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mmander of the Space Gamer RAW novel - Chapter 14
14. 우리 제발 이러지 말자 (1)
14. 우리 제발 이러지 말자.
스틸아머에 장착된 개인용 쉴드는 에너지 형태의 공격을 효과적으로 방어한다. 상시 발동되는 건 아니고 에너지를 포착하면 그 에너지를 흡수하여 위력을 줄이는 형태로 발현된다.
따라서 물리적인 직접타격에는 거의 효과가 없다. 에너지 무기가 개발되지 않은 것도 아닌데 실탄형 무기가 주로 쓰이는 이유가 바로 여기 있다.
상시발동되는 배리어는 직접타격도 어느 정도 방어할 수 있지만 단순히 물리공격 방어를 위해서라면 두꺼운 철판을 세우는 것이 더 나은 형편이다.
무엇보다 스틸아머 구동에 필요한 에너지도 허덕이는 판국에 병사들에게 상시 구현되는 배리어는 배보다 배꼽이 더 크다. 기동성까지 고려하면 재고할 가치도 없는 부분이다.
또한 쉴드와 스틸아머의 방호력까지 무시할만한 타격이라면 피하는 게 상책이다. 스틸아머를 제아무리 단단하게 만들어도 내부 충격파나 반탄력을 이기지 못하고 즉사할 테니까.
사실 스틸아머 사용만으로도 육체에 가해지는 부담이 있다. 스페이스 마린이 라이플보다 강력한 중화기를 들고 전장에 서지 않는 이유 또한 이것과 연결된다. 아닌 게 아니라 스틸아머가 아니라면 현재 쓰는 라이플의 반탄력도 얼마 버티지 못할 것이다.
따라서 의료 시설이 전략이 된다는 워의 발언은 어떤 은유적인 표현이 아니라 스틸아머 사용자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내용이었다.
그런고로 크락투와의 근접전을 대비해 여러 무기를 만들었어도 근접전은 여전히 최대한 피해야 할 교전수칙이었다.
쉴드는 말할 것도 없고 스틸아머마저도 단숨에 찢어버리는 괴물이 크락투였으니까.
이한은 무리하지 않고 후퇴하는 시에라의 현명한 판단에 고개를 끄덕이며 홀로그램을 주시했다.
크락투가 시에라 분대와의 거리를 시시각각 좁히는 모습이 홀로그램에 비춰졌다. 이한은 긴장한 기색을 감추지 않으며 말없이 홀로그램을 바라봤다.
위이잉!
키에에엑!
키에엑!
2시 방향에 넓게 설치된 공업용 레이저가 일제히 발동되자 그곳을 지나쳐가던 크락투들이 레이저에 달리던 모습 그대로 절단되어 바닥에 나뒹굴었다.
반사신경이 어찌나 대단한 놈들인지 그 순간에도 죽지 않고 몸을 피한 크락투가 상당했다.
그러나 이한이 준비한, 그러니까 워가 계산한 함정은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마치 그렇게 움직일 것을 계산이라도 했다는 듯 크락투에게 치명적인 가스가 그 주변으로 살포되었기 때문이다.
키에에엑!
키에엑!
시에라 분대를 뒤쫓던 크락투들 전부가 괴성을 지르며 바닥에 뒹굴었다. 살갗이 녹아내리고 호흡기가 막혀서 켁켁거리는 놈 등등 한눈에 보기에도 상당히 고통스러워 보이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어찌나 끈질긴 생명력인지 그럼에도 죽지 않은 다섯 마리의 크락투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다시 시에라 등을 추격하기 시작했다.
시에라 분대는 크락투가 함정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사이 지체하지 않고 후퇴했기에 상당한 거리를 벌릴 수 있었다.
숨소리조차 내지 않고 집중하고 있는 이한에게 워의 보고가 이어졌다.
