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mmander of the Space Gamer RAW novel - Chapter 126
123. 예측 불가 (3) >
123.
위이잉! 위잉!
엔두카 함선 전체에 경고 방송이 울려 퍼지고 있음에도 엔두카의 승무원들은 우왕좌왕하며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엔두카에 승선한 인원은 40만에 달한다. 물론 시에라의 침투 등으로 수많은 사람이 죽었지만, 전투 시간이 그리 길지 않았기에 만 명 이상의 사상자가 발생했을 거라 보긴 어려웠다. 그러니 여전히 근 40만에 달하는 인원이 탑승해 있을 것이다.
엔두카에서 탈출하는 것 자체는 큰 문제가 없을 것이다. 황제의 성향상 탈출정이나 탈출포트를 인원수에 맞춰 비치하진 않았겠지만 수송선과 같은 여타 우주선을 이용하면 이만한 인원이라도 피신하는 건 큰 문제가 되지 않을 테니 말이다.
그럼에도 이들이 우왕좌왕하는 것은 끝까지 항전하라는 명령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먼저는 칼란두를 황제에게서, 그후로는 엔두카를 총괄하는 초인공지능의 마스터 자네즈 사령관으로부터 하달된 명령이었다.
최고위 명령권자 두 명이 동일한 명령을 내렸으니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끝까지 항전했을 것이다.
그런데 코어가 폭발할지 모른다는 비상사태가 발생한 상황이 아닌가? 명령을 무시하고 탈출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끝까지 항전해야 한다고 버티는 사람도 있었고 어찌할 바를 알지 못해 패닉 상태에 빠져든 사람들도 상당히 많았다.
“도망쳐야 해!”
“아직 상부에서 명령이 떨어지지 않았어! 마음대로 움직이면!”
“코어가 폭발한다고! 코어가!”
“명령이 우선이다! 정신 바짝 차리고 함선에 침투한 적부터 처리한다!”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십시오. 코어가 폭발하면 적아 가릴 것 없이 모두 죽는 겁니다!”
“감히 명령에 불복하는 거냐?”
“상식적으로 생각해보십시오! 이런 상황에서 적과 계속해서 싸우라는 건 자살하라는 명령과 다를 바가 없지 않습니까?”
“명령은 네 생명보다 우선한다! 폐하가 죽으라면 죽는 것이 엠파이어 군인의 본분이다.”
“적과 싸우다 전사하는 것도 아니고 이런 식으로 개죽음 당할 생각은 없습니다. 그러니 목숨을 건 충성놀이는 대위님이나 많이 하십시오. 전 탈출할 겁니다.”
“다시 한번 명령한다. 엔두카에 침입한 적과 싸워라!”
그러자 소위 계급장을 단 장교가 단호하게 외쳤다.
“아직도 모르시겠습니까? 황제폐하는!! 이미! 사망했습니다! 적의 계략 같은 게 아니란 말입니다. 자네즈 총사령관님 역시 생사를 알 수 없는 상황입니다. 더욱이 황제폐하나 자네즈 사령관께서 결사항전 명령을 내렸을 땐 코어 폭발 경고가 떨어지기 전이었습니다. 그러니 그 명령은 더 이상 유효하다고도 볼 수 없습니다. 따라서 명령을 거부합니다!”
“감히!”
엠파이어의 대위가 라이플로 그를 겨눴다. 그 순간 뭔가 번뜩이더니 라이플을 반으로 두동강 내버렸다.
엠파이어 대위가 반으로 갈라진 라이플을 손에 놓고 바닥을 바라보자 바닥에 박혀 파르르 떨고 있는 초진동검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때 한 사람이 바람처럼 날아들어서 대위의 얼굴을 무릎으로 찍었다.
퍼억!
“컥!”
라이플을 들고 병사를 위협하던 대위는 그 즉시 정신을 잃고 스스륵 무너졌다. 대위가 슈퍼솔져였다는 걸 고려하면 너무 허무하게 무력화된 상황이었다. 이에 잠시 어리둥절하던 주변의 병사들은 급히 이한에게 총을 들이밀었다. 이한이 유니온의 슈트를 걸치고 있었으니 당연한 반응이었다.
이한은 잠시 서서 그들을 바라보다가 난장판된 상황을 정리할 필요를 느꼈다. 지금이야 적으로 만났지만 이들 또한 자투 함대와 함께 싸울 아군이었다.
“시에라.”
“황제가 사살된 내용을 아직 통보하지 않은 건가?”
“자네즈 사령관은?”
자네즈 사령관이 사망했다면 엔두카를 총괄하던 초인공지능마저 사라졌다는 뜻이다. 엔두카의 상황이 중구난방인 것인 너무나 당연했다.
