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eric Academy's Shaman RAW novel - Chapter 96
제96화
전라교단 염만근의 숙소는 202호였다. 혼자서 온 것치고는 제법 좋은 방을 받아낸 편이었다.
301호와 302호가 가장 넓고 좋은 방이었고, 그 다음으로 좋은 방이 202호와 201호였다.
“워쩌기는, 싸게 여그서 떠야제라.”
그곳에서, 염만근은 수화기를 들고 누군가와 전화를 하고 있었다. 상대가 누구인지는 물을 것도 없었다. 충청교단의 하판석이었다.
교주를 없애거나 탄핵한 뒤, 하수영을 4대 교주로 앉히려는 계획이 처참히 무산되어 버린 탓에 염만근과 하판석은 진땀을 빼고 있었다.
“우리는 또 우리대로 살아야 헌께, 반란이고 쿠우데타고 하는 이약 그만 허고…….”
반란을 모의한다는 것이 발각되어 사지에 몰린 하판석이 차후 계획을 묻자, 염만근은 다만 도망치는 것이 최선이라 말했다.
수화기 너머로 하판석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것이 들렸다.
“와따메, 귀창 떨어지겄소. 아, 하먼 무신 존 방도라도 있는…….”
그리 말하려던 염만근이 말을 멈추고 숨을 죽였다.
문 너머에서 인기척이 느껴진다.
어둠 속에서 그의 눈동자가 좌우로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다시 걸겠소.”
뚝.
전화를 끊고 염만근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문 뒤에 몸을 숨기고 부두 마력을 사출했다.
문 너머의 인기척은 그 자리에 서서 꼼짝도 않고 있었다.
똑똑…….
그때, 노크 소리가 울렸다.
심장 소리가 더없이 커지고 있었다. 털이 쭈뼛쭈뼛 서고 오금이 저렸다. 식은땀이 흘렀다.
하판석이넌 아닐 것이고, 윤창수나 육은형이도 아닐 것인디, 그럼…….
필경 귀신이거나, 아니면 귀신보다도 더 무서운 교주임이 분명했다.
“계십니까?”
너머로 목소리가 들려왔다, 예상대로 교주의 목소리였다.
니기럴, 교주 그눔이 기엉코 나럴 죽이러 왔구나!
속으로 한탄을 읊으며, 염만근은 문 뒤로 몸을 숨겼다. 그러고는 부두 마력을 사출하여 주술진을 그려대기 시작했다.
“아까 들어가는 걸 봤는데…….”
우직, 우지지직─!
교주가 혼잣말을 읊조림과 동시에 문 너머로 뭔가 부서지는 소리가 났다. 공포로 손이 파르르 떨렸다.
힘으로 문을 잡아 뜯어낼 생각이구나!
콰직!
이윽고 문이 열렸다. 아니, 뜯어졌다.
염만근은 문을 열고 들어온 사내에게 급히 주술을 겨눴다.
혼절 주술.
너무 뻔한 데다가 급조한 주술이라 효과가 있을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사람을 상대하기에는 이만한 주술이 없었다.
“…….”
그러나 주술진에서는 안개가 흘러나오지 않았다.
애당초 주술진은 발동되지 않았다. 뭔가 강하고 이상한 힘…… 이를테면 교주의 힘 같은 것이 주술진을 해체해버린 것이었다.
염만근은 침을 꿀꺽 삼켰다. 느껴본 적 없는 생경하고도 섬뜩한 공포가 등골을 스치듯 지나가고 있었다.
“혼절 주술은 조금 뻔하네요.”
달칵.
문을 열고 들어온 사내가 불을 켰다. 염만근은 손차양으로 갑작스레 몰아닥친 빛을 가렸다. 눈이 부셔서 들어온 사내의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곧 희뿌옇던 시야가 차츰 정상으로 돌아왔다. 사내의 모습이 드러났다.
“……교주님.”
“너무 경계하지 마세요. 해코지하려고 온 건 아니니까.”
교주가 성큼성큼 방 안으로 들어오며 말했다. 말로는 해코지하러 온 게 아니라고 하지만, 해코지 비슷한 걸 하러 왔을 게 분명했다.
