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mmander of the Space Gamer RAW novel - Chapter 113
110. 폭풍 (2) >
110.
테라의 영역권으로부터 8만 광년 정도 떨어진 곳에 도착한 수송선은 이미 분해되어 컨트롤 센터 건설에 사용되었다. 그런고로 이한과 시에라가 타고 있는 수송선은 이한이 세운 계획을 위해 새로 만들어진 수송선이었다.
다만 함선마다 아군인지 적군인지 가늠할 수 있게끔 식별 코드가 존재하는데 당연히 이것을 위조하거나 바꾸는 것은 매우 어렵다. 설혹 함선의 함장이 바꾸려고 해도 상당한 시간을 들여야만 조작할 수 있게끔 되어 있었다.
하지만 이한에겐 워가 있었고 식별코드가 없더라도 새로 위조할만한 시간도 충분했으며 무엇보다 본래의 식별코드를 보유하고 있었다.
“식별 코드 동일합니다. 디카르마타의 수송선으로 확인되었습니다.”
루퍼스는 미미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사령관 한 이드라실···. 아주 적절한 때에 나타났군. 즉시 구조하라.”
“알겠습니다.”
*
수송선을 격납고에 착륙시킨 이한은 시에라와 함께 밖으로 나왔다.
척척.
기존 테라의 나노슈트를 걸친 이한과 시에라는 이내 곧 마중 나온 테라의 군인들을 마주할 수 있었다.
“신원을 다시 확인할 수 있겠습니까?”
“얼마든지.”
장교로 보이는 자가 정중하게 요청하자 이한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이며 헬멧을 벗었다.
피슈웃!
피슛!
시에라 역시 이한과 마찬가지로 헬멧을 벗고 그 미모를 드러냈다.
하지만 테라 군인들의 시선은 온통 이한에게 쏠려있었다. 그 이름도 유명한 한 이드라실이 생환했으니까. 크락투와 클론 군단을 쓸어버린 테라의 자랑스러운 영웅이 아니던가?
척!
장교는 이한의 신원을 확인하자마자 즉시 군례를 취하며 깍듯하게 대우했다.
“스미스 중위입니다. 한 이드라실 사령관님. 만나 뵙게 되어서 영광입니다. 혹여 이쪽 분께서는 시에라 소령이십니까?”
그 말에 이한이 아니라 시에라가 대답했다.
“시에라 소령입니다.”
그제야 다른 군인들의 시선이 시에라에게도 향했다. 이한의 일대기가 널리 알려지며 초창기부터 그와 함께한 시에라나 빌리 등도 덩달아 유명해졌다.
아예 둘을 연인관계로 설정해(실제로 연인관계지만) 써나간 스토리도 상당히 많았기에 시에라는 이한을 제외하면 가장 많은 명성을 얻은 사람이었다.
따라서 군인들은 휘둥그레한 눈으로 이한과 시에라를 훔쳐보기 여념이 없었다.
그때 다시 검은 피부를 지닌 스미스 중위가 입을 열었다.
“루퍼스 사령관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이쪽으로 오시지요.”
이한은 고개를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 뒤 그를 따라 이동했다.
*
함교에 들어서자 루퍼스 사령관이 이한에게 성큼성큼 다가와 이한에게 손을 내밀었다.
“사령관 한 이드라실.”
이한은 그 손을 잡으며 입을 열었다.
“루퍼스 사령관님. 오랜만입니다.”
“허허허. 오랜만이라. 죽음에서 돌아온 사람답지 않게 소탈한 발언이로군. 어떻게 된 건가?”
“저도 정확히 모르겠습니다. 코어를 폭발시키고 곧바로 수송선을 타고 워프했던 것까지가 제가 기억하는 전부입니다.”
이에 루퍼스가 승무원에게 질문을 던졌다.
“한 이드라실 사령관이 실종된 지 얼마나 지났지?”
“현시점을 기준으로 7개월이 넘었습니다.”
루퍼스는 다시 이한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그렇다는군.”
