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mmander of the Space Gamer RAW novel - Chapter 132
129. 토끼와 거북이 (3) >
129.
우웅! 우우웅!
육중한 진동과 함께 상당한 숫자의 함대가 우주 공간을 부유하고 있었다.
그러나 테라의 함대는 아니었다. 함선은 모두 투박한 형태로 보였는데 기동성은 좀 떨어질지 몰라도 방어력이 상당히 뛰어난 것처럼 보였다.
바로 우주모함 17척, 순양함 100척, 구축함 400척, 호위함 800척 등으로 이뤄진 자투족의 함대였다. 테라 기준으로 살펴보면 510만이 넘는 대인원에 함재기는 13만에 달할 것이다.
빠른 속도로 움직이던 자투 함대는 서서히 속도를 줄이며 수천 개의 물질을 함대 주변에 발출했다.
“배리어 생성기 발출했습니다.”
바위로 뒤덮인 것 같은 모습을 지닌 자투족 지휘관이 자신들의 자투족의 언어로 거칠게 말했다. 목소리 자체가 둔탁했고 언어 역시 강한 발음이 주를 이뤘기에 더욱 그렇게 느껴지는 것 같았다.
“테라 함대가 나타나는 대로 가동시켜!”
“알겠습니다.”
“우툰카 전사장!”
쿵쿵! 척!
몸집만큼이나 육중한 걸음을 옮겨 앞으로 나온 자투족이 가슴에 주먹을 척 올려붙이며 입을 열었다.
“하명 하십시오. 대전사장 이두르카!”
“상전사들을 데리고 테라로 가라!”
그러자 우둔카가 잔혹한 미소를 지으며 이두르카에게 대답했다.
“파괴합니까?”
“그래. 행성폭탄을 이용해서 모조리 날려버려라.”
“이번에 얻은 초자원으로 만든 행성폭탄 말입니까? 저급한 테라 족을 상대로 너무 아까운 무기가 아닙니까?”
함선을 새로이 건조할 정도는 아니지만 행성의 핵을 분열시켜 행성 스스로 폭발하게 만드는 행성폭탄을 완성할 수 있었다. 물론 그 일을 위해서는 행성의 핵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곳까지 다다라야 했다.
“정체불명의 적에게 모함 세 척을 잃었다. 테라족이 아닐 가능성이 높지만 테라에 변고가 생긴다면 모습을 드러내겠지. 본국에 놈들의 정체에 대해 보고할 필요가 있다.”
“흠.”
“뭐 놈들이 나타나지 않더라도 우리 위대한 자투족에게 대항하면 어찌되는지 강력한 본보기로 삼을 수 있을 테니 상관없다.”
“명령대로 따르겠습니다.”
“자연적으로 형성된 거주가능행성이라 아깝긴 하지만 자투족의 위대함을 드러내기엔 가장 확실한 제물이 될 터, 만약 우리의 모함을 건드린 놈들이 나타난다면 목숨을 바쳐서 놈들의 정체를 확인해라. 알겠나?”
척!
“맡겨주십시오!”
다시 가슴에 주먹을 올려붙인 우툰카가 성큼성큼 사라지는 모습을 지켜보던 이두르카가 생각에 잠겼다.
우툰카가 이끄는 상전사로 테라 행성의 함대를 대적하긴 어렵겠지만 침투하는 건 어렵지 않을 거다.
일단 행성에 침투하면 나약한 테라족들이야 위대한 자투에게 대항할 수 없을 터, 우툰카가 테라에 성공적으로 침투한다면 테라 행성이 파괴되는 건 시간문제에 불과할 것이다. 우툰카 전사장은 자신이 신뢰하고 인정하는 뛰어난 전사였으니까.
아니 침투하는 것도 문제가 되지 않을 거다. 우툰카가 실수하지 않는 한 테라는 우툰카의 함선을 감지하지도 못할 테니 말이다.
잠시 테라족에 대해 상기하던 이두르카는 날카롭게 갈라진 눈을 좁히며 입을 열었다.
“미개한 족속치고는 발전 속도가 상당히 빠르다. 놈들을 더 늦게 발견했더라면 낭패를 볼 수도 있었겠어.”
