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mmander of the Space Gamer RAW novel - Chapter 141
138. 다 내놔! (3) >
138.
“시시하군. 시시해. 한 이드라실이라는 놈은 좀 다를 것인가?”
우툰카 주변으로 10명의 슈퍼솔져와 100명의 스펙터가 아무렇게나 너부러져 있었는데 육체가 성한 시체는 단 한 구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야말로 하나같이 처참한 몰골로 죽어있었다.
비단 우툰카를 상대했던 이들뿐만 아니라 배리어 안쪽으로 침투했던 모든 슈퍼솔져와 스펙터가 비슷한 몰골로 죽음을 맞이했다.
아예 상대도 되지 않았다. 기술이면 기술, 힘이면 힘, 전투 경험이면 전투 경험 모든 부분에서 밀렸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였다. 자투족은 전원이 백병전의 전문가나 다름없었으니까.
피와 뇌수가 묻은 손을 털어낸 우툰카는 주변을 휩쓸고 가는 강력한 에너지장을 느꼈다.
우우우웅!
“행성폭탄이 설치된 모양이로군.”
뭐 이것도 나쁘지 않았다. 테라족의 모행성에 행성폭탄이 설치되었으니 테라족의 강자란 강자는 모조리 몰려올 테니까. 폭격이나 포격? 행성폭탄이 설치된 이상 놈들의 선택지는 이제 하나뿐이다. 자투족, 엄밀히 말하면 대전사장 이두르카의 요청대로 하는 것 말이다.
*
사무총장 젤린도 보르딘은 각 섹터의 대표들과 회담하고 있었다. UNC, UNP 연합군이 배리어 안쪽으로 진입했으나 모두 전멸했다는 보고를 들었기에 그야말로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황이었다.
“놈들이 아마존 열대우림에서 대체 뭘 하고 있다고 봅니까?”
젤린도 보르딘이 먼저 운을 띄우자 사이먼이 굳은 표정으로 대답했다.
“강력한 에너지장이 수시로 발현된 것을 고려하면 일종의 무기가 아닐까 싶습니다. 서둘러 처리할 필요가 있습니다.”
아메리카 섹터의 대표, 아이덴이 아메리카 섹터의 대사 해리 윙크스와 몇 마디 말을 나누더니 입을 열었다.
“이 자리에 계신 분이라면 누구나 알겠지만 슈퍼솔져 40명, 스펙터 4,000명이면 실로 막강한 병력입니다. 그들이 단 한 명도 살아남지 못하고 전멸했습니다. 파악된 바로 자투족의 병력은 600명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이런 상황이니 백병전으로 놈들을 제압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고 봐야 합니다. 따라서 저희 아메리카 섹터는 자투족이 위치한 아마존 열대우림 지역에 코어 포격 내지 전술핵 사용을 요청합니다.”
그러자 브라질 섹터의 대표 루리즈가 말도 안 된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럴 수는 없습니다! 그건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러시아 섹터의 대표 티무르가 성질을 내면서 루리즈에게 말했다.
“당신들이 초래한 결과요. 처음부터 이 사실을 알렸다면 이런 사태까지 오지도 않았소이다.”
이에 루리즈가 다시 반박했다.
“UNP와 UNC가 테라 경계를 철저히 했다면 애초에 놈들이 침입할 수도 없었을 겁니다. 그런데!”
“그게 지금 정보를 통제한 사람이 할 법한 소리요? 어쨌든 그래서 슈퍼솔져와 스펙터를 투입하지 않았소이까? 그들마저 모두 죽은 마당에 뭐 더 많은 슈퍼솔져와 스펙터라도 밀어 넣어야 한다고 말하는 겁니까? 먼저 투입한 특수병력이 모두 전멸했소. 무려 슈퍼솔져 40명과 스펙터 4,000명이오! 다음번에는 얼마나 더 밀어 넣어야 할 것 같소? 대체 얼마나 밀어 넣어야 저 빌어먹을 자투놈들을 처리할 수 있을 것 같냐 이 말이오! 러시아는 아메리카의 요청에 동의하오!”
