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mmander of the Space Gamer RAW novel - Chapter 11
11. 레알 튜토리얼.
『함대가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곳에 신호를 보냈으나 어떤 답신도 오지 않았습니다. 애당초 아군의 신호가 엠파이어 함대에 닿지 않았을 확률도 높습니다.』
이한은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워에게 되물었다.
“뭐? 그건 또 무슨 황당한 소리야?”
『전투 후 저들이 이미 안전지역으로 워프했다면 함대의 위치를 정확히 계산했더라도 아군의 신호가 닿을 수 없습니다. 실태를 파악하고자 해도 현재 아군은 그러한 함대의 위치나 더 먼 곳에 신호를 보낼 만한 역량을 갖추고 있지 못합니다.』
“무슨 해결책이 있어서 휴식을 취하라는 게 아니었나?”
『현재 아군은 구조를 기다리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습니다. 엠파이어의 도움도 얻을 수 없는 일련의 상황을 고려할 때 사령관께서 휴식을 취하시는 건 현재로서 합리적인 판단입니다.』
합리적? 이건 무슨? 어차피 뒈질 테니 편안히 죽음을 기다리라는 것도 아니고. 인상을 찌푸린 이한은 빌리와 에리오 등을 번갈아 가며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지금 나만 답답한 건가?”
그때 워의 안내가 급히 울려 퍼졌다.
『주변에 크락투 10마리가 출현했습니다. 뒤늦게 합류한 개체로 보입니다. 즉시 전투에 대비하십시오.』
이한은 상체를 일으켜 세우며 으르렁거리듯이 말했다.
“휴식… 취하라며?”
『상황이 바뀌었습니다. 크락투에게 유용한 가스는 조금 전 전투로 이미 모두 소진되었습니다. 직접 격퇴하시는 방법 외에는 없습니다. 도망은 불가능합니다.』
이한은 남은 병사를 바라봤다. 겨우 다섯 명이다. 병사들의 스틸아머 역시 조금 전 전투를 끝으로 배터리가 다했는지 스틸아머조차 착용하고 있지 않았다.
“라이플도 스틸아머도 없이 대체 무엇으로? 맨손으로 저 새끼들을 죽일까?”
초진동검이 있긴 하지만 스틸아머의 보조가 없이는 놈들의 거죽도 제대로 베지 못할 거다.
그때 빌리의 말이 이어졌다.
“몸을 피하십시오. 저희가 놈들을 상대하겠습니다.”
에리오 역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빌리의 말대로 어서 피하십시오.”
미간을 좁힌 이한은 이마를 짚었다.
이 난리통에도 살아남은 다섯 명의 병사는 매우 뛰어난 군인들이겠지만 택도 없다. 두 배에 달하는 크락투를 라이플도 없이 무슨 수로? 센터에서 그나마 이만큼 버틴 것도 워의 적절한 도움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런데 지금은 워의 도움도 받을 수 없고 스틸아머조차 없다. 또다시 죽음이 훌쩍 다가왔지만, 놀랍게도 이한은 담담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마음은 눈물 나게 고맙다만 대체 어디로 피할까? 그러니 죽더라도······. 어떻게든 한 마리는 죽인다.”
‘하아. 진짜 이건······. 내가 부귀영화까진 바라지도 않았다. 젠장!’
그때 외부에서 요란한 사격 소리와 함께 크락투의 괴성이 울려 퍼졌다.
키에에엑!
키에엑!
두두두두!
두두두!
“설마?”
에리오가 반문할 때 이한이 워에게 급히 물었다.
“워?”
『시에라 중위의 신호를 확인했습니다. 시에라 중위가 맞습니다.』
이한은 주먹을 꽉 움켜줬다. 튜토리얼하면 시에라다.
‘그 시에라가 허무하게 죽었을 리가 없지!’
*
능선 저편에서 바람처럼 나타난 장갑차는 센터를 향해 달리던 크락투에게 총탄세례를 퍼부었고 그래도 죽지 않은 개체는 그대로 받아버렸다.
콰아앙!
키에에엑!
