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eric Academy's Shaman RAW novel - Chapter 91
제91화
도취 주술을 통한 심문으로 용병의 입을 열게 하는 데 성공했다. 예상은 했지만, 용병은 다른 간부가 나를 죽이기 위해 보낸 살수였다.
어느 교단의 간부가 사주했는지도 용병의 입을 통해 직접 들었다. 이번 사건에 대해서는, 곧 있을 간부 회의에서 본인에게 직접 ‘책임’을 물을 생각이다.
원하는 정보를 전부 캐낸 뒤, 용병은 집에 잘 돌려보냈다. ‘기억 분쇄’ 주술로 기억을 지워버리는 것도 잊지 않았다.
안타깝게도 심문 과정에서 용병은 도취 주술에 중독되어 버렸고, 앞으로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테지만, 내 알 바는 아니었다. 내 발목을 자르려고 한 놈에게 이정도면 자비로운 처사라고 생각한다.
그 이튿날 아침, 나는 학생회실에 왔다.
“6시 50분…….”
회의 시작은 7시. 무려 10분이나 일찍 왔다. 어젯밤 용병을 심문하느라 잠을 제대로 못 잔 탓인지 머리가 몹시 무거웠다. 나는 학생회실 책상에 엎드려 잠을 청했다. 회의 시작인 7시까지, 딱 10분만 잘 생각이었다.
톡톡.
눈을 감자마자 찾아온 암흑. 누군가 나를 깨웠다. 부스스한 머리를 다듬으며 고개를 들자, 김진서가 자고 있던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잘 자네. 피곤했나 봐.”
“…….”
그녀의 말에 대답하기 전에 먼저 시간을 확인했다. 7시 5분. 회의가 시작된 지 무려 5분이나 지났음에도, 학생회실에는 나와 김진서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없었다.
서늘한 아침 바람이 커튼을 흔들고 있었다. 문득, 흔들리던 달빛 아래에서 나를 바라보며 웃던 김진서가 떠올랐다. 단지 그때는 밤이었고, 지금은 아침이라는 점만이 달랐다.
“다른 애들은?”
“아직 안 온 거 같아. 우리 둘 말고는.”
“우리 둘 말고는.”
어감이 묘해서 괜히 되풀이해 보았다. 김진서는 그런 나를 바라보며 작게 웃었다. 그녀의 미소는 언제나 묘하고 신비로운 느낌이 났다. 맑고 또렷하지만, 일상적이지 않고 어딘가 신비로운 미소.
“관장님 깨어나셨대.”
“관장님? ……아, 그분.”
“응. 나랑 같이 계셨던.”
체육관에서 무너진 건물 자재에 깔려 죽어가던 그 사람을 말하는 듯했다. 구하는 와중에도 과연 살릴 수 있을까 의문이 들었던 그 사람이다. 다행히 목숨은 건사했다고 들었는데, 어제자로 의식까지 되찾은 모양이었다.
“다행이네.”
“근데 신경을 다치셔서 다리를 못 움직이시나 봐.”
“…….”
섣불리 다행이라는 말을 입에 담았던 것을 후회하며 김진서를 보았다. 그녀는 희미한 미소를 지은 채 눈을 바닥에 내리깔고 있었다.
그녀와 만난 지 얼마 안 됐을 무렵, 그녀가 습관처럼 입에 머금고 있던, 아무런 감정도 담기지 않은 의미 없는 미소. 방금까지 깃들어 있던 신비로움은 원래부터 없었다는 듯 흔적도 없이 사라진 뒤였다.
“내가, 그때 조금만 더 잘했으면…….”
미소가 점점 흐려졌다. 일자로 다문 입술에 남은 것은 자책, 절망, 후회.
“……결과가 달랐을 것 같다는, 생각이.”
“무슨.”
피식 웃음을 흘리며 말하자, 김진서가 다소 놀란 듯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말을 이었다.
“거기서 뭘 어떻게 더 잘해.”
“…….”
“할 만큼 했어, 너는.”
김진서는 혼란 속에서도 꿋꿋이 치유와 축복진을 그려 관장을 치료했다. 관장이 목숨을 잃지 않고 목숨이나마 건사한 건 전부 그녀 덕분이었다.
