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mmander of the Space Gamer RAW novel - Chapter 138
135. 황제가 남긴 것 (3) >
135.
“루퍼스 사령관님 설마?”
전쟁을 일으킬 작은 명분은 루퍼스 사령관이 처벌을 받음으로 사라진다. 세인들은 누가봐도 이한 쪽에 명분이 있기에 전쟁을 벌일 명분도 힘도 격차가 명확해진다.
이한을 총사령관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은 그가 유니온 소속이 아니라는 뜻이 되고 그건 이한 등이 얻은 기술을 요구할 수 있는 명분을 아예 말살시키는 자충수가 된다.
테라의 영웅으로 명성이 자자한 루퍼스가 모든 것을 책임지고 자리에서 내려왔으니 이한을 추궁할 명분도 사실상 사라지니 유니온 역시 외계종족에 대항할 테라의 총사령관으로 이한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다.
이미 명분과 힘의 무게추가 이쪽으로 완전히 쏠린 상황이고 각 섹터는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분열하게 될 것이다. 루퍼스는 책임을 지는 것과 동시에 그 일을 위해 유니온으로 가는 것이리라. 거기까지 생각한 이한은 말문을 잃고 루퍼스를 바라봤다.
“자네 유니온을 아예 배제할 생각은 아니지 않았나? 사사로운 이득을 얻길 원하는 자에게 아무리 대승적인 관점을 제시해도 그건 별 의미가 없네. 저들의 야욕을 이용하는 수밖에.”
이한은 루퍼스의 노련함에 혀를 내둘렀다. 루퍼스 사령관에 대한 처벌 역시 거의 유명무실하게 될 것이다. 바로 자신이 루퍼스 사령관의 요청에 따라 기술을 지원하게 될 테니까.
“유니온에 사령관님을 통해서만 대화가 가능하다는 걸 강하게 어필하도록 하지요.”
단호한 이한의 말에 루퍼스는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허허허허. 허허허. 그럼 총사령관님만 믿겠소이다.”
루퍼스는 테라가 처한 상황에 부정적인 생각보다 긍정적인 생각을 품고 있었다. 어차피 전쟁은 일어났을 것이다. 모든 상황이 전쟁으로 치닫고 있었으니까.
따라서 루퍼스는 차라리 강력한 위기 앞에 서로의 계산은 접어 두고 하나로 뭉치는 것이 낫다는 생각을 했다. 그게 아니라면 같은 인간을 상대로 총질을 해야 했을 테니까. 뭐가 다르겠냐마는 차라리 그게 낫다고 여겼다.
나이가 나이다 보니 이젠 휴식을 가지고 싶다. 그러나 아직 할 일이 많다. 다만 이게 거의 마지막 임무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품었다.
*
이한은 침상에 누운 채로 시에라의 찰랑거리는 머리카락과 매끈한 그녀의 등을 쓰다듬었다.
“시에라.”
“응?”
“우주 저편 어디로 아무도 알지 못하는 곳으로 도망이라도 칠까?”
“어디 물색해 놓은 곳은 있으시구요?”
“뭐. 어디든.”
시에라는 이한의 탄탄한 가슴을 쓰다듬으며 이한의 뺨에 키스했다.
“어디든 가봐요. 어디든 쫓아갈 테니까요.”
“테라 최강의 ESP 능력자가 쫓아온다니 이거 참 무섭군. 그리고 내 말은 같이 가자는. 읍.”
시에라는 이한 위로 올라와 이한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포갰다. 열정적으로 이한과 키스를 나누던 시에라가 짖궂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테라 최고의 미녀가 아니고요?”
이한은 몸을 벌떡 일으켜 시에라 몸 위에 올라타며 말했다.
“맞아. 최고의 미녀지.”
*
시에라와 뜨거운 시간을 보낸 이한은 곤히 잠든 시에라를 보며 포도주를 마시고 있었다. 씁쓸하면서도 달콤한 포도주를 맛보던 이한은 잔을 내려놓으며 멍하니 천장을 바라봤다.
