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mmander of the Space Gamer RAW novel - Chapter 12
12. 레알 튜토리얼 (2)
12.
컨트롤 센터를 가장 먼저 건설하는 이유는 초인공지능의 도움 없이는 프로젤과 세라메틱을 실질적으로 사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물질변환만 해도 그렇다. 원자구조 등을 합성하려면 두 물질을 적절하게 활용해야 하는데 그것을 감당할 지성체가 초인공지능이었다.
마찬가지로 워프 등과 같이 두 물질을 고도로 다루는 작업은 거의 반드시 초인공지능을 통해 이뤄졌다. 예외가 있지만 테라에겐 사실상 해당 사항이 없는 내용이다.
컨트롤 타워에 장착된 인공지능은 초인공지능이 정형화한 방식을 따라 단순히 물질을 배열할 뿐, 그 한계가 명확하다. 주입된 프로그램 그 이상은 수행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초인공지능은 프로젤과 세라메틱만 풍부하다면 테라 문명의 모든 것을 설계하고 생산할 수 있다. 역시 상부의 승인이 필요하지만 모든 권한이 해제된 초인공지능은 그 자체로 전략 병기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런 초인공지능에게 어떻게 의존성을 주입할 수 있느냐라는 점이 부각된다.
초인공지능은 첨단기술과 초능력이 결합된 산물이다.
프로젤과 세라메틱을 의지로 다룰 수 있는 극소수의 사람들을 ESP 능력자라고 부른다.
초인공지능 생성을 위해선 프로젤과 세라메틱을 적절하게 합성해야 하는데 이건 첨단기술로도 안 되기에 초능력자의 도움이 필요하다.
테라는 이때 인간에 대한 의존성이 부여되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이론적으로는 첨단기술을 사용하고 프로젤과 세라메틱까지 다룰 수 있는 초인공지능 역시 초인공지능 생성이 가능하다.
하나 바로 이러한 연유로 초인공지능을 활용한 초인공지능 생성은 엄금(嚴禁)사항이며 최고위 권한으로 묶여있는 내용이기도 하다. 이건 테라의 주요 세 세력 모두 동일하다.
의문점은 여전히 많다. 사령관이 사망하면 왜 권한이 회수되는지, 왜 단번에 대다수 권한을 승인하지 않는 건지 등등.
‘간단하게 프로젤과 세라메틱의 희소성과 특수성 때문이라고 축약해야겠지.’
그렇게 이것저것을 생각하던 이한에게 워의 보고가 이어졌다. 센터가 완공된 모양이었다.
『센터 주변으로 배리어를 생성합니다. 반갑습니다. 사령관님.』
이한은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채집 로봇 생산! 자원 채굴하고 정제소 건설해! 정제가 끝난 자원으로는 마린들 장비 변경하고 이어서 기갑병 생산을 위한 공장을 건설하도록!”
프로젤과 세라메틱을 확보한 이상 스틸아머와 탄약 등을 생산하는 건 일도 아니다. 병영이 그 일을 감당하긴 하지만 군수물자는 공장에서도 생산할 수 있다. 그러니 자원 낭비할 것 없이 바로 공장을 짓는 것이 효율적이었다.
하지만 워는 다른 답변을 내놓았다.
『정제소 건설 후 의료 시설부터 건설하겠습니다. 승인해주십시오.』
“내 몸이 못 버틸 거다?”
『이미 주요 장기들이 괴사하기 시작했습니다. 빠른 조치가 필요합니다.』
무시할 수 없는 충고다. 아무리 급해도 내 목숨보다 급한 건 없다. 따라서 이한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 별수 없지. 그럼 그렇게 해.”
『하면 자원 확보 후 의료 시설 건설과 함께 병영을 건설하도록 하겠습니다.』
“병영을?”
『공장을 건설하고 기갑병 생산을 서두를 수 있다면 효율적인 방어전략이 되겠지만 의료 시설을 건설하게 되면 그럴 수가 없습니다. 무엇보다 이 지역의 특수성을 고려하면 기갑병이 제 역할을 감당하지 못할 위험도 다분합니다.』
의료 시설 건설을 미룬다면 좋겠지만 그래서는 안 된다. 몸 상태가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는 건 워가 언급하지 않았어도 절절히 체감하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훈련병도 없는데 병영이 무슨 의미가 있지? 설혹 훈련병이 있다고 해도 스페이스 마린은 크락투와 상성이 좋지 않아. 시간이 걸리더라도 기갑병 생산이 낫지 않나?”
『크락투 시체를 조사한 내용을 토대로 저들에게 효과적인 무기체계를 설계했습니다. 병영을 건설하면 마린에게 적용할 수 있습니다. 새로운 무기체계에 대한 교육도 필요합니다.』
“새로운 무기체계?”
이한은 반문하다가 스페이스 워에서 본 병과가 떠올랐다.
“설마 화학무기를 사용하는 화학병을 말하는 건가?”
『그렇습니다. 기존 무기체계는 크락투에게 효과적이지 않습니다. 일단 화학무기는 크락투의 가죽과 호흡기를 녹여버릴 겁니다. 근접전에서 레이저건과 화염방사기를 활용한다면 효율적인 초반 방어체계를 구축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한다면 병영과 같이 건설될 의료 시설 역시 하나의 전략이 될 수 있습니다.』
레이저건과 화염방사기는 근접전에 막강한 화력을 자랑하지만 배리어를 뚫기 어렵다는 단점을 가졌다. 개인용 쉴드를 두르고 있는 스페이스 마린에게는 매우 비효율적인 무기라 사장된 무기체계다.
