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eric Academy's Shaman RAW novel - Chapter 90
제90화
쿠웅!
순간, 다리에 힘이 풀렸다. 이윽고 전신에 힘이 풀리더니, 몸이 흐느적흐느적 바닥에 내려앉았다. 칼날이 박혔던 어깨 부위로부터 서늘하고 묘한 기운이 퍼지고 있었다. 일어서려고 했지만 다리에 전혀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칼날에 독이 발려 있었나?
불길한 생각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마비약이다. 부두교의 약술이야.]렉바가 담담하게 말했다.
부두교의 약술로 만든 마비약은 코끼리도 재울 정도로 효과가 강하다. 실제로 코끼리를 잡기 위해 만든 마비약이기 때문이다.
이러는 동안에도 약효는 전신에 빠르게 퍼지고 있었고, 괴한은 여유로운 걸음으로 내게 다가오고 있었다.
[물리적인 마비라 나도 어찌할 도리가 없군. 해독약을 만드는 법을 알려줄 수는 있는데, 듣겠느냐?]“괘한아요.”
[괜찮다고? 괜찮다는 놈이 주술은 왜 안 쓰고 있는 거지.]“아익은…… 아.”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못 알아듣겠군. 얼른 주술이나 쓰거라.]렉바가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차갑게 말했다. 뭐라 투정을 부리고 싶었지만, 약이 혀를 마비시킨 탓에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혀가 굳는 것에 이어 눈꺼풀마저 내 마음대로 제어하지 못하게 되었을 즈음, 어디선가 낯선 목소리가 들려왔다.
“……가만히 있으십시오. 움직이면 약효가 더 빨리 퍼질 겁니다.”
괴한은 그렇게 말하며 내게 다가왔다. 누군가의 사주를 받아 나를 암살하러 온 살수임이 분명했다. 아니, 말하는 걸로 보아 암살이 아니라 납치를 하러 온 것 같기도 했다.
“간부들이 교주님께 주술을 걸 수도 있습니다. 혹은 죽이거나.”
문득 강지아의 경고가 떠올랐다. 칼날에 부두교의 약술로 제조된 마비약이 발려 있었다는 점으로 미루어, 살수는 부두교의 간부가 보낸 것 같았다. 반란을 모의하고 있다던 충청이나 전라 지부의 간부일 가능성이 높았다.
“개인적인 원한은 없습니다. 명령을 따를 뿐입니다.”
살수는 밧줄로 내 손과 발을 완전히 묶었다. 그는 몸이 축 늘어진 나를 음식물쓰레기 나르듯 들더니, 등에 멘 포대 자루에 나를 넣어 버리려고 했다.
저항하려 했으나, 몸을 움직일수록 약효는 더욱 빠르게 퍼졌다. 나중에는 손끝 하나 까딱하기도 힘들었다.
“죽이진 않을 겁니다. 저항하지 마시고─”
“닥, 쳐……!”
으득.
입술을 깨물어 피를 냈다. 마비로 잃어버렸던 감각이 잠깐 돌아왔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괴력의 축복을 이용하여 손목과 발목에 힘을 모았다.
찌지직─!
“학, 카하아악……!”
비명을 내질러 정신을 억지로 붙잡았다. 밧줄을 찢고 발버둥을 쳐서 살수의 손아귀에서 벗어났다.
손목과 발목에 집중되어 있던 힘을 다리와 허리에 이동시켰다. 마비 탓에 당장이라도 쓰러질 듯한 몸뚱이를 억지로 일으키기 위함이었다.
괴력의 축복을 사용했음에도 다리가 후들후들 떨리고 있었다. 괴력의 축복도 부두의 마비약 앞에서는 무용지물이었다.
역시 부두교의 마비약은 세계 제일……!
부두 뽕에 취한다! 실제로 마비약에 취하고 있기도 했다. 중의적이군.
[……이래서 주술을 안 쓰고 있었군. 미친놈!]렉바가 말했다. 나는 웃었다.
“……저항하지 않았으면 서로 편했을 겁니다.”
살수가 품에서 단검을 꺼내 들었다. 칼날이 날카롭게 갈려 있었다.
말투로 보아 살수는 용병인 듯했다.
용병들은 대개 말투가 저랬다. 사람을 해하는 일이 결코 달갑지는 않지만, 어쩔 수 없이 이 일을 한다는 듯 위선적이고 진지한 말투.
