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eric Academy's Shaman RAW novel - Chapter 95
제95화
“……하여, 교황청의 추적에 대비할 무슨 수단이 필요하실 듯한데. 다들 무슨 의견 없으십니까?”
마지막 안건에 대한 윤창수의 물음이었으나, 어느 누구도 쉽사리 입을 열지 못하고 있었다.
카가가각.
이유는 머잖은 곳에 있었다. 교주의 손에 들린 채 비명을 토하고 있는 저 참수검 때문이었다.
교주는 회의 내내 저 검을 들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다만 염만근이나 하판석을 번갈아 쳐다보기만 했다.
“염만근 간부, 뭔가 할 말이 있는 것 같은데…….”
“나, 나넌 헐 말 웂소.”
윤창수가 물었으나, 염만근은 급히 눈을 깔며 대답을 피했다.
이곳 예배당에 들어오면서부터 교주가 보였던 어마어마한 위엄에 염만근은 감히 입을 열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서늘하고 섬뜩한 빛을 형형히 내뿜고 있는 참수검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것만 같았고, 괜한 말을 했다가는 저 검에 그대로 목이 동강 잘려 나갈 것만 같았던 것이다.
더구나 교주는 로아의 권능까지 자유자재로 다룰 줄 알았다. 2년 전까지만 해도 선지자인지 아니면 선지해장국인지조차 헷갈리던 도선우가, 어느새 보니 어엿한 교주이자 선지자가 되어 있었다.
“다들 말이 없으시니…….”
아무도 의견이 없으니 회의는 진행될 턱이 없었고, 윤창수는 난감한 기색을 보이며 말끝을 흐렸다.
그러는 동안 염만근은 고개를 숙인 채, 은근히 하판석을 노려보고 있었다.
“이야, 참수검이 윽수로 목 잘 베게 생겼습니다, 하하하. 역시 교주님 주술 실력은…….”
육은형의 가증스런 아첨을 귓등으로 듣고 흘리며 염만근은 입술을 잘근잘근 씹어댔다.
제단이 웂으먼 로아의 권능은커녕 주술얼 쓸 심도 웂을 거라드니, 지럴을 허네. 저 문딩이 콧구녕 겉은 눔을 믿은 내가 빙신이지, 빙신이야…….
속으로 욕지거리를 늘어놓으며 하판석에게 따가운 눈총을 보냈다.
* * *
회의의 주된 안건은 세 가지였다. 점점 신도가 줄어들고 있다는 것. 그에 따라 재정난이 심각해지고 있다는 것.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교황청의 핍박은 날로 거세어지고 있다는 것.
마땅한 해결 방안이 없는 문제들이기도 했고, 겁에 질린 간부들이 입을 다물어버린 탓에 회의는 이렇다 할 진전이 없었다.
“지금 당장은…… 회의가 진행될 것 같지가 않군요. 오늘 밤 11시에 다시 회의를 진행하는 편이 좋겠습니다. 잠시 해산하고 그때 다시 모이는 것으로 하는 것을 어떨까요.”
회의 도중 강원교단의 윤창수가 제안한 말이었고, 나는 받아들였다. 그렇게 회의는 다소 허무하게 끝이 났다.
직후, 나는 화장실로 향했다.
“쿨럭, 컥! 우웨에에엑……!”
변기에 얼굴을 파묻고 피구토를 했다. 그란브와의 기도를 통해 산을 뒤흔든 것만 해도 적잖은 부담이었는데, 연속으로 다시 그란브와의 권능을 사용했으니 부작용이 거셀 수밖에 없었다.
“이러다 죽겠네…….”
[전략은 나쁘지 않았다.]숨을 고르던 와중, 렉바가 태연하게 말했다. 헛웃음이 나왔다.
“이제는 걱정도 안 해줘요?”
[괜찮나?]“네.”
[그래. 아무튼 전략은 좋았다. 몸은 좀 상하겠지만, 죽는 것보다는 나을 테지.]내 걱정은 하지도 않는 렉바가 조금 원망스러웠지만 별말은 않았다. 그의 말이 맞았기 때문이다.
기울어진 건물의 수평을 맞추기 위해 그란브와의 권능을 연이어 사용한 것, 그리고 회의 내내 참수검을 들고 있었던 것.
전부 기선제압을 위한 보여주기식 행동이었다.
간부들에게 약한 모습을 보이면 교주로서 위신이 추락할 것이고, 반란 세력이 자신감을 갖게 될 것이며, 마침내 그들은 반란 계획을 실행에 옮기고 말 것이다.