방어에 특화된 장갑차에 치이고도 크락투는 형체가 거의 변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충격까지 이기지 못한 모양인지 쓰러진 크락투는 혀를 길게 내빼고 어떤 미동도 하지 않았다. 다만 그 상태만으로는 기절했는지 죽었는지 판단하기 어려웠다.
빠르게 센터 주위의 크락투를 처치한 장갑차량은 부서진 센터 깊숙이 진입했다.
부우웅! 부웅!
차량의 거친 엔진소리가 우렁차게 울려 퍼졌다.
끼이이익! 덜컥!
이한 등이 있던 사령관실 가까이에 급정차한 장갑차의 문이 벌컥 열렸다.
“사령관님! 서둘러 탑승하십시오.”
그녀는 바로 시에라였다.
장갑차량을 이끌고 나타난 시에라가 다급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당장 그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이한은 에리오 등의 도움을 받아 즉시 초인공지능 ‘워’를 센터에서 분리한 뒤 그들과 함께 차량에 탑승했다.
“중위님! 자원을 확보하신 겁니까?”
에리오가 질문했지만, 시에라는 이한에게 보고했다.
“저편에서 괴생명체들이 이곳을 향해 질주하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서둘러 피신하셔야 합니다.”
그런 뒤 시에라는 이한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소리쳤다.
“탑승 완료! 출발해!”
“알겠습니다.”
장갑차를 몰던 병사는 우렁차게 대답하며 급출발시켰다.
부아아앙!
급출발과 급회전으로 인해 몸의 균형이 무너지자 손잡이를 잡아 몸을 지탱한 이한은 장갑차를 통해 거친 노면의 상태를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덜컥덜컥! 쿵!
내부장기가 손상되었다더니 차량이 흔들릴 때마다 통증이 심화되는 게 느껴졌다.
고통에 인상을 찌푸리던 이한은 시에라에게 말했다.
“안전한 곳이 있나?”
“예. 적절한 장소가 있습니다. 그곳이 이곳보다 안전하다고 장담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몸을 피신할 만한 지역일 겁니다.”
“워! 건설 로봇은…”
이한은 초인공지능 ‘워’에게 질문을 던지려다가 전처럼 대화를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는 것을 인지하고 분리된 기묘한 장치를 바라봤다. 신비롭게 빛나고 있는 장치였는데 대체 어떤 원리로 만들어진 것인지 가늠할 수도 없었다.
‘이 작은 장치가 테라 기술의 총아라고 할 수 있는 것이라니······.’
그 생각을 시작으로 여러 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떠돌았지만, 이한은 잡생각을 잠시 뒤로 하고 시에라에게 말했다.
“장갑차 말고 뭘 또 발견했지?”
“작동을 멈춘 기갑병들과 건설 로봇을 발견했습니다. 자율모듈로 어떻게든 재작동하려고 했지만, 장갑차가 전부였습니다. 장갑차의 탑승 인원수 한계 때문에 남은 병력은 현재 탐사지역을 방어하고 있습니다.”
좋은 소식이다. 개미 똥구멍만한 좋은 소식이라고 해도······.
이한이 입을 다물고 생각에 잠기자 시에라가 다시 질문을 던졌다.
“그나저나 기지가 괴생명체에게 습격을 받은 겁니까? 정확히 무슨 일이 일어난 겁니까? 아니 그보다 아군의 지원은 없습니까?”
시에라의 연이은 질문에 이한이 고개를 저었다.
“유니온 함대가 패배했다. 워의 보고에 의하면 엠파이어 함대도 이 구역에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보이고. 그 괴생명체는 크락투라고 명명했… 쿨럭!”
이한은 말을 하다가 피를 토했다.
“사령관님!”
시에라 등이 급히 그를 부축하려 했지만, 손을 펴서 그들의 부축을 거부했다. 입가로 흐르는 피를 손등으로 닦아낸 이한은 붉게 변한 치아를 드러내며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큭큭큭. 아주 지랄이네. 지랄이야. 그래서 자원은?”