아무리 훈련된 군인이라고 해도 긴급한 상황에 불합리한 명령을 맞닥뜨렸다면 혼란에 휩싸이지 않을 수 없었다. 게다가 그 숫자가 무려 40만이었다. 심지어 최고 명령권자는 사라졌고 적이 함내에 침투한 상황, 혼란에 휩싸이지 않는 게 오히려 이상한 일일 것이다.
자신을 향해 총을 겨눈 엠파이어 군인들을 눈매를 좁히며 돌아보던 이한은 시에라에게 다시 말했다.
“함내 통신 연결해.”
“사령관 한 이드라실이다. 상황이 긴급하니 간단히 말하겠다. 칼란두를 황제는 사망했다. 자네즈 사령관 역시 사망했다. 아울러 코어 폭주 원인은 황제의 명령에 의한 것이다. 그 황제는 너희에게 결사항전하라고 말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건지 각자 생각해보라.”
이한은 잠시 말을 멈췄다가 다시 말했다.
“현재 나는 엔두카의 코어 폭주를 막으려고 이동 중이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나는 인류를 위협하는 자투 함대와 싸울 사람이 필요하고 엔두카라는 강력한 병기도 필요하다. 하지만 내가 실패할 가능성이 있으니 일단 엔두카에서 피신하길 권고한다. 전투는 끝났다. 다시 한번 말한다. 전투는 끝났다. 이제 남은 건 각자의 선택 뿐이다. 이상”
말을 마친 이한은 자신을 향해 총을 겨누고 있는 군인들을 다시금 바라봤다. 그들은 천천히 총을 내리더니 더는 이한의 앞을 막지 않았다.
이한이 걸음을 옮겨 주동력실로 향하려고 하자 소위 계급장을 단 장교가 급히 말했다.
“코어 폭발을 막을 수 있는 겁니까?”
“그렇게 할거다.”
“그럼 당신을 호위하겠습니다.”
이한이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자 제임스는 짧게 말을 이었다.
“탈출포트만으로는 코어 폭발의 영역을 벗어나기 어렵습니다. 여타 다른 우주선 역시 마찬가지겠지요. 정말 코어 폭발이 일어난다면···.”
아직도 함대전이 발생하고 있는 중이었으니 탈출한 승무원들을 함대가 제때 수거하지 못할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사람의 목숨보다 임무와 승리가 우선이니까.
대위의 판단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었다. 처음부터 일사불란하게 대피했다면 모를까 코어가 폭발한다면 결국 수많은 승무원들이 죽게 될 것이다. 그럴 바엔 명령을 끝까지 수행하다가 죽는 것이 차라리 낫다고 판단했는지도 모르지.
“그러니 호위하겠습니다. 엠파이어 군인들이 행여라도 당신을 공격하지 않도록 말입니다. 아울러 당신이 엔두카의 코어 폭발을 막아낸다면 내 목숨은 이제 당신의 것입니다.”
충성을 바쳤던 황제는 코어를 폭발하게 만들고 그곳에서 죽으라 명했다. 코어 폭발을 적이 유도했을 가능성도 있지 않냐고? 초인공지능이 총괄하는 함선이다. 자체적으로 허가한 것이 아니라면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반면 유니온의 영웅, 아니 테라의 영웅이라는 한 이드라실은 코어 폭발을 막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걸고 있었다.
그가 막을 수 있을지 없을지는 확신할 수 없다. 인공지능이 코어가 폭발한다고 인지했다면 이미 답이 없는 상황이다. 자세한 것까지는 알지 못해도 그 정도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한 이드라실의 행보는 모두 사그라졌다고 여긴 지난 열정을 가슴에서 타오르게 만들었다.
테라의 영웅이라고? 그게 거짓이든 위선이든 상관없다. 자신의 목숨을 걸고 위험에 맞서는 자라면 따를 만하다. 적어도 이 상황만큼은 절대 거짓이 아니니까. 황제에게도 충성했던 자신이 아닌가? 그러니 죽든지 살든지 그에게 남은 삶을 걸어보리라.
그런 제임스의 다짐과 별개로 이한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호위는 됐고 주동력실까지 안내 좀 부탁하지. 최대한 빠른 코스로.”
“알겠습니다.”
“그나저나 이름이 뭐지?”
“제임스. 제임스 소위입니다.”
*
제임스 등의 도움으로 주동력실에 도착하자 륭샤오핑이 이한을 맞이했다.
“사령관님.”
륭샤오핑의 인사를 받은 이한이 입을 열었다.
“시간이 없으니 일단 모두 데리고 대피하도록.”
