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mmander of the Space Gamer RAW novel - Chapter 13
13. 레알 튜토리얼 (3)
13.
제아무리 사나운 맹수라고 할지라도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상처 입는 것을 상당히 꺼린다.
상처를 입으면 사냥을 지속할 수 없고 먹이를 먹지 못하면 자연히 경쟁에서 도태되어 죽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생존과 밀접한 연관이 없는데도 전투를, 그것도 집단전을 행하는 개체는 인간을 제외하면 사실상 없다.
그런데 크락투는 그렇지 않았다. 물론 이 사실에 딱히 관심을 둔 적은 없다. 주요 종족도 아니고 성가시게 만드는 중립형 괴물에 불과했으니까.
이한은 무심코 넘어갔던 크락투의 동족포식을 재조명했다.
외계 괴물의 특수성 때문이라 치부하면 될 일이지만 크락투가 독립체가 아니라 군집체라면 말이 달라진다. 이건 자신의 생존과 직결되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워 네가 하고 싶은 말은 놈들이 독립체가 아니라 군집체이고 그 군집체가 파벌을 이루고 있을 것이다?”
『그렇습니다. 크락투가 독립적인 개체라면 모두가 경쟁자입니다. 설혹 먹잇감 사냥을 위해 함께 했다고 해도 상처 입은 개체를 먼저 물어뜯었어야 합니다. 하다못해 쓰러진 동족의 시체라도 뜯어먹었어야 합니다.』
“음? 그러게?”
『마찬가지로 동족포식을 수시로 일삼는 포악한 독립체라면 같은 크락투라고 해도 피라미드식 생태계를 이루는 것이 일반적이며 애초에 합동 사냥이 성립하기도 어렵습니다.』
“일단 밝혀진 것만 봐도 둘 다 아니군. 좋아. 크락투가 군집체라면 놈들이 서로 다른 파벌을 이루고 있다는 근거는?”
『통합된 군집체였다면 아군은 이미 모두 죽었을 겁니다.』
“음······.”
『이 지역의 기묘한 파장은 크락투에게 치명적인 파장이 아닙니다. 서로가 서로를 견제하는 관계가 아니라 일치된 체계를 이루고 있었다면 크락투가 출몰했어도 벌써 출몰했어야 합니다.』
피슈웃! 촤아아아악!
그때 미약한 소음과 함께 녹색의 정체를 알 수 없는 배양액이 배출구를 따라 빠져나갔다. 치료 캡슐 안에서 부유하고 있던 이한은 자연스럽게 바닥에 착지했고 그와 동시에 캡슐의 문이 열렸다.
덜컥!
팔다리 등을 움직여 보며 상처 부위가 완치된 것을 확인한 이한은 워에게 다시 말했다.
“철저하게 격멸해야겠군. 방어전을 통해.”
『조심하십시오. 아군의 병력이 융성할 때는 기척조차 드러내지 않았던 것을 고려하면 군집체의 우두머리는 상당한 지능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됩니다.』
“그래 봐야 군소 부족의 족장 수준이겠지. 하나씩 하나씩 무너뜨린다.”
『그리 쉽게 판단하실 부분이 아닙니다. 저들이 공멸하지 않고 적대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은 언제든 협력관계를 구축할 수 있다는 뜻도 됩니다.』
쉽게 생각한 적은 없다. 목숨이 걸린 문제인데 경솔하게 대처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목표를 상기한 것에 불과하다.
이한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워에게 말했다.
“놈들이 아무리 똑똑해도 일단 네가 있잖아.”
『신뢰해주셔서 감사합니다만 초인공지능의 계산이 항상 옳은 것이 아님은 이미 여러 전투에서도······.』
변수가 제한된 게임에서도 승률 10%가 안 되는 전적을 자랑했던 내 판단보다야 훨씬 낫지 않을까? 그러니 더 들을 것도 없다.
“됐고. 그래서 놈들이 어떻게 나올 것 같은데?”
『일련의 상황을 고려하면 군집체 우두머리는 일반 크락투와 달리 매우 신중하고 조심스러운 행보를 보이고 있습니다. 그러니 일단 정찰병을 보내 아군의 병력 수준을 정탐하려고 할 겁니다. 따라서 가능한 한 모두 사살하는 것이 현명합니다.』
“아군의 병력 수준을 숨겨라? 군집체 우두머리가 이 지역에서 하위 개체와 연결이 끊어지는 걸 꺼리는 것이라면 정찰병도 보내지 않을 듯한데? 아닌가?”
『기생체는 반드시 숙주가 필요합니다. 지금껏 생명 반응이 전무하다가 갑자기 모습을 드러낸 이유도 번식 등을 위해 숙주를 확보하기 위한 목적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지역과 상황의 특수성으로 인해 습격이 늦춰졌을 뿐 습격은 기정사실이라 봐야 합니다.』
놈들의 태생이 기생충이라는 점을 간과하고 있었다. 심지어 놈들의 최초형태는 포자형이라는 설정이 떠올랐다. 포자형 기생체에 군집체라니 뭐 이런 혼종이······.
크락투의 설정을 상기하던 이한은 섬뜩한 공포가 등 뒤로 엄습하는 것을 느꼈다.
‘요람이 아니라······. 점령지였나?’
행성 전체가 초토화된 거다. 바로 크락투에게······.
중립형 괴물에 불과하다고 여긴 크락투를 여러모로 재조명하게 된다.
‘그러고 보면 크락투도 진균류에 속하려나? 그나저나 이 새끼들보다 더한 괴물들이 득실거리는 곳인데 하아······.’
이한은 어두워진 안색으로 이어지는 워의 보고를 경청했다.
