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eric Academy's Shaman RAW novel - Chapter 87
제87화
구준혁의 어머니는 몇 년 전부터 정신 병원에서 입원 치료를 받고 있었다. 근데 임명식 당일 자살 소동을 벌였다.
다행히 목숨은 건졌지만, 발견이 늦어서 생명이 위독한 상황이고, 하여 현재는 대학 병원에 송치되어 입원 치료를 받고 있는 상황이라고 한다.
“걔한테는 입원하고 계시다는 얘기만 들었는데, 정신 병원에 계신 줄은 나도…… 응, 아무튼 그렇대.”
문득 집이 어디냐고 물었을 때, 어색하게 화제를 돌리던 구준혁의 떨떠름한 표정이 떠올랐다.
생각해보면 그는 언제나 학교가 끝나고 집으로 가지 않았다. 곧장 체육관으로 향하거나 혹은 행선지를 밝히지 않고 홀연히 떠나버리곤 했다.
구준혁은 아마 학교가 끝나면 곧장 어머니를 뵈러 병원에 찾아갔던 것 아닐까.
“근데 나한테 이런 얘기해도 되는 거야?”
무거운 이야기를 들으니 괜히 마음이 심란했고, 한편으로는 이런 이야기를 남의 입으로 전해 들어도 되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정인아는 희미하게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걔가 직접 너한테 얘기해 달라고 했어. 병문안 못 가서 미안하다면서.”
“아……. 어머님 상태는?”
“의식은 있는데, 그, 뭐라고 해야 하지…….”
정인아가 말끝을 흐리고는, 고개를 떨군 채 한참 입술을 달싹거렸다. 아무래도 조심스러운 이야기라서 그런지, 말을 하기 전의 고민이 무척이나 길었다. 수많은 단어들 중 적절한 것만을 조심스럽게 추려내고 있는 듯했다.
“음, 준혁이가 그, 어머님이 자기 얼굴을 못 알아보신다고 그러더라.”
“…….”
“너무 심각하게는 듣지 말래. 그냥 가벼운 마음으로…… 들으라고 하긴 했는데, 가볍게 들을 이야기가 아니긴 하지.”
정인아가 허망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녀의 말대로 가볍게 들을 이야기는 아니었다. 자식을 못 알아보는 어머니를 간호해야 하는 구준혁의 심정은 어떨까.
내가 만약 어찌어찌 지하 감옥에 도달하여 어머니를 만났는데, 어머니가 내 얼굴을 알아보지 못하신다면? 나 같은 건 모른다며 오히려 질색을 하신다면……?
상상만으로도 속이 울렁거렸다.
“아, 맞아. 너 그 사람 봤어?”
정인아는 무거워진 분위기를 환기하려는 듯, 억지로 분위기를 띄워가며 화제를 돌렸다. 그 사람이라니, 누구를 말하는 건지 모르겠다.
“그 사람?”
“바사르 상가에 불났을 때, 거기서 우리 학교 학생이 불 끄고 사람들 구하고 다녔대. 견습 성기사 사칭하고 성기사단 장비도 썼다는데. 혹시 봤나 해서.”
“……잘 모르겠는데.”
“그래? 바사르 상가에 있던 사람들은 다 봤다길래. 너도 봤을 줄 알았는데.”
정인아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나도 그녀를 따라 고개를 갸웃거렸다. 정인아의 말에는 의문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내가 어쩌다 입원을 하게 됐더라?”
슬쩍 떠보듯 묻자, 정인아가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너, 너 혹시 기억상실─!”
“아니, 기억 나. 기억은 나는데, 너는 어떻게 알고 있나 해서.”
“아 뭐야. 너 그때 바사르 상가에 있었던 거 아니었어? 쌤들이 그러던데?”
나는 잠자코 고개를 끄덕였다. 엄밀히 따지면 틀린 말은 아니었다. 당시 내가 바사르 상가에 있기는 있었으니까.
그러나 견습 성기사를 사칭하고 사람들을 구한 것이 나라는 사실까지는 학교에 알려지지 않은 모양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교사들은 알고 있지만 학생들까지 그 사실을 알고 있지는 않은 것 같았다.
아마 굳이 말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 것이리라. 내가 사람을 구했든 어쨌든, 견습 성기사를 사칭하고 성기사단의 장비를 불법으로 사용한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피렌체는 논란의 여지가 있는 정보는 아예 공개하지 않는 경향이 강했다.