그도 그럴 게 염만근은 반란을 모의하는 세력의 주축이다. 도선우 입장에서는 살려둘 이유가 없는 것이다.
염만근은 부두 마력을 사출하여 다음 주술진을 그렸다. 마지막 한 획만 그려 넣으면 주술진은 완성될 것이었다.
그러나 어쩐지 주술진을 완성해도 주술이 발동될 것 같지가 않았다.
교주가 가진 저 신묘한 힘…….
부두 마력을 조작하여 주술진을 해체하고, 주술의 안개를 조작하는 저 힘이 문제였다.
“사, 살려 주시씨요!”
결국 염만근은 주술진을 그리기를 그만두고, 그 자리에 털썩 무릎을 꿇었다.
주술을 써봤자 의미가 없을 것이었고, 외려 교주의 심기만 더 뒤틀리게 만들 것이 분명했다.
이럴 때는 바짝 엎드려서 목숨이나 구걸하는 것이 최선이었다.
“나넌 심바람만 헌 것이오. 살려 주시씨요.”
“심바람…… 심부름?”
되묻는 말에 염만근이 말을 이었다.
자신이 한 일은 전부 충청교단의 하판석이 시킨 것이고, 자신은 하판석의 앞잡이 노릇이나 했을 뿐 반란에 직접 가담한 적은 없다…….
구구절절한 자기변호가 이어졌다.
“…….”
교주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의자를 끌어와 앉았다. 그러고는 태평하게 다리를 꼬고 앉아 염만근을 내려다보았다.
보이는 움직임마다 전부 빈틈이었다. 그런데도 염만근은 감히 저항할 생각을 하지 못했다. 교주의 손끝에서 살며시 흘러나오고 있는 부두 마력 때문이었다.
부두 마력의 빛깔은 아무런 불순물도 섞이지 않은 그저 순수한 보랏빛이었다. 마력의 빛깔만 보아도 저러한데, 저것으로 주술을 발동하면 그 강도가 얼마나 강할지는 말할 것도 없었다.
“염만근 간부.”
“야, 야아…….”
“왜 그러고 계십니까. 일어나서 편히 앉으세요. 그러고 계시면 저도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교주가 싱긋 웃으며 말했다. 따스하지만 어딘가 서늘하기도 한 미소였다.
염만근은 교주의 자비에 감사를 느끼는 한편, 경계를 늦추지 않으려 노력하며 엉거주춤 의자에 앉았다.
“공장은 잘 운영되고 있습니까?”
교주가 손깍지를 꼈다. 염만근은 꽉 쥔 주먹을 무릎에 다소곳이 올려놓은 채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교주가 주머니를 뒤지기 시작했다. 염만근은 침을 꿀꺽 삼켰다. 저 주머니에서 뭐가 나올지, 그것이 너무나 두려웠다.
최악의 경우 좀비약이 나오거나, 못해도 단검쯤은 나올 줄 알았다. 헌데 예상과 달리, 교주가 꺼내 든 것은 웬 휴대폰이었다.
그는 휴대폰 화면을 염만근에게 들이밀었다.
“이진성 간부가 자금 세탁 수단으로 코인을 쓰더군요. 교단 운영 자금을 제하고 제게 떨어진 돈이 이만큼입니다.”
코인.
염만근은 그것을 들어본 적이 있었다. 빚까지 져가며 코인을 하다가 집안 살림 다 팔아먹고 자취를 감춘 사람이 염만근 주위에도 수십이나 있었기 때문이었다.
염만근은 화면 너머의 숫자를 헤아렸다. 이게 얼마야, 백, 천, 만, 십만……. 하나에 100원이라 쳐도 적잖은 돈이었다.
“코인 하나가 한화로 천 원쯤 된다고 하더군요.”
“처, 천 원!”
염만근은 교주의 말을 무의식중에 되풀이했다.
하나에 100원이라 해도 많았을 것이, 1,000원이면 감히 상상할 수도 없이 어마어마한 돈이었다.
그러나 여기서 놀라기는 일렀다. 직후 교주가 내뱉은 말은 더더욱 충격적이었다.
“이 돈의 절반을 드리겠습니다.”
“…….”
