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eric Academy's Shaman RAW novel - Chapter 93
제93화
학과 선택은 보통 설문지로 진행된다. 성기사, 성전사, 사제 중 자신이 원하는 과를 선택하여 설문지를 제출하는 식이다.
다만, 7인의 성호에게는 조금 특별한 설문지가 주어진다. 그들은 주전공과 부전공, 총 두 개의 학과를 선택하여 들어갈 수 있다. 7인의 성호가 갖는 혜택 중에는 ‘부전공 선택 가능’이 있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내가 말하고 싶은 건 7인의 성호이든 아니든 일단 학과 선택은 설문지로 하는 것이 보통이라는 것이다.
“성기사는 나름 공무원 취급을 받는다. 안정적이라는 것이 성기사의 최대 장점이야. 적성에 안 맞으면 그만두고 나처럼 교사를 해도 돼. 선택의 폭이 넓다는 뜻이지.”
“그게 무슨 선택의 폭이냐? 그만두고 싶을 때 그만두면 그게 성직자야?”
“지금은 내 발언 시간이다. 끼어들지 말아 주었으면 좋겠군.”
김복동과 소도진이 말을 주고받는 동안, 나는 혼란을 잠재우는 데에 급급했다. 교사 세 명을 일렬로 앉혀놓고, 오디션 프로그램을 진행하듯 학과를 선택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나도 남들처럼 평범하게 설문지로 학과를 선택하고 싶었다.
“너무 길게 말해도 지루할 테니 빨리 끝내지. 나는 저번에도 네게 부탁한 적이 있다. 성기사가 되어달라고. 그때 이유는 전부 설명했다고 생각한다.”
“뭐? 너 사전에 영입 시도하는 건 반칙─”
“게다가 성기사과에 들어오면 실전에 쓰기 좋은 호신술과 제압술을 배울 수 있다. 천재적인 신체 능력을 갖춘 너에게는 안성맞춤인 학과라고 할 수 있지. 이상 소도진에게 발언을 넘기겠다.”
김복동이 자리에 앉으며 소도진에게 눈길을 주었다. 소도진은 다소 못마땅하다는 듯 혀를 차며 김복동을 보더니, 곧 자신의 허리춤에 걸린 검집에서 검을 뽑았다. 은빛 칼날이 조명을 받아 서늘하게 반짝였다.
“도선우. 질문을 하나 하지. 실전에 가장 강한 무술이 뭔지 알고 있느냐.”
갑작스러운 질문에 나는 잠시 고민했다. 실전에 가장 강한 무술이라.
“어…… ‘나실’?”
판관기에 기록된 삼손은 ‘나실인’이었다. 오늘날 삼손이 썼던 싸움 기술을 복원하여 만든 무술을 ‘나실’이라 한다. 들리는 바에 의하면 당나귀 턱뼈 하나로 천 명의 무장 병사를 상대할 수도 있다고 한다.
“……나실은 논외로 치자. 지금으로서는 배울 방법이 없는 무술이니까.”
그러나 현재로서는 ‘나실’을 배울 방법이 없다. 최후의 계승자가 기술을 전수해주지 않고 산에 은거해 버렸기 때문이다.
나는 ‘나실’을 제외한 다른 무술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그때 문득 소도진이 뽑아 든 은제 검이 눈에 들었다.
“……혹시, 검술?”
“아니, 그건 두 번째다.”
“정답이 뭔데요.”
“사격술. 덩치가 곰처럼 큰, 이를테면 김복동 같은 놈들도 관자놀이에 총알을 꽂으면 바로 죽지. 성전사과 교육 과정에는 사격 훈련이 있다.”
제법 일리가 있는 말이었으나, 문득 의문이 떠올랐다.
“근데 왜 소도진 선생님은 항상 검을 들고 다니나요? 총은 어디에 두시고.”
사격술이 최고의 무술이라면 소도진은 왜 검을 들고 다닐까. 사실 이건 전부터 궁금했던 거다. 아무리 생각해도 검보다는 총이 효율적인 것 같은데, 왜 성전사들은 굳이 검으로 악마종과 마수들을 썰고 다니는 건지.
“검은 ‘낭만’이지.”
“아하. 그럼 저는 성기사과에 들어가는 걸로─”
“아니, 아니. 잠깐만 기다려. 설명을 다 듣고 결정을 하란 말이야.”
소도진이 내 말허리를 황급히 자르며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너, 혹시 돈 많이 벌고 싶냐?”
“당연하죠.”
“그치. 적게 버는 것보단 많이 버는 게 낫지?”
당연한 소리였다. 소도진은 한숨을 푹 쉬며 말을 이었다.
“성기사들은 교황청에서 월급을 받아. 성전사들도 그건 마찬가지지. 근데 성전사들에게는 교황청 외에도 다른 수입원이 있다. 바로 ‘후원’이야.”