더 잘했으면, 이라는 후회를 입에 담아야 할 것은 그녀가 아니라 나다.
내가 몸을 더 빨리 움직였다면, 아니, 애초에 사탄교의 은거지에 남아 있던 박제들을 전부 산산조각 내버리고 왔더라면. 폭발이 일어날 일도, 화재가 일어날 일도, 체육관 관장이 장애를 안게 됐을 일도 없었을 것이다.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고, 다만 감정에 이끌려 강지아를 구하러 갔던 것부터 실수였을지도 모른다.
[너도 할 만큼은 했지. 도취 주술로 몸을 망가트리면서까지 불길에 뛰어들었지 않느냐.]그때 문득 렉바의 희미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눈앞에 김진서가 있어서 그런지 평소보다 목소리가 훨씬 작았다. 나는 대답 대신 작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할 만큼은 했다, 라는 말은 내게 비열한 합리화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얼마나 열심히 했든, 설령 목숨을 내던져가며 최선을 다했더라도, 최선의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그건 실패다.
김진서와 나를 동일선상에 두면 안 됐다. 애초에, 그녀와 나는 서로에게 주어진 책임이 달랐으니까. 역할도.
[강박증이다. 병원에 가보는 게 낫겠군.]렉바가 비아냥거렸다. 무시하고 김진서를 보았다. 그녀는 자신의 머리칼을 손가락으로 빗어 내리며, 묘한 눈빛으로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고마워.”
그녀가 말했다. 그녀에게는 유독 고맙다는 말을 자주 듣는 것 같았다. 정작 그녀에게 감사를 받을 만한 짓을 한 적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분이 살짝 이상했다.
웃음으로 표정을 숨기고 입을 열었다.
“너희 아버지한테 이미 들었는데.”
“……그럼 한 번 더 들으면 되잖아.”
김진서가 살짝 기분이 상한 듯 퉁명스레 대꾸했다.
“근데, 다른 애들은?”
주위를 둘러보며 화제를 돌렸다. 벌써 7시 10분이 다 되어가는데, 나와 김진서 외에는 아무도 도착한 사람이 없었다. 뭔가 이상했다. 그녀는 웃음을 머금은 채 입을 열었다.
“다들 늦나 봐.”
“원래 이래?”
“이렇게까지 늦지는 않지. 보통은.”
김진서가 의자를 끌어와 내 옆자리에 앉았다. 그녀는 팔꿈치를 책상 위에 올리고, 턱을 괸 채 비스듬한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이대로 아무도 안 왔으면 좋겠다.”
“……놀리지 마.”
시선을 돌렸다. 얼굴이 너무 가까웠다. 어디선가 포근하면서도 시원한 향기가 흘러 코끝을 간질였다. 그녀의 머리칼에서부터 나는 향인 듯했다.
“이쪽 봐.”
“싫어.”
“왜 눈 피해. 부끄러워?”
“놀리지 말라니까.”
그렇게 말하며 고개를 돌려 그녀가 있는 쪽을 바라보았다. 아까보다 훨씬 얼굴이 가까웠다. 김진서는 놀란 듯 입을 반쯤 벌린 채 동그랗게 뜬 눈으로 나를 멍하니 쳐다보았다.
침묵이 흘렀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의 얼굴이 눈에 띄게 붉어지기 시작했다.
“아…….”
쿠당탕─!
그때, 학생회실 구석에 있는 장롱 문이 열리고 이불과 옷가지가 쏟아져 나왔다. 무질서하게 쏟아진 침구 위로 웬 사람이 널브러져 있었다.
“……안녕! 내가 일부러 들으려고 한 건 아닌데, 이게 어쩌다 보니……. 음. 바, 방해했나? 나갈까?”
장롱에서 튀어나온 것은 절제의 성호였다. 이름이 한수련이었나……. 그녀는 널브러진 침구를 허겁지겁 정리한 뒤 장롱에 구겨 넣으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사실 임원들끼리 연애하면 안 되는데! 어, 이건 철저히 비밀로, 그래. 무덤까지! 무덤까지 안고 갈게. 정말로.”
“……오해야.”
“아, 하하. 그치. 당연히 오해지. 아무튼 나는 일이 생겨서 나가 봐야─”
쾅!