이한이 8만 광년 떨어진 곳에서 다시 테라의 영역권으로 도달했을 때는 6개월 남짓한 시간이었기에 도착한 후 벌써 1개월이라는 시간이 흐른 시점이었다.
그러나 그런 모든 사실을 일일이 말할 이유가 없었다. 따라서 이한은 대수롭지 않게 루퍼스의 말을 받았다.
“7개월이라. 7년이나 70년이 아닌 게 다행이군요.”
루퍼스는 그런 이한을 유심히 바라보다가 예르코에게 질문을 던졌다.
“이 일을 어떻게 생각하나?”
“코어권에서 워프는 금기시되어 있습니다. 그런 코어가 폭발하는 상황이었으니 한 이드라실 사령관님께서는 아무래도 차원의 균열에 휘말렸던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미래로 이동했다?”
“그보다는 시간관념이 다른 차원을 경유하며 시간의 뒤틀림이 일어났던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게 가능한 건가?”
“알 수 없습니다. 테라는 워프 시 경유하는 공간이 어떤 공간인지, 아니 그곳이 공간인지 무엇인지도 파악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저는 가능성이 높은 추측을 말씀드렸을 뿐입니다.”
루퍼스는 턱의 수염을 매만지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어떻게 생환했는지는 중요한 게 아니지. 생환한 그 사실이 중요할 뿐.”
루퍼스는 이한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생환한 것을 환영하네. 사령관 한 이드라실.”
“감사합니다. 루퍼스 사령관님.”
가볍게 손을 두어 번 흔들던 루퍼스는 손을 놓고 시에라를 바라봤다.
“시에라 소령인가?”
“예. 사령관님.”
루퍼스는 시에라가 강력한 ESP 능력자라는 것을 상기했다. 테라네스에서 그녀의 죽음을 크게 안타까워했을 정도로 강력한 인재가 바로 시에라 소령이었다.
자연스럽게 이한과 시에라가 우주모함 디카르마타에서 탈출하는 광경이 상상되었다. 시에라 소령의 역할이 상당했을 것이다.
“역시 생환한 것을 환영하네.”
“감사합니다. 루퍼스 사령관님.”
시에랑의 정중한 군례에 고개를 끄덕이던 루퍼스는 다시 이한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지금 막 생환한 사람에게 꺼낼 주제는 아니지만, 현재 테라의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네.”
“그렇습니까?”
하지만 이한은 짧게 반문할 뿐이었다.
“짐작하고 있었는가?”
“7개월이라는 시간이 흘렀다고 언급하셨을 때 짐작하긴 했습니다만 사령관님의 발언을 들으니 확신할 수 있겠습니다.”
루퍼스는 굳은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맞네. 넵튠 8함대의 지휘권이 회수조치 되었네.”
“그말인 즉 저는 이미 사망처리 되었다는 말씀이군요.”
“물론이네.”
모르지 않았다. 다른 누구도 아닌 루퍼스 사령관의 함대가 경계하는 외곽지역에서 모습을 드러낸 것도 이것을 염두에 뒀기 때문이었다.
사망처리 된 사람을 죽이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생환한 자가 자신들의 이권을 빼앗아갈 인물이라면 더더욱.
루퍼스 사령관이라고 안심할 수는 없다. 루퍼스 사령관이라고 야심이 없는 인물은 아니니까.
그러나 루퍼스는 기본적으로 평화를 지키길 원하는 사람이다. 누구보다 치열한 전선에서 싸웠던 경험때문인지 아니면 루퍼스의 성향 자체가 그래서인지는 알 수 없어도 루퍼스 사령관은 기존의 체계를 유지하고자 하는 대표적인 인물 중 하나였다.
“음. 잠시 나와 함께 걷지.”
이한이 고개를 끄덕이자 루퍼스는 함교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이한 역시 마찬가지였다.
루퍼스는 말없이 걸음을 옮기다가 통로에 한편에 자리한 버튼을 조작했다.
띡. 띠딕!
챠르르륵!