반면에 권능과 주술의 힘을 보여주어 기선제압을 하면, 반란 세력의 자신감을 한풀 꺾을 수 있었다. 더불어 회의에서 내 발언의 무게도 달라질 것이었다.
[방금 행동으로 너는 교주로서 응당 가져야 할 위엄을 갖게 된 거다.]“그렇죠.”
렉바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려 했으나 그럴 힘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나는 피구토가 식도를 타고 솟구치는 것을 억지로 누르고, 또 삼키며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 애썼다.
간단히 말해서 목숨 걸고 가오를 잡았다.
조금 힘들기는 했지만, 결과적으로 반란 세력의 주동자로 의심되는 염만근과 하판석의 기를 꺾는 데에는 성공한 것 같았다. 나름 만족스러운 결과였다.
물론, 결과적으로는 그렇다는 얘기다. 다시 하라면 못 한다.
아니, 안 할 거다.
[이미 네 존재는 간부들의 뇌리에 또렷이 각인되었을 것이다. 또 이렇게 무리를 할 필요는 없어.]“다행이네요…….”
렉바의 위안을 들으며 화장실을 나왔다. 입에서 피 냄새가 감돌고 있었다.
* * *
강원교단 곁에는 방 6개와 다락방이 딸린 거대한 산장이 있었다. 그곳에는 각 교단별로 숙소가 마련되어 있었다.
숙소에서 휴식을 하다가, 11시가 되면 다시 예배당으로 모여 회의를 재개하기로 한 것이었다.
서울교단, 즉 우리가 머물 숙소는 301호였다. 나는 ‘301’이라는 숫자가 음각으로 새겨진 열쇠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301호면…… 다락방이랑 연결된 방이네.”
“윤창수 간부가 제일 넓은 방을 줬어. 저번에 나 혼자 왔을 때는 102호 주더니, 너 데리고 오니까 확실히 대우가 달라지네.”
삼촌이 말했다. 다락방과 연결되어 있다는 말에 강지아가 눈을 반짝였다.
“아, 그럼 저는 다락방에서 자도록 하겠습니다.”
창고가 없으면 다락방이다 이건가…….
실소가 나왔다.
“혹시 전생에 쥐였나. 왜 맨날 창고 아니면 다락방에서 자요?”
“지아는 원래 그런 데 좋아해. 어둡고 습한 곳. 성격도 보면 음침~해가지고.”
“두, 두 분이 편먹고 그러시는 건 반칙입니다…….”
삼촌과 함께 강지아를 놀리며 계단을 올랐다. 난간 너머로 보이는 풍경을 둘러보았다. 주위가 온통 수목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예배당과 산장을 제외하고는 건물 하나 없었다.
태백산은 민간인의 출입이 금지된 곳이니, 등산객도 당연히 없을 것이다.
도심에서는 쓸 수 없었던 몇몇 로아의 권능을 써보거나 수련하기에 좋은 장소였다.
툭.
그때, 누군가 내 어깨를 치고 지나갔다. 나는 분명 피하려고 했는데 상대 쪽에서 어깨를 들이밀었다. 실수가 아니라 일부러 부딪힌 것 같았다.
고개를 돌리자, 나보다 한두 살 정도 어려 보이는 여자아이가 가늘게 뜬 눈으로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쯧.”
아이는 퉁명스레 혀를 한번 차고는, 휙 뒤돌아 가던 길을 갔다. 아이의 손끝에서 부두 마력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색이 제법 짙었다.
“……뭐야?”
“하수영입니다.”
의문을 뱉자 옆에 있던 강지아가 바로 대답했다.
“충청교단 하판석의 친딸입니다. 아직 16살인데도 주술 실력이 상당해서 차기 교주로 유력 지목되고 있다고 합니다. 실제로 재능이 있기는 있습니다만, 교주님의 재능에 비하면 새 발의 피입니다.”
“하판석…….”
하판석의 딸이라고 하니 생각나는 얼굴이 있었다.
2년 전 간부 회의에 참석했을 때, 하판석 옆에 붙어서 적의가 선명한 눈으로 나를 노려보던 그 아이.
그때는 나랑 키가 비슷했던 것 같은데. 지금은 내가 훨씬 컸다.
“네, 반란의 주동자인 그놈입니다. 하판석은 교주님을 탄핵하고 하수영을 4대 교주로 만들 생각인 듯합니다.”
강지아가 말을 이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쩐지 그런 것 같더라.