『공장 건설이 완료되었습니다. 사령관께서 지시한 내용대로 개조한 기갑병기 생산을 실시합니다.』
워의 보고에도 이한은 화면에서 눈을 떼지 않고 생각에 잠겼다.
‘뭔가 상당히 느낌이 좋지 않은데? 그러니까 내가 뭔가 간과하고 있는 것 같은······. 설마?’
“워! 드론 띄워!”
『지금 드론을 띄우면 오작동을 일으킬 겁니다. 그래도 시행하시겠습니까?』
기묘한 파장의 세기가 여전했기에 금세 연결이 끊어져 버릴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그건 이한도 익히 알고 있는 내용이었다.
“일단 12시 방향 절벽 위로 날려. 어서! 정상작동은 필요 없고 그 지역을 확인만 할 수 있으면 된다.”
『알겠습니다.』
푸슈웃!
센터에서 소형 드론이 하늘 높게 방출되었고 드론은 방출된 기세 그대로 하염없이 절벽 위로 날아갔다.
드론의 흔들리는 모습이 홀로그램에 그대로 잡히자 상당히 어지러웠지만, 이한은 눈 하나 깜작하지 않고 홀로그램을 주시했다.
파지직!
절벽 윗부분이 홀로그램에 들어왔을 즈음 갑자기 연결이 끊어졌다.
“젠장!”
이한은 표정을 구기며 욕설을 내뱉었다. 드론의 연결이 끊어졌기 때문에? 아니다. 그건 이미 알고 있던 내용이다. 연결이 끊어지기 전 전송된 화면 때문이었다.
이한은 착 가라앉은 음성으로 워에게 말했다.
“마지막 화면 띄워봐!”
『알겠습니다.』
띠딕!
드론이 전송한 마지막 화면이 펼쳐지자 이한은 표정을 굳히지 않을 수 없었다.
그때 에리오의 통신이 이한의 귓가를 파고들었다.
상당히 중요한 내용이었지만 이한은 넋이 나간 사람처럼 건성건성 대답했다.
“실시해.”
곧 있을 전투의 긴장감에 휩싸인 에리오 등은 그런 이한의 기색은 알아차리지 못하고 전투적인 어조로 대답했다.
당장 전투가 일어나는데도 관심을 두지 못할 정도로 눈앞의 광경은 충격적인 광경이었다.
잠시 침묵을 지키던 이한이 워에게 질문했다.
“이게 뭐야? 대체?”
『섣불리 판단을 내리기 어려운 광경입니다.』
홀로그램에 찍힌 화면에는 뭔가의 사체가 남아있었다.
문제는 그 사체의 크기가 엄청날 정도로 거대했다는 점이다. 오래된 사체인지 본래 형태를 추측하기 어려웠지만 일단 남아있는 사체의 흔적만으로도 이한을 압도하기엔 충분했다.
“생체반응을 발견할 수 없던 행성이라고 하지 않았나?”
『상부에서 실시한 첫 탐사 결과는 그렇습니다.』
“그럼 이건 뭐야? 크락투에, 정체를 알 수 없는 거대한 사체에!”
이런 건 스페이스 워에서도 출현하지 않았다. 물론 자신이 엔딩까지 확인한 것이 아니라 장담할 수는 없지만.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오래된 사체입니다. 앞서 상부에서 생체반응을 발견할 수 없었던 점을 고려하면 더는 존재하지 않는 개체일 가능성도 있습니다. 이 사체가 희귀한 생명체였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일반적으로 지하는 탐색이 어렵다고 하지 않았나? 만약 이런 놈들이 행성 내부에 도사리고 있다면? 혹 이게 크락투라면······.”
생존을 위해 투쟁하는 모든 게 헛짓거리에 불과하다. 대체 이런 놈과 무슨 수로 싸워?
『다행히 크락투일 가능성은 희박합니다. 다만 드론에게 전송된 다른 신호를 분석해본 결과 기묘한 파장과 일치되는 파장을 거대한 사체에서 발견했습니다.』
“기묘한 파장이 절벽 위 거대한 사체로 인한 것이다?”