“─악!”
갑자기 문이 열렸다. 황급히 학생회실을 나가려던 한수련이 문에 이마를 부딪혀 바닥에 나동그라졌다. 문을 연 것은 강대만이었다.
“이럴 수가! 내가 제일 빨리 왔을 줄 알았는데. 근면의 이름에 먹칠을 한 꼴이 됐군.”
강대만은 그렇게 말하며 아무 빈자리에나 가 앉았다. 처음 보았을 때보다 몸이 한층 더 거대해진 것 같았다. 옷 너머로 그의 선명한 근육이 도드라져 보였다.
한수련은 넘어진 그대로 자신의 이마를 한참이나 어루만지더니, 이윽고 얼굴을 팍 구기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야! 너 때문에 이마 깨질 뻔했잖아!”
“아, 미안하다. 너무 작아서 안 보였다.”
“안 작아! 네가 곰처럼 너무 큰 거잖아!”
“칭찬으로 듣겠다! 나는 아직 곰과 싸우려면 멀었다. 운동을 더 열심히 할 필요가 있다.”
한수련과 강대만은 그 뒤로도 한참이나 티격태격했다. 강대만이 재차 사과를 하자, 한수련도 화가 풀린 듯 숨을 가다듬으며 자리에 앉았다. 잠깐 침묵이 내려앉은 학생회실 속, 강대만이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입을 열었다.
“그건 그렇고, 왜 다들 이렇게 빨리 왔나! 오늘 회의는 분명 7시 20분에 시작이었을 텐데.”
“7시 20분?”
나는 의문스레 강대만의 말을 되풀이하며 김진서 쪽을 쳐다보았다. 그녀는 고개를 숙여 늘어뜨린 머리칼로 붉어진 얼굴을 숨긴 채, 조심스러운 눈짓으로 흘깃 내 쪽을 쳐다보았다.
“……미안.”
그러고는 면목 없다는 듯 시선을 내리깔며 나지막이 사과를 건넸다.
* * *
마침내 ‘진짜’ 회의 시작 시간인 7시 20분이 되었다. 성하연과 여민서도 늦지 않고 학생회실에 도착했다.
특히 여민서는 정확히 7시 20분에 문을 열고 학생회실에 들어와 곧바로 회의를 진행했다. 그녀는 다른 건 몰라도 시간 개념 하나만큼은 경이로울 정도로 칼 같았다.
“다 왔나? 겸손 빼고?”
여민서가 학생회실을 쭉 둘러보았다. 겸손의 성호를 제외하면 전부 와 있었다. 여민서는 들고 있던 서류 뭉텅이를 쿵, 내려놓으며 갑자기 허공에 대고 박수를 쳤다.
“좋은 소식. 도선우가 자선의 성호로 재선출되었습니다. 박수!”
짝짝짝.
여민서를 시작으로 한수련과 강대만이 박수를 이었다. 성하연과 김진서도 휩쓸리듯 덩달아 박수를 쳤다. 갈채는 대충 3초간 이어졌다. 박수가 멎자 여민서는 내려놓았던 서류를 다시 들었다.
“오늘 회의는 짧게 하고 끝내자. 일단 첫 번째는, 우리가 기획안을 하나 써야 돼. 종교 관련 소논문 대회 기획안.”
툭.
여민서가 두툼한 서류 뭉치 하나를 내 앞에 던지듯 내려놓았다.
“그래서 방금 축하를 받은 도선우가 이 일을 하기로 했어. 다음 주까지 써 오면 돼.”
“무슨 오자마자─”
“인수인계 겸 실무, 뭐 그런 거지.”
인수인계 겸 실무. 참 웃긴 말이 다 있다 싶어 속으로 되뇌어 보았다. 말이 인수인계 겸 실무였지, 사실상 짬 때리기였다.
“그럼, 다음 건.”
여민서는 내 대답을 듣지도 않고 곧바로 다음 안건으로 넘어갔다. 애초에 내 의사는 중요치 않았다는 듯. 여민서는 서류와 창문 너머를 번갈아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
“이번 건이 진짜 중요한 건데. ……겸손 이 개새끼!”
“으꺅! 아, 죄송해요.”