하수영이라는 아이의 손끝에서 흘러나오던 부두 마력은 무척 강인하고도 정순했다. 저 정도면 어지간한 간부들보다 월등한 재능이었다. 게다가 차기 교주로 지목될 정도라면 주술 실력도 상당한 모양이었다.
“경쟁자라고 봐야 되나.”
“경쟁자까지도 아닙니다. 급이 맞아야 경쟁을 하지요.”
강지아가 말했다. 그녀는 하수영이라는 아이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 듯했다. 듣고 있던 삼촌이 뒤를 돌아보며 입을 열었다.
“근데 주술만 치면 2대 교주에 맞먹는다느니 지껄이던데? 간부들 말이라 믿을 만한 정보는 아니지만.”
“그래?”
2대 교주, 즉 아버지에 버금갈 정도라면 나보다도 월등한 주술 실력을 가졌다는 말이 된다. 소문은 믿을 게 못 되지만, 아니 땐 굴뚝에 연기가 날까 싶기도 하다.
직접 보기 전까지는 실력이 어떤지 알 수 없었다. 일단은 경계하는 편이 좋을 것 같다.
나는 시험 삼아 허공에 주술진을 그려보았다. 요즘 내가 가장 자주 쓰고, 또 가장 자신 있는 주술인 도취 주술진이었다.
“이거랑 비교하면 어떤 거 같아?”
삼촌은 내 주술진을 유심히 바라보았으나, 잘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댔다.
“……봐도 잘 모르겠네. 나는 주술 다룰 줄을 모르니까.”
“누나는요? 누나는 주술 좀 쓰지 않아요?”
강지아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녀는 주술을 결코 잘 다루는 편은 아니지만, 그래도 몇 가지 주술 정도는 사용할 줄 알았다.
“저는 감히 교주님의 주술을 평가할 자격이 없습니다. 안목도 없구요.”
“그래도, 비교하면 어떤 것 같아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생쥐가 인간의 뜻을 이해하지 못하듯, 저도 교주님의 주술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왜 굳이 비교 대상이 생쥐인 걸까. 그러다 문득, 다락방에서 자겠다던 강지아에게 내가 건넸던 말이 떠올랐다.
“혹시 전생에 쥐였냐고 한 것 때문에 삐진 건 아니죠?”
삼촌이 놀란 척을 하며 강지아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와, 그렇게 안 봤는데 정말 무서운 사람이네. 지아. 뒤끝도 부리고.”
“아니, 제가 언제 뒤끝을……. 진짜 그런 거 아닙니다. 그냥, 떠오르는 동물이 생쥐밖에 없어서.”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다급히 해명하는 강지아.
삼촌이 그런 그녀를 보며 장난기 가득한 미소를 머금었다.
“제가 언제 뒤끝을? 이제는 말대꾸도 하는데? 교주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음. 하극상은 역시 좀비형으로…….”
“앗, 그, 말대꾸가 아니라, 당황해서 말실수를 했습니다. 죄송, 죄송합니다…….”
그러는 동안 우리는 어느덧 3층에 다다랐다.
열쇠로 문을 따는 동안에도 강지아는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풀이 완전히 죽어버린 것 같았다.
너무 놀렸나.
“장난이었는데, 기분 상했으면 미안해요.”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그래요. 얼른 들어가서 다락방 구경이나 합시다.”
“…….”
강지아가 입을 꾹 다문 채 나를 쳐다보더니, 이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뭔가 하고 싶은 말이 있지만 애써 말을 삼키는 얼굴이었다.
숙소는 상상 이상으로 좋았다. 방은 3개였고, 각 방에는 침대가 하나씩 놓여 있었다.
넓은 거실에는 소파와 TV가 있었고, 창문 너머로는 산장을 둘러싼 숲이 한눈에 들어왔다.
숲은 어느덧 어둠으로 칠해져 있었다. 낮에 보는 숲과 밤에 보는 숲은 인상이 완전히 달랐다.
“너 휴대폰은 잘 쓰고 있냐?”
방안을 둘러보며 감탄을 토하던 삼촌이 문득 물었다. 나는 주머니에서 삼촌이 준 휴대폰을 꺼내 켜보았다.
삼촌이 준 휴대폰은 이런 첩첩산중에서도 전파가 잘 터졌다. 삼촌이 시중에 파는 평범한 휴대폰을 산이나 지하에서도 전파가 터지도록 개조한 것이었다.
“좋지. 전파도 잘 터지고.”
“다행이네. 저번에 그, 지아처럼 지하에 갇혀도 전파는 빵빵하게 잘 터질거여.”
“지아처럼 지하?”