우스웠지만 웃음이 나오지는 않았다. 약 기운이 입꼬리마저 마비시켜 버린 탓이었다.
그때, 살수가 내게 달려들었다.
쿠웅!
나는 기세에 못 이겨 그 자리에 넘어지고 말았다. 직후 살수는 위협하듯 내 발목에 칼끝을 들이밀었다. 내 발목 힘줄을 끊을 작정인 것 같았다.
사탄교의 그 변태 놈도 그렇고, 왜 이렇게 내 발목 힘줄을 노리는 놈들이 많은 건지 모르겠네.
“끄으으으……!”
나는 괴력의 축복을 통해 가까스로 팔을 들었다. 전신의 모든 힘을 오른팔에 실은 뒤, 살수의 뒤통수를 향해 주먹을 날렸다.
콰직!
“윽!”
제법 그럴싸한 소리가 났다. 살수는 뒤로 고꾸라진 채, 고통스럽다는 듯 얼굴을 찌푸리며 자신의 뒤통수를 쓰다듬었다.
그러나 그도 잠시였다. 살수는 곧바로 정신을 차리고는, 살기가 가득 담긴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내가, 저항하지 말라고……!”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완전히 평정을 잃은 모습이었다. 어지간히 뒤통수를 세게 맞은 모양인지, 그의 코에서 피가 줄줄 흘러나오고 있었다.
파악!
살수가 단숨에 몸을 일으켜 내게 돌진해 왔다. 칼날이 내 발목을 향하고 있었다. 칼끝이 당장이라도 내 아킬레스건을 꿰뚫어 버릴 듯 예리하게 빛났다.
[이거 완전히 웃긴 놈이군.]그때, 렉바가 어이없다는 듯 실소를 토했다.
“흐, 흐흐…….”
나도 렉바를 따라 덩달아 실소를 흘렸다.
“웃기는, 이 개새끼가!”
살수는 잔뜩 약이 오른 듯, 흰자에 실핏줄을 덕지덕지 세워가며 나를 노려보았다.
그의 손에 들린 칼끝이 내 목을 향하고 있었다. 이번에는 발목 힘줄 따위가 아니라 내 목을 끊어버릴 생각인 듯했다.
이윽고, 칼날이 내 목을 향해 위협적으로 쇄도했다.
털썩.
그러나 칼날은 결단코 내 목을 끊어내지 못했다. 살의로 일렁이던 살수의 눈에 힘이 풀리고, 곧 그의 몸이 바닥에 내려앉았다.
내가 혼절 주술로 살수를 재워버린 것이었다.
“후우…….”
강도를 최대로 높인 혼절 주술이었으니, 저대로 반나절 정도는 족히 기절해 있을 것이었다.
“나쁘지 않네.”
나는 쓰러진 살수를 바라보며 나지막이 혼잣말을 읊었다.
처음부터 주술을 사용하지 않았던 이유는 하나.
[실전에서도 쓸 만하구나. 한쪽 팔에 힘을 모아서 일격을 날린 건 나쁘지 않았다.]“네. 생각보다 쓸 만하네요.”
괴력의 축복이 실전에서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확인해보기 위해서다.
결론만 말하자면, 괴력의 축복은 실전에서도 나름 효과적인 위력을 발휘했다. 힘을 집중시켜 일격을 날리거나, 무게 중심을 이동시켜 몸의 균형을 맞추는 등.
숙달만 된다면 보다 폭넓은 활용이 가능할 듯했다.
[하지만 무모했다. 살수의 실력이 조금만 더 좋았더라면, 너는 지금쯤 죽어 있었을 거야.]“안 죽었으니 된 거 아닐까요?”
렉바가 지극히 차가운 말투로 나를 꾸짖었다.
나는 괴력의 축복이 가진 위력을 시험하기 위해, 일부러 주술을 사용하지 않고 전투에 임했다. 괴력의 축복이 가진 위력을 마음껏 시험해 보다가, 위험하다 싶으면 그때 주술을 사용할 생각이었다.
만일 살수가 나를 납치하려던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나를 죽일 생각이었다면 렉바의 말대로 나는 이미 죽어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유의미한 결론도 얻어냈고, 나도 이렇게 멀쩡히 살아 있으니 결과적으로는 잘된 셈이었다.
“근데 그, 소독약인지 해독약인지 제조법 좀…….”