“후원?”
“팬들이 보내주는 돈이지. 내가 속한 트리니타스 성전사단은 매달 3억 정도의 후원금을 받는다. 엔빵 하면 나한테 들어오는 건 얼마 없긴 하지만.”
매달 3억.
현실감이 없는 금액이라, 나는 순간 말을 잃고 멍하니 소도진을 바라보았다. 피곤에 찌든 말라깽이로만 보였던 소도진이, 오늘따라 왠지 멋있게 보였다.
“트리니타스에 소속된 성전사가 나 포함 세 명인데, 셋 다 권총이나 소총만 쏘고 앉아 있으면 후원할 마음이 들겠어? 그래서 들고 다니는 게 이 검이지. 검은 낭만이 있잖아. 멋있고.”
“아하…….”
“검이 돈이 적게 드는 것도 있긴 해. 총은 기본적으로 은제 탄환을 써야 하는데, 아무래도 소모품이다 보니 드는 비용이 어마어마하지. 검은 부러지지만 않으면 날만 갈아서 얼마든지 쓸 수 있으니까.”
성전사들이 총을 두고 검을 쓰는 데에는 나름 합당한 이유가 있었다. 효율로 따지면 총이 압도적 우위에 있으나, 멋으로 치면 검이 압도적 우위에 있긴 했다. 나였어도 총보다는 검을 쓰는 성전사에게 더 많은 돈을 후원할 것 같았다.
“혹시 성전사과 교육 과정에 검술도 있나요?”
“당연하지. 그것이 낭만이니까.”
“낭만이라…….”
이렇게 보니 또 성전사 쪽에 마음이 쏠렸다. 낭만 때문만은 아니었다. 안 그래도 상급 재현 주술인 ‘참수검’을 위해 검술을 배울까 고민 중이었기 때문이다.
솔직히 참수검을 사용하는 데에는 별 기술이 필요가 없다. 그냥 갖다 대기만 해도 알아서 썰리기 때문이다. 허나, 검술을 배우지 않고 냅다 휘두르는 것보다는 당연히 검술을 배우는 편이 참수검을 보다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음…….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인데. 어차피 사제과에는 관심 없죠?”
“아, 네.”
“네에……. 정말 혹시나 해서 물었어요. 어차피 들어올 만한 애들은 이미 다 들어와서.”
하예진이 설명을 이었다. 듣자 하니 7인의 성호 중 무려 3명이 사제과를 주전공으로 선택했다고 한다. 마유현과 한수련은 주전공 사제, 부전공 성전사. 성하연은 주전공 사제, 부전공 미선택.
덧붙여 김진서와 여민서는 주전공 성전사, 부전공 사제. 7인의 성호 중 강대만을 제외한 모두가 주전공 혹은 부전공으로 사제과를 선택한 셈이었다. 정인아도 사제과를 선택했다고 들었다.
“……그럼 강대만은요?”
“아, 대만이는 주전공 성기사, 그리고 부전공은 미선택했어요.”
다시 말해, 7인의 성호 중 성기사과를 선택한 학생은 강대만밖에 없다는 소리였다. 듣고 있던 김복동이 쾅, 책상을 내리쳤다.
“그, 그래! 성기사과는 블루오션이다. 강대만만 제치면 1등은 따 놓은 당상이지.”
소도진이 가소롭다는 듯 피식 웃었다.
“‘용의 꼬리보다 뱀의 머리가 낫다’?”
“그래, 바로 그거다. 아, 아니. 성기사가 뱀이라는 뜻이 아니라─”
“선우야. 용의 머리가 될 수 있는데 굳이 뱀의 머리를 해야 할까? 나는 네가 용의 머리가 될 자질을 갖추고 있다고 본다. 게다가 뱀보다는 용이 낭만이 있지.”
소도진이 김복동의 말을 끊고 들어왔다. 김복동이 다급하게 입을 열었다.
“낭만으로 치면 성기사도 지지 않아. 사람을 구하는 일의 사명감을 성전사들은 모른다.”
“성전사들도 사람을 구하기는 구하지. 간접적으로. 일단 마수를 처치하는 주력이 성전사니까.”
짝!
소도진과 김복동의 언쟁이 끝날 기미가 보이질 않자, 하예진이 박수를 쳤다. 그제야 김복동과 소도진은 입을 다물었다. 하예진은 방긋 웃으며, 내게 설문지를 건넸다.
“이쯤에서 결정하는 걸로 해요. 자기PR은 충분히 한 것 같으니까.”
나는 설문지를 받아 든 뒤, 잠깐 고민에 잠겼다.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종합해 보았을 때는 성전사과 쪽으로 마음이 기울었다. 아무래도 성전사가 낭만이 있었다. 별거 아닌 것 같아도 낭만이 있다는 건 정말 큰 장점이었다.
