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mmander of the Space Gamer RAW novel - Chapter 10
10.
이한은 초진동검을 찍음과 동시에 놈의 발 위를 달리면서 상처를 더욱 깊게 베어냈다.
끔찍한 괴성이 울려 퍼졌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죽이지 못하면 죽는다. 과도한 아드레날린 때문인지 제정신이 아니었다.
콰아아앙!
이윽고 벽이 부서지고 놈의 얼굴을 마주한 이한은 급히 옆으로 몸을 날렸다. 왠지 그래야만 할 것 같은 느낌에서였다.
그리고 그 본능은 옳았다.
몸을 날리자마자 놈의 날카로운 이빨이 그곳에 있던 모든 것을 씹어 삼켰기 때문이다.
도망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이 치밀어 올랐지만 어디로 도망친단 말인가? 이한은 속으로 연신 욕설을 내뱉으며 다시 뛰어올랐다. 스틸아머의 도움으로 인해 상당한 높이까지 뛰어오른 이한은 초진동검을 냅다 놈의 왼쪽 눈알에 처박았다.
콰직!
“키에에엑!”
검을 잡아뽑을 정신 따위는 없었다. 그 순간 상처 입지 않은 놈의 오른발이 이한의 상체를 후려쳤기 때문이다.
“커허헉!”
강력한 충격에 이한은 저만치 날아가 사령관실 구석에 처박혔다.
“쿨럭! 쿨럭!”
비릿한 향이 입안 가득 퍼지는 것을 느꼈지만 이한은 어떻게든 몸을 가누고자 애썼다. 사방이 적이었다. 다쳤다고 누워있을 때가 아니었다. 이대로 죽고 싶은 것이 아니라면.
대체 언제부터 자신에게 이토록 맹렬한 투쟁심과 생존본능이 있었는지 스스로도 의아할 지경이었다.
띠릭! 띠릭!
바이저에 뜬 신호를 확인하니 스틸아머는 정상이 아니었고 무엇보다 배터리 잔량이 거의 다 소진되었다.
스틸아머가 부서지며 회로가 망가진 모양이다. 아니면 무거운 기둥을 들어 던지느라 남은 배터리를 모두 소진했던지 그 원인이야 이 상황에서 뭐가 그리 중요하겠는가? 원인을 안다고 소진된 배터리가 채워지는 것도 아니고.
‘설상가상에 사면초가에 아주 개판이네. 젠장.’
그러면서도 이한은 자신을 습격한 크락투를 바라봤다. 다행히 자신을 공격한 것이 마지막 발악이었는지 쓰러진 채로 꿈틀거리며 숨을 거칠게 내쉬고 있었다.
‘어쨌든 살아남은 건가?’
놈은 죽어가고 있고 이 모양 이 꼴이긴 해도 어쨌든 자신은 살아남았다.
“몇 분이지?”
『1분. 1분 남았습니다.』
“제길! 아직도 1분이나?”
키에에엑! 키에엑!
이한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부서진 벽 뒤편으로 크락투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얼핏 보기에도 한두 마리가 아니었다.
“내가 이렇게 죽을 것 같.”
그때 바이저에 아주 절망적인 메시지가 떠올랐다.
피슈웃!
그와 동시에 결합 되었던 스틸아머가 분리되며 떨어져 나갔다. 결합된 채로 전원이 꺼진다면 어떻게 움직일 수도 없으니 그에 따른 안전조치로 보였다.
절묘해도 이렇게 절묘할 수가 없었다. 크락투가 개떼처럼 몰려오는데 그 상황에 맞춰 스틸아머의 기능이 멈추다니······.
잘근잘근 잘 씹어먹으라고 아예 포장지까지 친절하게 벗겨준 셈이 아닌가?
엿을 먹여도 아주 찰지게 먹인다. 이한은 남은 스틸아머의 부품을 거칠게 뜯어냈다.
다만 호흡기를 보호하는 헬멧은 여전히 쓰고 있었다.
쿵! 쿵!
“키에엑!”
“키엑!”
그런 이한의 두 눈에 크락투들이 짓쳐 드는 모습이 들어왔다.
‘하아..’
이 세계 첨단 문명의 산물로 어떻게든 대항했지만 이젠 어떻게 대항할 수도 없다. 당연히 피할 수도 없다. 스틸아머의 도움도 없이 피해 봐야 놈의 공격 범위 안이니까.
