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mmander of the Space Gamer RAW novel - Chapter 137
134. 황제가 남긴 것 (2) >
134.
청명한 하늘 아래 수목이 울창하게 우거져 있었다. 초자원은 환경 물질이라는 걸 내뱉지 않기에 그야말로 청정자원이라 할 수 있었고 무엇보다 테라포밍도 가능한 상황이니 테라의 자연을 복구하는 것도 크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따라서 도시가 형성된 지역을 제외한 나머지 지역은 대개 울창한 수목과 수많은 식생이 번성하고 있었다. 첨단 문명으로 이뤄진 도시가 싫은 사람들은 이러한 숲으로 들어와 마을을 이루고 살아가곤 했는데 당연히 그 숫자가 그리 많지는 않았다.
범죄자들이 도시에서 외부로 도망치는 경우가 상당히 많았기 때문에 안전상의 이유로 대개 도시에 머물렀고 도시를 벗어나도 치안이 유지되는 지역에 머물기 때문이다. 사실 도시 안에도 상당한 숲 지대가 형성되었기에 굳이 도시 외부에 거주지를 마련할 이유가 없다.
어쨌든 이곳은 숲을 벗 삼아 살아가는 소수의 사람도 존재하지 않는 숲이었다. 태고의 숲처럼 울창한 곳이었는데 바로 아마존 열대우림 중에서도 깊숙한 숲이었다.
열대우림의 수목이 광풍에 휩싸인 것처럼 미친 듯이 흔들리다가 이내 곧 움직임을 멈췄다.
쿵! 쿵!
주변의 땅을 울리는 육중한 소리가 울려 퍼지더니 암석질로 이뤄진 피부를 가진 거대한 체구의 외계인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바로 자투족이었다.
“생각보다 침투하기 쉬웠습니다.”
“행성 방어가 이렇게 허술해서야.”
“테라의 기술력이 우리 자투에 비해 부족해도 그만한 병력이라면 경계만 강화했어도 이렇게 쉽게 침투하지 못했을 텐데 말입니다.”
“고작 이 정도에 불과하다면 행성폭탄을 테라에 설치할 이유도 없는 것 아닙니까?”
상전사들의 말을 듣고 있던 우툰카가 입을 열었다.
“내 생각도 너희와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대전사장 이두르카는 테라에 행성폭탄을 설치하라고 명령했다. 그와 통신이 연결되었다면 이것에 대해 상의할 수 있겠지만 그럴 수 없는 상황이라는 건 너희도 잘 알고 있겠지. 그러니 명령대로 수행한다!”
테라의 기술력이 자투족보다 부족해도 통신을 감지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대전사장 이두르카가 이미 모든 테라 함대를 괴멸시키고 테라로 향하고 있을 테니 아무래도 상관없겠지만 이두르카가 통신을 연결할 수 있는 상황이고 명령을 변경하길 원한다면 알아서 먼저 연락을 취해올 것이다.
그러니 은밀히 침투한 자신들의 위치가 발각될 위험을 무릅쓰고 먼저 연락할 이유가 없었다. 대전사장 이두르카에게도 부주의하다는 인상과 명령에 불복한다는 느낌을 남길 수 있었다. 여러모로 현명한 선택이 아니었다.
우툰카의 단호한 말에 상전사들은 더 말을 꺼내지 않고 둥근 형태의 구조물을 가져왔다. 상전사 여러 명이 달라붙어도 간신히 옮길 정도로 매우 거대한 구조물이었다.
쿠우웅!
바닥에 내려놓기 무섭게 상전사 한 명이 계기판을 조작하기 시작했다.
띡! 띠디딕!
그러자 둥근 구조물의 밑부분이 변형되기 시작했다.
위이이잉! 철컥! 위이잉! 철컥!
이윽고 원뿔 모양의 드릴 형태로 변화한 구조물은 순식간에 땅을 파고 지하로 들어갔다.
콰드드드득! 콰드드득!
이제 며칠 뒤면 행성폭탄 설치가 완료된다. 물론 그전까지는 이 위치를 사수할 필요가 있었다.
“산개! 접근하는 놈은 모조리 죽여라!”
“알겠습니다.”
우툰카의 명령이 떨어지자 자투의 상전사들은 육중한 체구가 무색하게 엄청난 속도로 숲속 곳곳으로 모습을 감췄다.
*
머리가 반쯤 벗겨진 사내 해리 윙크스가 유니온의 사무총장 젤린도 보르딘과 독대하고 있었다. 젤린도 보르딘은 여전히 말끔한 모습이었지만 눈빛에 서린 근심만은 그도 어떻게 할 수 없었다.
“지금 막 들어온 소식. 들으셨습니까?”
해리 윙크스가 어떤 인사말도 없이 말을 뱉었음에도 젤린도 보르딘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물론이오. 에메스토 공작, 루퍼스 사령관, 한 사령관이 자투 함대를 무찔렀다고 하더군요. 무려 우주모함 20척, 순양함 100척, 구축함 400척, 호위함 800척으로 이뤄진 자투 함대를 상대로 싸워 우주모함 2척에 순양함 10척, 구축함 90척에, 호위함 180척만 잃었다고 하니 그야말로 대승이지요. 인류의 홍복이나 다름없습니다.”
