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mmander of the Space Gamer RAW novel - Chapter 134
131. 용은 그렸다 (2) >
131.
에메스토는 이한의 변칙적인 전술에 인상을 찌푸렸다가 그의 변칙적인 전술이 단순히 변칙적인 게 아니라 철저히 준비된 것을 바탕으로 이뤄진 전술이었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전율을 느꼈다.
물론 한 이드라실의 능력을 무시한 적은 없었다. 단순히 운이 좋아서 완전히 열세인 상황에서 목숨을 건졌다? 뭐 백번 양보해서 그럴 수도 있겠지.
하지만 그 운조차 그 사람의 실력이다. 다른 사람이 이룬 공적을 인정하지 못하는 자는 그가 가진 장점을 배울 기회도 얻지 못하는 법이다. 애당초 그 사람을 인정하지 않는데 그에게서 무엇인들 배우려고 들겠는가?
마찬가지로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배우고자 한다면 존경하는 마음을 품어야 한다. 제자된 자가 선생을 멸시한다면 그 제자는 그 선생에게 아무것도 배울 수 없다.
이렇듯 사람을 멸시하는 마음을 가진 자는 독선에 빠질 수밖에 없고 그 독선으로 인해 결국 멸망한다.
에메스토는 유능한 지휘관이다. 독선적인 부분이 없지는 않으나 적을 경시하는 태도가 얼마나 위험한 결과를 낳는지에 대해서 모를 자가 아니었다.
당연히 적대세력인 유니온의 한 이드라실을 탐구했고 그의 능력을 인정했다. 그는 열세인 상황에서도 가진 것을 이용해 생존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병력이 비등한 상황에서 전투를 치러 승리하는 건 루퍼스나 자신이 한 사령관보다 뛰어날 수 있었다.
하지만 극도로 불리한 상황에서 생존하거나 승리를 거두는 건 한 사령관을 따라갈 자가 없다고 판단했다. 설혹 자신이라고 해도 그건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부분이었다.
게다가 루퍼스나 자신 역시 인류 전쟁의 어떤 패러다임에 묶여있는 사람이었기에 한 이드라실을 총사령관으로 추대한 것도 있었다.
엔두카만 이끌고 적 함대를 향해 돌진했을 때 솔직히 미친짓이라고 판단했다.
그는 사령관이다. 더욱이 총사령관. 총사령관은 최전선에서 싸우는 역할을 감당하는 자가 아니라 뒤에서 전장의 흐름을 파악하고 아군의 진퇴를 결정하는 자다. 그런 자가 최전선 그것도 적함이 득실거리는 사지로 자진해서 들어간다고?
하지만 드러난 결과를 보니 그게 최선이었다. 확실히 그는 예측 불가능한 사람이다. 그리고 이번에 다시 한 번 깨달았다. 그는 어떤 운에 기대 전투를 치르는 자가 아니라는 것을.
언제나 그렇듯 뭐가 최선인지는 알 수 없다. 최선이라 생각했던 것도 지나고 나면 최선이 아니었던 경우도 비일비재하니까.
그러나 지금 이 순간만은 한 사령관의 판단이 최선이었다.
“전 함대! 적함대의 우측을 박살낸다!”
“알겠습니다!”
에메스토 함대가 자투 함대의 우측에서 짓쳐 들 때 루퍼스 함대 역시 자투 함대의 좌측에서 놈들을 밀어붙이기 시작했다.
불리한 상황을 변칙적인 단 한수만으로 비등하게 만들었다. 물론 단 한수는 수많은 준비 끝에 나온 것이리라.
“총사령관으로 추대하길 잘했군. 아직 내 눈이 잘못되진 않은 모양이야. 클클클. 총공격을 실시해라!”
루퍼스 사령관은 웃음을 흘리다가 준엄한 어조로 명령을 내렸다.
*
쾅! 콰아앙!
각기 기관총과 레이져포로 무장한 테라와 자투족의 함재기가 격돌하며 치열한 전투를 치르기 시작했다. 화력 자체는 테라의 요격기가 약했지만 자투의 요격기를 부수는데는 전혀 문제가 없었다.
그야말로 쫓고 쫓기는 피말리는 전투를 벌이며 우주의 공허한 공간을 폭발로 뒤덮이게 만들었다
“테라의 함대가 좌우 양면에서 밀고 들어옵니다.”
“대전사장 이두르카! 어떻게 합니까?”
“모든 호르투! 엔두카에게 레이져 포격을 실시!”
“알겠습니다!”
*
“사령관님! 순양함 100척이 엔두카를 향해 포문을 열었습니다! 레이져포격입니다. 배리어가 막아내고 있긴 하지만 이대로라면 곧 소멸됩니다.”
순양함 100척이 레이져포격을 가하고 있었다. 대략 1척당 레이져포 50문을 가지고 있었으니 그 수가 무려 5천 발이다. 엔두카의 배리어가 강해졌다고 해도 그만한 포격을 계속 얻어맞으면 금세 박살나고 말 것이다. 빛의 속도라서 어떻게 피할 수도 없다.