그러자 통로 전체가 투명해지며 우주의 광경을 담아내고 있었다.
“광활한 우주. 광활한 자원이 인류 앞에 펼쳐져 있네. 서로 다툴 이유가 없네. 사이좋게 나눠 가지기만 한다면 더 많은 걸 찾을 필요도 없는 상황이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가 않지.”
“···.”
“자네를 오해했음을 용서하게. 능력이 뛰어난 젊은이들은 그만큼 강한 야망을 품고 있기 마련이니 자네 역시 그런 인물로 봤네. 한 이드라실 자네에게 호의가 있긴 했네만 경계했던 것도 사실이지. 그건 자네도 느꼈을 걸세.”
“똑바로 보셨습니다만?”
루퍼스는 고개를 흔들며 이한에게 말했다.
“그랬다면 크락투의 트롤 거함과 전투를 치르지 않았을뿐더러 싸웠더라도 적당히 싸웠겠지. 어떤 피해가 발생하든 그 사실만으로도 자네의 입지가 강화되지 않는가? 심지어 자네는 마지막 그 순간에도 8함대장 아미드에게 그 일을 맡기지 않고 본인이 직접 코어를 폭발시키는 위험을 감수하지 않았나? 이유야 어쨌든 자신을 위해 타인을 아무렇게 희생하는 야심가의 모습은 아니었네.”
“음.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만 이런 말을 꺼내시는 사령관님의 저의를 모르겠습니다.”
“아니 알고 있네. 자네라면 모르지 않겠지. 어떤가? 함께 하겠는가?”
“이제는 저를 경계하지 않으십니까?”
우주를 바라보던 루퍼스는 옆에 선 이한을 바라보며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허허허. 내 나이가 몇이라고 생각하는가?”
갑자기 나이는 왜 묻는단 말인가? 이한이 살짝 미간을 좁히며 루퍼스를 바라보자 그 의문을 읽었는지 루퍼스는 미소를 지은 채 다시 말했다.
“자네도 알다시피 내게 남은 날이 그리 길지는 않아. 허어. 정말 많은 전투를 치렀네. 야심을 품고 이곳까지 달려오고 보니 내게 남은 건 처절한 전투밖엔 없구만. 이젠 그 과거가 내 미래마저 결정지으려고 하네. 테라의 상황은 나날이 악화되고 있네. 엠파이어가 내전을 일으켰듯 유니온 역시 그럴 날이 머지않았어. 진한 피냄새를 맡을 수 있네.”
“음.”
“무수히 많은 전투를 치렀고 때론 그 사실을 뿌듯해하며 즐긴 이가 평화를 주장하다니···. 맞아. 위선이네. 위선이지. 그러나 위선이라고 해도 다수의 생명을 보존할 수 있다면 그것도 괜찮지 않나? 클클.”
이한이 침묵을 지키고 있자 루퍼스 사령관이 입을 열었다.
“내가 자네를 경계하고 안 하고는 이제 중요하지 않아. 자네는 이미 폭풍이네. 그 폭풍이 자네의 삶을 어그러뜨릴지 아니면 테라를 어그러뜨릴지 아무것도 알 수 없네만 폭풍이 불어올 거라는 사실을 이용할 수는 있겠지.”
말을 잠시 멈춘 루퍼스는 다시 입을 열었다.
“정처 없이 떠돌지 말고 UNA에 가담하게.”
“감사하긴 하나 너무 갑작스러운 제안이군요. 일단 UNC나 UNP의 제안도 들어봐야지 않겠습니까?”
“괜한 적을 만들 것이 두려운 것인가? 말했지만 자네는 이미 폭풍이네. 아! 모를 수도 있겠군. 유니온의 영웅은 이제 내가 아닐세. 사령관 한 이드라실. 바로 자네라네. 그러니 당장은 어떤 세력이든 자네를 반길 것이네. 한 이드라실이라는 날카로운 명검을 휘두르면 원하는 바를 취할 수 있을 테니. 그러나 유니온에서 자립해 자네가 거추장스러워질 때 저들은 반드시 자네를 토사구팽할 걸세.”
