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eric Academy's Shaman RAW novel - Chapter 97
제97화
사아아아…….
무겁고도 지독한 안개가 흘렀다. 나뭇가지에 앉아 있던 밤새가 조악한 울음소리를 내며 비상했다.
안개를 피해 도망치는 밤새들의 날갯짓에도 안개는 흐트러지지 않고 천천히 숲을 잠식했다.
어느덧 주위는 안개를 머금은 어둠으로 가득했다.
“후.”
하수영은 이마에 맺힌 땀을 털어내며 한숨을 쉬었다.
올려다본 밤하늘에 뜬 창백한 달이 안개에 가려 보랏빛으로 물들고 있었다. 풍경이 스산했다.
그러나 그녀는 두려움을 느끼기 이전에 뿌듯함을 느끼고 있었다. 이것으로 오늘 치 연습을 모두 끝냈기 때문이었다.
“수영아, 부두교를 일으킬 수 있는 건 너뿐이야. 교주가 되어야 한다. 3대 교주 놈은 내가 어떻게든 할 테니, 너는 준비만 꾸준히 하면…….”
아버지로부터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었던 말이었다.
교주가 되어야 한다, 교주가 되어야 한다…….
그렇게 말하는 아버지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아버지는 부두교가 몰락하기 전, 2대 교주 도명준의 치하 아래 황금기를 맞았던 그 시기를 언제나 그리워했다. 그리고 3대 교주 도선우의 치하 아래 암흑기를 맞은 지금의 부두교를 증오했다.
너르고 든든하던 아버지의 뒷모습이 성전 이후 초라하게 작아진 모습을 보며.
2대 교주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는 기쁨을 감추지 못하던 아버지가, 3대 교주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는 비탄을 감추지 못하는 모습을 보며.
하수영은 슬픔을 느꼈다.
그녀는 그때 교주가 되겠노라 마음먹었다. 아버지의 뜻이 아닌 그녀 스스로의 의지였다.
“…….”
문득 상념에 잠겼다가 깨어났을 때, 안개는 이미 바람에 흩어져 사라진 뒤였다. 바람에 머리칼이 흩날리고 나뭇가지가 흔들렸다.
어쩐지 아까보다 바람이 드세고 날카로워진 것 같았다. 어둠도 한층 깊어져 있었다. 아무래도 슬슬 산장으로 돌아가는 편이 나을 것 같았다.
우우우우우─!
밤새가 우는 소리가 낮게 울려 퍼졌다. 소리는 바람을 타고 나무와 나무 사이를 흐르며, 한층 기괴하고 우울하게 변했다.
불현듯 공포가 일었다.
온몸의 털이 곤두서고 있었다. 산의 어둠은 결코 도시의 어둠처럼 친절하지 않았다.
빠직─!
“……!”
어둠을 헤치며 걷던 도중, 발치에서 마른 나뭇가지가 부러지는 소리가 났다.
소리는 메아리가 되어 주위를 스산하게 맴돌았다.
“하나도 안 무서워. 별것도 아닌 게 어디서 겁을 주고 있어…….”
그녀는 애먼 나뭇가지에 화풀이를 하며 어둠을 헤치고 걸었다.
그러나 아무리 걸어도 어둠만이 이어질 뿐 산장의 빛은 보이지 않았다.
방향을 바꾸어 걸어 봐도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어디를 가도 산이고 어둠이었다.
길을 잃을 것을 대비하여, 오는 길에 나무에 표시를 해두었던 것이 떠올랐다. 그 표시를 따라가면 분명 산장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었다.
그러나 어둠 속에서는 이 나무가 저 나무였고 저 나무가 이 나무였다. 표시를 해두었던 나무가 뭔지 알 도리가 없었다.
길을 잃었다.
그것을 깨닫자, 애써 무시했던 두려움이 한순간에 물밀듯 몰려왔다.
쿠르릉─!
그때, 천둥소리가 울려 퍼졌다. 날카로운 바람이 옆구리를 스쳤다. 굵고 단단한 빗줄기가 그녀의 이마를 톡톡 건드렸다.
어느 틈엔가 몰려온 먹구름이 달빛을 가렸다. 산의 어둠이 더욱 깊어졌다.
까가각, 까가각…….
산짐승 울음소리가 섬뜩하게 울려 퍼졌다. 하수영은 진저리를 치며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을 향해 막무가내로 달리기 시작했다.
몇 번이나 넘어지고 미끄러졌지만 아픔은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공포가 신경을 마비시킨 것 같았다.
“아……!”
이윽고, 빛이 보였다. 하수영은 반가워서 자기도 모르게 감탄을 흘렸다.