그러나 크락투는 쉴드를 두르고 있지 않았다.
‘화학무기에 이어 레이저건과 화염방사기라······. 이건 반박할 수 없다. 이거라면 기갑병 생산까지의 공백을 메울 수 있다.’
생각해보니 나중엔 물질 자체를 분해할 수 있는 고성능 무기도 개발되었다. 그 정도까지는 아니겠지만 충분히 효과적인 위력을 발휘할 것이다.
“그럼 그게 좋겠군. 그리고 기갑병의 연결이 끊어진 이유에 대해서도 알아보도록. 나중에 문제가 될 여지가 다분한 내용이니······.”
『알겠습니다.』
대화를 나누는 와중에도 채집 로봇은 이미 생산 중이었고 건설 로봇 2기 역시 적당한 곳으로 이동해 각각 병영과 의료 시설의 터를 마련하고 있었다.
*
이한은 녹빛의 물질을 바라봤다. 자신은 포르말린에 담긴 표본마냥 투명한 원통 안에 둥둥 떠 있었다.
이에 이한은 일부러 숨을 크게 뱉었다.
꼬르르륵!
입에서 나온 공기는 물방울이 되어 위로 치솟았다. 이것만 봐도 자신은 녹색 액체에 잠겨있는 게 분명했다.
‘거참 신기하네.’
호흡을 위한 장치가 따로 있는 것도 아닌데 숨을 쉬는 데 전혀 지장이 없었다. 이게 어떻게 가능한 것인지 이한의 상식으로는 가늠하기도 어려웠다. 액체에 잠겨있는 것만으로 상처가 치료되는 것도 신기하긴 매한가지였다.
무슨 배양액이라고 하는 것 같던데 자세히 알아본다고 해도 어차피 모를 게 분명해서 별 관심도 두지 않았다. 권위 있는 박사들이라 해도 모를 내용일 텐데 자신이 무슨 수로?
생소한 것들 모두에 일일이 관심을 둘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
『시에라 중위의 보고입니다.』
말이 레이저건이지 이건 공업용 절단 레이저를 휴대용으로 개조한 정도에 불과하다.
하지만 실탄형 라이플보다 크락투에 훨씬 효과적일 것이다. 배리어에는 취약하지만 두꺼운 강판도 순식간에 잘라버리는 위력을 지녔으니까.
물론 휴대용으로 개조한 레이저건은 그 정도까지는 아니겠지만 크락투전에 라이플보다 유용한 무기라는 건 부인할 수 없다.
시에라의 보고에 이어 에리오의 보고가 이어졌다.
빌리의 우렁찬 목소리 역시 수신되었다.
이한을 제외한 서른 명의 병사들은 시에라, 에리오, 빌리를 위시(爲始)로 열 명씩 세 분대로 나뉘어 각기 다른 방향을 경계하고 있었다. 세 분대는 레이저건, 독가스, 화염방사기로 분류되지만 스틸아머와 라이플은 모두 공통적으로 장비하고 있었다. 초진동검 역시.
이한은 숨을 고르며 저들에게 말했다.
“특이상황은?”
이 행성이 크락투의 요람이라는 것은 알지만 그 외의 정보가 전무한 상황이다. 더 많은 정보가 필요하다.
“소형 드론이나 위성은 언제쯤 가능하지?”
『이 지역의 기묘한 파장은 기계류에 치명적인 오류를 발생시킵니다. 일단 대응책을 강구하고 있으나 내구성이 약한 소형 장치는 파장의 영향을 이겨내기 어려우니 현재로서는 불가능합니다. 다만 크락투가 이 지역에 출몰하지 않는 이유도 기묘한 파장 때문으로 추측됩니다.』
“그럼?”
『이 파장을 무기로 사용할 수는 없습니다. 탐사된 지역에 남은 크락투의 흔적을 토대로 유추해볼 때 파장을 꺼릴 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보이진 않습니다.』
“흠.”
『사령관님께서 인지하셔야 할 내용이 있습니다. 확정된 바는 아니나 기계병과 연결이 모두 끊어진 사실과 이 지역을 꺼리는 크락투의 습성을 감안하면 크락투가 군집체일 확률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군집체? 그 크락투가? 그럴 리가?”
이한도 알지 못했던 내용이다. 크락투는 외계 종족이 아니라 외계 괴물로 분류되는 개체였기 때문이다.
『소수의 표본을 가지고 조합한 내용이라 확정된 내용은 아닙니다. 하지만 가능성은 충분합니다.』
‘뭐. 그럴 수도 있겠지.’
“잠깐. 잠깐만!”
이한은 워의 보고를 흘려듣다가 머릿속을 스쳐 가는 장면이 있었다.
크락투는 동족포식까지 일삼는 극도로 포악한 놈들이다.
일반 생태계에서도 동족포식은 발생한다. 불안에 휩싸인 어미가 새끼를 잡아먹거나 동족이 상처 입은 개체를 잡아먹거나 먹이가 부족한 상황에 서로를 잡아먹는 등 이러한 카니발리즘은 생각보다 그 사례가 다양하다.
하지만 크락투는 모두 제각각인 그 외향만큼이나 특성을 규정할 수 없다. 언제는 제 목숨도 아랑곳하지 않고 서로를 물어뜯다가도 어떤 때에는 서로 협력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등 아주 제멋대로인 개체였기 때문이다.
‘종잡을 수 없는 특성을 가진 독립체라고 여겼는데 이들이 군집체였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