이후 정인아는 내게 별 의미 없는 화제로 말을 건네다, 해가 완전히 졌을 무렵 자리에서 일어났다.
“몸조리 잘하구. 퇴원하면 연락해. 꼭.”
“귀찮은데.”
장난스레 말하자 정인아가 입술을 삐죽거렸다.
“귀찮아? 내가 귀찮냐?”
“응.”
“……까불지 말고 연락해. 안 그럼 때린다. 진짜야.”
정인아가 주먹을 불끈 쥔 채 나를 흘겨보더니, 갑자기 피식 웃었다. 나도 그녀를 따라 덩달아 웃음을 흘렸다. 이후 그녀는 병실을 나갔다. 나 홀로 남은 병실은 강지아와 정인아가 건넨 선물들로 가득했다. 공기 중에 사과 냄새가 떠돌고 있었다.
* * *
강지아와 정인아가 다녀간 밤, 이상하게도 잠이 오지 않았다. 창문을 넘어온 달빛이 병실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달빛은 차가웠고 은은한 푸른빛을 머금고 있었다. 신비로운 빛깔이었다.
[재현 주술은 지식과 상상력에 좌우된다. 그런 의미에서, 네 조부이자 1대 교주인 도준길은 지식이 많고 상상력이 뛰어난 자였지.]그 달빛을 바라보며 나는 렉바의 강의를 듣고 있었다. 강의명은 ‘1대 교주의 업적과 재현 주술의 이해’였다. 방금 내가 지어냈다.
[허나 너는 도준길만큼의 지식과 상상력을 가지고 있지 않아. 그렇기에, 승계 의식을 받았더라도 그의 재능을 ‘일부’만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재현 주술은 기본적으로 고대 부두교에 대한 이해를 필요로 한다. 이름 그대로 고대 부두교에서 사용했던 무기나 도구 따위를 ‘재현’하는 주술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전 이후 고대 부두교에 대한 문헌은 전부 불타 없어졌다.
[네 아비가 숨겨둔 문헌이 분명 있을 것인데…… 어디에 숨겨둔지는 나조차 알 수가 없군. 상자에 있을 줄 알았건만.]“흠.”
아버지가 유품으로 남긴 상자에는 주술에 대한 논문도, 고대 부두교에 대한 문헌도 없었다. 다만 할아버지의 뼛가루만이 있었을 뿐이었다.
덕분에 위기를 벗어나긴 했지만, 조금 아쉬운 건 사실이다. 뼛가루와 함께 논문이나 문헌까지 들어 있었더라면 더 좋았을 텐데.
[도명준, 그놈은 예전부터 좀 이상했다. 한곳에 모아두면 될 것을 일부러 이리저리 흩어 놓고는 했지. 보물찾기를 하는 것처럼. 변태 같은 놈.]렉바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주 오래 전 일이지만, 아버지는 내게 생일 선물로 웬 퍼즐 같은 것을 주셨다. 퍼즐을 다 맞추면 진짜 선물을 주겠다는 말과 함께. 결국 선물은 못 받았다. 아버지가 준 게 5,000피스 퍼즐이었기 때문이다. 어린애에 불과했던 내가 맞추기에는 퍼즐이 너무 방대했다.
사실, 퍼즐을 다 맞추기는 맞췄었다. 그러나 다 맞췄을 때 아버지는 이미 죽어 있었다. 퍼즐은 다 맞췄는데 선물을 줄 사람이 없었다.
곱씹어도 유쾌할 게 하나도 없는 이야기다.
[생각해보니 너도 비슷해. 도씨는 3대가 전부 이상한 놈들이군.]“에이, 그건 좀 과장이다.”
[나는 지금껏 과장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똑똑.
렉바와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던 그때,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렉바가 갑자기 조용해졌다. 나도 덩달아 입을 다물었다.
현재 시각은 12시 10분 정도. 누군가 병문안을 오는 것이 오히려 이상할 정도로 야심한 밤이었다.
끼이이이…….
곧 문이 열렸다. 나는 눈을 감고 곤히 자는 척을 했다. 혹시라도 렉바와의 대화를 들었을 때를 대비한 것이었다. 누구랑 대화를 하고 있었냐고 물으면 잠꼬대라고 말할 생각이었다.
그녀는 성큼성큼 내 곁으로 다가와, 자는 척을 하는 내 모습을 멀뚱멀뚱 바라보았다.
“자는 척을 하네?”