여민서가 신경질적으로 욕지거리를 했고, 이에 놀란 성하연이 어깨를 움찔 떨며 이상한 소리를 냈다. 여민서는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서류를 구기듯 쥐었다.
“……겸손이 안 와서 회의 진행을 할 수가 없네. 오늘 온다고 들었는데. 강대만, 그놈한테 연락 없어?”
“어…… 곧 도착, 이라고 하는군!”
“그래? 어디 봐.”
강대만이 휴대폰 화면을 돌려 여민서에게 보여주었다. 강대만의 큰 손에 들린 휴대폰은 미니어처처럼 작아 보였다. 화면 너머를 훑어보던 여민서의 얼굴이 바싹 굳었다.
“10분 전에 곧 도착이라 해놓고 아직도 안 와? 미친 거지?”
“나한테 화내지 마라. 내 잘못은 아니니까.”
“그래. 네 잘못은 아니지. 겸손 그 새끼 잘못이지. 다 그 새끼 잘못이지…….”
여민서가 화를 삭이려 한숨을 푹푹 내쉬던 그때.
벌컥!
문이 열리고 누군가 걸어왔다. 날카롭게 치켜 솟은 눈매와, 은은한 갈색으로 그을린 피부, 탈색을 한 듯 푸석푸석하고 샛노란 머리칼. 몸 곳곳에 붙은 근육이 제법 견고하고 단단해 보였다.
그는 껄렁껄렁한 걸음으로 우리를 가로질러, 정말 자연스럽게 원탁의 최상석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아…… 늦잠 자느라 좀 늦었다.”
두통을 몰아내려는 듯 이마에 손을 얹은 채 무기력하게 말하는 그. 학생회실의 모든 임원들이 어안이 벙벙하다는 듯 그를 쳐다보았다.
“……왜 그렇게 봐? 나 그그, 겸손. 겸손의 성호야. 마유현. 몰라? 알지?”
마유현.
로마니카교 교황의 외손자. 성직자라면 모를 수가 없는 이름이며, 부두교의 교주인 나는 더더욱 모를 수 없는 이름이었다. 그가 가진 두 개의 ‘재능’ 때문이었다.
“겸손의 성호님이 드디어 오셨네. 무려 5분이나 늦었는데 사과 한마디도 없고.”
침묵을 깬 것은 여민서였다. 마유현이 교황의 손자이건 말건 여민서의 말투는 그대로였다. 마유현은 특유의 찢어진 눈으로 잠시 여민서를 응시했다.
“어……. 그러니까, 늦잠 자다가 늦었다니까?”
“자다가 늦었다……. 누구는 늦잠 자기 싫어서 회의에 일찍 오는 줄 아나. 그딴 걸 지금 핑계라고 대? 지금까지 너 때문에 밀린 안건만 해도─”
“아니, 왜 화를 내고 그래, 사람 무안하게. 이 병신같이 생긴 년아.”
마유현은 싱글벙글 웃으며, 다소 멍청하고 바보 같아 보이는 얼굴로 태연하게 욕을 했다. 여민서가 얼빠진 표정으로 마유현을 응시했다. 두 사람 사이로 험악한 기류가 흘렀다.
싸움이 일어날 것만 같은 예감이 들었다. 두 사람은 만난 지 채 1분도 지나지 않았다.
곧 여민서의 손끝에서 신성력이 흘러나왔다. 싸움을 지켜보던 한수련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야, 야! 여기서 싸우면 안 된다니까─!”
한수련이 말릴 틈도 없이 여민서는 축복진을 완성했다.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아마 신체 능력과 관련된 축복인 것 같았다. 축복을 써서 작정하고 마유현을 팰 생각인 듯했다.
“……어?”
그때, 여민서가 자신의 팔을 망연자실하게 바라보며 의문성을 흘렸다. 자신에게 향했어야 할 축복의 빛이, 궤도를 바꾸어 마유현에게 향한 탓이었다. 마유현의 굵은 팔뚝을 중심으로 축복의 빛이 찬란하게 흐르고 있었다.
마유현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말없이 여민서를 향해 성큼성큼 다가갔다.
“이런 씨발. 이거 왜……!”