하지만 이한은 아랑곳하지 않고 아군의 동태부터 확인했다.
“아군 함대의 움직임은?”
“루퍼스 함대는 좌측으로, 에메스토 함대는 우측에서 적을 압박하고 있습니다.”
“워! 적 기함의 위치 확인 됐냐?”
『확인했습니다. 위치를 특정하겠습니다. 아울러 모든 아군에게 적 기함 위치를 전송합니다.』
고개를 끄덕인 이한은 다부진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적 순양함 100기라면 코어 포격의 제물로 삼기에 충분하지. 코어 포격은?”
『준비되었습니다.』
“이쯤 쏟아부었으면 놈들의 동력도 넉넉하진 않겠지. 쏟아부어!”
『알겠습니다. 가장 많은 포격을 가한 순양함 순으로 40척 설정했습니다.』
“코어 포격 실시!”
『실시합니다.』
엔두카는 다시 한 번 크게 요동치더니 이윽고 강력한 플라즈마와 함께 빛을 다시 토해냈다.
콰아아아앙!
빛은 40줄기로 변해 자투족의 호르투를 두들겼다. 코어 포격에 얻어맞은 순양함 호르투는 폭발하지 않았지만 그로 인해 거의 모든 배리어를 잃어버렸다.
*
“적 포격에 당한 호르투 40척이 배리어를 잃었습니다!”
“대전사장! 적함이 아군 기함의 위치를 파악한 것으로 보입니다. 중앙 함대가 대전사장의 함선을 향해 움직이고 있습니다. 최대한 저지하겠지만 테라의 함재기가 아군 함재기를 막고 있고 호르투 100척이 엔두카를 상대함에 따라 좌우 양면에서 함선을 뺄 수 없는 상황입니다. 현재 룬투 11척, 라샤 400척, 카네스 800척은 테라의 좌우함대를 상대하고 있습니다. 테라 좌우 함대의 순양함이 55척이라 좌우 함대의 함선을 빼면 우위를 빼앗김은 물론 전선 자체가 무너질 수 있습니다.”
“현재 전력 자체는 아군이 우세합니다. 현재 적 중앙 함대는 우주모함 7척, 순양함 35척, 구축함 140척 호위함 280척이며 아군의 중앙은 룬투 6척, 호르투 100척입니다. 다만 기존 테라 함대보다 월등히 강해진 상황이기에 엔두카를 포위한 호르투 50척을 중앙 함대에 다시 합류시켜야 합니다. 아군 함재기는 현재 적 함재기와의 전투에서 우위를 차지하지 못하고 있기에 역시 함부로 뺄 수 없습니다.”
“원래대로 진행한다.”
빠르게 모든 보고를 들은 이두르카는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하지만!”
“진행해! 남은 호르투는 모든 동력을 배리어에 투입하고 돌격전술을 시행하라. 무슨 이유 때문에 놈들의 기술이 이렇게까지 발전했는지 알 수 없으나 아군의 장갑보다 강력한 장갑을 보유하고 있지는 않을 터, 강습병으로 엔두카를 점령한다. 그럼 시간이 훨씬 단축되겠지.”
“알겠습니다.”
*
“적 순양함 40척의 배리어가 소멸되었습니다!”
“아군 폭격기가 적 순양함을 향해 빠르게 이동 중입니다!”
이에 이한이 다시 외쳤다.
“코어 포격 다시 준비! 아군의 폭격기 보호하도록! 중앙 함대는?”
루퍼스의 함대는 좌측으로 에메스토의 함대는 우측이라면 이한이 이끄는 함대는 어디로 갔단 말인가?
“확인된 적 기함을 격추시키기 위해 교전에 돌입했습니다.”
바로 자투족의 기함을 상대하기 위해 이동한 상황이었다.
‘좋아. 이제 적의 함대의 발이 묶인 상황이다.’
곳곳에서 폭발음이 울려 퍼졌다. 25만 아니 32만기의 함재기가 공중을 쇄도하며 전투 중이었고 함선과 함선이 서로 공격하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대접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조금만 더 시간이 지나면 함재기뿐만 아니라 배리어를 잃은 함선 역시 연달아 폭발하기 시작할 것이다.
레이져캐논과 하전입자포인 이온캐논을 장착한 자투족의 함선이 강세를 보이긴 했으나 강화된 배리어로 인해 테라의 함선 역시 놈들에게 상당한 피해를 입히고 있었다.
배리어는 에너지 무기에 더 강한 위력을 보이기에 자투의 강력한 이온캐논도 적절하게 막아낼 수 있었고 테라의 레일건이나 미사일과 같은 물리 타격을 가할 수 있는 병기는 에너지 방어에 특화된 자투 함대에게 상당한 피해를 입혔기 때문이다.
공중전은 말할 것도 없고 함내 전투도 빈번하게 발생했다. 다만 그 함내 전투는 주로 테라의 함선에서 벌어졌다. 아닌 게 아니라 자투족은 직접 전투를 즐기는 종족이라 강습 전략을 자주 애용하는 편이었다. 함선 역시 강습에 특화된 부분이 없잖아 있었다.