염만근은 말없이 짧게 깎인 옆머리를 벅벅 긁어댔다. 등골에 한기가 느껴졌다. 얼음덩이가 척추 마디마디를 거쳐 뒷목까지 슬그머니 타고 오르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러나 동시에 단전에서는 열이 끓고 있었다. 돈을 보자 저도 모르게 끓는 열이었다.
반을 주겠다, 그 말은 즉 자신을 매수하겠다는 뜻이었다. 자신을 돈으로 살 테니 하판석을 버리고 자신의 편에 붙으라는 소리였다.
조금 비약하자면, 하판석을 아예 처리하고 오라는 사주인지도 몰랐다.
“무신 말씸인지 알겠구만이라. 하판석이는 나가 처리할 것잉께, 교주님언…….”
목숨 부지하는 것만도 감지덕지라 생각했던 판에, 돈까지 준다면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하판석을 배신한다는 것이 영 마음에 걸리기는 했지만, 의리 챙기겠다고 목숨 내던지는 것만큼 바보 같은 짓이 없다는 게 염만근의 생각이었다.
“무슨 그런 살벌한 말씀을 하십니까.”
그러나 교주는 무슨 농담이라도 들은 것처럼 대수롭지 않게 웃어 보였다.
염만근은 당황하여 말을 잃고는, 멀뚱멀뚱 그를 쳐다보았다.
“하, 하먼. 돈은 워쩐 일로.”
이내 교주의 얼굴에 감돌던 웃음기가 사라졌다.
염만근을 바라보는 그의 눈빛에는 지극히 차가운 열기가 돌고 있었다. 모순되는 표현이었지만 그 외에는 달리 설명할 방도가 없는, 그런 묘한 눈빛이었다.
“염만근 간부의 공장을 빌려서 일 하나를 같이 할까 합니다.”
“고, 공장이라 허심은…….”
염만근이 주저하는 기색을 역력히 내뿜으며 눈을 질끈 감았다.
하판석을 배신하는 것이야 잠깐 양심에 찔리고 말 일이지만, 공장을 내어주는 건 이야기가 달랐다.
“고것언 잠…….”
염만근이 주저하며 말했다. 그 말은 완곡하지만 분명한 거절의 뜻이 담겨 있었다.
교주는 일자로 굳게 입을 다물며 시선을 내리깔았다. 그러고는 고개를 두어 번 작게 끄덕였다.
꾸륵, 꾸르르륵…….
그러자, 뜯어진 문 너머로 영문 모를 무언가가 우글우글 몰아닥치기 시작했다. 그것은 어둠에 휘감겨 얼핏 수십 마리의 거대한 구렁이처럼 보였다.
휘리릭─!
“커억!”
교주가 손짓하자, 구렁이 하나가 염만근의 목을 거칠게 휘어 감았다. 그러고는 천천히 그의 목을 조이기 시작했다.
“사, 살려주씨요. 교주님 시키는 대로 헐탱께─!”
염만근이 제 목을 휘감은 구렁이의 비늘을 만지작거리며 다급히 외쳤다. 손끝에 까끌까끌한 나무껍질의 감촉이 느껴졌다.
교주는 일말의 동정도 없이 싸늘한 눈빛으로 염만근을 바라보더니, 피식 미소를 지었다.
“그래요? 그럼 공장도 빌려주실 수 있다는 뜻인가요?”
교주가 재차 물었다.
공장을 내어주면 끝내 제 입에 풀칠하기도 힘들 만큼 생계가 고달파질 것이다.
그렇다고 내어주지 않을 수는 없었다. 그러면 교주가 당장이라도 목을 졸라 자신을 죽일 것이다.
지금 죽을 것이냐, 나중에 죽을 것이냐…….
물어볼 것이 없이 나중에 죽는 편이 나았다. 숨만 붙어 있으면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생긴다는 게 염만근의 생각이었다.
끝내, 그는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털썩!
그러자, 자신의 목을 차갑게 죄어오던 나뭇가지가 스르르 힘을 풀었다. 염만근은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그 자리에 풀썩 주저앉았다.
교주는 아까와 같은 부동자세로 아무렇지 않다는 듯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왜 그리 놀라십니까.”