“생각해 보니까 라임이 괜찮네. 지아처럼 지하.”
듣고 있던 강지아가 고개를 돌려 우리를 보았다.
“남의 이름 가지고, ……놀리지 말아주세요.”
“어? 지아는 교주님이랑 내가 남이야?”
“정말 서운하네요…….”
삼촌이 시동을 걸었다. 나는 옆에서 거들었다.
“아니, 그런 뜻이 아닙니다. 그냥, 계속 저를 놀리시길래…….”
강지아가 말하던 도중 이상한 기류를 눈치채고 고개를 벌떡 들었다.
“……이것도 놀리시는 건가요.”
“오~ 그걸 이제 알았어?”
“……저는 다락방으로 올라가 보겠습니다. 편히 쉬고 계시다 필요한 일 있으면 불러 주십시오.”
강지아가 성난 걸음으로 계단을 올라가다가, 발을 헛디뎌 넘어질 뻔했다. 그녀는 그러면서도 아무렇지 않다는 듯 묵묵히 계단을 올랐다.
삼촌이 그런 그녀를 보며 작게 웃었다.
“삐진 거 같은데? 괜찮아?”
“괜찮아, 금방 풀려. 쟤가 이런 분위기를 싫어하는 것도 아니고.”
내 물음에 삼촌이 대수롭지 않다는 듯 대답했다.
“이런 분위기?”
“장난치고 이러는 거. 너는 잘 모르겠지만 우리 교단 고아원 분위기가 좀 삭막했거든. 그래서 쟤도 좀 삭막하게 자랐는데……. 아무튼, 저번에 물어봤더니 싫어하는 거 같지는 않더라고.”
“그건 다행이네.”
너무 놀려서 아예 토라져 버리면 어쩌나 했는데, 괜한 걱정이었던 모양이다. 하기야 기분이 상해버릴 정도로 심하게 놀린 적은 없으니까.
“그러고 보니까 고아원에서는 어땠어?”
문득 강지아가 늘 창고나 다락방을 고집하는 이유와, 돈을 주는 것도 아닌데 앞장서 우리를 도와주는 이유가 궁금했다.
전부터 궁금했지만 물을 타이밍을 못 잡아서 여태 풀리지 않은 궁금증이었다. 고아원 이야기가 나온 김에 물어보는 편이 나을 것 같았다.
“뭐, 지아 어땠냐고? 아니면 나보고 어땠냐고 물어보는 거야?”
“둘 다.”
“글쎄다……. 하도 오래돼서 기억이 잘 안 나는데.”
삼촌이 거뭇거뭇하게 난 턱수염을 문지르며 잠깐 생각에 잠겼다.
“아, 지아가 괴롭힘을 좀 당했었나? 쟤가 어렸을 때부터 덩치가 작았거든. 애들이 괴롭힐 애들이 없으니까 만만한 지아를 괴롭히더라고.”
“안 혼냈어?”
“애새끼들이 혼낸다고 듣냐? 혼내면 더 괴롭히지.”
맞는 말이었다. 삼촌이 말을 이었다.
“원래는 낮에만 괴롭혔는데 그럼 나랑 보육교사들한테 걸리잖아. 그래서 나중에는 우리 잘 때, 밤에 괴롭히는 거야. 애들이라고 다 순진하고 그런 게 아니더라고. 영악한 놈들은 아주 영악해.”
“밤까지…….”
“고아원 건물 뒤쪽에 창고가 하나 있었는데……. 거기 문이 안에서 잠그면 교사들 말고는 못 열어. 지아가 아마 밤마다 거기로 피신해서 잤을 거야. 나도 나중에 교사들한테 들은 이야기지만.”
괴롭힘을 피하기 위해 피신처로 창고를 택했고, 그때의 기억 탓에 창고나 다락방처럼 어둡고 습한 곳을 선호하게 된 건가…….
“야, 근데 너도 예전에 우리 고아원 한 번 놀러 왔었는데? 기억 안 나냐?”
삼촌이 물었다. 기억을 더듬어 보았으나 기억이 날 리가 없었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기억 안 나? 너 그때 지아 괴롭힌 애들이랑 엄청나게 싸웠는데.”
“이겼어?”
“이겼겠냐? 맞기만 엄청나게 맞고 왔지. 그때 상대가 다섯인가 여섯인가 그랬거든.”
6:1이라면 이길 수 있을 리가 없었다. 5:1도 마찬가지다. 싸움은 머릿수가 많은 쪽이 압도적으로 유리하니까. 하물며 어릴 적에야.