‘악몽 한 번 거창하게 꾸는구나.’
똥오줌을 지릴 정도로 두려웠지만, 악몽이라 생각하니 그나마 마음은 편해졌다. 그럴 리가 없다는 것은 이미 충분히 알았지만 말이다.
크락투의 지독한 악취와 딱 보기에도 위생적이지 않은 이빨이 두 눈에 선명하게 들어왔다.
‘존나게 아프겠네.’
죽음의 마지막 순간까지 눈을 감지 않으려 했는데 아무래도 그럴 수가 없겠다.
그렇게 눈을 질끈 감은 순간 이한은 누군가 자신을 잡아채는 것을 느꼈다. 당연히 맨몸이나 다름없던 그는 맥없이 그 방향 그대로 딸려갔다.
이에 이한을 갈가리 씹어놓으려던 크락투의 아가리는 허공만 헛되이 베어 물었다.
콰직!
그와 동시에 피륙이 대차게 갈라지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촤아아악!
키에에엑!
“사령관님!”
눈물 나게 반가운 소리다. 사람 목소리가 천상의 음악보다 달콤하게 들릴 줄이야. 천상의 음악 같은 걸 들어본 적도 없었지만.
어쨌든 이한은 퍼뜩 정신을 차리고 자신을 잡아챈 사내를 바라봤다. 빌리였다. 바이저 안쪽에 비친 그의 검은 피부가 어찌나 아름다워 보이는지. 하! 사내에게 반하는 날이 올 줄은 미처 몰랐는데 말이지.
“존나게 버티면! 존나게 버티면 살 수 있는 겁니까?”
“씨발! 1분 아니 30초만 더 버텨봐!”
“알겠습니다!”
빌리는 이한을 뒤로 놓고 초진동검을 휘둘러 크락투를 베어가기 시작했다. 이한 자신보다 월등하게 잘 싸우는 빌리의 모습에 이한은 안도와 동시에 감탄을 표했다.
그러나 위기는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아까 뚫린 천장 위에서도 크락투들이 쏟아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키에엑!
키엑!
“징글징글한 새끼들!”
빌리가 굳은 표정을 말을 뱉을 때 저 멀리서 사람 음성이 다시금 울려 퍼졌다.
“사령관님!”
이한이 소리가 들린 저편을 바라보자 에리오와 살아남은 몇몇 병사들이 달려오고 있었다. 그 모습에 조금 힘을 얻은 이한이 크게 소리쳤다.
“막아! 조금만 더 버텨봐! 어떻게든!”
“알겠습니다!”
에리오등이 합류하자 상황은 좀 더 나아졌지만 이대로 조금만 더 지나면 크락투에게 모조리 몰살당하고도 남을 상황이었다.
“아아아악!”
아니나 다를까 가련한 병사 한 명이 또다시 비명에 갔다.
이한은 다급함과 분노가 뒤섞인 음성으로 버럭 외쳤다.
“워! 아직도 3분 안 지났냐?”
『크락투에게 치명적인 가스를 살포합니다.』
피슈우우웃!
아니 잠깐! 산성 물질을 살포하는 거면 스틸아머에 보호받지 않은 나도 같이 뒈지는 거 아니야?
그 말을 묻고 싶었지만, 이 미친 초인공지능은 이미 가스를 살포해버렸다.
급격하게 정신이 혼미해졌다.
이에 이한은 체념한 표정으로 눈을 감았다.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마찬가지였으면 그냥 빨리 죽을 걸 그랬다. 개고생할 것 없이. 지랄도 이런 쌩지랄이 없었다.
*
“사령관님! 사령관님!”
양어깨를 거칠게 흔드는 손길에 이한은 머리가 깨질 것 같은 고통과 함께 정신을 차렸다.
“으으윽!”
“사령관님! 괜찮으십니까?”
‘살았나? 이 모든 게 꿈속의 꿈은 아닐 테니 이건 빼도 박도 못하는 현실인가?’
자꾸 이 상황을 외면하고 싶어진다. 이한은 관자놀이를 매만지며 눈을 감은 채 대답했다.
“괜찮냐는 말이 들리는 걸 보니 아직 죽지는 않은 모양이네.”
“상당히 위험했습니다.”
에리오가 이한의 상체를 부축하며 대답했다.