“하아.”
아무 생각도 떠오르지 않고 그저 한숨만 나왔다. 88만이 넘는 전사자들의 장례식을 치른 이한은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을 보자 차라리 이 모든 것이 허상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품었다.
물론 시에라와 함께 하며 그 생각은 다시 옅어졌지만 어쨌든 누군가에는 아버지, 누군가에는 아들, 누군가에는 엄마고 누군가에는 딸이었던 사람들이었다.
단순히 숫자로만 계산될 수 없는 수많은 삶이 지난 전투 한 번으로 사라졌다는 뜻이다.
이게 끝이라면 힘든 과거였다고 어떻게 넘기면 되겠지만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88만? 앞으로 다가올 전투를 생각하면 880만이 죽는다고 해도 이상한 일이 아닐 것이다.
시에라에게 농담 삼아 말을 꺼냈지만 정말이지 어디로 도망이라도 칠 수 있으면 훌쩍 떠나버리고 싶다.
하지만 그럴 수가 없다. 전에는 유니온의 사령관이고 도주하면 내 목숨을 잃을까 두려워 도망칠 수 없었지만 이젠 도망칠 수 있는 여건과 능력도 충분한데 그럴 수가 없다.
지랄맞게도 테라의 총사령관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루퍼스가 언급했다시피 삼대 세력 모두의 인정을 받은 사람은 내가 유일하다.
유니온? 대다수 시민들이 그 사실을 인정할 텐데 지들이 무슨 용가리 통뼈라고 그걸 버티겠나? 심지어 그 이름도 대단한 루퍼스 사령관이 첨병으로 유니온에 침투하는 마당에.
어쨌든 이런 상황에서 내가 훌쩍 어디론가 사라지면 그야말로 혼란의 도가니탕이 되는 거다. 그리고 그 도가니탕에는 수백만의 인류가, 어쩌면 인류 전체가 휘말려 영원 저편으로 사라질 수도 있겠지.
누가 억만금을 주고 도망치라고 해도 도망칠 수가 없는 상황이다. 책임 이딴 거 다 떠나서 다 죽으면 나도 결국 죽는 거다.
이한은 포도주를 잔에 따라 다시 단번에 들이켰다.
꿀꺽! 꿀꺽!
어째 술을 진탕 마셔도 정신이 더욱 또렷해지는 느낌이다. 답답한 마음이 해소되기는커녕 오히려 더 답답해진다.
이한은 그 짜증에 술잔을 슬쩍 옆으로 치웠다. 침상에서 시에라가 곤히 자고 있지 않았다면 아마 집어던졌을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워의 보고가 떠올랐다.
『사령관님.』
이한은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왔다. 심사가 잔뜩 뒤틀린 상황이다보니 자연히 퉁명스러운 어조로 말을 꺼냈다.
“뭔데?”
『자투의 기함을 조사하다가 기묘한 자료를 발견했습니다.』
“기묘한 자료? 기밀 같은 걸 말하는 거냐? 그런 게 남아 있었나?”
『자투족은 자신들이 패할거란 생각을 하지 않았기에 함선에 남아있는 자료나 기술을 완벽하게 제거하지 못했습니다. 그점이 자투 기술의 장단점을 파악하는데 큰 도움이 되고 있긴 합니다.』
“자투 기술을 파악했느니 마느니 말을 꺼낼 거라면 내일 다시 보고해라. 그런 거 듣고 있을 기분이 아니다.”
『다른 함선은 몰라도 기함의 지휘관은 분명 하이모스에 특별한 목적을 두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뭘 찾았는데?”
『특이점이 될만한 자료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런데?”
『다만 그점에 의문점을 가지고 칼란두를 황제의 행적에 대해 집중했습니다. 하이모스의 모든 시설에 접속할 권한이 한 사령관께 있기에 제가 임의대로 접속하여 칼란두를 황제의 행적에 대해 조사했습니다.』
“칼란두를 황제의 행적?”