허나…… 성전사과나 성기사과나, 둘 다 이렇다 할 메리트가 없다는 점에서는 같았다.
“도선우. 마지막으로 한마디만 하지.”
결정을 하지 못하고 허공에서 펜만 이리저리 휘적이고 있던 찰나, 김복동이 말했다. 그러고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나를 향해 성큼성큼 다가왔다. 그 거대한 몸이 내게 천천히 가까워졌다.
“서울동부성기사단장 한대호. 알지?”
“네.”
“그놈이 내 친구다. 피렌체 동기거든. 그래서, 걔한테 들은 게 하나 있는데…….”
김복동이 내 귀에 대고 귓속말을 했다.
“……그게 무슨.”
“한대호가 내게 직접 한 말이다. 못 믿겠지만, 믿는 게 좋다. 어찌됐건 이건 전부 진실이니까.”
김복동의 말은 그야말로 어마어마한 혜택이었다. 피렌체의 학생으로서는 물론, 부두교의 교주로서도.
나는 주저 없이 성기사과를 주전공으로, 성전사과를 부전공으로 선택한 뒤 하예진에게 설문지를 건넸다. 이를 본 소도진의 얼굴이 경악으로 일그러졌다.
“김복동, 너 이 새끼 무슨 말을 했길래……!”
“성전사에게는 없고, 성기사에게는 있는 것을 넌지시 제시했을 뿐이다. 하하하!”
김복동의 호탕한 웃음소리가 회의실에 울려 퍼졌다. 소도진이 뽑았던 검을 느릿느릿 검집에 집어넣으며 나를 흘깃 째려보았다.
“도선우…… 부전공 수업 때 보자. 성심성의껏 교육을 해주도록 하지.”
“하하…… 죄송합니다.”
“어허, 성기사는 성전사에게 고개를 숙이지 않는 법이다. 사과할 것 없어.”
대견하다는 듯 내 어깨를 두드리는 김복동의 팔에 힘이 실려 있었다. 그는 내가 성기사를 주전공으로 선택한 것에 몹시 만족하여 신이 난 모양이었다. 조금 아팠다.
* * *
주말이 찾아왔다. 5월에 접어드는 햇살이 산뜻했다. 원래 같으면 기숙사에 박혀서 공부를 하거나 책을 읽으며 시간을 죽였을 성하연은, 오늘 간만에 거리로 나와 있었다. 거리를 걷는 그녀를 중심으로 인파가 반으로 갈라졌다.
자신을 향하는 수많은 시선을 익숙하다는 듯 대수롭지 않게 넘기며, 성하연은 거리를 걸었다. 그녀가 걸음이 향한 곳은 카페였다. 미리 도착해 있던 김라희가 손을 흔들며 그녀를 반겼다.
“야, 너 왜 이렇게 늦게 왔…… 뭐야 그거. 책?”
“곧 시험이니까요. 틈 날 때마다 공부해야죠.”
“하긴 너는……. 아, 쟤네도 왔네. 야! 여기─!”
김라희가 입구 쪽을 바라보며 힘차게 손을 흔들었다. 뒤늦게 도착한 여학생 둘이 반가운 내색을 하며 성하연의 테이블에 합석했다.
그렇게 모인 넷은, 중학교 시절 늘 붙어 다니던 동창들이었다. 넷은 다 같이 피렌체 교복을 입고 당당히 다시 만나자는 약속을 했으나, 안타깝게도 피렌체에 합격한 것은 성하연과 김라희 둘뿐이었다.
물론, 학교가 갈라진 뒤에도 넷은 계속 연락을 나누었고 종종 만남을 가졌다. 전보다는 확실히 빈도가 줄긴 했으나 그래도 우정은 변함이 없었다.
“맞다, 너 저번에 연락한다던 애는─”
“아! 안 그래도 걔랑 어제 영화 봤는데. 근데 무슨 팝콘을 지 혼자 다 처먹더라.”
“아……. 그건 좀…….”
이런저런 의미 없는 대화가 오갔다. 성하연은 대화를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며 책을 펼쳤다. 그리고 공부에 전념했다. 시험이 코앞이었다. 실기 성적을 말아먹었으니 필기만큼은 죽을 각오로 열심히 해야 했다. 아버지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서.
“너…… 연락…… 요즘…….”
“……공부…… 바빠서, 좀…….”
공부에 집중하자 친구들의 목소리가 드문드문 끊겨 들리기 시작했다. 집중을 아주 잘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그러다 보면 마치 광활한 우주에 홀로 내던져진 것처럼 주위 소음이 완전히 차단되어 버릴 때가 있다. 그때를 성하연은 ‘완전 집중 상태!’라 불렀다.
“…….”
“…….”
그렇게, 차츰 완전 집중 상태에 가까워지던 찰나.
“……도선우…….”
움찔.
