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eric Academy's Shaman RAW novel - Chapter 92
제92화
고개를 들어 마유현의 눈동자를 응시했다. 깊이를 알 수 없이 까마득하게 검었다. 문득 두려움이 느껴졌다. ‘사교도 감별사’…… 마유현의 별칭이 문득 떠오르며 공포가 일었다. 별 없는 밤의 그 시꺼멓고 지독한 연기가 눈앞에 어른거렸다.
“임명식에서 볼 때는 긴가민가했는데, 이거…….”
마유현이 내 눈동자를 또렷이 응시하며 의미심장하게 중얼거렸다. 입술이 바짝 말랐다. 침을 삼키고 싶었지만 참았다.
긴장한 내색을 보이면 안 된다. 이유를 설명할 수는 없었지만, 본능적으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속내를 알 수 없는 묘한 표정으로 가만히 나를 응시하던 마유현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반반하니 잘생겼네. 너 이름이 뭐더라?”
“……도선우.”
“그래. 학교 끝나고 좀 놀자. 친해질 겸.”
마유현은 내게 친한 척을 하며 태연하게 약속을 잡으려 했다. 내가 부두교의 교주라는 사실을 알아챈 것 같지는 않았다.
아니, 알아챘는데 모르는 척을 하는 건가. 짐작할 수 없었다. 부디 알아채지 못했기를 바랄 뿐이었다.
긴장을 삭이며 뒤늦게 대답을 하려 했지만, 말이 잘 나오지 않았다. 지금 입을 열면 말을 더듬을 게 분명했다.
“……뭐, 바쁘면 안 놀아도 상관은 없는데. 대답은 왜 안 하고 그러냐. 무안하게.”
“나도 가도 되나? 도선우가 간다면 말이지만.”
강대만이 나 대신 대답을 해주었다. 마유현이 얼굴을 찌푸렸다.
“강대만 너는 안 돼. 여자애들이 무섭다고 너 데려오지 말래.”
“여자애들을 안 데려오면 될 일이다.”
“그건 안 돼. 차라리 너를 안 데려가는 게 나아.”
마유현은 그렇게 말하며 내게 시선을 돌렸다. 그 날카로운 눈매가 나를 응시했다. 영 적응하기 어려운 눈빛이었다.
“그래서 온다는 거? 너 오면 여자애들이 좋아할 거 같은데.”
“여자애들?”
“어. 피렌체 말고 그냥, 여기저기 애들. 좀 멍청하긴 한데 뭐…… 얼굴은 마음에 들걸.”
여기저기 애들이라……. 대충 듣기로는 만나서 별 좋을 게 없는 애들인 것 같았다. 애초에 마유현은 질 나쁜 애들과 자주 어울리고 다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가 말한 ‘여자애들’도 아마 그런 부류일 것이다.
거절하는 게 낫겠다고 생각한 찰나, 옆에 앉은 김진서가 내 옷깃을 살며시 잡아당겼다.
“……가, 가지 마.”
단호하면서도 어딘가 다급한 말투였다. 눈빛이 절박했다.
“안 갈게. 선약도 있고.”
단호하게 거절했다.
“그래? 아쉽네. 그럼 다음에 시간 나면 말해. 그때 놀게.”
마유현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자, 김진서가 재차 옷깃을 잡아끌었다. 그러고는 속삭이듯 작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다음에도 가지 마.”
이번에는 절박하기보다 서늘함이 느껴지는 음색이었다. 나는 김진서의 말에도 고개를 끄덕였다.
밀담을 나누는 우리를 보며, 성하연이 고개를 갸웃댔고 한수련이 소리 없는 비명을 질렀다. 성하연은 모르겠지만, 한수련이 우리를 보고 괜한 오해를 하고 있다는 사실만은 확실했다.
여민서는 한참이나 멍하니 있다가, 뒤늦게 퍼뜩 정신을 차린 듯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그러고는 떨리는 눈동자로 마유현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마유현, 앉아.”
“앉아?”
“그래, 앉아……봐. 회의 시작하게.”
여민서의 말투가 평소와 달리 공격적이지 않았다. 마유현은 그제야 만족한 듯 순순히 자리에 앉았다. 여민서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마음을 추스르려는 듯했으나 잘되지는 않는 모양이었다.
“다음 안건은, 드디어 시작하는 사탄교 축출 작업에 대해서.”