“UNA라고 다르겠습니까?”
“아니 그럴 수 없을 걸세. 내 제안을 받아들인다면 새턴 7함대의 지휘권을 자네에게 넘기도록 하지. 그럴 권한 정도는 내게 있네. 자네 또한 지휘권을 인수받을 자격이 충분한 사내지. 이런 자네를 UNA에서 토사구팽할 수 있다고 보나?”
루퍼스 사령관이 자신을 죽이지 않을 건 알고 있었다. 루퍼스 사령관이 자신이 생존해 있음을 유니온에 알리면 작금의 혼란한 상황을 이용해 여러 이득을 쟁취할 생각이었다. 그러니까 루퍼스 사령관은 생존사실이 널리 퍼질 때까지 보호해주는 보호막 정도로 여겼다.
따라서 이한은 루퍼스 사령관이 자신이 보유한 함대의 지휘권을 인계하려고 할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왜 그렇게까지 하시는 겁니까?”
“말하지 않았나? 내 남은 날이 많지 않다고. 슬슬 힘에 부치는군.”
“크락투도 때려잡을 수 있을 것처럼 보입니다만.”
“허허허. 말은 고맙군.”
웃음을 터트리던 루퍼스는 이내 곧 차가운 눈빛으로 입을 열었다.
“한번 손에 넣으면 놓기 싫은 것이 권력이라네. 그건 나 역시 마찬가지네. UNA라고 다르겠는가?”
이한은 루퍼스 사령관의 말에 떠오르는 인물이 있었다.
“젤린도 보르딘. 그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비단 그뿐일까? 그래도 자네는 사리사욕을 위해 권력을 남용할 것 같지는 않더군. 물론 내가 잘못 봤을 수도 있겠지.”
UNC든 UNP든 UNA든 어떤 세력이나 개인의 독주 체제를 막기 위해 자신을 영입하려고 한다는 뜻이었다. 때문에 이한은 루퍼스의 말에서 젤린도 보르딘과의 사이가 그렇게 원활하지 않다는 것도 확인할 수 있었다.
“받아들이지 않으면 어쩔 생각이십니까?”
“미안하네만 내버려 둘 수는 없네. 말했지만 이제 자네는 가만히 있다고 끝날 만한 위치가 아니야. 게다가 자네는 이미 죽은 사람이지. 자네의 생환을 아는 것은 나뿐이고. 심지어 유니온에서 자네의 생환을 바라는 세력은 어디에도 없어. 내게 발견된 것이 한 사령관 자네에겐 행운에 가까운 일이네.”
“크락투와 클론 군단도 저를 죽이려고 들었지만 죽이지 못했습니다. 가능하다고 여기십니까?”
“글쎄. 불가능할 건 없겠지만 그러니 이렇게 제안하고 있지 않나?”
“주변에 슈퍼솔져들을 은신시켜 놓고 하실 말씀은 아니지 않습니까?”
루퍼스 사령관은 슬쩍 웃음을 터트리며 입을 열었다.
“오 눈치챈 건가? 크락투에게 생존한 게 확실히 운은 아니었던 모양이군. 클클. 모두 나를 호위하기 위한 병력일세.”
“퍽이나 그렇겠습니다.”
“그래서 거절할 텐가?”
“무엇 때문에 이리 다급하게 결정을 내리는 건지 모르겠지만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겠군요. 받아들이겠습니다.”
짐작되지 않는 부분이 없는 건 아니었다. ‘스톰’이라는 세력이 출몰한 상황에서 또다시 구도를 바꿀 수 있는 ‘한 이드라실’이 나타나자 발 빠르게 협력관계를 구축하려 한 것이겠지. 단순히 협력관계 수준이 아니라 동업자로 만들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지만 말이다.
“클클클. 거보게. 호위병력이라 하지 않았나.”
“사령관님의 함선 아닙니까? 그러니 그렇다고 하지요.”
“뭐? 하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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