[그래. 집에 있는 재료로 만들 수 있는 제조법으로 알려주지.]렉바가 읊어주는 재료를 차례대로 섞으며 해독약을 만들어 마셨다. 야매로 만든 거라서 그런지 효과가 바로 돌지는 않았다. 그래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천천히 독이 중화되어 가는 것이 느껴졌다.
[대충 1시간 정도면 풀릴 거다. 누워서 쉬고 있도록 해.]렉바의 말대로 일단은 침대에 누워서 쉬기로 했다. 지금 당장은 약기운을 빼는 것이 최우선이었다.
전부 해독되고 난 다음에는…… 살수를 고문하여, 암살의 배후를 추적할 생각이다.
* * *
용병은 꿈을 통해 자신의 기억을 엿보았다.
한때는 명망 높은 성직자였던 자신과, 한 번의 실수로 모든 것을 잃고 나락에 떨어진 자신과, 한낱 용병으로 전락해버린 자신과, 마침내 사람을 죽이고 도망자 신분이 된 자신까지.
교황청의 추적을 피하며 다다른 곳이 부두교였다. 그들 또한 자신과 같은 도망자 신분이었다. 용병은 자신을 향해 기꺼이 손을 내밀어 주는 그들의 호의를 거절할 수 없었다.
그는 부두교도가 되었고, 실력을 인정받아 부두교의 살수가 되었다. 그가 받은 마지막 의뢰이자 명령은, 바로 부두교의 교주 도선우를 생포하여 잡아 오는 것이었다…….
“그러셨구나. 그럼 교주를 죽이라고 명령한 자의 이름이 뭐였나요?”
“내게…… 명령을 준, 자는. 하…….”
무심코 이름을 말하려던 용병이 눈을 번뜩 떴다. 뭔가 이상했다. 손발이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고개를 돌릴 수도 없었다. 웬 밧줄 같은 것으로 목이 빳빳하게 고정되어 있었다. 용병은 가까스로 정신을 차린 뒤 억지로 눈을 치켜떴다. 눈앞에 자신을 멍하니 쳐다보는 도선우가 보였다.
“아, 깼네.”
도선우가 안타깝다는 듯 허탈하게 웃으며 말했다. 입은 웃고 있었으나 눈은 그렇지 않았다. 그는 텅 빈 눈동자로 또렷하게 자신을 응시하여, 그저 입으로만 웃고 있었다. 용병은 등골에 소름이 끼쳐오는 것을 느꼈다.
저건 너무 많은 것을 잃어서, 더 이상 잃을 것이 아무것도 남지 않은 자들의 눈이었다.
용병이 제일 무서워하는 사람은 돈을 가진 자도 권력을 가진 자도 힘을 가진 자도 아니다.
애초에 용병들은 가진 자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아무것도 가지지 못해서 끝내 잃을 게 없어진 자를 제일 두려워했다. 무슨 짓을 할지 전혀 예측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인천의 ‘까마귀’라는 별명을 가진 용병들의 눈이 꼭 도선우와 같았다.
“주술을 좀만 더 세게 넣을 걸 그랬네. 아무튼…… 그래서 사주한 사람 이름이 뭐예요?”
도선우가 재차 물었다. 용병은 눈을 질끈 감았다. 아무리 추궁해도 절대 말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방황하던 자신을 거두어준 고마운 사람이다. 결코 배신할 수는 없었다. 도선우는 고개를 도리도리 저으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사주한 사람 이름이 뭐냐구요. 두 번째로 묻습니다. 세 번째에도 대답하지 않으면─”
“대답하지 않으면 고문을 할 셈입니까.”
“네. 고문할 겁니다. 그냥 지금 말하는 게 서로 편할 거예요. 진심입니다.”
도선우가 아무렇지 않다는 듯 고개를 말했다. 고문을 하겠다는 살벌한 말을 입에 담는 와중에도 도선우의 표정에는 미동조차 없었다.
으득─!
용병은 혀를 깨물어 자결을 시도했다. 이럴 때 고문 기술자들은 보통 재갈을 물려 혀를 깨물지 못하도록 했다. 원하는 대답을 듣기 전에 혀가 잘려 죽거나 혹은 대답을 못 하는 상태가 되어버리면 기술자들의 처지도 곤란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도선우는 그저 가만히 지켜보기만 했다. 해볼 테면 해보라는 식으로. 저런 태도를 보이면 못 할 줄 아는 모양인데, 역시 애는 애였다. 고문과 심문을 체계적으로 배운 기술자들에 비하면 마인드가 너무 안일했다.
