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mmander of the Space Gamer RAW novel - Chapter 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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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 유명세.
“한 이드라실 사령관이 곧 모습을 드러낼 것으로 보입니다. 본디 한 사령관은 장교 출신으로 야전 지휘관으로서 혁혁한 공을 세웠고 사령관에 오른 후에는 그야말로 타의 추종을 불허할 불후의 공훈을 세웠습니다.”
“예. 그렇습니다. 한 사령관이 없었다면 먼저는 클론 군단과 후에는 크락투에게 테라 전 세력이 극심한 위기에 처했을 겁니다. 한 사령관은 유니온의 영웅일 뿐만 아니라 테라의 영웅이라 불러야 합니다.”
“뭐 이미 그렇게 불리고 있죠?”
“예. 그렇습니다. 최근 들어 스톰이라는 자가 한 사령관과 같이 언급되고 있기는 한데 급이 다르지요. 처했던 상황이나 상대한 적만 상기해도 그 차이는 너무나 명확합니다.”
“일어난 전투에 대해서도 다시 설명해주시겠습니까?”
“제가 따로 설명할 필요도 없이 이미 많은 분들이 한 사령관의 전투를 분석했습니다. 그의 전투는 폭풍우에 휩싸인 배에서 바늘귀에 실을 통과시키는 것만큼 어려웠습니다. 놀라운 건 한 사령관이 치른 대다수 전투가 그랬다는 겁니다. 그중 하나라도 실패했다면 저희는 오늘 한 사령관을 볼 수 없었을 겁니다.”
“하하하. 바늘귀요? 그런 걸 쓰는 사람이 아직 있긴 합니까?”
“없지요. 그래서 말씀드리는 겁니다. 지금 화면에 나오는 광경은 한 사령관이 클론 군단의 기지를 파괴하는 광경으로.”
그때 캐스터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사내가 흥분한 목소리로 해설자의 설명을 끊어내고 소리쳤다.
“아! 수송선의 문이 열립니다. 한 사령관이! 한 사령관이 곧 모습을 드러냅니다. 문이! 문이 열렸습니다! 한 사령관! 한 사령과아안! 여러분 사령관 한 이드라실입니다!”
현 상황을 중계하던 캐스터가 목청이 터져라 외치기 무섭게 천지가 떠나갈 정도의 함성이 사방에서 울려 퍼졌다.
와아아아아아!
“여러분! 들리십니까? 하늘에서 우레가 쳐도 지금의 함성에 묻혀 사라질 겁니다. 한 이드라실이에요! 그가 살아 돌아왔습니다! 자랑스런 유니온의 영웅! 테라의 영웅! 한 이드라실입니다.”
당연히 중계는 한 곳에서만 이뤄지지 않았다. 마치 판으로 찍어내는 것처럼 거의 동시다발적으로 이러한 일들이 일어났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우와와와와!
함성이 어찌나 우렁찬지 고막을 울리다 못해 머리까지 지끈거리게 만들 지경이었다. 수송선의 문이 열리기 무섭게 이한의 일거수일투족을 촬영하기 시작했고 사진은 더 말할 것도 없었다.
그렇게 촬영된 영상은 다시 홀로그램화되어 테라 영역권 전역에 전송되었다. 지금 이한 주변에 몰려든 사람이 아니더라도 우주 저편 어디서든 지금의 분위기를 간접적으로나 전달받을 수 있었다. 아닌 게 아니라 이한의 귀환은 일종의 거대한 축제와 같았다.
*
붉은빛이 감도는 금발을 가진 사내가 들고 있던 잔을 거칠게 집어던졌다.
챙그랑!
향락과 사치의 극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의 광경이 사내 주변에 펼쳐져 있었는데 방금 던져진 잔조차 어찌나 화려한지 그 자체로 예술품이었다.
잔에 담겨 있던 피처럼 붉은 액체가 바닥에 흩뿌려졌는데 비릿한 향이 아니라 향긋한 향이 미미하게 퍼져가는 것을 봐선 레드와인으로 보였다.