그녀가 내 팔을 툭툭 건드리며 말했다. 소름이 훅 끼쳤다. 등줄기를 타고 얼음이 흘러내리는 듯 서늘한 감각.
이미 간파를 당해버린 이상, 더 자는 척을 해봐야 의미가 없었다.
“……어떻게 알았어?”
눈을 뜨고 그녀를 보며 물었다.
“그냥 보면 알아.”
“그래……? 신기하네.”
“누굴 속이려고 해.”
김진서가 말했다. 그녀는 묘하게 공허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속일 생각하지 마. 앞으로도.”
그렇게 말하는 그녀의 입은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희미하지만 맑은 미소였다.
창문을 넘어온 푸른 달빛이 안개처럼 그녀를 휘감고 있었다. 어깨에서 찰랑거리는 머리칼이 달빛을 받아 검푸른 색으로 빛났다. 그 모습이 내게는 이상할 정도로 신비롭게 느껴졌다.
그녀의 잠자코 고개를 끄덕이자, 김진서가 나를 지그시 쳐다보았다. 침묵이 흘렀다.
“그리고 죽지도 마.”
그녀가 달빛 속에서 말했다. 머금고 있던 미소는 사라진 뒤였다. 장난이 아니라 진지하게 하는 말인 듯했다.
“……그게 마음대로 되나.”
나는 흘러나오는 웃음을 억지로 누르며 말했다.
“내가 그렇게 만들 거야.”
“길 가다 차에 치이면?”
“내가 구해주면 돼.”
김진서가 여느 때보다도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말투는 진지한데 비해 내용은 너무 유치해서, 나는 그만 참고 있던 웃음을 흘리고 말았다. 그녀가 나를 보며 고개를 갸웃댔다.
“왜 웃어?”
“못 미더워서?”
지금껏 그녀가 나를 구하는 입장이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고준민 사건 때나 지금이나. 이제 와서 그녀가 나를 구해준다고 해봐야 딱히 믿음이 가지는 않았다.
그녀는 고개를 비스듬히 기울인 채 한참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다, 뒤늦게 내 말의 뜻을 이해한 듯 얼굴을 붉혔다.
“지금, 지금까지는……. 앞으로는 그럴 거라는 거야.”
“그래, 그래.”
“다짐한 거야.”
“알겠다니까.”
웃으며 말하자, 그녀가 가늘게 뜬 눈으로 나를 은근하게 노려보았다.
“제대로 안 듣지.”
“제대로 들었는데.”
“안 듣잖아. 지금도 건성으로 듣잖아.”
“제대로 듣고 있다니까.”
솔직히 말해서 제대로 안 듣고 있다. 대충 흘려들으면서 적당히 맞장구만 쳐주는 중이다.
김진서는 의심 가득한 눈초리로 나를 흘겨보고 있었다. 잠시 침묵이 흐르던 그 순간, 병실에 가득하던 달빛이 걷혔다.
어둠이 찾아왔다.
고작 달빛 하나 사라진 것으로 병실은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침대 가장자리에 걸터앉은 김진서의 모습은 실루엣만 언뜻 보였다. 그녀의 표정도 어둠에 가려 전혀 보이지 않았다.
“……갑자기 생각나서 하는 말인데.”
김진서는 비스듬히 고개를 기울인 채, 달빛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사이좋더라, 걔랑.”
어둠 속에서 그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귀 바로 옆에 대고 속삭이는 것처럼 목소리가 선명했다. 까닭 모를 한기가 끼쳐왔다.
창문 밖으로 넘어 드는 바람이 이상할 정도로 차가웠다. 어렴풋하게 보이는 그녀의 눈동자가 나를 향하고 있음이 느껴졌다.
“걔?”
“인아.”
“아, 응. 걔는 왜?”
“사이좋아 보여서. 오늘 병문안도 왔고.”
“그……래서?”
“그냥 그렇다고.”
구름에 가렸던 달이 이윽고 모습을 드러냈다. 달빛이 서서히 병실을 메워가고 있었다. 어둠이 걷히며 그녀의 표정이 드러났다.
그녀는 언제나처럼 맑고, 은은하고, 또한 아름다운 미소를 입에 머금고 있었다.
“왜 그렇게 당황해. 인아네 집에서 무슨 짓을 했길래.”
인아네 집? 내가 정인아네 집에 갔던 걸 어떻게 알고 있지? 아니, 그건 그렇다 치더라도 김진서의 분위기가 평소와는 너무나 달랐다.
