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mmander of the Space Gamer RAW novel - Chapter 122
119. 첫걸음을 내딛다 (2) >
119.
루퍼스 사령관의 말에 이한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전황에 대해 떠올렸다.
현재 전력은 비등하다. 칼란두를의 칸, 프로템, 네메시스, 세라크, 하이모스 함대와 나를 비롯한 루퍼스, 에메스토가 이끄는 벨투, 엘란도, 쥬피터, 새턴, 넵튠으로 함대의 숫자는 다섯 함대로 동일하다.
하이모스 함대가 지난 패배로 상당한 손해를 봤기에 그 전력은 넵튠 8함대보다 약한 수준이니 오히려 우세하다고 볼 수도 있었다.
그러나 칼란두를에겐 아군이 보유하지 못한 전력이 있었다.
바로 엔두카다. 엔두카의 코어 포격은 기존 코어 포격의 9배에 달한다. 테라의 어떤 함선도 그러한 공격을 버틸 능력이 없다. 우주모함급이라면 어찌 막아낼 수 있을지도 모르겠으나 회피하는 것이 최선이었다.
전면전을 피해야 하는 가장 큰 이유는 칸, 프로템, 네메시스, 세라크, 하이모스 함대를 절멸시키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아군으로 삼아 자투족과 싸우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전면전을 치르고자 해도 불리한 점이 훨씬 많았다. 전력이 비등한 상황에서 칼란두를은 엔두카라는 규격 외의 병기를 보유하고 있는 셈이니까.
물론 에메스토와 루퍼스가 함께 전략을 수립했겠지만 어쨌든 여기서도 에메스토의 전략이 돋보인다.
적이 규격 외의 병기를 사용한다면 아군 역시 사용한다. 바로 스톰의 함선을 이용함으로. 칼란두를도 여기까진 예상했을지도 모른다. 에메스토가 스톰의 기술을 얻은 것은 칼란두를도 알고 있으니까.
하지만 스톰의 기술이 적용된 함선을 타고 엔두카에 침입하는 것이 주목적일 거라곤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아니 예상했다손 치더라도 시에라의 능력이 얼마나 대단한지는 예상하지 못했을 터, 솔직히 시에라와 에스타른족 기술을 적용한 륭샤오핑의 슈퍼솔져가 함내로 침투하면 그걸로 끝이다.
황제가 엔두카 내에 무슨 준비를 했더라도 크락투의 근접전 능력보다 대단하지는 않을 것 아닌가? 이 조합이면 크락투가 들끓는 전장도 산책하듯이 걸어 다닐 수 있을 것이다.
전체적인 능력은 시에라에게 밀리지만 크게 한 방 먹여주는 일이라면 시에라보다도 내가 더 뛰어날 것이다.
코스모스를 생산하고자 정신까지 잃으며 결정을 다루는 와중 초자원 결정 그 자체를 무기로 사용할 수 있게 되었는데 간단히 초자원 결정을 폭탄처럼 만들 수 있는 능력이 생겼다.
무슨 우주폭탄마도 아니고. 뭐 지금까지 적아를 가리지 않고 죄다 뭔가 펑펑 터트리긴 했다만···.
어쨌든 엔두카를 폭발시킬 건 아니기에 여러모로 시에라가, 그리고 스톰 행세를 하는 륭샤오핑이 침투하는 것이 최선이었다.
솔직히 위험할 거란 생각은 1도 들지 않았다. 뭐 엔두카에 침투하기 전이라면 위험할 수도 있겠지.
그러나 엔두카가 스톰의 순양함을 탐지할 거란 생각 역시 들지 않기는 매한가지였다.
이한은 잡생각을 털어낸 뒤 루퍼스에게 말했다.
“미끼 역할은 루퍼스 사령관님과 에메스토 공작께서 하시는 겁니까?”
루퍼스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이한에게 말했다.
루퍼스뿐만 아니라 에메스토와도 함께 통신 중이었기에 에메스토가 루퍼스의 말을 받았다.
확실히 칼란두를 입장에서도 에메스토만 제거하면 남은 엠파이어의 병력을 자신의 휘하로 거둘 수 있다고 여길 것이다.
그러나 상황이 바뀌었다. 설혹 에메스토 공작이 죽는다 할지라도 남은 병력에 대한 지휘권은 칼란두를에게 돌아가지 않는다. 에메스토가 이미 그 일에 대비해두었기 때문이다. 그중 하나가 임시나마 엘란도 7함대를 내가 지휘하게 된 사실이다.