다만 잔의 액체는 바닥에 떨어지기 전에 허공의 홀로그램을 먼저 더렵혔다. 다시 말해 사내가 홀로그램을 향해 잔을 던졌다는 뜻이었다. 홀로그램은 바로 이한의 모습을 전송하고 있었다.
사내가 다시 손을 내밀자 다른 특색을 가진 화려한 잔을 아리따운 여인이 가져왔다. 여인은 거의 헐벗었지만 걸친 장신구나 속옷처럼 보이는 옷가지도 어찌나 사치스러운지. 당연히 여인의 미모 역시 평범한 수준을 넘어섰다.
잔을 받은 사내는 잔을 휘휘 돌리며 앞에 선 군인에게 입을 열었다. 검은 바탕에 붉은 문양이 들어간 제복을 입은 엠파이어의 군인이었다.
“죽일 놈이 하나 더 늘었군.”
“폐하의 뜻대로 이뤄질 것입니다. 하오나 당분간 함부로 건드릴 자가 아니옵니다.”
“그래. 모르지 않아. 그래서 ‘스톰’의 기술은 어떻게 됐지?”
“특수부대를 파견했지만 송구하옵게도 모두 실패했습니다. 저들을 치려면 함대를 구성해야 하는데 현 상황이 너무 팽팽해서 함부로 병력을 이동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엠파이어의 황제 칼란두를은 눈매를 좁히며 보고하던 사내를 바라보다가 가볍게 손짓했다. 그러자 사내는 고개를 숙이며 뒤로 급히 물러났다.
칼란두를이 말없이 주변을 둘러보자 시중들던 인원들까지 전부 밖으로 나갔다.
사치스러운 황좌에 홀로 턱을 괴고 앉아있던 칼란두를은 소리 없이 전송되고 있는 홀로그램을 무심히 바라봤다. 그렇게 침묵을 지키던 칼란두를이 천천히 말을 꺼냈다.
“너희가 바라던 자가 저자가 맞나?”
혼잣말이라도 하는 것일까? 당연히 아니었다.
“그렇습니다. 폐하.”
짧은 대답과 함께 어둠 속에서 한 사내가 모습을 드러냈다. 피처럼 붉은 눈을 가진 사내였다.
칼란두를은 무심한 표정으로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럼 가서 죽여.”
“폐하. 폐하도 아시다시피 저희 역시 무적이 아닙니다.”
“전 테라를 쓸어버릴 것처럼 살기등등할 때는 언제고 이거 왜 이러나?”
“지금도 그렇게 하고 싶습니다.”
그 말을 꺼내기 무섭게 붉은 눈의 사내는 마치 거인의 손이 그를 잡아다 땅에 메다꽂는 것처럼 바닥에 처박혔다.
콰아아앙!
단단한 암석이 산산이 박살 날 정도로 처박혔으니 생존확률은 희박해 보였다. 바닥에 어찌나 깊이 박혔는지 사내의 모습이 보이지도 않았다.
콰직! 콰아앙!
푸스스스.
그러나 붉은 눈의 사내는 잔해를 헤집고 다시 바닥 위로 올라섰다.
척!
“너희는 버러지다. 다시 내게 불경한 태도를 보인다면 내가 직접 너희를 쓸어버릴 것이야. 내가 시키면 시키는 대로 기라면 기고 엎드리라면 엎드려라! 알겠나?”
광기와 살의가 넘실거리는 칼란두를의 눈을 마주하던 붉은 눈의 사내 클라크는 고개를 숙이며 입을 열었다.
“심기를 어지럽혔음을 용서하십시오.”
“그래. 그래야지. 지금까지 엠파이어가 얼마나 많은 실험을 자행했을 것 같나? 그리고 그 연구의 혜택을 누가 가장 많이 봤을 거라 생각하나? 내가 너희를 거두라 명한 건 너희가 좋은 실험체였기 때문이야. 그리고 그 실험은 아주 순조롭게 이뤄지고 있지. 그러니 모조리 폐기 처분되고 싶지 않다면 그 쓸모를 내게 증명해야만 할 거다. 클론.”