『엔두카는 칼란두를 황제의 명령으로 만들어진 함선이 분명합니다. 특이한 점은 과거 엠파이어는 이같은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에스타른족의 기술과 기이할 정도로 비슷한 부분이 있어서 안 그래도 이 부분에 대해 따로 보고드릴 예정이었습니다.』
“그래서 황제가 뭘 어쨌다는 건데?”
『기존에 없던 것을 만들어 내려면 그에 따른 연구가 필수적입니다. 하지만 엔두카를 연구했던 흔적은 없고 거의 완성된 설계도만 발견했습니다. 심지어 그 설계도는 엔두카보다 훨씬 월등한 기술을 지닌 형태였습니다.』
심드렁한 표정을 짓고 있던 이한은 다소 눈을 크게 뜨고 반문했다.
“뭐?”
『칼란두를 황제가 어느날 갑자기 엔두카라는 함선을 건조하라 명령을 내린 점, 육체를 강화했음에도 ESP 능력을 동시에 사용할 수 있었던 점, 마지막으로 자투족의 사령관이 하이모스에 집착을 보였다는 점을 고려해 하이모스에는 알지 못하는 문명의 기술이 담긴 뭔가가 존재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황제가 고대 문명의 뭔가를 발견하고 다운그레이드한 버전으로 만든 것이 엔두카다?”
『모두 해석할 수 없었기 때문인지 아니면 테라의 기술이 받쳐주지 않아서인지는 모르지만 원래는 발견한 모습 그대로 완성하려고 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한은 칼란두를 황제의 기이한 야욕에 대해 제대로 미친 놈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런 것을 숨겨두고 있었다면 이놈 상당히 무서운 놈이 아닌가?
‘잠깐만. 스페이스 워에서 자투족이 중후반부에 더 강해진다는 내용을 들은 적이 있는 것 같은데 이거 설마?’
이한은 정신이 번쩍 드는 것 같았다. 그게 유물이든 고대 기술이든 뭐든 간에 자투족마저 강하게 만들 정도라면 반드시 얻을 필요가 있었다.
“황제가 죽으면서 보물을 남겼다라. 그래서 보물지도는 그렸나?”
『의심되는 구역이 몇 군데 있긴 합니다. 다만 혹시나 싶어 타고르스함으로도 살펴봤지만 아무것도 발견할 수 없었습니다.』
“에스타른족의 문명마저 뛰어넘는 문명이거나 그도 아니면 정말 아무것도 없거나 둘중 하나겠군. 그래서 네 생각은?”
『하이모스에 그런 기술이 있다면 반드시 사령관께서 얻으셔야 합니다.』
“내가 직접 확인하라는 뜻인가?”
『시에라 소령과 함께 이동한다면 별 문제는 없을 것으로 판단됩니다. 그보다 못한 능력을 지닌 황제도 무사히 살아돌아왔습니다. 정말로 황제가 뭔가를 남긴 것이 있다면 말입니다.』
이한은 미간을 좁히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기술의 중요성과 기밀의 중요성을 생각하면 자신이 직접 움직이는 것이 가장 확실하긴 했다. 더욱이 다른 행성도 아니고 하이모스 행성이니 외부에서도 기이하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일단 스톰의 기술과 이번에 얻은 자투 기술을 융합시켜 테라의 실정에 걸맞은 형태로 변형시키도록 해. 곧바로 모든 함선에 적용시키도록 하고.”
『이미 에스타른족의 기술을 테라에 적용할 수 있도록 기반시설을 계속해서 업그레이드하고 있습니다. 자투 함대의 잔해에서 얻은 기술과 자원 등이 상당히 큰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그나저나 기술보다도 초자원 확보가 문제겠군.”
에스타른족의 기술은 반드시 초자원이 있어야만 만들 수 있는 장치들이 상당히 많았다. 그만큼 강력하긴 하지만 현실적으로 함대를 구축할 만한 초자원을 얻기란 너무 요원한 일이다.