러시아의 티무르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각 섹터의 대표들이 동의하기 시작했다.
“프랑스 섹터 동의합니다.”
“잉글랜드 섹터 동의합니다.”
루리즈는 인상을 구겼지만 더 이상 어떤 말도 뱉지 않았다. 빼도 박을 수도 없는 자신의 실책이다. 자투족이 이렇게 강력한 놈들인지 알았더라면 정보를 통제하면서까지 놈들의 침공을 숨기지 않았을 것이다.
사령관 한 이드라실이 자투 함대와의 전투에서 대승을 거뒀다고 했기에 별 볼 일 없는 놈들인지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사실 브라질 섹터의 루리즈만 그런 생각을 품은 것이 아니라 대다수 인사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그게 아니었다는 걸 루리즈는 물론 저들 모두 알게 되었다.
젤린도 보르딘이 각 섹터의 동의를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이렇게 되면 루퍼스 사령관을 추궁하는 일은 정말로 무용한 일이 된다. 아니 지금 루퍼스의 문제를 생각할 때가 아니었다.
시민들은 유니온이 위기도 파악하지 못하고 대처하지도 못하는 무능한 기구라고 생각하게 될 테니 안 그래도 삐거덕거리는 유니온의 힘과 권한이 더욱 약화 될 것이다. 악재다. 악재가 연달아 겹치고 있었다.
젤린도 보르딘은 짧게 한숨을 내쉰 뒤 회의를 마무리 짓고자 했다.
“후우. 그럼. 아마존 열대우림에.”
그때 회담장의 중앙에 홀로그램이 제멋대로 형성되더니 한 눈에 보기에도 위압감 넘치는 거대한 체구를 지닌 외계종족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게? 무슨? 통신을 끊어!”
“알겠습니다!”
“아니 내버려 두게.”
예정에 전혀 없던 일이기에 통신을 부랴부랴 끊으려고 했지만 젤린도 보르딘의 제지로 회담장의 통신이 차단되지 않았다.
무작정 차단할 것이 아니라 자투족이 뭐라 말하는지 들어볼 필요가 있었다. 자투족이 아무리 대단하더라도 통신만으로 상대를 죽이는 일은 불가능할 테니 말이다.
“어디서 송출되고 있는 것인가?”
모르지 않았지만 젤린도 보르딘은 확인차 되물었다.
젤린도 보르딘이 그렇게 묻는 사이 각 섹터의 대표들도 대사와 수행원들에게 빠르게 뭔가를 지시하고 있었다.
지휘권이 일원화되지 않다 보니 어떤 문제 하나를 해결하려고 해도 상당히 혼란스럽고 번잡한 절차를 겪어야만 가능했다. 어떤 부분에선 장점이라 할 수 있었지만 이렇듯 급박한 상황에선 당연히 단점으로 작용했다.
“아마존 열대우림 지역에서 테라 전 지역으로 송출되고 있습니다. 제한적으로라도!”
자투족의 침공이 이뤄졌다는 것만으로 사회가 혼란스러운데 그 자투족이 아예 테라에 있다고 한다면 그야말로 극심한 혼란을 자아낼 것이다. 그러니 어떻게든 통신을 제어할 필요가 있었다.
“그것까진 막지 않겠네만 제시간 안에 가능할 것 같지는 않군.”
젤린도 보르딘은 그렇게 말한 뒤 다른 섹터의 대표들과 마찬가지로 화면에 시선을 고정했다. 젤린도 보르딘에게 말을 꺼낸 사람은 예를 표한 뒤 급히 사라졌다. 아마도 관련된 지시를 하달하기 위함일 것이다.
이윽고 홀로그램에 뜬 자투족이 사나운 눈빛을 발하며 입을 열었다.
분명 자투족의 언어로 말했지만 자연스럽게 그 언어는 테라인이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로 변환되었다. 그건 모든 지역에서 동일했기에 통신을 수신하는 테라측이 아니라 통신을 송출하는 자투족이 직접 행한 것으로 보였다.