여민서가 주춤주춤 뒷걸음을 치며 황급히 다음 축복진을 그렸다. 마찬가지로 신체 능력과 관련된 축복이었다.
그러나 축복의 빛은 여민서를 향하지 않고, 또다시 궤도를 틀어 마유현의 몸에 흡수되었다. 여민서의 얼굴이 당황으로 굳었다.
마유현은 축복의 빛이 감도는 두꺼운 팔뚝으로 여민서의 목을 살며시 쥐었다.
“기 센 여자도 나쁘지 않긴 해. 오히려 좋아…….”
어지간한 살해 협박보다 더 무서운 말이었다. 여민서의 얼굴에 비친 당황이 차츰 공포로 변해가고 있었다. 여민서가 저토록 공포에 질린 표정을 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녀의 몸이 작게 떨리고 있었다.
얼마간의 침묵이 흐르고, 마유현은 여민서의 목을 쥔 손에 힘을 풀었다. 그러고는 주위를 둘러보며 천진난만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장난이야~ 장난. 싸우지 말자는 거지, 그냥.”
“……너 이거, 어떻게.”
여민서는 바들바들 떨리는 몸을 억지로 진정시키며 입을 열었다. 마유현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허공에 손가락을 휘적거렸다. 그에 맞춰, 마유현의 팔을 휘감은 축복의 빛이 이리저리 하늘거렸다.
“어떻게는 나도 모르는데. 그냥 태어날 때부터 된 거라서.”
그는 신성력의 흐름을 제어할 수 있다. 내가 부두 마력의 흐름을 제어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것이 그가 가진 첫 번째 재능.
어안이 벙벙하다는 듯 입을 벌린 채 자신을 바라보는 여민서를 뒤로한 채, 마유현은 말을 이었다.
“분위기 왜 이래. 음, 통성명이나 할까? 이번에 순결의 성호 재선출 했다고 그랬지?”
“……자선이요. 순결의 성호는 나구요.”
“아, 그래. 자선이 바뀐 거구나.”
마유현이 째진 눈으로 성하연을 쳐다보았다. 끈적하고 묘한 불쾌감이 드는 눈빛이었다.
“뭐야, 성하연이었네? 너 되게 예뻐졌다. 나 기억나지?”
“……기억 안 나요.”
“에이~ 야. 어릴 때 자주 놀았잖아. 같은 침대에서 자기도 하고.”
“무,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아, 그건 네가 아니구나. 뭐 어때.”
성하연과 마유현은 서로 아는 사이인 것 같았다. 성하연은 마유현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 듯했지만. 아니, 오히려 혐오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아무튼, 그래서 새로 들어왔다는 애가…….”
씩씩대는 성하연을 대충 진정시키며 마유현이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의 날카로운 눈빛이 임원들의 면면을 핥았다.
강대만에서 한수련으로, 한수련에서 김진서, 여민서, 그리고 나까지. 나는 그의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 슬쩍 고개를 떨궜다.
문득, 아주 오래 전 일이 떠올랐다.
부두교 2대 교주인 아버지가 죽고 성전이 종료된 후 며칠. 로마니카교 극단주의 세력이었던 ‘레위단’이 집집을 뒤지며 부두교도들을 체포하기 시작했다.
레위단은 미리 파놓은 구덩이에 부두교도들을 모아 넣고 불을 질러, 그들을 전부 태워 죽였다.
그때 솟구친 검고 지독한 연기가 하늘의 별을 전부 가렸다고 하여, 그 사건을 오늘날 ‘별 없는 밤’이라 부른다.
“분명 임명식에서 얼굴을 봤는데, 내가. 어…….”
별 없는 밤, 부두교도들을 축출했던 일등 공신이 바로 마유현이다.
고작 열 살 어린아이에 불과했던 그는 특유의 날카로운 직감으로 부두교도들을 골라냈다. 원리는 모른다. 교황의 손자인 그는 로마니카교인과 사교도인을 눈빛만으로 구분하는 재주가 있다……. 그렇게, 막연히 추측할 뿐이다.
그 사건 이후로 마유현은 ‘사교도 감별사’라 불리게 된다.
“그래. 여깄네.”
이것이, 그의 두 번째 재능.
마유현의 날카로운 시선이 분명하게 나를 향하고 있음이 느껴졌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