“자투족이 테라 함대를 괴멸시킨 것보다야 나은 결과이긴 하지요. 하지만 정말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대승의 원인은 다름이 아니라 뉴트럴, 아니 뉴트럴의 병력을 하나로 통합한 스톰의 참전 때문이었습니다. 이 일이 시사하는 게 뭔지 모르실 거라 생각하지 않습니다만?”
“흠.”
“에메스토 공작은 자투 함대와의 전투를 대비하기 위해 스톰의 기술을 루퍼스 사령관과 한 이드라실 사령관에게 넘겼지요. 참전의 대가인 셈입니다. 스톰이 뉴트럴의 병력을 통합해 이끌었던 것을 보면 적어도 뉴트럴의 5대 기업 르넨, 마리카, 아누스, 헬라, 크레이튼에겐 기술을 넘겼다고 보는 게 현실적입니다. 그리고 이제 저들은 자투 함대에게 승리해 자투족의 발전된 기술까지 습득하게 되었지요. 이게 정녕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시지 않겠지요.”
젤린도 보르딘은 손깍지를 끼며 아메리카 섹터의 대사 해리 윙크스를 지그시 바라봤다.
“무슨 말씀을 하시고 싶은 것입니까?”
“루퍼스, 한 사령관이 스톰의 기술을 얻었다고는 하나 어디까지나 그건 저들이 얻은 것이지 유니온이 얻은 것이 아닙니다. 한 사령관이 주도해 승리를 거뒀지만 마찬가지로 유니온이 승리를 거둔 것이 아닙니다.”
“이상하군요. 유니온에서 언제 루퍼스, 한 이드라실 두 사람을 제명하기라도 했단 말입니까? 그들은 여전히 유니온 소속입니다만?”
해리 윙크스는 눈매를 좁히며 젤린도 보르딘을 노려봤다.
“한 사령관의 인지도와 인기는 이곳 테라보다 하이모스에서 더 열광적이라고 하더군요. 이번 전투에서 지휘한 함대 역시 유니온의 함대가 아니라 엠파이어의 것이었습니다. 그가 하이모스에 남아있는다면 에메스토 공작보다 더 많은 함대를 거느리게 됩니다. 그를 더 이상 유니온 소속이라 말할 수 있겠습니까?”
“으흠. 한 사령관은 그렇다 쳐도 루퍼스 사령관은!”
해리 윙크스는 젤린도 보르딘의 말을 끊으며 말했다.
“각하. UNC의 머큐리 1함대, 테라 4함대와 UNP의 비너스 2함대, 테라 3함대, 마르스 5함대를 합쳐야만 루퍼스 사령관의 UNA 함대, 곧 쥬피터 6함대, 새턴 7함대, 넵튠 8함대를 상대할 수 있을 겁니다. 바로 루퍼스 사령관의 UNA 함대 말입니다.”
루퍼스 사령관의 UNA 함대라는 말을 해리 윙크스가 의도적으로 꺼냈다는 걸 모르지 않았다. 이에 젤린도 보르딘은 해리 윙크스를 가만히 바라봤다.
참고로 본래는 우라노스가 7함대였다. 다만 우라노스 함대는 과거 대전투 중 괴멸했다. 그러던 것이 기존에 있던 테라 3함대(UNP)에 이어 테라 4함대가 UNC에 의해 창설되고 쥬피터 함대 등의 함대 번호가 뒤로 밀리면서 지금의 형태가 되었다.
사실 이것도 극심한 분란을 일으켰는데 UNC가 상당수 무마시키고 넘어가게 만들었다.
“무엇보다 각하께서도 저희와 마찬가지로 참전을 반대하시지 않았습니까?”
UNA의 최고 명령권자는 사무총장이다.
그러나 루퍼스 사령관과 한 사령관은 참전불가 명령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아니 애초에 별다른 보고도 하지 않고 군을 움직였다. 한 사령관은 엠파이어와 연관이 깊어졌으니 일단 넘어가더라도 루퍼스 사령관은 UNA의 명령권을 고스란히 보유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UNA는 이제 UNC, UNP를 모두 합친 것만큼이나 강력해졌다.
“루퍼스 사령관을 실각시키고 그가 얻은 기술 일체를 UNC, UNP 모두에게 제공하라?”
“루퍼스 사령관은 이미 막강한 병력을 얻었습니다. 지휘권 역시 확고하지요. 이런 상황에 사무총장께서 루퍼스 사령관을 실각시키면 쿠데타가 일어날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저희가 총장 각하의 힘이 되겠습니다.”
“기술을 제공하고 UNA의 진정한 통수권자가 되어라? 제법 흥미가 당기긴 하군요.”
루퍼스 사령관이 실각하면 그가 가진 함대는 고스란히 자신의 손에 들어온다. 나쁘지 않은 결과다.