교주가 물었다. 염만근은 그 사람 같지도 않은 냉혹함에 등골이 저리도록 놀라고 있었다. 그러나 사실대로 말할 수는 없었다.
그는 빠르게 머리를 굴리며, 상황을 모면할 만한 답을 찾아내고 있었다.
“아, 아니어라. 고것이, 제단얼 되찾으셨는가 어쩐가 혀서…….”
급한 마음에 별생각 없이 내뱉은 말이었다. 직후 그것이 말실수라는 것을 깨달았다.
아무런 감정도 비치지 않던 교주의 싸늘한 눈빛에 불길이 서리고 있었다. 타오르듯 하는 분노가 염만근의 얼굴을 꿰뚫을 듯 응시했다.
“……‘되찾아’?”
그러한 교주의 분노에 호응하듯, 문 너머로 나뭇가지들이 구렁이처럼 넘실거렸다.
교주가 말을 이었다.
“그걸 어떻게 알고 있지?”
“나, 나넌 하판석이가 헌 말을 고대로 전해뿐 것인디요.”
염만근는 정말로 하판석에게 들었던 말을 그대로 입에 담았을 뿐이었다. 어째서 교주가 이토록 분개하는 건지도 그는 알지 못했다. 정말로 억울했다.
“하판석 간부가 그렇게 말을 했다.”
교주가 그의 말을 되풀이했다.
“야, 야아. 하먼이라, 나넌 죄가 없당께요, 참말로…….”
염만근은 황급히 고개를 끄덕이며 결백을 주장했다. 자신이 뭘 잘못했는지조차 모른 채.
“하하하…….”
교주가 실성한 듯 웃음을 흘렸다. 염만근은 눈을 질끈 감았다.
분위기로 보건대 자신이 어마어마한 말실수를 해버린 것 같았고, 교주의 어깨 너머로 넘실거리는 나무줄기들이 당장이라도 자신의 목을 졸라올 것만 같았다.
“앞뒤는 맞네.”
교주가 의미심장한 말을 읊조렸다. 염만근은 눈을 떴다.
뜯어진 문 너머로 나뭇가지가 넘실거리고 있었다. 그러나 바람이 불고 있을 뿐이었다. 교주는 자신에게 아무런 위해도 위협도 가하고 있지 않았다.
“그건 그거고, 일 얘기는 마저 해야지요.”
교주가 무릎 위에 올린 손을 하늘로 향하며 입을 열었다.
“생각보다 나쁘지 않은 조건일 겁니다. 제게도, 염만근 간부에게도.”
* * *
염만근 간부의 공장을 빌려 하기로 한 ‘일’에 대해서는, 아무래도 다른 간부들의 의견도 들어보아야 할 듯했다.
하여 11시에 있을 회의에서 최종적인 결정을 내리기로 했다. 당연하다면 당연하고 다행이라면 다행인 이야기지만, 염만근은 이 ‘일’을 몹시 달가워하는 기색이었다.
[하판석은 어쩔 생각이지?]렉바가 물었다. 목소리에서 노기(怒氣)가 느껴졌다.
“……원칙대로 가야죠.”
[내키지 않는 기색이군.]당연했다. 하판석이 홀몸이었다면 마음이라도 편했을 텐데, 그게 아니라서 더 내키지 않았다.
허나, 그를 가만히 두면 오히려 내가 위험하다……. 그렇기에, 원칙대로 처리하는 수밖에 없었다.
[옳은 판단이다.]렉바가 흡족한 듯 말했다. 시시비비보다는 이해득실 문제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굳이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았다.
염만근의 숙소를 나와 계단을 내려갔다. 내려갈수록 지면에 내려앉은 어둠이 가까워졌다.
1층에 다다랐을 무렵에는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을 만큼 사방이 어둠에 싸여 있었다.
그 어둠을 헤치고 산 깊숙한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눈은 어둠에 금방 익숙해졌다.
까악, 까가악…….
파삭, 파사삭…….
여기저기서 밤새가 우는 소리나, 바람에 스친 나뭇잎의 비명이 들려왔다.
그러나 두렵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오히려 아늑했다.
[마리네트의 불을 사용하면 앞길을 밝힐 수 있을 거다. 주술로 의식의 양초를 불러내도 되고.]렉바가 넌지시 제안했으나 나는 고개를 저었다.