테라 행성은 테라족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곳. 그곳을 파괴시킨다면 놈들은 무너질 수밖에 없다. 뭐 굳이 파괴할 필요도 없다. 설치만 해놓고 살짝 맛만 보여준다면 행성을 잃어버리기 싫은 테라족은 복종하기 싫어도 위대한 자투의 뜻에 복종해야만 하리라.
미개한 테라족이 자투족 고도의 기술이 담긴 행성폭탄을 무력화할 수는 없을 테니까. 자투가 경계하는 11종족이라 해도 한번 설치된 행성폭탄을 무력화하는 건 매우 어렵고 극도로 위험한 일이다.
물론 그들에게 이런 짓을 했다간 바로 전면전으로 이어질 테니 그럴 수도 없었지만 테라족 따위야 무슨 문제가 되겠는가?
설치된 행성폭탄의 위력이야 두말할 필요도 없지만 사실 행성폭탄은 생산단가가 매우 높고 또 상당히 비효율적인 무기라 거의 사용되지 않았다.
상당량의 초자원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점, 그리고 행성의 핵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지역까지 침투해야 한다는 점은 전략무기로 사용할 수 없는 큰 단점이었다.
“미개한 실력으로 건드리다가 놈들이 폭발시키는 결과도 나쁘지 않겠지. 테라의 행성은 테라만 있는 게 아니니 말이야.”
터트릴 행성은 테라 말고도 많았다. 복종하지 않는다면 멸망을 가져다주면 될 뿐이다.
아울러 그럴 확률은 거의 없겠지만 행성폭탄은 이번 함대전에서 아군이 열세에 처할 때에도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는 전략이 될 것이다.
테라 놈들이 작정하고 합심해서 달려든다면 위험할 수도 있으니까. 그런다고 자투족이 패배하지는 않겠지만 자신이 공적을 쌓을 수 있는 기회를 허망하게 날려버리게 될 것이다. 그건 절대로 용납할 수 없는 결말이다.
“전방에 테라의 함대가 집결합니다. 우주모함 6척, 순양함 30척, 구축함 120척, 호위함 240척은 우측에 포진했고 우주모함 5척, 순양함 25척, 구축함 100척, 호위함 200척이 좌측에 포진하고 있습니다. 그간의 정보를 토대로 파악하면 우측은 에메스토 라는 테라족이 좌측은 루퍼스라는 테라족이 지휘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중앙 지역에도 테라 함대가 출현합니다. 우주모함 7척, 순양함 35척, 구축함 140척 호위함 280척에 엔두카라는 대모함도 포함되었습니다. 지휘관은 확실하지 않습니다. 다만 칼란두를이라는 테라족일 가능성이 높으나 내전이 일어났던 것을 고려하면 특정하기 어렵습니다. 세 함대에 대한 정보는 향후 파악되는 자료를 통해 즉각 갱신하도록 하겠습니다.”
자투족이 그간 초자원만 탐사하러 다닌 게 아니었다. 세밀한 수준까지는 아니나 테라에 어떤 함대가 있고 어떤 이해관계를 구축하고 있는지 등 하이모스를 침공할 당시 얻었던 자료를 토대로 분석하고 숙지했던 것이다.
하지만 과거의 정보를 토대로 파악한 것이니 현상황과 맞지 않는 정보도 상당히 많았다. 대표적으로 내전의 결과에 대해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것이 그중 하나였다.
이두르카는 보고된 함선의 숫자에 대해 주목했다.
“내전에 휩싸였다고 하던데 용케도 통합을 이뤄냈나 보군? 굳이 세 함대에 대한 정보를 갱신할 필요는 없다. 먼지에 대한 정보따위 어디에 쓸까?”
테라 함대를 모조리 파괴할 테니 알 필요 없다는 말이었다. 딱딱한 암석질의 피부 안쪽에 자리한 샛노랗게 빛나는 눈으로 상황판을 바라보던 이두르카는 가볍게 발을 구르며 소리쳤다.
쿠우우웅!