연거푸 한숨을 내쉬며 근심을 토해낸 여민서가 곧 회의를 재개했다. 사탄교 축출. 흥미가 돋는 안건이었다. 피렌체에 숨어든 그 사탄교도 새끼 때문에 내 집이 탔고, 강지아가 죽을 뻔했고, 바사르 상가가 폭발했으니까.
여민서가 서류를 훑어보며 말을 이었다.
“먼저, 축출 작업이 이뤄지고 있다는 사실을 학생들이 모르게 해야 돼.”
“왜지?”
강대만이 정말로 궁금하다는 듯 물었다.
“교사들……이 아니고 선생님들 지령이야. 학생들 간 위화감 조성이 어쩌고저쩌고.”
“위화감! 명분은 그럴듯하군.”
“피렌체는 항상 명분만 그럴듯하지. 아무튼, 축출 작업은 다음 주에 실시될 거고. 여기 계신 겸손의 성호 마유현 씨를 중심으로, 교사들이랑 나머지 임원들이 같이 은밀하게 진행할 거야.”
여민서의 설명에 따르면, 교사진에서 준비한 성물과 마유현의 재능, 그리고 장로회가 준비한 ‘특별한 방법’으로 사탄교도를 축출할 예정이라고 한다. 특별한 방법이 정확히 무엇인지는 알려주지 않았다. 이유는 여민서도 그 방법을 모르기 때문이었다.
“장로가 그렇지 뭐. 지들끼리만 알고 있으면 뭐가 되는 줄 알아. 허영심 많은 늙은이들. 언제 죽나 몰라.”
“민서야, 너…… 에휴. 아니다.”
여민서를 말리려던 한수련이 체념한 듯 한숨을 쉬었다. 여민서의 말버릇은 아무리 들어도 적응이 안 됐다. 마유현의 눈빛과 마찬가지로.
“축출 작업은 1학년 전교생을 대상으로 이뤄질 건데, 대신. 교사진이랑 내가 추린 ‘유력 후보’들은 조금 더 엄격하게 작업할 예정이고.”
“유력 후보?”
나도 모르게 여민서의 말을 되풀이했다. 여민서는 힐끗 나를 쳐다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유력 후보라는 이름치고는 너무 많기는 한데. 뭐, 불러줄까?”
“혹시 나도 의심을 받고 있나 궁금하군. 불러주길 바란다.”
“그래. 다들 그게 궁금하긴 하겠네. 확인할 겸 그냥 불러 줄게.”
여민서가 명단을 읊었다. 유찬, 임단명, 하대수, 윤우진, 정성희……. 여민서의 입에서 끝도 없이 이름이 튀어나왔다. 확실히 유력 후보라고 하기에는 수가 너무 많았다.
“김구학, 면정남…… 도선우, 구준혁.”
“……뭐? 기준이 뭔─”
“마지막, 여민서. 나까지가 유력 후보.”
항의를 하려던 내 말을 끊고, 여민서가 자신의 이름을 호명했다. 그것으로 ‘유력 후보 목록’은 끝인 듯했다. 나는 순간 어이가 없어 멍하니 여민서를 쳐다보았다.
내가 명단에 올라가 있는 것은 넘어가도록 하자. 아니, 오히려 내가 명단에 올라가 있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나는 피렌체의 학생이자 부두교의 교주로서 이중 생활을 하고 있다. 나도 모르게 의심을 살 만한 행동을 했을 지도 모를 일이다.
진정 의문인 것은…… 교사진과 여민서가 함께 추린 유력 후보에 어째서 여민서 자신의 이름이 올라가 있는가.
“다들 이해가 안 될 텐데…… 교사들이랑 내가 추측한 바로, 사탄교도의 특징은 이래.”
의문을 가진 것은 나뿐만이 아니었다. 다른 모든 아이들이 의아한 눈으로 여민서를 바라보고 있었다. 심지어는 마유현까지도. 여민서는 그런 우리의 의문을 기꺼이 풀어주겠다는 듯 말을 이었다.
“일단, 똑똑해. 수 싸움에 능하고. 약간의 강박증이 있고, 자기애가 엄청나게 강해. 자신의 범행을 전시하려는 걸로 봤을 때, 과시욕도 엄청 심하고. ……무엇보다.”
여민서가 말을 멈추고 잠시 숨을 골랐다.
“이중인격일 가능성이 매우, 매우 높아. 그러니까…… 자기가 사탄교도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거지. 그런 부분을 따졌을 때, 나도 용의선상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결론이 내려졌어.”
“역시 그랬군! 나는 아주 오래전부터 네가 사탄교도가 아닐까 의심을 해왔지. 내 판단은 옳았다.”