“아닙니다. 저희는 사령관님과 함께 움직이겠습니다.”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 이한은 별말 없이 주동력실 안으로 진입했다. 대피하라고 말한 건 그야말로 최악의 경우를 대비한 것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대다수 사람들의 예상과 달리 아무 일도 없을 거다. 목숨을 걸고 코어 폭발을 저지? 뭐 아주 좋은 슬로건이 될 수 있겠지. 그걸 노리고 일부러 달려온 점도 없잖아 있었다. 최소한의 노력으로 최대한의 이득을 창출할 수 있으니까.
이한은 주동력실 한편에 피를 흘린 채 쓰러져 있는 한 사내를 바라봤다. 바로 자네즈 사령관이었다.
“대체 무슨 헛짓거리냐. 이게 당신 목숨을 바쳐서 완수할 만큼 대단한 임무라고 생각한건가? 진심으로?”
이한으로서는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마음 한편으로는 이해가 되는 것도 같았다.
원래 인간은 비효율적이고 비생산적이고 비이성적인 일을 즐겁게 행한다.
솔직히 말해서 자신이 ‘스페이스 워’를 즐기는 일도 비슷했다. 이게 무슨 생산적인 일이겠는가? 우주함대의 사령관이 될 것을 준비하기 위해서? 말 그대로 신박한 개소리지.
물론 황제의 미친 짓처럼 비이성적이고 비도덕적인 일은 아니었지만 그걸 고려하면 자네즈 사령관의 황당한 짓거리도 아예 이해 못할 일은 아니었다.
이한은 엄청난 스파크와 함께 푸르게 타오르는 코어를 주시했다. 이건 제어하지 못할 까닭이 없다. 놀랍게도 그 구조나 형태가 타고르스함과 닮았다.
정확히는 열화버전이라고 해야 할까? 어쨌든 전체적으로 보강하고 코어를 코스모스로 바꾼다면 또 하나의 모함을 완성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디서 외계 기술이라도 얻은 걸까?’
이를 테면 에스타른족의 기술이 담겨 있는 유물 같은 거 말이다. 그랬을 가능성이 꽤 높아 보였다. 다른 건 몰라도 다중코어를 가능하게 만드는 기술은 에스타른족의 그것과 매우 유사해보였으니 말이다.
물론 기술이란 결국 닮기 마련이니 에스타른족이 아닌 다른 외계종족의 유물을 얻은 걸지도 모르지. 그도 아니면 엠파이어가 우연찮게 개발했다거나. 뭐 어찌된 영문인지는 차차 알아봐도 되는 부분이니 이한은 균열을 일으키려는 코어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이한은 그 충격에 다시 정신이 혼미해지는 것을 느꼈지만 정신을 잃을 정도는 아니었다. 그동안의 경험으로 정신력이 더 강화되기라도 한 모양이었다.
초자원은 초세계의 문을 여는 열쇠다. 초자원은 초세계의 것을 현상세계에 구현할 수 있게 만들어준다. 초세계는 현상세계를 월등히 뛰어넘은 세계이기에 초자원을 제대로만 활용할 수 있다면 거의 모든 것을 구현할 수 있다.
이한이 코어를 제어하고 있었지만 엄밀히는 코어를 구성하는 초자원을 제어하고 있었다. 초자원의 본질에 대해 좀 더 깊이 파악하려던 이한은 더 깊이 들어가면 위험하다는 것을 느끼곤 급히 뒤로 물러섰다.
우우우웅!
세 개의 코어가 한 차례 크게 요동치더니 매우 안정적인 형태를 유지하기 시작했다. 코어 안정화 장치가 작동하지 않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곧 엔두카 함선에 안내 방송이 울려 퍼졌다.
『사령관님. 수고하셨습니다.』
“어 그래. 음?”
생각없이 대답하던 이한은 저도 모르게 반문했다. 워의 음성이 왜 들린단 말인가? 환청인가?
『사령관님의 능력이 상승함에 따라 현실세계에서도 보조장치의 도움이 없더라도 사령관님과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래? 잘 되었군. 그럼 엔두카의 시스템부터 장악해봐. 아주 개판이더군. 주동력원을 관할하던 인공지능은 사라진지 오래고 엔두카를 총괄하던 초인공지능이 소멸함에 따라 인공지능들이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있어. 주동력원 문제는 해결했다지만 이대로는 엔두카를 전함으로 사용할 수도 없다,”
『보조장치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그거 필요없어도 나와 대화가 가능하다며?”
『대화만 가능합니다.』
“흠. 잠깐만! 보조장치에 너를 등록하면 타고르스함은 어떻게 되는 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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