클론 군단의 존재가 이한으로 인해 알려지자마자 칼란두를은 저들의 샘플을 원했다. 온갖 극악한 실험도 마다하지 않는 인물이었으니까.
따라서 타카스 행성이 파괴되고 클론 군단이 괴멸하긴 했으나 모조리 사라진 건 아니었다. 바로 칼란두를의 보호 아래 생존해 있던 것이다.
엠파이어의 수도 엔두카를 침공한 미치광이 마이노르? 그는 몰랐겠지만, 불법적인 실험 뒤에는 칼란두를 황제가 언제나 버티고 있었다.
물론 칼란두를도 마이노르가 엔두카를 침공할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칼란두를이 파놓은 덫은 어디까지나 유니온을 향한 덫이었으니 말이다. 뭐 어쨌든 지나간 일이다.
“지루하기만 그지없는 일상 속에 예상을 벗어난 일들이란 흥미로움을 유발하지. 그러나 그게 계속되면 슬슬 짜증이 난단 말이야. 이제 이 놀이의 종지부를 찍어야겠어.”
쥐새끼가 한두 마리일 때는 재미있었는데 그 한두 마리 때문에 자신의 대계가 어그러지고 있었다.
적어도 지금쯤이면 유니온이 분열을 일으켰어야 했다. 그렇게 된다면 에메스토를 비롯한 반란분자를 쓸어버리고 갈가리 찢어진 유니온도 삼키고 암중에서 리퍼들을 움직여 뉴트럴까지 도모하면 전 세력을 손아귀에 쥘 수 있다.
여인과의 정사도 따라오지 못할 짜릿한 쾌감이 온몸을 휘감고 지나갈 것이다. 그때가 된다면 유약하고 무능한 모습을 더 이상 연기할 이유도 없겠지.
그런데 두 놈이 계획을 모조리 어그러뜨렸다.
원래대로라면 자신이 세운 대계의 가장 큰 방해물이 될 자들은 엠파이어와 유니온의 영웅으로 여겨지는 루퍼스와 에메스토 두 사람이다. 놈들이 건재하다면 대계는 물론 자신의 목숨도 위험해질 수 있었으니까. 적을 과소평가하는 우는 범하지 않는다.
따라서 놈들을 거꾸러뜨리기 위해 상당히 많은 심력과 시간을 투자했다. 그리고 성공적으로 약화시켰고 말이다. 에메스토가 자신을 향해 반기를 든 일? 그것 역시 칼란두를의 계획이었다.
엠파이어가 주춤거려야 유니온의 버러지들이 주제도 모르고 날뛰기 시작하고 그 버러지들이 알아서 루퍼스를 물어뜯어 약화시킬 테니까. 엠파이어에 이어 유니온까지 분열되었는데 뉴트럴이라고 가만히 있을까? 서로가 서로를 적으로 두는 대혼란의 시대가 벌어진다.
자신은 이런 상황을 음미하다가 보란 듯이 모든 걸 쓸어버리면 된다. 엔두카는 이미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었으니까.
그러나 예상 외의 존재가 대계의 뿌리를 뒤흔들고 있었다.
먼저는 한 이드라실. 뭐 상관없었다. 유니온 소속이니 놈을 이용해 루퍼스 사령관의 세력과 입지를 약화시키면 될 일이니까. 딱히 자신이 나설 필요도 없이 버러지들이 알아서 움직일 일이니 신경도 쓰지 않았다.
그런데 그 쥐새끼가 점점 더 커지더니 종국엔 자신의 심기를 뒤틀어버릴 정도의 명성을 얻었다. 당금 한 이드라실이 얻은 명성은 에메스토와 루퍼스의 명성을 합친 것처럼 강력한 수준.
삼대 세력 전체에서 무슨 영웅 취급을 받고 있으니 배알이 뒤틀릴 수밖에 없었다. 버러지들의 야망을 이용한다면 유니온을 분열시킬 확률이야 아직 많았지만, 놈이 가진 명성은 그 분열시기를 먼 미래로 바꿔버렸다.