『정확한 것은 사체를 조사하기 전까지는 알 수 없지만 크락투가 기생체라는 것을 고려하면 이 행성의 토착 생명체가 아니었을까 추측됩니다.』
“절벽 위에서 크락투가 침투할 확률은?”
『기묘한 파장의 근원이 이 사체가 맞다면 더욱 희박합니다.』
‘괜한 불안감이었나? 어쨌든 덕분에 기이한 사체를 발견하긴 했지만······.’
이한은 고개를 끄덕이며 마린들의 전투에 다시 눈을 돌렸다. 예상했던 것과 달리 12시 방향의 안전이 확보되었다면 이 부분은 나중에 확인해도 될 일이다.
크락투는 벙커를 물고 뜯으면서 어떻게든 마린들을 죽이려고 했지만 빌리, 에리오, 시에라를 위시로 병사들은 필사적으로 저항하고 있었다.
화르르륵!
화르륵!
고열의 화염방사기가 독가스로 녹아내린 놈들의 살갗을 새까맣게 태우자 크락투는 괴성을 지르며 몸을 뒤틀었다.
하지만 불타오르다 못해 돌덩이처럼 딱딱하게 굳은 육체의 반응에 크락투는 피하지도 못하고 온몸이 불살라졌다.
키에에엑!
키에엑!
레이저건에서 발사된 레이저는 저들의 단단한 표피를 무 자르듯 갈라버렸고 노련한 마린들은 그 상처에 집중포화를 가했다.
두두두!
기껏 힘들여 건설한 방어시설이 초토화되고 있었지만, 덕분에 어떤 인명 피해도 없이 43마리나 되는 크락투를 효과적으로 막아내고 있었다.
『2시 방향과 7시 방향의 크락투는 서로 다른 파벌이 확실합니다. 서로를 향해 적대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을 포착했습니다.』
좋은 소식이다.
하지만 기대했던 소식은 아니다.
놈들이 다른 파벌이고 예상대로 서로를 적대하기는 하지만 아군을 앞에 두고 상잔하지는 않았으니까. 외려 적대관계임에도 협력관계를 구축할 수 있다는 게 증명된 셈이다.
‘단세포적인 반응을 하길 바랬는데······. 뭐 헬급 튜토리얼이다 이거냐?’
“드론의 연결이 끊어졌다면 놈들의 연결망도 군집체 우두머리와 끊어진 상황이라 봐야겠지?”
『그렇습니다.』
기묘한 파장이 사라지면 이 포악한 놈들이 똑똑해지는 결과까지 낳는다는 소리와 다를 게 없다.
구워어어어어어어!
그때 낮고 육중한 알 수 없는 괴성이 이 지역 전체를 뒤흔들었다.
하지만 이한은 직감적으로 그 소리가 절벽 위쪽에서 울려 퍼졌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허. 그거 설마 사체가 아니었나?”
이한은 떨리는 음성으로 반문했다. 그게 사체가 아니었다면 이 상황에선 정말 답도 없는 거다.
『알 수 없는 현상이 계속해서 발생해서 무엇도 확답을 드리기 어렵지만 그럴 가능성은 매우 희박합니다.』
“그럼 이 개소리는 뭔데?”
『그보다 먼저 확인하셔야 할 사항이 있습니다. 기묘한 파장이 빠르게 사라지고 있습니다. 방금 터져나온 기괴한 괴성과 깊은 연관이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뭐?”
『위성을 발사하고 주변 지역을 탐색합니다.』
퓨수우웅!
워는 기묘한 파장이 사라지자마자 위성을 발사해 주변 정보를 빠르게 수집하기 시작했다.
『사령관님! 7시 방향으로 짓쳐 드는 크락투 100여 마리를 포착했습니다. 전투에 대비하십시오.』
이한은 욕설이 목젖 끝까지 차올랐다.
“씨버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