문득 들려온 그 이름이 귀에 밟혔다. 카페를 가득 메운 소음이 성하연의 귓가에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집중이 깨졌다는 뜻이었다. 한번 집중이 깨지면, 다시 집중하기까지 적잖은 시간이 소요되었다. 성하연은 잠시 쉬기로 하고 펜을 내려놓았다.
“……저기, 혹시 무슨 얘기하고 있었어요?”
그냥 쉬기만 할 생각이었는데, 아무래도 물어봐야겠다 싶었다. 그냥 지나치면 집 가서 마음이 괜히 불편할 것 같았다. 김라희가 아이스아메리카노를 홀짝이며 입을 열었다.
“우리 학교 그거, 자선의 성호 있잖아. 배성현. 걔 나가고 재선출했던 얘기하고 있었어. 다른 학교에서 소문이 퍼졌나 봐.”
“아……. 재선출이요.”
“맞아! 하연아, 네가 그 순결의 성호 아니야? 이번에 재선출된 거 도선우라며. 진짜야?”
친구 하나가 문득 생각난 듯 물었다. 공부에 집중하려던 성하연의 집중이 다시 끊겼다.
도선우라는 이름이 들려올 때마다 성하연은 이상하게 숨이 턱 막혀오는 것을 느꼈다. 그가 정화의 피이기 때문이며, 또한 그가 자신을 미치도록 싫어하고 있다는 사실을 얼마 전에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네, 도선우……가 자선의 성호로 선출됐어요. 얼마 전에.”
대충 고개를 끄덕이며 친구의 질문에 대답한 성하연의 머릿속으로, 일순 의문이 스쳐 지나갔다.
“……근데, 도선우를 알아요?”
김라희를 제외한 다른 두 친구는 피렌체 학생이 아니었다. 그런데 도선우의 이름을 알고 있다는 것이 어딘가 이상했다. 성하연에게 질문을 던졌던 그 친구는 오히려 그녀를 이상한 사람 보듯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같은 중학교였잖아.”
“아, 동창……. 어? 그럼 저, 저랑도 같은 중이에요?”
“당연한 걸 물어. 기억 안 나? 우리 도선우랑 친했잖아.”
“야, 너 뭔…… 친하지는 않았지. 양심 있냐?”
내가 도선우랑 같은 중학교였다고? 이게 무슨……. 성하연의 머릿속이 혼란으로 들어찼다.
게다가 친했다니. 자신의 친구들이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성하연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성하연은 도선우를 피렌체에 입학하고 나서 처음 봤다. 중학교 때 그를 본 기억은 전혀 없었다.
“도선우 하니까 그거 생각나네. 하연이가 그, 뭐라고 했더라. 숨결이 닿는 것도 싫다?”
“아니지, 같은 공기를 마시는 게 싫다고 했나. 아무튼 뭐 그랬던 거 같은데. 어쩌다 그랬더라?”
“몰라, 그럴 만했으니까 그랬겠지.”
김라희를 제외한 다른 두 친구가 추억을 떠올리며 깔깔댔다. 그들에게는 추억이었지만 도선우에게는 떠올리고 싶지 않은 끔찍한 기억일지도 몰랐다.
두 친구가 이야기를 하는 동안, 김라희는 입을 다물고 있었다. 김라희는 성하연과 마찬가지로 도선우가 중학교 동창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이야기를 듣고 있던 성하연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제가, 제가요. 제가요? 기억이 안 나는데요. 제가 언제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에이~ 얘 또 기억 안 나는 척하네.”
“진짜 기억 안 나는 거 같은데? 원래 맞은 사람은 평생 기억하는데 때린 사람은 금방 잊어버린다잖아.”
“반대 아니야? 때린 사람은 잊어도 맞은 사람은 평생 기억한다.”
“순서가 뭐가 중요해? 뜻만 통하면 됐지.”
“그게 뜻이 달라진다니까, 바보야.”
친구들의 말을 들은 성하연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친구들 말에 따르면, 성하연은 그 외에도 도선우에게 이런저런 폭언을 많이 한 모양이었다.
때린 사람은 잊어도 맞은 사람은 평생 기억한다……. 그 말이 귓가에 맴돌았다.
그녀는 자신이 도선우에게 했던 모든 폭언을 기억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도선우는 그 폭언을 마음에 두고 언제까지나 기억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것이, 도선우가 나를 싫어하는 이유였다. 도선우가 공연히 나를 싫어하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과거의 내가 도선우에게 건넨 폭언과 혐오가 고스란히 내게 돌아오고 있는 것이었다.
“…….”
펜을 쥐었으나 공부에 집중할 수 없었다. 자신을 바라보는 것만으로 두통이 몰려온다는 듯, 이마를 짚으며 한없이 경멸스러운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던 그의 얼굴이…… 자꾸만 눈앞에 어른거렸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