“어두운 대로 낭만이 있잖아요. 특히 야산은.”
나는 어둠이 익숙했다. 강지아가 창고나 다락방을 선호하는 것과 비슷한 이유였다.
[글쎄……. 알다가도 모르겠군.]한숨짓는 렉바를 뒤로하고 산길을 묵묵히 걸었다. 혹시 몰라 휴대폰을 가져오긴 했지만, 그렇다고 굳이 시간을 확인하고 싶지는 않았다.
어둠이 시간과 공간을 삼켜버려서, 시간 감각도 공간 감각도 전부 희미해지는 그 느낌이 좋았다.
“이쯤이면 될까요?”
[나쁘지 않구나.]얼마나 걸었는지 모를 만큼 걷다 보니, 제법 괜찮은 장소를 발견했다.
바닥이 평평하고 나무가 거의 없는 광장 같은 곳이었다. 누군가 인공적으로 만들어낸 것처럼, 그 광장은 거의 완벽한 원형을 이루고 있었다.
고개를 들었다. 둥글게 뚫린 하늘로 별빛이 쏟아지고 있었다. 가장자리로 나무가 살랑거렸다.
그러나 넋 놓고 풍경을 감상하고 있을 틈은 없었다. 내가 여기 온 것은 풍경을 감상하기 위함이 아니었으니까.
나는 부두 마력을 사출하여 주술진을 그렸다.
재현 주술, 의식의 양초.
가능한 많은 양의 양초를 꺼냈다. 그리고 나를 중심으로 둥글게 펼쳐 놓았다. 양초의 보라색 불빛이 어둠에 스며들었다. 불빛을 머금은 어둠이 내 주위로 가득했다.
[아주 안정적이군. 분위기도 제법 좋구나.]렉바가 나지막이 감상을 읊었다.
승계 의식 이후 바뀐 점은 크게 두 가지였다.
첫째는 재현 주술을 동시에 여러 번 사용할 수 있게 된 것.
의식의 양초처럼 중급 이하의 재현 주술은 동시에 10번씩 사용하는 것도 가능했다.
둘째는 주술의 강도를 조절할 수 있게 된 것.
말 그대로 주술의 위력을 임의로 조절할 수 있게 됐다. 환혹이나 복원뿐만 아니라 재현 주술의 강도를 조절하는 것도 가능했는데, 가령 양초의 경우 그 불빛의 세기를 조절할 수 있었다.
[초대 교주는 조절에 능했지. 덕분에 부부 금실도 좋았다.]“예?”
[농담이다.]렉바가 실소를 흘렸다. 뭐가 농담이라는 건지 모르겠다.
[넘어가지. 주술 이야기를 하러 여기 온 것은 아니지 않느냐?]렉바가 화제를 돌리려는 듯 말했다. 조금 의아하긴 했지만 넘어가기로 했다.
내가 이 자리에 온 것도 하나의 연습을 위해서였다. 그러나 렉바의 말대로 주술 연습을 위해 온 것은 아니었다.
내가 지금부터 할 것은 오직 ‘이곳에서만’ 할 수 있는 연습.
“소보, 바데, 단 웨도.”
바로, 어디로 튈지 모르는 이 천방지축 로아들을 제어하기 위한 연습이다.
보수와 그란브와는 고분고분 말도 잘 듣고, 권능의 위력도 상당하다. 그러나 부작용이 커서 자주 사용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그러나 이들은 다르다.
소보는 천둥과 번개의 로아.
단 웨도는 물과 비의 로아.
바데는 소보의 형제이자, 바람의 로아.
이 세 분의 로아는 선지자의 말을 귓등으로 듣지만, 권능의 위력이 엄청난 동시에 비교적 부작용도 덜했다.
제어할 수 없기에 양날의 검이지만, 제어할 수만 있다면 나의 가장 든든한 원군이 되어주실 세 분의 로아.
쿠르릉─!
[소보 등장. 아, 바데!] [바데 등장. 오, 소보!]그때, 소보와 바데의 등장을 알리듯 천둥이 울렸다.
바데는 소보와 마찬가지로 말투가 경박했고 변덕스러운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형제인 만큼 둘은 성격도, 말투도, 목소리도 비슷했다.