생각해보니 부두교가 성전에서 패한 이유도 머릿수 때문이었다.
“얼굴이 피범벅이 돼서는, 매형이랑 누나랑 너 보고 호들갑을 다 떠는데……. 네가 그때 뭐라고 했더라. ‘이 정도면 복원 주술 쓰면 다 나아’라고 했나? 아무튼 그때부터 너는 나사가 좀 빠져 있었어.”
삼촌이 엷은 미소를 머금은 채 말했다. 삼촌이 이렇게 신나서 이야기를 하는 것은 이번이 거의 처음인 것 같았다. 옛일을 회상하는 게 즐거운 모양이었다.
“매형은 그래야 내 아들이지, 이러면서 칭찬하고. 그래서 그때 매형이 누나한테 등짝을 엄청나게 맞았지. 그때 재밌었는데…….”
그때, 삼촌의 입가에 머물던 미소가 사라졌다. 이야기하는 내내 초롱초롱하던 눈빛이 어느덧 공허해졌다.
삼촌이 양손으로 마른세수를 하며 말을 이었다.
“……옛날 얘기는 안 하는 게 낫겠어.”
“그래. 앞일만 상상해.”
“그래야지. 근데 앞일은 이상하게 상상하는 맛이 안 나.”
지나가 버린 날들이기에 아쉬우면서도 아름답다. 그러나 앞으로 닥쳐올 날들은 어쩐지 막막하고 두렵다.
그 이유를 나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내일도 언젠가는 어제가 될 텐데, 어째서 어제는 아름답지만 내일은 두려운지.
“앞일도 지나고 보면 옛날 일이 되겠지.”
“이야~ 교주님 말씀이라 그런지 울림이 다르네.”
삼촌이 놀리듯 말하며 웃었다.
생각에 잠긴 듯 입을 다물고 있던 삼촌이 가방을 뒤졌다. 꺼낸 것은 휴대폰이었다. 삼촌은 그것을 내게 휙 던졌다.
나는 아슬아슬하게 그것을 받았다.
“왜 휴대폰을 또 줘?”
“용돈. 안에 코인 들어 있는데 필요하면 환전해서 써.”
“코인 망했잖아. 얼마 전에.”
“자금 세탁용으로는 아직 괜찮아. 아, 참고로 코인 하나가 0.87달러야. 한화로 1,000원 정도?”
나는 휴대폰을 켜서 안에 든 코인 개수를 확인해 보았다.
하나당 1,000원이라 치면, 휴대폰 안에 들어 있는 금액이…….
“……용돈치고는 너무 많은데?”
“그러냐? 그럼 용돈 말고 헌금 받았다고 생각해.”
반응을 보니, 삼촌에게는 그리 많은 돈도 아닌 모양이었다.
그래도 내게는 엄청나게 큰돈이었다. 팬들에게 매월 3억씩 후원을 받는다던 소도진이 그다지 부럽지 않을 정도다.
그때, 머릿속으로 번개처럼 아이디어가 스쳤다.
“삼촌, 전라교단에 그…… 염…….”
“염만근?”
“그래, 염만근. 그 사람이 무슨 일 하더라? 교단 운영하는 거 말고, 공장 하나 돌린다고 그러지 않았어?”
“맞아. 막걸린지 소준지, 아무튼 공장 하나 돌려서 돈 좀 만졌을걸. 그래서 그런지 이 새끼가 교주에 대한 존중이 없어, 존중이.”
나는 얼른 나갈 채비를 했다. 삼촌이 의아하다는 듯 나를 멀뚱멀뚱 바라보았다.
“뭐야, 갑자기 어디 가냐?”
“좀 돌아다니게. 이것저것 하러.”
“이것저것? ……그래, 뭐 너는 길 잃을 일도 없겠네. 회의 전에는 와라.”
고개를 끄덕이며 신발 끈을 묶었다.
“참, 옛날 하니까 생각나서 하는 말인데.”
삼촌이 입술을 달싹거리거나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거나 하며 고민하는 티를 내더니, 가까스로 말을 이었다.
“미안하다. 그때 일은 아직도 후회 중이야.”
‘그때’…….
언제를 얘기하는 건지 알 것 같았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삼촌을 향해 웃어 보였다.
“지난 일이잖아.”
“그래…… 아무튼 잘 다녀와. 회의 늦지 말고.”
삼촌의 배웅을 들으며 숙소를 나왔다. 난간 너머로 보이는 숲이 침침한 어둠에 뒤덮여 있었다.
나는 아래층으로 걸음을 옮겼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