“무슨 소린지, 잘…….”
황급히 둘러댔다.
창밖으로 달빛이 뒤숭숭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온통 어둠이거나 온통 빛이었을 때는 오히려 그녀의 표정을 분간하기가 쉬웠다.
그러나 빛이 흔들리자, 그녀가 정색을 하고 있는지 아니면 웃고 있는지 전혀 알 수 없게 되어버렸다. 불어오는 바람을 따라 커튼이 가볍게 살랑거렸다.
“내가 속일 생각하지 말라고 했잖아.”
나를 꾸짖듯 속삭이는 목소리가 더없이 차가웠다. 가위에 눌린 듯 몸이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손가락을 까딱이는 것조차 고작이었다. 풍전등화처럼 흔들리던 달빛이 이윽고 침착을 되찾았다. 전과 같이 차갑고 푸른 달빛이 병실을 가득 메웠다.
“왜 그렇게 놀라. 장난이었는데.”
“…….”
그녀가 어린아이처럼 순수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미소가 달빛에 빛나고 있었다. 나는 입을 꾹 다문 채 그녀를 바라보았다. 도대체 뭐가 장난이라는 걸까.
“이제 갈게. 너무 늦었다.”
김진서는 벽면에 걸린 시계를 보며 훌쩍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는 동안에도 내 몸은 전혀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김진서는 여전히 미소를 머금은 채 가늘게 뜬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잘 자.”
그녀가 떠나고, 정말 자연스럽게 졸음이 밀려왔다. 눈을 감자마자 잠이 들었다. 꿈은 꾸지 않았다.
* * *
다음 날은 드디어 퇴원 수속을 밟게 되었다. 의사는 아직 퇴원하기에는 이르다고 했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서둘러 퇴원을 하기로 했다. 내가 병원에 오래 있는 걸 싫어하는 타입이기도 했고.
이런저런 절차는 김진서의 도움으로 빠르게 넘겼다. 병원비도 그녀의 아버지인 김창원 이사장이 내준다는 모양이다. 애초에 이 병원이 피렌체 재단 소유였으니 뭐…….
“왜 그렇게 봐?”
절차를 마치고 병원을 나오는 길, 김진서가 물었다. 나는 무의식중에 그녀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이유는 당연히 어제 겪었던 꿈인지 현실인지 모를 기묘한 밤 때문이었다.
“너 어제…….”
“어제?”
묻다 말고 김진서의 얼굴을 살폈다.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태연한 얼굴. 나를 뚫어져라 올려다보는 눈매는 평소처럼 날카로웠다. 입가에 희미한 미소를 머금고 있기는 하지만, 어젯밤처럼 서늘하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아니다.”
“어제, 왜?”
그녀가 고개를 갸웃댔다.
나는 어젯밤을 떠올렸다. 꿈이라 하기에는 너무 생생하고, 현실이라 하기에는 너무 몽환적이었던 그 달빛을 떠올렸다.
병실에 들어온 김진서와 대화를 나눴던 것은 분명 현실이었다. 그러나, 달빛이 구름에 가려 사라지고 어둠이 찾아온 그때. 그 이후의 대화는 꿈인지 현실인지 분간하기가 어려웠다.
그날의 달빛이 꿈과 현실의 경계를 흐릿하게 뭉개어 버린 것만 같았다.
“아, 기사님.”
그녀와 함께 걷다 보니 어느덧 병원 앞 주차장에 다다랐다. 거기에는 김진서의 운전기사가 그녀를 데리러 차를 끌고 와 있었다. 김진서는 뒷좌석에 타자마자 창문을 내리더니, 고개를 빼꼼 내밀며 입을 열었다.
“너 집이 어디 쪽─?”
부우우우웅─!
김진서의 말이 채 끝을 맺기도 전에 차가 출발했다. 차는 위협적이다 싶을 만큼 빠른 속도로 주차장을 나가, 순식간에 도로로 진입했다. 눈 깜짝할 사이 그녀가 탄 차는 내 시야를 벗어났다.
[운전기사가 너를 싫어하는 모양인데.]“미움 살 짓은 안 했는데요.”
[너는 가만히 있어도 미움을 사는 타입이지.]렉바가 놀리듯 말했다. 나는 피식 웃으며, 지하 예배당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마중 나온 사람은 없었다. 아무에게도 퇴원했다는 연락을 보내지 않았으니 당연했다.
다음 날 학교에 갔지만 교실에는 아무도 없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