시에라는 걱정되는 눈빛으로 그를 바라봤지만 더는 안부를 묻지 않았다. 말뿐인 위로. 지금 상황에서 그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프로젤과 세라메틱이 함유된 광물을 발견하긴 했습니다. 다만 그 지역에서 기갑병을 비롯한 기계 장치가 먹통이 된 연유를 알 수 없습니다.”
“위험하다는 소리를 하고 싶은 모양인데 그래도 아까보다는 낫겠지. 소대 총원이 25명이었나?”
“예. 그렇습니다.”
크락투 습격에서 살아남은 생존자는 자신까지 6명, 모두 합쳐봐야 31명이 전부다.
‘크락투가 득실거리는 행성에서 병력이라곤 고작 스페이스 마린 한 소대가 전부라니······. 이렇게는 안 죽는다. 내가 이렇게는 안 죽어! 억울해서라도 이렇게는 안 죽는다. 씨발.’
독기어린 눈빛으로 마음을 다잡은 이한은 입에서 다시 터져 나온 핏물을 팔뚝으로 거칠게 닦아냈다.
시에라 등은 그런 이한의 모습을 말없이 주시했다.
*
프로젤과 세라메틱은 신비의 물질이다. 이 미세한 입자는 첨단과학으로도 할 수 없는 신비를 가능케 만든다.
원자나 분자구조를 합성하여 필요한 물질을 만들어내거나 워프를 가능하게 만들거나 ESP 능력자, 곧 초능력자를 탄생시키는 등 이 두 물질은 신비 그 자체이자 어떤 것으로도 대체 불가능한 자원이다.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워프나 물질변환 등이 가능해진 것이 아니라 두 물질이 존재하기에 앞서 거론한 일들이 가능해졌다는 소리다.
초인공지능 역시 프로젤과 세라메틱의 산물로 프로그램의 조합으로 이뤄진 인공지능과는 궤를 달리한다.
인류는 두 물질을 발견한 후에야 비로써 대우주 시대의 기틀을 마련할 수 있었고 두 물질을 확보하지 못한다면 인류가 이룩한 우주 문명은 거품처럼 사그라질 것이다.
일단 워프부터 불가능해진다. 인간의 수명은 정해져 있는데 초공간항해 중 하나인 워프를 사용할 수 없다면 빛의 속도로 이동해도 수백 수천 광년을 넘어서는 광활한 우주를 무슨 수로 넘나들 수 있을까?
간단히 테라는 크게 제국, 연합, 중립으로 나뉘지만 세 세력의 물리적 거리만 해도 수십에서 수백 광년은 된다.
일례로 유니온의 모항성계 중 하나인 태양계에서 가장 가까운 항성계인 알파 센타우리 항성계만 해도 4.37광년은 떨어진 거리에 있다.
워프가 불가능해진다면? 세 세력은 말할 것도 없고 같은 세력끼리도 사실상 교류가 불가능해진다.
신비의 두 물질, 프로젤과 세라메틱의 가치는 당연히 그 어떤 것에도 비할 수 없고 어떻게든 확보해야 하는 자원이다. 고급전략자원인 초인공지능 등을 이러한 위험지역에 서슴없이 파견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한은 프로젤과 세라메틱이 함유된 광물 주위에 건설 중인 컨트롤 센터를 바라봤다.
서브 시스템을 구축하는 장치조차 없는 상황이라 2기의 건설 로봇 중 1기만이 워의 지시를 따라 건설 중이었지만 비교적 풍부한 자원으로 인해 빠르게 건설되고 있었다.
그래도 ‘스페이스 워’에선 난이도와 상관없이 센터 정도는 기본으로 지급했다.
한데 당면한 현실은 센터도 없고 시작부터 헬 난이도다.
‘튜토리얼······. 헬급 레알 튜토리얼이라고 해야 하나?’
게임승률은 10%도 되지 않지만 맞서 싸울 적이 무슨 고요한 아침의 고인물만 아니라면······. 아니 그게 누구든 간에 씹어먹어 주마!
이한은 파리해진 안색만큼이나 서슬 퍼런 눈빛으로 센터를 바라봤다.
‘살아남을 거다. 반드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