【나는 위대한 자투의 대전사장 이두르카다. 테라인들아. 잘 들어라. 방금 너희 테라 행성에 행성폭탄이 설치되었다. 미개한 너희는 행성폭탄이 무엇인지 알지 못할 테니 친히 설명해주마. 행성폭탄은 행성의 핵을 분열시켜 종국엔 행성을 먼지로 만들어버리는 폭탄이다. 미개한 너희는 이것의 위험성도 알지 못할 테니 일단 시범을 보여주도록 하지.】
이두르카는 단말기처럼 보이는 것을 통해 이것저것 조정했다. 그러자 다시 강렬한 에너지장이 주변으로 요동치듯이 퍼져나갔다.
그러나 그게 끝이었다. 적어도 아마존 열대우림 지역엔 어떤 일도 발생하지 않았다.
*
인구 오백만이 넘는 브라질 섹터의 수도라고 할 수 있는 브라질리아. 첨단 문명에 따른 고층빌딩과 수많은 문화와 숲이 우거진 아름다운 도시였다.
그런데 갑자기 브라질리아의 지표면이 미친 듯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우지끈! 콰지직!
그 요동은 점점 더 거세지더니 순식간에 도로와 무수히 많은 건물을 무너뜨렸다.
길거리를 평화롭게 걸어 다니던 단란한 가족이 갈라진 틈 깊숙한 곳으로 사라지고 육중한 잔해에 파묻혀 즉사하는 사람들도 부지기수였다.
심지어 갈라진 틈 사이에서 용암이 분출되는 경우까지 있었다. 브라질의 수도 브라질리아가 초토화되는 시간은 그야말로 몇 초에 불과했다. 불과 몇 초만에 브라질리아의 거의 모든 것이 파괴된 것이다.
이윽고 브라질리아에는 헤아릴 수 없는 비탄과 절규가 피어올랐다. 그 처절한 비명은 도시를 불태우는 맹렬한 불꽃과 매캐한 연기처럼 브라질리아 전체를 순식간에 뒤덮어버렸다.
*
브라질 섹터의 대표 루리즈가 사색이 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브. 브라질리아가!!”
각 섹터의 대표들은 물론 젤린도 보르딘 역시 수행원에게 브라질리아에 무슨 일이 발생했는지 전해 들을 수 있었다. 젤린도 보르딘은 작은 목소리로 속삭이듯 말을 꺼냈다. 당연히 그의 표정은 잔뜩 굳어있었다.
“이번 사태로 대체 얼마나 희생된 건가?”
“현재로서는 어떻게 추산할 수 없습니다. 다만 브라질리아의 인구가 오백만이 넘었다는 것을 고려하면···.”
【지금이야 나의 통제를 받지만 이러한 일이 두세 번만 반복되어도 핵의 분열은 겉잡을 수 없이 커질 것이다. 그런 지경에 이르면 그땐 멈추고 싶어도 멈출 수 없게 될 것이다.】
이두르카의 말에 회담장에는 무거운 침묵만이 흘렀다. 행성 자체가 인질이 되다니 당연히 이런 경우는 생각해 본 적도 없었다. 그 가운데 이두르카의 말이 다시 이어졌다.
【그러니 어디 너희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이곳을 파괴시켜봐라. 그 대가로 너희는 너희 모행성이 산산이 박살나는 것을 지켜봐야 할 것이다.】
다시 무덤 같은 침묵이 흐른 뒤 젤린도 보르딘이 간신히 입을 열었다.
“우리에게 원하는 것이 무엇이오?”
【자투족에게 복종해라! 그렇지 않으면 죽음뿐이다. 그 첫 번째 증거로 테라의 총사령관 한 이드라실을 이곳으로 보내라. 서두르는 게 좋을 것이야. 너희의 도시와 너희 행성이 산산이 파괴되는 모습을 지켜보고 싶지 않다면.】
이두르카의 통신은 그 말을 마지막으로 끊어졌다.
통신이 끊어지기 무섭게 회담장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테라가 위협받다니! 이 일을 대체 어떻게 해야 한다는 말이오?”
“총사령관을 보내라고 했으니 일단 한 이드라실을 보내고!”