『게다가 주변 지역을 확인할 때 크락투의 흔적이 상당합니다. 확실하진 않지만, 이 파장이 영구적이지 않다는 방증이 되기에 충분합니다.』
이한은 인상을 찌푸렸다.
“파장이 약해지거나 사라지는 시점이 생긴다는 뜻인가? 음. 그건 좀 아니 상당히 위험하겠는데······.”
『첫 고비만 넘기면 생존확률이 비약적으로 상승할 것으로 판단됩니다.』
“무슨 말인지는 알겠어. 일단 너는 최대한 많은 자원을 캐고 기갑병 문제를 해결하도록. 기갑병 생산은······. 음.”
기갑병 문제를 적시에 해결할 수 없다면 기갑병 생산은 자원 낭비에 지나지 않는다.
‘유니온과 연락이 닿아 권한 승인을 받을 수 있다면 또 모를까. 지금은 그것도 불가능하니 어차피 현재의 권한으론 기갑병기 외에는 별다른 대안이 없다.’
잠시 생각에 잠겼던 이한이 바로 말을 이었다.
“설혹 문제가 해결되지 않더라도 파장이 약해지는 시점이 온다면 그땐 기갑병을 활용할 수 있을지도 모르니 여력이 닿는 대로 최대한 생산하도록.”
『알겠습니다. 사령관님.』
앞날을 생각하면 암울함 그 자체였지만 천릿길도 한 걸음씩이라고 차근히 격파하다 보면 길이 보이겠지.
이한은 흔들리는 마음을 강하게 다잡았다.
*
긴장과 흥분이 뒤섞인 보고가 고요한 가운데 울려 퍼졌다.
이한의 부대가 위치한 지역은 평지라기보다는 지형이 험한 산맥에 가까웠다.
기지의 12시 방향은 프로젤과 세라메틱이 함유된 광물이 매장된 지역인데 절벽이 가로막고 있어서 12시 방향으로 크락투가 침투할 확률은 다른 방향에 비해 희박했다.
예상침투로는 2시와 7시 방향으로 지형을 고려할 때 7시 방향이 주 침투로로 판단되었다. 따라서 7시 방향에 에리오와 빌리가 이끄는 두 분대가 방어하고 있었고 2시 방향은 시에라가 매복하고 있었다.
모두 합쳐 43마리다. 크락투 43마리는 현재 아군에게 상당히 버거운 숫자다. 이한은 긴장한 표정으로 나지막이 말했다.
“이 정도 숫자가 한꺼번에 들이닥칠 줄은 예상하지 못했는데 말이야. 동일집단으로 보이나?”
『서로 다른 군집체에 속한 크락투로 판단됩니다만 알 수 없습니다.』
“그럼 알아봐야지. 시에라!”
“내가 명령하면 기다리지 말고 선제타격한다. 놈들이 짓쳐 들면 지체하지 말고 7시 방향으로 후퇴해!”
“에리오. 빌리! 놈들이 짓쳐 들기 전까지는 숨죽여 대기한다. 시에라의 분대가 벙커에 합류하면 그때 함께 교전해라.”
7시 방향에는 대 크락투전을 대비한 벙커가 건설되어 있었다. 전차나 장갑차를 비롯한 기갑 병기생산을 위한 공장도 건설하고 있는 상황. 아직까진 순조롭게 흘러가고 있었다.
화력이 강한 무기를 뽑아낼 수 있는 공장이 건설되면 꼭 기갑 병기를 생산하지 않더라도 기지 방어력을 전반적으로 상승시킬 수 있다. 고정 포탑만 건설해도 크락투의 침투를 전보다 수월하게 방어할 수 있을 테니까.
워가 언급했듯이 애매한 이 시점의 방어가 상당히 중요했다.
컨트롤 센터에서 어지러운 상황판을 미간을 좁히며 지켜보던 이한은 다시 워에게 말했다.
“확인해봐! 어떤 행태를 보이는지. 그나저나 놈들이 움직이는 것을 보니 파장이 약해질 모양이군.”
『현재 기묘한 파장의 세기는 여전히 동일합니다만 사령관님 추측대로 될 확률이 높습니다.』
고개를 주억이던 이한은 마른침을 삼켰다. 방구석 게이머가 다른 사람들의 생사를 책임지는 전장의 사령관이 되다니······. 재차 생각해도 황당하다.
‘······. 뭐든 간에 주사위는 던져졌다.’
조용히 한숨을 내쉰 이한은 강한 눈빛으로 시에라에게 명령했다.
“시에라! 교전을 허락한다!”
절제된 시에라의 음성이 전파를 타고 컨트롤 센터에 울려 퍼졌다.
*
시에라는 깊게 숨을 뱉으며 어슬렁거리는 크락투의 머리를 스코프를 통해 바라봤다.
투웅!
고폭철갑탄이 라이플의 총열을 맹렬하게 달구며 쏜살같이 날아갔다.
투웅! 투웅!
그녀의 사격을 기다렸다는 듯이 총구에서 고폭철갑탄과 열화우라늄탄이 일제히 발사되었다.
키에에엑! 키에엑!
퍼억! 퍼어억!
강한 위력을 가진 탄이기에 총알에 얻어맞은 여덟 마리의 크락투가 괴성과 함께 저편으로 나뒹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여전히 12마리에 달하는 크락투가 남아있었다. 심지어 총알에 얻어맞은 크락투 중에도 죽지 않은 놈이 있는지 바닥에서 꿈틀거리고 있었다.
크락투들은 총성이 울리자마자 시에라 분대가 매복한 방향을 향해 미친 듯이 질주했다.
놈들과 근접전에서도 맞서 싸울 무기는 확보했지만, 방어력은 여전히 형편없고 무엇보다 사령관의 후퇴명령이 떨어진 상황이다.
따라서 시에라는 지체하지 않고 명령을 내렸다.
“즉시 후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