그렇게 잠깐 웃음이 떠올랐던 그녀의 얼굴에 다시금 절망이 차올랐다. 구세주처럼 나타난 그 빛이 산장으로부터 나온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은 탓이었다.
하수영은 풀숲에 몸을 숨긴 채, 너머로 보이는 빛을 바라보았다. 탁 트인 원형의 광장에 양초가 둥글게 늘어져 있었다.
자신이 본 빛은 저 양초에서 흘러나온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 양초의 중심에 한 남자가 서 있었다.
지면이 아닌, 허공을 밟은 채.
쿠르르릉─!
번개가 하늘을 가르고 천둥이 지축을 뒤흔들었다. 하수영은 놀란 마음에 머리를 감싸면서도 그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양초의 중심에 선 그는, 분명 떠 있었다. 지면이 아닌 허공을 밟고 서 있었다.
휘이이잉…….
그가 공중에서 손짓하자 풍향이 바뀌었다. 서풍이 동풍으로. 다시 손짓하자 빗발이 바뀌었다. 가랑비가 장대비로.
산을 전부 들어낼 것처럼 난폭하던 폭풍우가 쥐죽은 듯 잠잠해졌다가 다시 난폭해지길 반복했다.
그가 손짓할 때마다 폭풍우는 매번 새로운 형태로 거듭나고 있었다.
그야말로 폭풍을 다스리는 지휘관이었다.
“……도선우.”
하수영은 그의 이름을 알고 있었다. 현 교주이자, 부두교가 몰락하게 된 원인…….
아버지가 틈만 나면 흉을 보고 욕을 해대는 그 남자였다.
“로아의 권능만 아니면, 너느으으으악─!”
부웅!
혼잣말을 읊으며 다짐을 결연히 하려던 하수영의 몸이 공중에 번쩍 떴다. 갑자기 불어온 강풍 탓이었다.
철퍼덕!
바람은 하수영의 몸을 실어 광장 중앙에 거칠게 내던졌다.
“아으으아악……!”
착지를 허리로 해서 엄청나게 아팠다. 고통 속에서 그녀는 시선을 느꼈다.
고개를 들었다. 도선우가 저 위에서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하수영은 일찍이 도선우를 증오와 분노로 대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러나 막상 마주하고 보니 두려움이 앞섰다.
“됐습니다.”
도선우는 그렇게 말하며 살포시 주먹을 쥐었다. 그러자 비바람이 멎고 천둥과 번개가 멎었다.
폭풍우가 몰아치던 산은 언제 그랬냐는 듯 원래의 정적을 되찾았다. 침묵 속에서 그는 바람을 타고 사뿐히 바닥에 착지했다.
하수영은 그 모습을 그저 바라보고만 있었다. 비현실이 현실을 압도하는 듯 아찔한 감각이 느껴졌다.
정신을 차릴 틈도 없이, 도선우가 자신을 향해 걸어오기 시작했다.
* * *
[슬슬 힘들지, 「바」?] [당연하지, 「소」! 살려줘!] [으악…… 으악으악……]자신만만하게 폭풍우를 불러일으키던 세 분의 로아. 소보와 바데, 그리고 단 웨도가 앓는 소리를 냈다.
“벌써부터 지치면 안 되죠. 나는 아직도 멀쩡한데.”
그러나 아직은 때가 아니었다. 나는 비명을 지르는 로아들을 붙잡고 억지로 권능을 사용했다.
그들이 지쳐버린 덕분에, 나는 권능을 보다 안정적으로 사용할 수 있었다.
원하는 위치에 번개를 떨어뜨리거나, 비의 굵기를 조절하거나, 바람을 제어하여 내 몸을 띄우기도 했다.
바람으로 몸을 띄운 다음에는 괴력의 축복을 써서 중심을 잡았다. 그러면 비로소 ‘날다’라는 표현에 걸맞은 모양새가 됐다.
의도한 건 아니었지만, 로아의 권능과 괴력의 축복을 동시에 연습하게 된 셈이었다.
[「소」! 나 바론 삼디 님이 보여……!] [정신 차려, 「바」! 그거 환각이야!] [죽는다…… 곧…… 아악……!] [선지자! 이제 그만할 때도 됐잖아!]“조금만 더 견디세요. 제물이 코앞입니다.”
천방지축들이 죽는 소리를 하며 간청했으나, 단호히 고개를 저으며 거절했다.
나는 기도를 통해 그들과 모종의 계약을 맺었다. 말을 잘 들으면 제물을 보상으로 내어주겠다 선언한 것이다.