지금껏 얻은 초자원은 타고르스를 업그레이드하기에도 빠듯하다. 그러니 기존의 테라 함선을 이용하면서 지금처럼 전체적으로 약간씩 업그레이드해가는 것이 그나마 효율적인 방법이었다.
『그렇습니다. 현 상황에서 가장 시급한 문제는 안정적인 초자원 수급입니다. 초자원 수급만 안정적으로 이뤄지고 시간만 충분히 주어진다면 자투족의 본대가 쳐들어와도 문제될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황제가 남겼을지 남기지 않았을지도 모르는 무언가를 찾아야한다고 말하는 것이냐?”
『예측한 것이 맞다면 이미 발전된 기술을 지닌 자투족이 원하던 물건입니다. 확인해볼 이유는 차고 넘칩니다. 초자원 탐사나 기술 연구 및 생산에 사령관님께서 관여하실 부분은 적으니 드리는 말씀입니다.』
“큭큭큭. 이 새끼 지금 나보고 쉬지 말고 일하라는 뜻이냐? 뭐 좋아. 뭐든 간에 도움이 될 가능성이 높다면 확인해봐야겠지. 아무튼 그게 지금은 아니다.”
『알겠습니다. 다만 모든 채비는 이미 마쳤습니다.』
“어이쿠. 빠르기도 하셔라. 큭큭.”
이한은 조소를 짓다가 샤워실로 들어가 뜨거운 물을 틀었다.
쏴아아아!
세차게 쏟아지는 물줄기를 받으며 이한은 눈을 감고 머리카락을 뒤로 쓸어 넘겼다.
*
유니온의 수송선이 열대우림 지나쳐 집결장소에 병사들을 쏟아냈다.
위이이잉 착! 착!
“대체 이런 오지에 뭐가 있다고 병력을 파견한 거야?”
“강력한 에너지 흐름을 포착했다고 했으니 거 뭐냐 자투족의 침투했는지도 모르지. 이를 테면 불시착한 자투의 우주선 정도?”
“테라를 지키는 주력 함대가 둘이다. 놈들이 아무리 대단해도 그 두 함대의 감시를 피해 테라에 불시착했다고? 말이 된다고 생각하냐?”
병사들이 두런두런 대화를 나눌 때 지휘관이 강압적인 어조로 명령을 내렸다.
“시끄럽고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해! 위치 잡고 주변에 특이사항이 있는지 확인. 커억!”
우두둑!
강압적인 어조로 말을 꺼내던 지휘관은 허공에 그대로 들어올려진 채로 목이 으스러져 죽음을 맞이했다.
“뭐. 뭐야?”
병사들은 깜짝 놀라 지휘관을 바라보다가 지휘관 뒤쪽을 향해 라이플을 사격했다.
그러자 껍질이 벗겨지는 것처럼 투명한 막이 사라지며 육각형의 쉴드에 들러싸인 거대한 자투족이 모습을 드러냈다.
“자. 자투? 어떻게?”
【∈⊇⌒≤∋!】
자투족이 자투족의 언어로 뭐라 말하더니 자신에게 사격을 가하는 병사들에게 엄청난 속도로 쇄도해 둔기 비슷한 무기로 저들을 단번에 피떡으로 만들어버렸다.
미처 어떻게 반응하지도 못할 정도로 엄청난 속도였다. 그도 그럴 것이 자투 상전사라면 슈퍼솔져보다도 강력한 놈들이다. 그런 놈들의 공격을 일반 병사들이 어떻게 막아낼 수 있을까? 심지어 이들은 스페이스 마린도 아니었다.
콰직! 콰지직!
“크아아악!”
뒤이어 날아온 수송선을 바라본 자투 상전사는 수송선을 향해 손을 들어 레이져포격을 가했다.
콰아아아앙!
함선의 레이져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테라의 수송선을 파괴하기엔 충분한 광선이었다. 수송선은 폭발했고 그 잔해를 아래로 흩뿌렸다. 모든 병력을 사살한 자투 상전사는 다시 투명한 막에 휩싸여 스르륵 모습을 감췄다.
바로 아마존 열대우림에서 발생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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