엠파이어 군인에게 함대를 맡기면 결국 그 함대는 황제에게 예속될 테니까. 더욱이 나와 루퍼스는 자투족과 싸워야 하는 이유에 대해 명확하게 인지하고 있는 사람이었고 그게 아니더라도 에메스토는 칼란두를이 병력을 취하는 것보다는 낫다고 판단한 모양이었다.
더 복잡한 계산이 뒤에 숨어있겠지만 에메스토가 생존해 있는 이상 더 깊게 파고들 이유는 없다. 나 역시 에메스토가 생존하길 원한다. 함대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것을 효율적으로 지휘할 수 있는 지휘관이 더 절실한 상황이니까. 앞으로는 더욱 그렇게 될 테니까.
고개를 끄덕일 때 에메스토 공작이 다시 말했다.
“갑자기 불안해지는군요. 제게 의외라는 말은 반드시라는 단어와 비슷하게 들리니 말입니다.”
지금껏 평탄한 전장이라곤 존재하지 않았다. 의외? 예상 밖의 일? 아니다. 지금까지 겪은 일을 고려하면 필연이 될 확률이 상당히 높았다.
에메스토의 말에 이한은 쓴웃음을 지을 뿐이었다.
그때 루퍼스 사령관이 입을 열었다.
에메스토 공작도 이한도 고개를 끄덕인 뒤 통신을 끊었다. 이한은 통신을 끊자마자 전 함대에 통신을 연결하라 명령했다.
“전 함대에 통신 연결.”
“알겠습니다.”
이윽고 새턴 7함대, 넵튠 8함대 그리고 엘란도 7함대와 연결되었다. 단순히 세 함대라고 하니 그 숫자가 매우 적게 보일 수 있겠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넵튠 함대가 주력 함대의 절반가량인 것을 고려해도 세 함대의 규모는 우주모함 5척, 순양함 25척, 구축함 100척, 호위함 200척에 달한다. 정찰함, 초계함, 쾌속정 등도 100척은 달했고 함재기의 숫자만 무려 34,000대에 달하며 탑승 인원을 헤아리면 135만 명이 넘는 그야말로 대규모 함대였다.
이한은 135만 명의 목숨을 좌지우지하는 위치에 있다는 소리였다. 그 무거움이야 이루 말할 수 없다.
그토록 많은 사람이 모인 곳이니 자신의 명령 하나만으로 이들의 생사가 결정되진 않을 것이다.
그러나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는 건 누가 뭐래도 부인할 수 없는 상황. 자연히 행동과 말이 신중해지고 무거워질 수밖에 없었다.
이한은 굳은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한 사령관이다. 전투와 관련된 세부사항은 각지휘관들이 지시할 것이니 말을 길게 늘이진 않겠다. 다만 오늘 우리는 어떤 권력과 이득을 쟁취하기 위해 싸우는 것이 아니다. 앞으로의 전투도 그렇겠지만 유니온, 엠파이어, 뉴트럴 가릴 것 없이 우리는 인류의 생존을 위해 싸워야만 한다. 그 일을 막는 자가 있다면 누구라도 처단한다. 그러니 생존을 위해 최선을 다하라. 그것이 인류의 생존이라는 거창한 것이든 개인의 생존을 위한 것이든 상관없다. 싸워서 쟁취하라. 이상!”
통신을 마친 이한은 단호하게 명령했다.
“작전지역으로 워프 실시!”
“실행합니다!”
우우우웅!
이윽고 함선이 진동하고 모든 함선이 워프하기 시작했다.
*
우주모함 9척, 순양함 45척, 구축함 180척, 호위함 360척에 이어 전장 15km에 달하는 엔두카가 웅장하게 그 모습을 자랑하고 있었다. 엔두카 제외 240만에 달하는 인원이었고 함재기만 60,000대가 넘는다. 엔두카의 규모가 15km이니 못해도 30만은 탑승했을 가능성이 높다.
규모가 규모다 보니 함재기도 상당수 탑재할 수 있겠지만 아마 함재기는 많이 탑재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 정도 규모라면 못해도 최소 7만 기 이상의 함재기를 보유할 수 있을 텐데 이 정도 규모의 함재기가 사라졌다면 에메스토가 그 움직임을 파악하지 못했을 리가 없다.