소보, 바데, 단 웨도처럼 제물에 환장하는 로아를 다스리는 데에는 이만한 방법이 없었다. 보수도 같은 방법으로 길들였다.
간식으로 반려견을 훈련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자, 이제 진짜 마지막으로 딱 5분만 더!”
[도대체 마지막 5분이 몇 번이야아아악─!] [바론 삼디시여, 폭군 선지자로부터 부디 나를 구원하소서…….] [또…… 5분…… 죽음뿐……!]완전히 지쳐버린 로아들을 향해 라스트 5분을 선언한 그 순간.
파스스스─!
바람에 이리저리 흔들리는 나무 사이로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차기 교주로 유력 지목되고 있다던 하판석의 딸이었다.
그녀는 풀숲에 몸을 숨긴 채, 내가 로아를 다루는 모습을 몰래 훔쳐보고 있었다.
“…….”
좋은 생각이 났다.
“바데.”
[아악! 또, 또! 왜 또 나야!]부우웅!
나는 바데의 권능으로 바람을 일으켜, 숨어 있던 그녀의 몸을 들어 내 앞에 데려왔다.
바람에 의해 거칠게 바닥에 나동그라진 그녀는, 공포에 질린 듯 파르르 어깨를 떨며 나를 올려다보았다.
“됐습니다.”
로아에게 말하며, 허공에 대고 주먹을 쥐는 시늉을 했다. ‘폭풍우를 멈추어도 된다’라는 뜻의 수신호였다.
[나는 좀 쉬도록 하지! 앞으로 며칠은 불러도 절대 오지 않을 거야! 아니, 몇 년!] [아아, 제 기도가 닿았군요! 바론 삼디 님!] [드디어…… 삶……]로아들의 목소리가 차츰 멀어지고, 폭풍우는 불시에 사라졌다.
어디까지나 제물에 의한 통치이기는 했지만, 이 천방지축 로아들이 내 말을 잘 듣게 되었으니 소기의 목적은 이룬 셈이었다.
내심 뿌듯함을 느끼며 주저앉은 채 나를 멀뚱멀뚱 바라보는 그녀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안녕?”
나름 친절하게 인사를 건넸다. 웃어도 봤다. 속내를 감추는 웃음이었다.
“…….”
그녀는 대답하지 않았다. 놀란 탓에 입이 쉽사리 떼어지지 않는 모양이었다.
아무래도 몇 마디 말을 더 건네 봐야 할 것 같았다. 나는 최대한 환하게 웃으며 그녀에게 다가갔다.
“이름이 뭐였지? 하…….”
그런데 첫 마디부터 말이 막혔다. 하판석의 딸이라는 건 기억이 나는데, 막상 그녀의 이름이 생각나지 않았다.
아까 분명 강지아에게 들었던 것 같은데.
하, 하…….
“하수.”
“……하수영.”
“그래. 하수영.”
그녀는 약간 기분이 상한 듯 짧게 대꾸했다.
하수영. 그 이름을 머릿속에 새기며 말을 이었다.
“어쩌다 여기까지 왔어?”
“연습.”
“무슨 연습?”
“주술.”
하수영이라는 아이는 말이 무척이나 짧았다. 일부러 대답을 짧게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나야 별생각 없지만, 그녀는 나를 탐탁지 않게 여기고 있는 것 같았다. 아버지인 하판석, 그리고 ‘별 없는 밤’ 일어났던 그 사건의 영향을 받은 탓이리라.
“근데 왜 아직까지 안 돌아가고 여기 있어?”
“…….”
하수영이 대답 없이 고개를 떨궜다. 어두워서 표정이 잘 보이지 않았다.
나는 광장 중앙에 늘어진 양초의 불빛을 키웠다. 인근이 보랏빛으로 환하게 밝아졌다.
놀란 듯 동그랗게 커진 눈으로 나를 올려다보는 그녀의 몸 곳곳에는 상처가 나 있었다. 다리 쪽, 특히 무릎에 상처가 깊었다.
넘어져서 다친 상처인 것 같았다. 상처 부근에 흙이 잔뜩 묻어 있었다.
“길 잃었구나?”
그녀의 상처에 하급 복원 주술을 사용했다. 하급 복원은 내가 ‘체득의 경지’에 다다른 유일한 주술이었다.
주술진도 없이 그녀의 몸에 난 잔상처들이 말끔히 치료되었다.
“야밤에 등산을 하니까 길을 잃지.”
내 말에 하수영이 눈썹을 찌푸렸다.
“……그건 너도잖아.”
“나는 돌아갈 수 있는데.”
“로아 님의 권능으로?”
조금 놀란 마음을 감추며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입에서 ‘로아의 권능’이라는 말을 듣는 건 처음이었다.
