적에 상관없이 절대적인 기준으로 선과 악이 정해진다면, 오직 수단으로만 선을 행하여도 그것은 선행이 되는 것인가……. 반대로, 목적이 선한 악행은…….
머릿속이 복잡했다. 수단이니 목적이니 악행이니 선행이니 하는 것들을 구분할수록, 그 경계가 점차 희미해지고 있었다. 나중에는 그것들이 전부 합쳐져서 하나의 덩어리가 되어버린 것 같았다.
나는 생각을 그만두고 눈을 감았다. 겹겹이 쌓인 어둠이 나를 반겼다.
“야.”
그때, 김진서가 나를 부르며 이불을 들췄다. 눈꺼풀 사이로 갑작스레 빛이 새어 들어왔다.
“아, 살아 있네.”
“……당연하지.”
“그럼 됐어.”
그녀는 퉁명스레 말하며 고개를 돌렸다. 그러면서도 그녀는 계속 흘깃흘깃 내 쪽을 쳐다보았다. 내가 죽었는지 살았는지를 계속 확인하려는 눈짓처럼 보였다.
* * *
다음 날과 그다음 날은 입원한 채 병상에만 누워서 지냈다.
식사는 간호사가 가져다줬는데, 엄청나게 맛이 없었다. 정말 살기 위해 먹는다는 느낌으로 꾸역꾸역 입에 집어넣었던 것 같다.
밥을 먹거나 자는 시간 외에는 책을 읽거나 TV를 봤다. 휴대폰을 화재 현장에서 잃어버린 탓이었다.
뉴스를 통해 바깥세상이 어떻게 흘러가나 보았고, 책이나 교과서를 읽으며 공부를 했다. 학교를 빠진 만큼 남들보다 뒤처졌을 것이 분명했기에, 남는 시간은 거의 공부를 하며 보냈다.
“교주님. 상태는 어떠신가요.”
중천에 뜬 해를 보며 무료함에 젖어 있을 무렵 강지아가 병문안을 왔다. 그녀는 한 손에 조각 케이크를 들고 있었다. 평소 케이크를 좋아하진 않지만, 병원 밥만 먹다 보니 케이크의 그 자극적인 맛이 그리웠다.
“나쁘지는 않아요. 덕분에 몸이 이렇게 됐네요.”
나는 강지아에게 케이크를 받아 선반에 놓으며 장난스레 말했다.
그러나 강지아는 마냥 장난처럼 들을 수는 없었던 모양인지, 어두운 표정으로 고개를 푹 숙였다.
“죄송합니다. 제가 죽었어야 했습니다. 당시엔 겁에 질려서…….”
“어? 아니, 장난이었는데. 애초에 내가 나가라고 한 거였잖아요.”
“다음에는, 제가 교주님을 대신하여 죽겠습니다. 아니면 적어도 같이 죽어 드리겠습니다.”
“불길한 소리를…….”
그녀는 진지하게 말했지만 나는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
나 대신 다른 누군가가 죽기를 바라지도 않았고, 그런 상황이 오도록 만들지도 않을 생각이었다.
강지아는 조각 케이크 외에도 뭔가를 바리바리 싸 왔는데, 과일이나 과자 같은 간식거리였다.
“팔은 왜 그래요?”
나는 사과를 깎는 강지아를 향해 물었다. 그녀의 팔에 웬 상처가 나 있었다. 찰과상인 것 같았다.
“그때 도망치다 넘어졌을 때 다친…… 아.”
“아, 그때 다친 거구나. 아프지는 않아요?”
“…….”
강지아는 대답하지 않고, 그저 고개를 떨군 채 과도로 사과 껍질을 벗겨냈다. 칼을 쥔 그녀의 손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차라리 그때 죽을 걸 그랬습니다…….”
“아, 자꾸 무슨 그런 소리를 해요.”
“저는 부두교의 수치입니다…….”
“자꾸 이러네. 근데 삼촌은 안 왔어요?”
강지아의 자학을 더 이상 듣기가 싫어서, 나는 얼른 화제를 돌렸다. 강지아는 여전히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사과를 깎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곧 있을 간부 회의 때문에 이래저래 바쁘다고, 다음에 오신다고 하셨습니다.”
“아…….”