“사령관님! 나. 나머지 적 순양함이 무작정 엔두카를 향해 빠르게 다가오고 있습니다! 서둘러 회피기동을!”
‘순양함이?’
이한이 잠시 의문을 품을 때 워의 보고가 이어졌다.
『코어 포격 준비되었습니다.』
‘올 테면 오라지.’
지금 기동한다면 코어 포격을 실시하기 어려워진다. 무엇보다 자신의 전략이 어그러진다. 놈들의 돌격이 치명적일 수 있겠지만 백병전이라면 엔두카보다도 더 강력한 위상을 지닌 시에라가 버티고 있다. 그녀의 위상은 거의 타고르스함 수준이다. 그러니 무시해도 상관없다.
“내버려 두고 다시 발포!”
『발포합니다!』
콰아아앙! 콰아앙!
“적 순양함 40척의 배리어가 소멸! 나머지 10척의 함선은 그대로 밀고 들어옵니다! 충격에 대비하십시오! 곧 충돌이 일어납니다!”
쿠우우웅!
커다란 굉음과 함께 배리어가 박살나고 엔두카가 극심하게 뒤흔들렸다. 호르투의 단단한 장갑이 엔두카의 장갑을 으스러뜨리듯이 부수며 엔두카의 곳곳을 파고들었다.
이윽고 호르투에서 기계장치가 나타나 박살난 엔두카의 장갑을 파고들었다.
콰득! 콰득!
그건 마치 강철이빨을 가진 맹수가 엔두카라는 먹잇감을 물어뜯는 모습처럼 보였다.
*
“호르투 80척이 배리어를 잃어버렸습니다. 호르투 10척이 돌격전술에 성공했습니다.”
“남은 10척의 호르투는 배리어를 잃은 호르투를 지원하고 엔두카에 병력을 밀어넣은 호르투는 다시 중앙 전선에 복귀! 겁도 모르고 짓쳐 드는 테라 함대를 박살내라!”
이두르카는 이온 캐논을 통해 엔두카를 상대할 수 있었지만 테라의 반격이 생각했던 것보다 강력하자 엔두카를 탈취해 사용하고자 마음 먹었다.
함대의 좌측, 우측의 함선의 피해가 점차 심각해지고 있었다. 이건 좋지 않다. 패배할 것을 염려해서 좋지 않는 게 아니라 미개한 종족을 상대로 큰 피해를 입었다면 자신의 지휘력을 상부에서 의심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 미개한 놈들이!”
으드득!
이를 갈던 이두르카는 다시 서늘한 눈빛으로 자신의 함대를 향해 짓쳐 드는 테라 함대를 상황판 등을 통해 바라보고 있었다.
*
“사령관님! 자투족이 함내로 침입했습니다! 총 3만에 달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강습을 시도한 함선이 모두 10척이었으니 대략 3천 명씩 쏟아넣었다는 뜻이다. 확실히 자잘한 강습선 여러개를 띄우느니 순양함 한 척을 박아넣고 강습 시키는 것이 효율적이긴 했다.
“자투족의 순양함 10척이 다시 뒤로 빠집니다! 코어 포격은 어렵습니다. 거리가 너무 가깝습니다. 레이져 포격을 가하고 있지만 큰 피해를 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엔두카 역시 장갑의 피해가 극심합니다.”
쾅! 콰광! 콰과과광!
보고를 하는 와중에도 함선과 함선이 서로를 향해 포격하는 충격에 함선 전체가 요동치고 있었다.
“워! 코어 포격은?”
『당분간 어렵습니다.』
하긴 완충된 코어 포격은 아니었지만 기존 코어 포격보다 강력한 코어 포격을 40발 씩 두 번, 총 80발을 포격한 셈이니 그럴 수밖에. 그것만 해도 엔두카는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럼 적의 이온 포격을 대비해 배리어를 다시 강화하도록!”
『알겠습니다. 다만 적은 엔두카를 탈취할 생각으로 병력을 밀어넣은 것으로 보입니다.』
이한은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명령을 내렸다.
“함내에 침투한 자투족은 시에라, 빌리를 위시로 모든 병력을 투입해 정리하도록!”
빌리만이라면 불안하다. 슈퍼솔져를 이끌고 있어도 말이다.
하지만 시에라, 그녀는 어지간한 엘더조차도 눈물을 흘리며 도망갈 정도로 강력한 능력을 보유했다. 자투족? 자투족이 슈퍼솔져를 넘어설 정도로 강력한 개체가 있는 건 알지만 뛰어난 ESP 능력을 가졌다는 설정은 본 적이 없었다.
‘차라리 가까이 다가와서 이온 포격을 가했다면 막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니 이름 모를 자투족의 지휘관아. 매우 고맙다.’
이한은 차가운 눈으로 치열한 전장을 바라봤다.
“자 이제. 용은 그렸고 눈알에 점을 박아넣을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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