“그러니까, 내가 사탄교도라는 게 아니라. 그럴 가능성이 ‘조금은’ 있다는 거지. 강대만 이 빡대가리 새끼야.”
여민서는 강대만에게 한바탕 욕설을 쏟아내고는, 재차 한숨을 쉬었다.
“……이상, 회의 끝. 다음 주에 보자.”
* * *
학생회실을 나오면서도 마음이 내내 착잡했다. 용의선상에 나와 구준혁이 올라가 있기 때문도 있었지만, 사탄교도가 이중인격일지도 모른다는 여민서의 말이 가장 큰 이유였다.
사탄교도는 자신이 사탄교도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을 수도 있다……. 내 주위에 있는 누군가, 혹은 나 자신이 사탄교도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이 너무나 불쾌했다.
“바로 교실로 가?”
얼마간 같이 걷던 김진서가 불쑥 물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야지.”
“방향이 반대네.”
나는 곧바로 교실로 올라갈 생각이었고, 김진서는 운동을 갈 생각인 듯했다. 1학년 교실이 있는 건물과 헬스장이 설치된 건물은 방향이 아예 반대였다.
“아쉬워.”
“뭐가?”
“……모르겠어.”
김진서는 의미를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더니, 작게 손을 흔들며 헬스장이 있는 건물로 걸음을 돌렸다. 걸음이 평소보다 조금 빨랐다. 그녀의 모습이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지고 난 뒤, 나는 교실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저기요.”
교실로 향하는 길이 오늘따라 더 멀게 느껴졌다.
“저기요?”
계단도 왠지, 오늘따라 더 높고 험하게 느껴진다. 나는 서둘러 교실로 걸음을 옮겼다.
“저기요, 무시하지 말고─”
“아 왜!”
한참 무시해도 계속 따라붙길래 하는 수 없이 대꾸했다. 나를 쫓아온 것은 성하연이었다. 그녀는 양손을 엉거주춤하게 든 채, 겁먹은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갑자기 소리를 질러서 놀란 모양이었다.
“……그래, 왜.”
아무리 그래도 너무 갑자기 소리를 질렀다 싶어 대답을 정정했다. 성하연은 그제야 자세를 고치며 목을 가다듬었다.
“으, 흠. 나한테 해야 될 말이 있지 않을까요?”
“해야 될 말?”
“네.”
해야 될 말. 내가 성하연에게 해야 될 말이 뭐가 있을까.
“음, ‘꺼져’?”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어서, 일단 하고 싶은 말을 해보기로 했다.
“……그거 말구요.”
“‘그만 따라와’, ‘좀 닥쳐’.”
하고 싶은 말을 몇 개 더 읊어 보았지만, 아무래도 정답은 아닌 듯했다. 애초에 정답이 아닐 줄 알고 있긴 했지만. 성하연은 화가 난 듯 찌푸린 눈매로 나를 올려다보며 입을 열었다.
“……그쪽이 자선의 성호가 된 건 국제신학회 덕분이에요. 알고는 있어요?”
“그래서?”
“고맙다는 말이 나와야 맞겠죠?”
성하연이 팔짱을 낀 채, 어디 한번 말해보라는 식의 태도로 나를 쳐다보았다.
내가 자선의 성호가 되는 데에 도움을 준 단체가 둘 있다. 하나는 김창원의 피렌체 재단. 다른 하나는 성유다의 국제신학회.
김창원은 말할 것도 없이 김진서 때문에 나를 도와주었다. 다만, 성유다의 국제신학회에서 나를 도운 이유에 대해서는 짐작 가는 바가 없다.
말하는 걸로 봐선, 성하연이 성유다에게 뭔가 부탁을 했던 듯한데. 그럼, 성하연은 도대체 왜 날 도우려고 하는 것인가? 국제신학회에 나를 들이기 위해서? 단순한 호의로 나를 돕지는 않았을 것이다. 성하연은 그럴 위인이 못 된다.
이유가 무엇이든 간에, 내가 성하연에게 고마워할 이유는 없는 것 같았다.
“……저기요, 어디 가, 어디 가요. 아니, 전부터 자꾸─!”
무시하고 얼른 교실로 들어가려 했으나, 성하연이 앞길을 막았다. 슬슬 짜증이 났다.
“또 왜.”
“고맙다는 말 한 번 하기가 그렇게 어려워요?”
어렵다. 성유다에게 사과 한마디 듣기가 그토록 어려웠던 것처럼. 어찌나 어려운지, 나는 아직까지도 성유다에게 사과를 듣지 못했다. 아니, 성유다는 아마 내가 살았는지 죽었는지도 모르겠지. 살았든 죽었든 별 관심도 없거나.