“주력함대 규모의 슈퍼솔져와 스펙터를 보냈음에도 전멸당했소! 당신 같으면 죽을 자리에 걸어 들어갈 것 같소?”
“아니 대체 행성 방어를 어떻게 했기에 자투족이 행성을 폭발시킬 폭탄을 설치할 때까지 내버려 두었단 말이오?”
“어떤 도시가 언제 어떻게 파괴될지도 모르는 상황인 데다가 이 통신은 테라 전 지역에 퍼졌습니다. 이 혼란을 대체 어떻게 막아낸단 말입니까?”
“테라에는 대략 300억이 넘는 인구가 살아가고 있습니다. 지금 당장 대피를 시켜도 100억도 살리기 어려울 겁니다.”
젤린도 보르딘은 가슴이 턱 하니 막히는 것 같았다. 행성이 폭발하면 300억 그 이상 되는 인구가 그대로 소멸할 수밖에 없다.
“사령관 한 이드라실에게 일단 이 사실을 알리는 것이 수순아니겠소? 그가 시간이라도 벌어준다면 사람들을 대피할 시간이라도 벌 수 있지 않겠습니까?”
각 섹터의 인사들이 중구난방으로 떠드는 가운데 젤린도 보르딘 사무총장이 관자놀이를 매만지며 입을 열었다.
“일단 루퍼스 사령관과 대화를 나눠보겠소. 루퍼스 사령관 역시 자투족의 협박을 들었을 테니.”
한 이드라실에게 뭔가 요청하고자 한다면 루퍼스 사령관을 통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인 방안이긴 했다. 더욱이 이 일은 네가 우리 모두를 대신해 죽어달라는 이야기나 다름없지 않은가?
그것을 헤아린 섹터의 대표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젤린도 보르딘에게 말했다.
“사무총장의 뜻대로 따르겠습니다.”
젤린도 보르딘은 각 섹터의 대표들을 바라보며 단호하게 말했다.
“우리는 이번 사태를 어떻게든 막아야 합니다. 이게 무슨 뜻인지 모를 분은 없으리라 믿겠습니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 저들의 노력이 대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아니 그런 노력이라도 하면 다행이다. 노력은커녕 제살길을 찾아 가장 먼저 테라를 떠날 작자들이 태반일 것이다.
시민들이 평탄하게 살아갈 수 있게 만들어주는 역할을 할 수 있는 자가 바로 뛰어난 위정자다.
시민들이 직접 나서서 위정자의 일을 대신 감당하게 만들 것이라면 대체 그 위정자는 뭘 하는 작자란 말인가?
위기란 언제든 찾아오는 법이고 예측 불가능한 부분이 있기에 뛰어난 위정자라고 할지라도 모든 위기에 대처할 수는 없는 게 현실이다.
그러나 거의 대다수 위기는 어느날 갑자기 뜬금없이 찾아오지 않는다. 폭풍이 치기 전에 그 조짐을 보이는 것처럼 위기 역시 그 징조가 있다.
아니 다 떠나서 적어도 예측 가능한 위기는 준비하고 대처해야 하는 게 위정자의 본분 아닌가?
자신의 뜻을 이루는 자리가 위정자가 할 일이 아니고 국가의, 나아가 시민 전체의 바람을 이루는 자리가 위정자다. 대다수 시민의 바람이야 너무나 당연한 것들 아닌가?
일은 이미 개판으로 만들어놓고 국가 차원에서 본질적인 문제 해결을 논의하기는커녕 대충 당면한 위기만 어떻게 넘기려는. 그래서 문제가 해결되긴 하는가? 한 이드라실이 희생해서 시간을 번들 테라 행성에 설치된 행성폭탄이 사라지는가?
먼저는 위기가 위기인 줄 파악하지도 못했다는 무능이 첫 번째며 두 번째는 문제를 해결할 능력도 없고 본질적인 문제 해결 방법을 제시조차 하지 못하니 이들은 위정자의 자격 자체가 없다. 모조리 싸잡아 휴지통에나 처넣으면 속 시원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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