하긴, 차기 교주로 지목될 정도라고 했으니 이 정도는 당연히 알고 있겠지.
“그래. 로아 님의 권능으로.”
나는 그녀에게 손을 내밀며 말을 이었다.
“같이 갈까? 어차피 너 혼자서는 못 갈 텐데.”
“싫어.”
탁!
그러나 하수영은 내 손을 튕겨내며 매몰차게 거절했다. 맞은 손등이 얼얼하게 아팠다.
“왜 싫어?”
“나는 너 같은 놈들이 싫어.”
“오…… 그건 또 왜?”
자꾸 너, 너 하는 게 조금 거슬렸지만 참고 되물었다.
하수영은 엉망진창으로 헝클어진 머리칼을 쓸어 정리하며, 싸늘한 눈빛으로 나를 매섭게 노려보았다.
“너 때문에 부두교가 망했으니까.”
“나 때문만은 아니지.”
망한 건 나 때문이 아니다. 내가 교주가 되었을 때 부두교는 이미 망해 있었다. 부두교가 ‘아직도’ 망해 있는 것이 나 때문이라면 할 말이 없긴 하지만.
하수영은 내 말은 들은 체도 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교주는 내가 됐어야 했어.”
어째 대화의 맥락이 이상했다. 정해진 대답만 뱉도록 설계된 AI와 대화를 나누는 느낌이었다.
이 또한 하판석의 영향을 받은 탓이리라. 하수영은 어릴 때부터 하판석에게 저런 소리만을 들으며 자라왔을 것이다.
“너희 아버지가 그렇게 말했어?”
내 말을 들은 하수영의 표정이 굳었다. 동그랗게 커진 눈은 나를 뚫어져라 응시하고 있었다. 어떻게 알았냐는 듯한 얼굴이었다.
그녀는 이내 표정을 굳히며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아빠가 아니라 내가 그렇게 말했어.”
“어, 그래.”
눈빛에 굳센 결의와 날카로운 적의가 느껴졌다. 내가 무슨 말을 하더라도 그녀는 들을 생각이 없는 모양이었다.
대화를 그만두고 하수영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반바지에 연보라색 맨투맨을 입고 있었다. 추위를 막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차림이었다. 봄이어도 아직은 밤공기가 서늘할 때였다.
광장 바닥에는 젖은 나뭇잎이 어수선하게 흩어져 있었다. 나는 발끝으로 그것들을 대충 모았다.
“마리네트.”
마리네트의 권능을 썼다. 손바닥 위로 불길이 솟구쳤다.
화르륵!
나뭇잎 위에 불길을 옮겨 붙였다. 마리네트의 불꽃은 젖은 땔감에도 불이 잘 붙었다.
하수영이 의아하다는 듯 나를 올려다보았다.
“뭐 하는 거야.”
“몸 좀 말리라고.”
이대로 두고 가면 그녀는 얼어 죽거나, 혹은 산짐승의 공격을 받아 죽을 것이다.
그렇기에 그녀를 두고 혼자 산장으로 돌아갈 생각은 없다. 죄를 지은 건 하판석이지 하수영이 아니었으므로.
나는 그녀의 옆에 앉아 불을 쬐었다. 마리네트의 불꽃이 자아낸 후끈한 열기가 차갑게 식은 몸을 달궈주었다.
“나는 너 같은 놈들이 싫어.”
하수영이 강조하려는 듯 재차 말했다. 몸 녹이라고 불까지 붙여 줬는데도 이러니 슬슬 기분이 상했다.
그녀를 지그시 쳐다보자, 그녀도 마찬가지로 나를 응시하며 말을 이었다.
“교주 행세하면 재밌지? 할 줄 아는 것도 없으면서. 로아 님만 믿고.”
“주술도 쓸 줄은 알아.”
“주술은 내가 더 잘 써. 교주는, 내가 됐어야 했는데…….”
하수영은 내가 교주라는 사실이 몹시도 억울하다는 듯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다.
이래서야 설득을 해서 산장으로 같이 돌아가기는 힘들 것 같았다.
강제로 데리고 가야 하나……. 그건 싫은데.
사삭…….
몸을 녹이며 고민하던 도중, 풀숲에서 불길한 소리가 들려왔다. 작고 날랜 뭔가가 잎사귀를 스치며 걷는 소리.
사사삭…….
소리는 끊이지 않고 들려왔다. 아마 야생동물인 것 같았다.
태백산은 민간인 출입금지령이 내려지면서 야생동물의 종류와 개체수가 급격히 증가했다. 어떤 동물이 나올지 모른다. 고라니나 삵이면 별문제가 안 되겠지만, 멧돼지나 늑대일 경우가 문제다.