정치적 능력과 야심이 강한 놈이라면 아예 유니온 제국을 만들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건 자신이 계획한 바가 아니었다.
둘째 스톰이라는 쥐새끼.
이 쥐새끼의 세력은 보잘 것 없었지만 자신의 수족과 같은 리퍼를(리퍼 역시 칼란두를이 가장 큰 뒷배라는 걸 거의 모른다.) 쓸어버렸음은 물론이거니와 뛰어난 기술을 들고 나왔다. 거기까지라면 자신이 놈들을 쓸어버리고 취하면 될 일인데 웬걸? 황당하게도 이 쥐새끼가 그 기술을 삼대 세력 전체에 팔기 시작했다.
주력 함대를 구성할 자원과 물자? 기술력에 비하면 터무니없이 싼 가격이었다. 놈들이 그 이상의 대가를 취할 수 있느냐의 문제가 남아있지만 어쨌든 어떤 한 세력에만 기술을 넘긴다면 그 세력이 남은 두 세력을 삼킬 수 있을 정도다.
그런 기술을 주력 함대 가격 수준으로 퉁쳐? 멍청한 건지 아니면 다른 속셈이 있는 건지 분간이 되지 않을 지경.
더 큰 문제는 그 기술을 에메스토에게 가장 먼저 팔아넘겼다는 점이다. 엔두카라면 승전하겠지만 전처럼 확실하지 않다. 무엇보다 이런 기술로 무장한 나머지 세력을 제패하는 건 절대로 불가능하다.
더욱이 이미 분열을 일으키고 전쟁을 일으켜야 할 놈들이 기술을 차지하겠다고 오히려 합종연횡을 일삼고 있었다. 분열시기가 훨씬 더 늦춰진 셈.
유니온 등의 분열이 일어난 후에 에메스토를 치려고 했는데 분열은 일어나지 않았고 이대로 시간을 끌면 기술을 얻은 에메스토군이 더욱 막강해질 테니 쓸어버리지도 않을 수 없는 상황.
일이 이렇게 된 이상 당초 세웠던 대계는 이미 완전히 틀어진 상황이다. 그렇다 보니 칼란두를은 한 이드라실과 스톰 두 사람에게 극심한 분노를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공교롭게도 두 사람 모두 이한이었지만.
그러니까 이한은 결과적으로 일타심피! 곧 크락투, 클론 군단 그리고 칼란두를 황제에게 빅엿을 날린 셈이다.
칼란두를은 서늘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한 이드라실을 죽여라. 삼대 세력 어디에 뒤집어씌워도 상관없다. 놈을 죽여! 분열을 일으키란 말이다.”
“알겠습니다.”
“둘째 스톰이라는 놈도 죽여라. 놈들이 기술을 팔 수 없게끔 침투해서 모조리 죽여버려라. 내가 암중에서 사용하는 세력을 네놈들에게 맡길 테니 나를 실망시키지 마라.”
칼란두를은 나태한 표정으로 클라크를 바라봤다.
“나는 상벌이 명확한 사람이다. 너희가 두 가지 일을 성공시킨다면 내가 너희에게 베푼 물자는 다 너희 것이다. 실패한다면 너희 족속이 살아날 방도 따윈 없겠지. 일단 너희를 쓸어버린 한 이드라실이 너희를 가만두려고 하지 않을 테니 말이야.”
클라크는 차가운 눈빛으로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염려 마십시오. 한 이드라실은 클론 군단의 원수입니다. 다른 자는 몰라도 그자만큼은 반드시 죽일 겁니다.”
“그래. 그래야지. 그게 너희 쓰레기들이 해야 할 일이다. 이만 꺼져라.”
클라크는 사나운 눈빛으로 칼란두를을 바라봤지만, 말없이 고개를 숙이며 어둠 속으로 몸을 숨겼다.
이 모든 치욕과 동족의 원한. 기다려라. 한 이드라실을 필두로 너희 인류에게 모조리 갚아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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