간부 회의. 매년 4월, 7월, 11월 말쯤 열리는데, 각 지역의 부두교 간부들이 전부 한곳에 모여서 여러 가지 의제로 회의를 하는 시간이다. 그러고 보니 곧 회의가 있을 무렵이었다.
“이번 회의에는 참여하실 생각이신가요?”
강지아는 토끼 모양으로 사과를 잘라 접시에 예쁘게 담고 있었다. 그녀의 손재주에 감탄을 하는 한편, 나는 잠시 고민에 빠졌다.
“간부들이 저를 그리 좋아하지는 않았었죠.”
“그랬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강지아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부두교 간부들은 나를 탐탁지 않게 여겼다. 2대 교주였던 아버지에 비해, 3대 교주인 나의 능력이 너무 부족하다는 이유였다. 능력만이 아니라 마음가짐부터 안일하기 그지없다며, 내가 교주가 되기를 극구 반대하던 사람도 있었다.
15살, 중학교 2학년이 되던 해의 생일. 나는 처음으로 간부 회의에 참석했다. 그때 간부 대부분이 나를 싫어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그 이후로 단 한 번도 간부 회의에 참석하지 않았다. 나를 석연찮게 여기는 간부들의 시선이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가는 게 맞을까요?”
강지아에게 물었다. 그녀는 예쁘게 깎인 사과를 만족스럽다는 듯 빤히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선택은 교주님이 하시는 거지만, 제 생각에는 가지 않으시는 편이 좋을 것 같습니다.”
“이유는요?”
“전라, 충청 지부를 중심으로 반란이니 탄핵이니 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고 합니다. 사실 관계가 파악되지 않은 난잡한 소문에 불과하지만, 지금 당장 그들과 대면하는 것은 위험하지 않을까 생각이 듭니다.”
“……흠.”
반란과 탄핵. 듣기만 해도 오금이 저리는 무서운 단어들이다. 어쩌면 이번 회의에서, 반란 세력들이 나를 죽이려 들지도 모를 노릇이었다.
내 안위를 생각했을 때, 회의에는 참석하지 않는 것이 안전할 듯했다. 내 안위‘만을’ 생각했을 때는 그랬다.
“그냥 가는 편이 낫겠네요.”
그래도 그냥 가는 게 나을 것 같다. 그녀는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이내 평소와 같은 무표정으로 돌아갔다.
“괜찮으시겠습니까?”
“최대한 빨리 반란의 싹을 자르는 게 나을 것 같아요. 그냥 두면 세력이 더 커질 수도 있으니까.”
“간부들이 교주님께 주술을 걸 수도 있습니다. 혹은 죽이거나.”
“무슨.”
나는 그녀를 향해 웃어 보이며 말을 이었다.
“간부들 주술이야 뭐……. 어차피 안 걸릴 거 같은데. 좀 위험하다 싶으면 해체하면 그만이니까.”
설령 간부들이 반란을 시도해도 상관없다. 나는 그들의 주술에 걸리지 않을 자신이 있고, 애초에 그들이 주술을 시전조차 하지 못하게 할 자신이 있었다.
승계 의식 이후 다른 건 몰라도 주술에 대한 자신감 하나만은 넘쳤다. 실제로 그만큼 주술 실력이 향상되기도 했다.
“……그렇기는 하군요.”
강지아도 내 말에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몇 가지 이야기를 더 주고받은 뒤, 강지아는 병실을 나갔다. 그녀가 가져온 조각 케이크와 과일들이 병상 양옆에 빼곡히 쌓여 있었다. 조각 케이크는 지금 당장은 먹고 싶지 않아서, 일단 냉장고에 넣어뒀다.
오후 5시 무렵 또 한 사람의 방문객이 찾아왔다.
“도선우, 너, 이, 이이이……!”
정인아였다. 그녀는 나를 보자마자 눈가를 그렁그렁하게 적시며, 한껏 찌푸려진 얼굴로 내게 달려들었다.
그녀는 선물로 무화과와 포도 주스 같은 것을 사 왔는데, 공교롭게도 내가 별로 좋아하지는 않는 것들이었다.
“입원했으면 전화라도, 이, 이 멍청아!”
정인아는 선물이 담긴 쇼핑백을 내려놓자마자 다짜고짜 소리를 질렀다. 진짜 화가 난 것 같지는 않았다. 걱정하는 기색을 화내는 것으로 억지로 감추고 있을 뿐이었다.