“저희로서는 별로 원하지 않는 구도지만 그리 되면 적어도 예전의 구도를 지킬 수는 있겠지요. 바로 각하께서 원하는 구도 말입니다. 이런 상황에 같은 유니온끼리 전쟁이라도 치르면 어떤 결과가 이어질지 예상하지 못할 분은 아니지 않습니까?”
젤린도 보르딘은 손깍지를 풀고 탁자를 검지로 툭툭 두들겼다. 루퍼스 사령관은 뛰어난 사령관인 것과 별개로 주화파에 속한다. 항상 전쟁보다는 평화를 주장했다. 본인으로 인해 대규모 유혈 사태가 벌어질 건 안다면 지휘권을 내려놓을 수 있는 사람이다.
해리 윙크스 이자도 그것을 알고 말하는 것이겠지. 당근은 젤린도 보르딘 자신이, 채찍은 저들이 가해겠다는 뜻이다.
“흠. 좋습니다. 하지만 명령불복종에 따른 죄를 묻는 것과 별개로 승전에 대한 포상을 뒤따라야겠지요. 아울러 그의 명예를 손상시키는 일은 하지 않는 것이 이로울 것이오.”
“물론입니다. 그건 각하의 뜻대로 하시지요.”
해리 윙크스는 빙그레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비록 원하지 않는 결과지만 적어도 시대에 뒤처지진 않을 것이다.
그들이 그렇게 동상이몽의 꿈에 젖어들고 있을 때 우툰카가 설치한 행성폭탄은 맹렬하게 테라의 핵을 향해 돌진하고 있었다.
*
이한은 엔두카에서 루퍼스 사령관과 만남을 가지고 있었다. 이한은 조금 황당한 표정으로 루퍼스에게 말했다.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유니온에 돌아가봐야 별로 좋을 일이 없다는 건 사령관께서도 아시는 일 아닙니까?”
전쟁 결과야 어찌되었든 명령불복종은 어떻게 무마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이한조차도 유니온의 작자들이 어떤 식으로 나올지 예상이 되는데 닳고 닳은 루퍼스 사령관이 예상하지 못할 리가 없지 않은가?
“가야하네. 한 사령관 자네를 위해서라도.”
“그러니까 그게 무슨 말입니까?”
“한 사령관. 어떤 경우에도 명령불복종은 용납할 수 없는 중대한 죄라네. 물론 그 명령이 도의적인 부분에서 벗어난 경우엔 말이 조금 다를 수 있지만 당장 처벌을 피하지 못한다는 점에선 크게 다를 것도 없겠지. 더욱이 이 경우엔 그런 경우도 아니었으니 그 부분에 대해 누군가 책임을 져야만 하네. 물론 상황이 참작될 테니 내가 경질되는 선에서 그치겠지.”
이한은 답답하다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사령관께서도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저희가 참전하지 않았다면 자투 함대에게 엠파이어는 물론 모든 세력이 초토화되었을 겁니다. 아니 이제 시작일 뿐이란 말입니다. 그런데 무슨 책임? 악법도 법이다 뭐 이런 겁니까?”
루퍼스는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이한을 바라봤다.
“모든 일에는 대가가 따르는 법이라네. 예외의 상황이었다고 해도 그것에 대한 대가를 치러야만 하는 법. 지휘관 스스로 군율을 무너뜨릴 수는 없는 법이야. 무엇보다 내가 가지 않는다면 유니온은 전쟁을 일으킬 명분이 있게 되네. 저들의 야망은 저들을 결코 그대로 주저앉은 채로 죽게 만들지 않을 테니 대외적으로 그 부분에 종지부를 찍을 필요성이 있네. 사실 이 부분이 가장 크네.”
이한이 인상을 쓰고 있자 루퍼스가 입을 열었다.
“그렇다고 해도 마냥 저들의 뜻대로 놀아날 수는 없지. 한 사령관.”
루퍼스의 말에 이한이 그를 바라봤다.
“예.”
“자네에게 쥬피터 6함대, 새턴 7함대, 넵튠 8함대를 양도하지. 기한은 테라에 대한 외계종족의 모든 위협이 사라질 때까지. 나의 지위는 상실되지 않았으니 양도할 권한이 있고 어쨌든 자네는 유니온, 엠파이어, 뉴트럴 삼대 세력 모두에게 인정받은 총사령관이니 유니온의 지휘권을 얻을 수 있는 위치야. 같은 맥락으로 유니온의 법도로 더 이상 자네를 옭아맬 수 없네. 자네는 유니온의 사령관이 아니라 총사령관이니 말이야. 무엇보다 과거의 것은 모두 내가 안고 갈 것이네. 물론 그러기 위해선 자네 도움도 필요하고 말이야. 그리되면 유니온 역시 결국 자네를 총사령관으로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겠지.”
이한이 중대한 범죄를 저질렀다면 어찌 루퍼스가 대신 감당할 수 있겠느냐마는 이 경우는 엄밀히 말해 명분싸움에 지나지 않았다. 그리고 그 명분싸움 뒤에는 서로 실익을 챙기려는 의도가 숨어있었다. 루퍼스는 그것을 꿰뚫어 본 것이리라.
“루퍼스 사령관님 설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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