그러니 아마 엔두카까지 합쳐도 함재기의 규모는 70,000기를 넘지는 못할 것이다. 무엇보다 엔두카가 무서운 것은 함재기에 있지 않고 코어 포격에 있었으니 칼란두를 황제도 비밀을 엄수하기 위해 무리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닌 게 아니라 그의 계획대로만 되었다면 테라의 모든 세력은 이미 그의 권세 아래 엎드리고도 남았을 것이다.
칼란두를의 칸, 프로템, 네메시스, 세라크, 하이모스 함대는 엠파이어 행성이 위치한 곳에서 10광년 떨어진 곳에 자리하고 있었다.
공허한 우주 저편에서 화려한 빛무리가 형성되더니 이윽고 비슷한 규모의 함대를 그려냈다.
바로 에메스토, 루퍼스, 이한이 이끄는 함대였다. 워프 시에는 정신을 잃기에 주변 지역에 워프한 뒤 남은 거리는 광속 이동으로 이곳에 도착했다.
두 함대를 모두 합치면 500만 명에 달하는 대인원이 격돌하는 셈이다. 어느 한쪽이 사라지더라도 2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우주 저편의 먼지가 되어버린다는 뜻이었고.
에메스토나 루퍼스가 전면전을 펼치길 원하지 않는 또 다른 이유 중 하나였다. 전면전을 펼친다면 그야말로 어마어마한 숫자의 사람들이 목숨을 잃게 될 테니까.
게다가 그 200만 명의 사람들은 함대전을 수행할 수 있는 전문 인력이었다. 앞으로 있을 전투에 절실하게 필요한 이들이라는 뜻이다.
에메스토는 차가운 표정으로 칼란두를에게 최후통첩을 날렸다.
“칼란두를 황제. 당신의 통치는 여기까지다. 엠파이어는 오늘 이후로 더 이상 엠파이어가 아니게 될 것이다. 황제 당신도 그걸 모르지는 않겠지.”
“칼란두를 황제. 당신이 있어서 다행이었다.”
에메스토는 차가운 눈으로 다시 입을 열었다.
“너무 많은 힘을 가진 사람은 어떤 식으로든 타락할 수밖에 없음을 황제 당신을 통해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으니 그 점에 대해선 고맙게 생각한다.”
재물이든 권력이든 너무 많은 것을 가진 자는 자신이 인간이라는 사실마저 망각해버린다. 고대의 왕들이 그러했듯 나는 본질적으로 저들과 다른 뭔가 특별한 존재라고 생각한다.
너희는 버러지고 나는 우월한 존재다. 우월한 존재이니 하등한 것들이 정해놓은 구조 속에 얽매일 필요도 없고 개의치도 않는다. 하이모스 행성이 자투족에게 완전히 박살 날지라도 황제는 조금도 신경 쓰지 않을 것이다.
우월한 자신을 위해 죽었으니 그것이 영광된 죽음이라고 말하겠지. 비극인 것은 칼란두를 황제만 그런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가진 힘에 따라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본질은 다를 바가 없다.
칼란두를 황제가 없었다면 어쩌면 저 모습이 자신의 모습이 되었을 수도 있었다. 아니 황제의 자리에 오른다면 머지않아 자신도 저렇게 변질되고 말겠지.
자신은 무슨 성인군자가 아니었다. 정말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야망이 없는 자는 이렇게까지 높은 자리에 오를 수도 없다. 야망이 있었고 부질없음을 뒤늦게 깨달았을 뿐, 심지어 그 야망이 아예 사그라진 것도 아니다. 그때 자신의 모습은 칼란두를 황제의 모습과 얼마나 다를 것인가?
황제를 죽이는 일에 엠파이어의 병력, 곧 자신의 지휘를 받는 이들은 파견하지 않았다. 조력은 하지만 그 일을 수행하는 것은 결국 한 사령관 휘하의 병력과 스톰이 행할 것이다. 시에라 소령의 뛰어난 ESP 능력 때문에? 과연 그럴까? 과연 그게 전부일까?
말을 끊은 칼란두를은 광기가 흐르는 눈으로 소리쳤다.
에메스토는 칼란두를을 바라보다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맞다. 그래서 칩거했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물론 그 이유가 전부는 아니지만 그런 걸 말한다고 이해할 존재도 아닐 테지. 다만 황제의 신하였던 자로서 하나만 당부해두지. 칼란두를 황제. 당신의 야망은 결국 당신을 멸망시켰다.”
칼란두를의 말과 함께 결국 거대한 전투의 서막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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