동물에게는 주술이 통하지 않기 때문이다. 주술은 이성이 없는 개체에게는 통하지 않는다. 이를테면 악마종이나 마수 같은 것들.
파삭!
그때, 풀숲에서 뭔가가 튀어 올랐다. 날카롭게 세운 발톱을 우리에게 겨눈 채로.
“마리네트!”
급한 대로 마리네트의 권능을 썼다. 공격을 피한 뒤, 불길로 동물을 내쫓을 생각이었다.
그러나 마리네트의 불꽃이 사용되는 일은 없었다.
그륵, 그르르륵……!
공격을 미처 피하기도 전, 짐승이 가냘픈 울음소리를 토하며 그 자리에 쓰러졌기 때문이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이해가 잘 되지 않았다.
“교주라는 놈이 무슨 살쾡이 하나 가지고.”
뒤에 있던 하수영이 한심하다는 듯 작게 읊조렸다.
나는 바닥에 축 늘어진 삵과 하수영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그녀의 손끝에서는 부두 마력이 흘러나오고 있었고, 그 앞으로 주술진이 그려져 있었다.
뺙, 뺙, 뺙…….
어디선가 가느다란 울음소리가 흘렀다. 숨어 있던 새끼 삵들이 쓰러진 어미 삵을 향해 쫄래쫄래 달려가고 있었다.
뺘악, 뺘아악…….
새끼 삵 서너 마리가 구슬프게 울어댔다. 나는 하수영과 그녀가 그려낸 주술진을 살펴보았다.
하수영은 내 시선이 불편하다는 듯 어깨를 움츠렸다.
“뭐, 뭘 봐. 죽인 거 아니야. 혼절 주술로 기절만 시킨 거야…….”
그녀의 말대로, 쓰러져 있던 어미 삵이 곧 정신을 차리고 일어났다. 그러고는 새끼들을 데리고 후다닥 숲속으로 사라졌다.
“봐봐. 안 죽었잖아.”
하수영은 그제야 마음이 놓인 듯 한숨을 지었다. 자신의 주술이 뭐가 특별한지에 대한 자각조차 없는 것 같았다.
일반적으로, 환혹 주술로는 동물을 제압할 수 없다. 그러나 그녀의 환혹 주술은 동물에게도 통한다.
적으로 두기에는 너무나 아까운 재능이었다.
가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문이랑 좀 다르네.”
“……뭐?”
하수영이 눈썹을 구기며 나를 쏘아보았다. 목소리가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내가 살짝만 아니꼽게 말해도 그녀는 금세 감정이 격해졌다. 자존심이 무척 강한 성격인 것 같았다.
오히려 다행이었다. 크게 수고를 들일 필요도 없이, 미끼만 살짝 흔들어주면 알아서 낚여줄 듯했다.
“간부들이 천재라고 해서 좀 기대했는데.”
“그거 무슨 뜻이냐?”
그녀가 짜증 섞인 말을 내뱉었다. 그러고는 손끝으로 부두 마력을 사출하며 내게 성큼 다가왔다.
나는 그녀를 향해 피식 비웃음을 흘렸다.
“무슨 뜻이겠어?”
“죽고 싶다는 뜻인가? 혼절 주술로 기절시켜서 산에 묻어줄까?”
하수영의 얼굴을 일그러트리며 말했다. 그녀의 표정에 서린 분노가 어둠 너머로 선명히 떠올라 있었다.
그녀는 생각보다 입이 많이 거칠었다. 하지만 대화의 흐름 자체는 긍정적이었다.
“해보든가. 주술 쓰는 거 보니까, 기절은커녕 어지럽지도 않을 것 같던데?”
“……허!”
하수영이 어이가 없다는 듯 헛웃음을 토했다. 나를 바라보는 그녀의 눈빛에 불길이 서려 있었다.
“내기 하나 할까? 내가 주술로 널 기절시킬 수 있나, 없나. 내가 이기면 넌 산에 묻히는 거야.”
“내가 이기면?”
“뭔 소리야? 내가 이길 건데?”
하수영이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살짝 어이가 없었다. 그녀는 자신이 질 것이라는 생각 자체를 하지 않는 것 같았다.
“내가 이기면 곱게 내 말 들어.”
그녀에게 넌지시 제안했다. 하수영이 피식 웃었다.
“그러든가. 이길 수 있을 것 같냐? 병신아.”
마침내, 그녀가 미끼를 물었다.
그녀가 사출한 부두 마력이 무서울 만큼 빠른 속도로 주술진의 형태를 갖추기 시작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