[준비됐어, 「바」?] [물론이지, 「소」.] [단 웨……. 내린다, 비……!]쏴아아아아─!
소보와 바데, 그리고 단 웨도의 목소리가 번갈아 울려 퍼졌다. 맑았던 하늘에 먹구름이 끼고 비가 내렸다.
날카롭고 서늘한 바람이 내리는 비를 여기저기 흩뿌렸다. 먹구름 틈으로 섬광이 번쩍였다. 낙뢰의 전조였다.
쿠구구구…….
이따금씩 천둥소리가 메아리치며 산줄기를 타고 흘렀다. 울림은 불길하고 괴괴해서 산이 통곡하는 소리처럼 들렸다.
비, 바람, 천둥과 번개.
그것들이 산을 송두리째 날려버릴 듯 격한 폭풍우가 되어 내 주위로 모여들고 있었다.
[괜찮겠느냐?]소보와 바데와 단 웨도의 목소리가 자아낸 겹겹의 소음 속에서, 렉바가 나지막이 물었다.
사실, 안 그래도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파오기 시작하고 있었다. 그러나 엄살을 부릴 수는 없었다.
나는 지금 내 주위를 둘러싼 이 거대한 폭풍우를 제어해야만 한다.
두통 따위에 신경을 쏟을 겨를은 없었다.
“소보, 바데, 단 웨도!”
폭풍이 몰아치는 한가운데에서 그들의 이름을 외쳤다.
쿠르르릉─!
그들은 폭풍우의 위력을 더하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둥글게 펼쳐진 의식의 양초들이 비바람에 맞아 위태롭게 흔들리고 있었다.
기껏 정리했던 머리칼이 비에 맞아 젖고 바람에 맞아 휘날리며 엉망이 되었다.
“───!”
어느 순간부터, 내 목소리조차 들리지 않을 만큼 폭풍우가 강해졌다.
조금이라도 긴장을 늦추면 바람에 몸이 날아갈 것 같았다. 빗발은 거셌다. 번개는 하늘을 수천 수백 개로 조각내고 있었다.
산을 가득 메운 수목들이 바람에 누웠다가 일어나기를 반복했다. 나아가 산 전체가 흔들렸다.
“──, ──, ─ ──!”
다시금 그들의 이름을 불렀다. 목소리는 소음에 묻혀 사라졌고, 대답도 돌아오지 않았다.
문득 두려움이 샘솟기 시작했다.
내가 이 폭풍우를 과연 제어할 수 있을까. 책임지지도 못할 괜한 짓을 해버린 것은 아닐까…….
그러나, 이내 마음을 다잡았다.
고작 이 정도로 무너질 거였다면 애초에 시작도 하지 않았을 테니.
“────!”
기도문을 외웠다. 비와 바람과 천둥이 목소리를 부수었다.
그럼에도 나는 기도를 멈추지 않는다.
부두교는 탄압과 압제 속에서 탄생한 종교다. 자유를 빼앗긴 노예들이 외친 자유와 저항은 고스란히 부두교의 교리가 됐다.
그러므로 부두교의 기도는 맞서는 자의 아우성이며 우짖음이다.
콰직, 콰지직─!
나무를 송두리째 흔들고 뽑아대며, 나를 향해 맹렬히 달려드는 폭풍우.
읊조린 기도의 목소리는 폭풍이 내지르는 괴성에 힘없이 바스라지고, 굵은 빗줄기가 몸뚱이를 사정없이 때리며, 칼바람이 살을 엔다.
나는 기도를 멈추지 않는다.
기도문을 외며 폭풍에 맞선다. 목소리는 바람결에 조각조각 갈라져 폭풍에 흩어진다. 굵은 빗방울이 온몸을 적시고 때린다.
섬광이 일었다.
쿠웅─!
벼락이 떨어지고 나무의 허리가 쪼개진다. 무너진 나무의 잔해가 머리 위로 우수수 떨어져 내린다.
기도는 멈추지 않는다.
항거할 수 없는 재해에 대한 공포. 그에 맞서는 나약한 인간의 아우성.
그것이 바로 부두의 기도이므로.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