용병은 기어코 이를 악물어 자신의 혀를 잘라내는 데 성공했다. 도선우는 그런 용병을 보며 피식 웃음을 흘렸다.
“혀 깨물면 죽는다는 거 미신이래요. 직접 깨물어본 적은 없어서 잘 모르겠는데.”
“아?”
분명, 그랬다고 생각했는데…….
“아, 아아아악……!”
용병이 발버둥을 치며 비명을 내질렀다. 잘린 줄 알았던 혀가 어느새 보니 멀쩡하게 붙어 있었다. 출혈도 없었다. 까무러칠 정도로 아득한 고통만이 혓바닥에 남아 있을 뿐이었다.
복원 주술인가? 아니, 주술진을 그리는 모습은 보지 못했다. 어떻게 한 거지?
“마지막으로 묻습니다. 사주한 사람 이름만 밝히면 그냥 보내줄 테니까 얼른 말해요.”
“…….”
“이번에도 말 안 하면 고문합니다. 지금 말하는 게 편할 거예요. 진심으로 하는 말입니다.”
용병은 눈을 질끈 감았다. 혀를 깨무는 것도 안 된다. 손발목이 전부 묶여 있어서, 저항은 물론 도주조차 불가능하다. 말할까? 고문을 당하기 전에 말하는 게 차라리…… 아니, 안 된다. 결코 그분을 배신할 수는 없다.
그리고, 도선우는 고문 기술자가 아니다. 일개 학생에 불과하다. 고문이라고 해봐야 손톱을 뽑거나 무작정 때리는 게 전부일 것이다. 용병 생활을 하면서 당한 고문의 가짓수만 수백이 넘어가는 나다. 그깟 물리적 고문 따위는 눈 하나 깜짝 않고 견뎌낼 자신이 있었다.
“진짜 마지막입니다. 말 안 할 거예요?”
“할 테면 해봐. 교주님께서는 얼마나 대단한 고문을 하실지 궁금하네.”
용병이 도발하자, 도선우가 시선을 바닥에 떨군 채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착잡하다는 듯 마른세수를 하는 그의 손끝에서 짙고 무거운 빛깔의 부두 마력이 솟구쳐 나오고 있었다.
“저도 개인적인 원한은 없어요. 진작 좀 말하면 편했을 텐데, 하…….”
사아아아…….
도선우가 그린 주술진으로부터 안개가 흘러나왔다. 용병은 피식 비웃음을 흘렸다. 그가 알기로, 주술을 통해 고문을 하는 방법은 없었다. 주술에 당하면 정신이 완전히 망가져 버리기 때문이다.
그 잘난 교주님께서 고문이랍시고 시전한 주술은 무엇일까. 환각? 아니면 기억 분쇄? 무엇이 됐든, 용병은 그분을 배신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기뻐하고 있었다.
“풉, 하, 하핫. 아? 하, 흐흐, 흐흐흐흐…….”
안개를 맡은 용병의 표정에 웃음기가 어렸다. 몸 깊숙한 곳에서부터 쾌락이 솟구쳤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강한 쾌락이, 용병의 입에 억지로 웃음을 물리고 있었다. 그런 용병을 바라보는 도선우의 얼굴은 묘한 슬픔에 젖어 있었다.
“그냥 말했으면 편했을 텐데…….”
“흐흐, 핫, 하하학, 커헉. 헤엑, 헤에엑……!”
용병의 웃음이 격해졌다. 너무 웃어서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그분을 배신하지 않아도 된다는 기쁨에서 나온 웃음이 아니었다. 주술에 의해 억지로 주입된 쾌락이 용병의 입꼬리를 억지로 올리고 있을 뿐이었다. 용병은 그제야 도선우가 쓴 주술의 정체를 깨달았다.
도취.
중독성과 의존성이 마약에 버금가기에, 2대 교주가 금기로 지정했다던 그 주술. 도선우는 처음부터 고통이 아닌 쾌락으로 용병을 고문할 셈이었던 것이다.
“히익, 커헉, 쿨럭, 쿨럭, 하…… 하하하, 아아악……!”
“다시 오겠습니다.”
도선우는 웃고, 또 웃다가 사레가 들러 기침을 하고, 기침이 멎으면 다시 웃기를 반복하는 용병을 흘깃 쳐다보았다. 그러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방을 나갔다. 방 안은 주술의 안개와 용병의 웃음으로 가득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