“휴대폰 잃어버려서 전화를 못 했네.”
“공중전화라도…… 아, 못 일어나는구나. 아무튼, 그럼 그그, 간호사분한테 빌려서라도 했어야지!”
“무슨 그런 억지를…….”
“억지 아니야. 그리고, 이씨, 내가 얼마나 걱정했는데 이 정도 억지도 못 부려? 어?”
정인아는 그렇게 한참을 씩씩댔다. 병문안을 온 건지 화풀이를 하러 온 건지.
“그래서, 몸은 괜찮은 거야? 퇴원할 수는 있는 거야? 의사 쌤이 뭐래?”
겨우 화가 풀린 그녀가 물었다. 그녀는 내게 대답할 틈조차 주지 않고 계속 질문을 던져댔다. 나는 대답 대신 그녀에게 사과를 건넸다. 강지아가 토끼 모양으로 깎아 두었던 그 사과였다.
“──근데 너 대답은 왜 안 해. 몸 괜찮냐구.”
정인아는 아삭아삭 사과를 씹어 먹으며 나를 바라보았다. 눈가는 촉촉했지만 그렇다고 붉지는 않았다. 입술은 삐죽 튀어나와 있다. 기분이 언짢거나 화가 났을 때 그녀의 버릇이었다.
“지금은 괜찮기는 한데, 일단은 회복하는 게 좋다더라.”
나는 떨떠름하게 웃어 보이며, 의사가 내게 했던 말을 그대로 정인아에게 전했다.
“진짜야? 괜찮은 거 맞지? 퇴원은. 언제쯤 할 수 있대?”
“퇴원은 아마 사흘…… 나흘 뒤? 몸이 튼튼해서 금방 퇴원할 수 있다는데.”
“튼튼하긴. 맨날 다치고, 입원하고. 하나도 안 튼튼해. 이 유리몸아.”
정인아가 나를 혼냈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 몸은 튼튼한 게 맞았지만, 그녀의 말대로 자주 다치고 입원했던 것도 사실이라 반박할 수가 없었다.
“임명식은 어떻게 된 거야?”
나는 씁쓸한 웃음을 지어 보이며 얼른 화제를 돌렸다. 매서운 눈빛으로 나를 노려보며 한참이나 씩씩대던 정인아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 그러고는 한참이나 입술을 달싹거렸다. 말하기를 주저하는 듯했다.
“그게, 음…….”
“그냥 말해. 어떻게 됐든 상관없으니까.”
“아, 응. 무기한 연기한대. 이유는 모르겠는데 그냥…… 그렇게 됐다고 그러더라.”
무기한 연기.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긍정적으로 보면, 내가 퇴원을 할 때까지 학교 측에서 기다려 주겠다는 뜻일 수도 있었다. 반대로,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뽑기 위해 재선출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는 뜻일 수도 있었다.
“아직 결과는 모르는 거네, 그럼.”
“응……. 괜찮아? 엄청 열심히 준비했을 텐데…….”
나는 괜찮다는 뜻으로 작게 웃어 보였다.
자선의 성호가 되고 싶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시험을 막 그렇게 열심히 준비한 건 아니었다. 만약 내가 아니라 구준혁이 선출되었더라도 나는 담담하게 받아들였을 것이다. 물론 그랬다면 조금 아쉽기는 했겠지만.
“……근데, 구준혁은?”
그때 문득 구준혁이 이 자리에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구준혁과 정인아는 당연히 같이 올 줄 알았는데, 어째서인지 정인아만 병문안을 와 있었다.
정인아는 눈에 띄게 어두워진 얼굴로 고개를 떨궜다.
“걔도 병원에 있을 거야. 아마.”
“병원? 왜?”
“안 그래도 얘기하려고 하긴 했는데, 음…….”
그녀는 입을 다문 채 한참이나 침묵했다. 병실에 침묵이 가득 들어찼다. 저녁 어스름이 창문을 타고 은근하게 병실로 넘어오고 있었다. 침묵은 찰나였지만, 그 순간이 내게는 마치 억겁처럼 느껴졌다.
“어머님 상태가, 좀…….”
정인아가 가까스로 입을 뗐다. 그녀의 목소리는 약간 잠겨 있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