이한은 머리를 매만지며 인상을 찌푸렸다.
“위험했겠지. 그래서 크락투는?”
그 질문에는 빌리가 담담하게 대답했다.
“사령관께서 ‘워’라 명명한 초인공지능이 개발한 가스에 모두 뒈졌습니다. 죽지 않은 개체는 물론 죽은 개체도 일일이 확인 사살했으니 더는 염려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몸 안에 침투한 유독 성분은 모두 해독했습니다만 거대 크락투에 입은 상처는 제대로 치료하지 못했기에 안정이 필요합니다. 응급처치만 한 상황이라 서둘러 의료 시설의 도움을 받으셔야 합니다.』
“해독할 수 있기 때문에 살포한 것이다?”
『최선이었습니다. 더 지체했다면 가스를 살포했어도 생존하기 어려웠을 겁니다. 헬멧이 사령관님의 호흡기는 보호하고 있었기에 감수할 만한 위험이라 판단했습니다.』
감정도 없는 초인공지능에게 따져서 뭐할까? 무엇보다 초인공지능의 최우선 순위가 바로 사령관이다.
따라서 이한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그래. 어련히 알아서 계산했을까? 생존을 위해 그게 최선이었다면 최선인 거겠지. 그보다 안정이 필요하다고 했나?”
『예. 해독은 완벽하게 이뤄졌지만 크락투에게 당한 상처는 회복되지 않았습니다.』
“대답해봐. 이 상황에서 안정을 취할 수 있는 여유가 있을 것 같아?”
『현 상황을 고려하지 않았다면 권고사항이 아니라 엄수사항으로 안내했을 겁니다. 내부장기에 극심한 타격을 입었기에 무리하시면 사망하실 수도 있습니다. 의료 시설을 재건설하여 적절한 치료를 받으시기 전까지는 절대적인 안정을 취하셔야 합니다. 게다가 현재 아군이 할 수 있는 일도 없습니다.』
그건 당장 컨트롤 센터만 봐도 제 기능을 하지 못할 정도로 부숴졌으니 충분히 예측 가능한 일이었다.
워의 보고가 다시 이어졌다.
『사령관께서 아셔야 할 내용이 있습니다. 급박한 상황으로 인해 선조치 후보고합니다. 엠파이어 측에 저희의 위치를 전송했습니다.』
“뭐? 그게 무슨 소리야? 엠파이어에게 우리 위치를 전송해? 미친 거냐?”
에리오가 크게 소리쳤으나 워는 어떤 대답도 하지 않았다.
“왜?”
이한이 반문하고 나서야 중성적인 음성으로 답변했다.
『사령관께서 생존을 최우선 순위로 명령하셨고 우선순위인 ‘생존’에 입각해 판단했을 때 이 행성에 남아있는 것보다 엠파이어의 포로가 되는 것이 생존확률이 높다고 판단했습니다. 하여 승전한 엠파이어 함대에 아군의 위치를 전송했습니다.』
“그 함대는 우리 기지를 파괴한 주범이다! 놈들이 주포 공격으로 이 지경으로 만들지만 않았다면 이렇게까지 처절하게 당하지 않았을 거야! 그런데 지금!”
빌리 역시 분노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고함을 질렀다.
그것을 가만히 듣고 있던 이한이 답답한 심정을 감추지 못하고 버럭 분노를 터트렸다.
“젠장! 엠파이어니 유니온이니 그딴 건 모르겠고. 미친 괴물들이 이곳에 득실거린다는 건 너무나 잘 알겠다. 엠파이어든 엠파이어 할아버지든 나타나면 제발 우리 좀 데려가 달라고 애원해야 할 판이야. 이 괴물 놈들을 겪고도 상황 판단이 안 되나? 크락투 아가리에 잘근잘근 씹혀봐야 아 씨발 내가 그때 엠파이어 놈들 포로라도 될 걸 이럴 거냐? 정신 차려!”
이한의 강한 질타에 에리오와 빌리 모두 침음을 뱉었다.
“음.”
“으흠.”
저들이 강한 불만을 지녔다는 걸 모를 정도로 아둔하지 않았지만 그런 그들은 내버려 두고 다시 워에게 질문했다.
“그래서 대답은?”
이게 가장 중요한 거다. 제국 측의 대답이 무엇인지가 말이다.
11. 레알 튜토리얼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