가볍게 구른 것치고는 상당히 육중한 소음이 함교에 울려 퍼졌다.
“배리어 생성 장치 가동! 테라의 공격을 막고 역공격으로 놈들을 무력화시킨다!”
“알겠습니다.”
이윽고 자투 함대 곳곳에 퍼진 기계장치가 파지직 거리는 소리와 함께 자투 함대 전체를 감싸는 거대한 배리어를 형성했다.
*
“광속이동 중지! 전방에 자투 함대입니다.”
“배. 배리어입니다. 놈들이 함대 전체에 거대한 배리어를 형성했습니다.”
“자투 함대 주변으로 기계장치를 탐지했습니다. 배리어 생성 장치로 파악됩니다. 놈들의 함대를 공격하려면 먼저 배리어 생성장치를 파괴해야 합니다.”
보고를 듣고 있던 이한은 루퍼스와 에메스토에게 말을 꺼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총사령관이랍시고 독단적인 결정을 내릴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혼자 그 짐을 감당하고 있을 이유가 없다.
효율을 떠나 그건 극도로 어리석은 짓이었고 그 어리석은 짓에 수십 수백만의 목숨이 달려있었다. 단 한번도 어리석은 선택을 하면 안 되는 위치란 소리다.
더욱이 함대전의 고수들이 두 명이나 곁에 있는데 그들의 의견을 들어보지 않을 까닭이 무엇이랴?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나를 총사령관으로 세운 것에는 두 사람의 알력도 일정부분 작용했을 것이다.
루퍼스 사령관과 에메스토 공작은 자신의 스타일이 완벽히 구축된 지휘관들이다. 어느 한 사람이 위에 올라서더라도 별로 좋은 결과를 얻진 못할 것이다.
하지만 나의 상황은 조금 다르다. 일종의 완충지대라고 해야 할까? 어쨌든 그런고로 나는 서슴없이 두 사람에게 의견을 구했다.
루퍼스의 말에 에메스토가 고개를 주억이며 말했다. 당연히 홀로그램 상의 에메스토가 말이다.
루퍼스 역시 다시 말을 이었다.
“그렇다고 함재기를 동원하지 않을 수는 없는 노릇 아닙니까? 마냥 기다린다고 배리어 시스템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고 후퇴한다면 이런 상황이 반복될 뿐이니.”
에메스토가 서늘한 눈으로 이한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러자 루퍼스 사령관이 미간을 좁히며 말했다.
루퍼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를 표했지만 다시 입을 열었다.
이대로라면 아군은 함재기를 상당히 많이 잃어버린다. 함재기를 적절히 방어할 수 없다면 함대전이 벌어져도 불리한 상황에 처한다.
에메스토는 모든 함재기를 잃더라도 공격적인 전략을 취할 것을 주장하고 있었고 루퍼스 역시 그 사실에 동의하지만 그런 전략을 취하면 함재기 운용을 통한 적함 견제는 불가능해진다고 언급하고 있었다.
두 사람의 말 모두 일리가 있었다.
일단 적함대를 두른 배리어를 파괴해야 한다. 배리어 자체를 공격해 배리어를 소진시키는 전략은 큰 의미가 없다. 적함대가 건재한 이상 파괴되어도 금세 복구할 테니까.
배리어 생성 장치를 파괴하는 것이 가장 좋은 전략인데 함선을 가까이 한다면 이중 배리어에 둘러싸인 적함에 비해 극도로 불리한 상황에 처한다.
결국 기동력이 우수한 함재기를 이용해 타격하는 수밖에 없다는 소리. 다만 이 경우엔 앞에 언급한 문제들이 불거진다.
이한은 잠시 고민하다가 단호하게 명령을 내렸다.
“전 함대 모든 함재기를 발진시킨다.”
이에 루퍼스와 에메스토가 짧게 대답했다.
이윽고 에메스토 함대, 루퍼스 함대, 이한의 함대에서 모든 함재기가 발진하기 시작했다. 우주모함 18척, 순양함 90척, 구축함 360척, 호위함 720척이 내뿜은 근 12만기에 달하는 함재기가 장엄하게 우주 공간을 장악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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