“……혹시 내가 싫어요?”
성하연이 물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지도 가로젓지도 않고 다만 이마를 짚었다.
“묻잖아요.”
“그냥, 좀…… 어. 눈에 안 띄었으면 좋겠어.”
성하연을 보면 성유다가 떠오른다. 성유다를 떠올리면 아버지가 떠오른다. 그 무렵에서 머리가 아파오기 시작한다.
아버지가 남긴 환상 너머에서 보았던 성유다가 떠오르고, 뒤이어 새까맣게 타 재가 돼버린 아버지가 떠오른다.
내가 성하연을 싫어하는 건, 그녀를 볼 때마다 연쇄적으로 떠오르는 기억들 때문이다. 그 기억들로 하여금 몰려오는 두통 때문이다.
“그 정도예요? ……왜?”
등 뒤로 성하연의 의문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무시하고 교실로 들어왔다. 어지러웠다.
* * *
“도선우?”
방과 후, 종례를 하고 집으로 돌아가려는 찰나 하예진이 나를 불러 세웠다.
“네?”
“회의실 어디 있는지 알고 있나요?”
모른다. 고개를 저었다.
“그래요? 그럼 따라와요. 그게 낫겠다.”
나는 영문도 모른 채 하예진을 따라 회의실로 갔다.
“몸은 어때요? 후유증 같은 건 없어요?”
계단을 오르던 하예진이 흘깃 뒤를 돌아보며 물었다.
“네, 다 나았습니다.”
“그래요? 회복이 엄청 빠르네요?”
“아, 제가 좀 회복이 빠른 편이라고 듣기는 했습니다.”
“오……. 하긴, 그럴 것 같기는 하네요.”
하예진이 수긍하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어느덧 계단을 다 올라 건물 최상층에 다다랐다. 하예진은 그 무렵 땀을 뻘뻘 흘리며 숨을 거칠게 몰아쉬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기세였다.
“헉, 허억. 네, 여기. 아우, 여기 회의실로. 후. 들어가면 돼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회의실 문을 열었다. 드넓은 회의실이 어둠과 적막으로 가득 들어차 있었다. 오직 하나의 조명만이 어둠을 힘겹게 몰아내고 있었다. 가늘고 위태로운 빛 아래, 소도진과 김복동이 팔짱을 낀 채 나란히 앉아 있었다.
“……오늘 혹시 면접 보는 건가요?”
분위기가 너무 무겁다 싶어 능청스레 말을 건네 보았다. 소도진이 어이가 없다는 듯 피식 헛웃음을 흘렸다.
“뭐…… 비슷해. 면접관은 우리가 아니지만.”
“하하하! 그렇군. 면접관은 우리가 아니라 도선우라고 할 수 있지.”
소도진의 말에 김복동이 호탕한 웃음을 지어 보이며 화답했다. 하예진이 거친 숨을 내뱉으며 뒤늦게 회의실에 들어와, 소도진과 김복동 사이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짝!
그녀는 분위기를 환기하려는 듯 박수를 한번 치고는 입을 열었다.
“어…… 뭐부터 말해야 하지. 선우야, 일단 이리 와서 앉으세요!”
너무 갑작스러워서 조금 떨떠름했지만 일단 하예진의 분부대로 자리에 앉았다.
내 앞에 김복동, 하예진, 소도진이 차례로 앉아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특히 김복동과 소도진의 시선이 몹시 부담스러웠다. 침묵 속에서 하예진이 말을 이었다.
“선우야, 네가 입원을 하느라 열흘 동안 결석을 했잖아요? 마침 그 열흘 동안 학과 선택을 했었거든요. 다른 학생들은 이미 다 학과를 선택했는데, 너는 아직 선택을 못 했으니까…….”
당혹을 느낄 틈도 없었다. 김복동이 자리에서 갑자기 벌떡 일어나 버린 탓이었다. 나는 깜짝 놀라 몸을 살짝 뒤로 뺐다.
“그래. 너를 이 자리에 부른 건 학과 선택을 위해서다.”
그가 나를 향해 성큼 다가오며 말을 이었다.
“그리하여, 각 학과의 교수인 우리가 너를 영입하기 위해 자기PR을 할 것이다. 들을 준비는 됐나?”
“네? 아니, 아직 마음의 준비가─”
“나부터 시작하도록 하지.”
학과 선택은 그렇게 갑작스럽게 시작되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