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mmander of the Space Gamer RAW novel - Chapter 147
144. 까불면 뒈진다 (3) >
144.
『사령관님! 그렇게 하면 사령관님의 의식이 분해될···.』
워의 다급한 경고가 울리다가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이한은 자신 안에 번뜩인 정보를 따라 깊이깊이 파고들었다.
워가 무슨 경고를 하는지 모르지 않았다. 의식을 정보의 바다속에 던지면 갈가리 분해되어 다시는 돌아오지 못한다는 워의 경고를 들었기 때문이다.
그 이야기를 꺼내면서 워는 과거 인간의 뇌 자체를 정보체계와 연결하여 사용하려던 수많은 연구와 그 실패를 증거로 삼았다.
인공지능을 만들었으니 인공지능과 인간의 뇌를 결합하려는 시도를 왜 하지 않았겠는가?
인공지능의 지식 습득 능력은 인간이 따라오지도 못할 정도로 대단했고 인간이 그러한 지식 습득 능력과 처리 속도를 지닐 수 있다면 그야말로 엄청난 발전을 이룩할 수 있다고 여겼다.
아닌 게 아니라 지금까지 발전해온 시간의 수백 배를 뛰어넘는 속도로 발전할 수도 있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모두 실패했다. 정확하게는 인간의 뇌를 인공지능에 연결하는 것까지는 성공했다.
다만 인간의 뇌는 인공지능이 정보를 처리하기에 적합한 형태가 아니었던 것인지 인공지능과 정보를 교류하는 순간 인간의 뇌가 완전히 타버렸던 것이다.
타버리지 않은 경우엔 의식이 갈가리 분해되어 그를 더 이상 인간이라 할 수 없었다. 잔혹한 실험이지만 클론도 만드는 마당에 이러한 실험을 행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이득을 얻을 수 있다면 그보다 더한 일도 할 수 있는 사람이 수두룩하다.
불의라고 해도 잠깐 눈감아주고 평생 호의호식하면서 살 수 있다고 한다면? 불의를 불의로 고발하는 일이 오히려 삶 자체를 힘들게 만든다면? 과연 내 손해까지 감수하며 옳은 것을 옳은 것이라 말할 수 있을까?
생각보다 이런 경우는 많다. 물론 끝까지 옳은 것을 고집하는 자는 그만한 대가를 얻기 마련이지만, 그 끝이 언제인지 알 수 없다. 눈앞의 달콤함을 내버려 둘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 것인가?
따라서 이와 관련된 실험이 모조리 실패했음에도 실험은 끊이지 않고 자행되었다.
다만 초인공지능 출현 이후 이런 실험은 거의 사라졌는데 이는 굳이 인간이 인공지능화될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며 그간의 수많은 실험으로 불가능하다는 판단이 명확하게 섰기 때문이었다.
어디 마이노르 같은 작자들은 여전히 연구에 힘쓰고 있을지도 모르나 일반적으로 이런 연구는 더 이상 행해지지 않고 있었다. 이유는 아주 명확하고 간단하다. 불가능하고 무가치한 연구에 자본을 투자할 단체는 어디에도 없었기 때문이다.
대신 초인공지능은 어떤 원리로 구현되는 것인가에 대한 연구가 이뤄졌는데 초인공지능을 자체적으로 생산하기 위한 의도와 더불어 사실 이 연구는 인공지능과 인간을 결합하려는 시도가 변환된 것에 가까웠다.
초인공지능이 인공지능보다 탁월하다는 것은 더 말할 것도 없다. 인공지능과 인간의 결합은 불가능한 것으로 거의 결론 지어졌다. 그럼 남은 건 초인공지능과 인간의 결합이다.
그 일을 위해서는 초인공지능의 형성 원리에 대해 파악할 필요가 있었다. 일단 초인공지능이 어떤 식으로 기능하는지 알아야 인간과 결합을 해도 하지 않겠는가? 마찬가지로 인간에 대한 연구도 필요했다.
당연히 너무 많은 변수, 어쩌면 우주에 존재하는 행성의 숫자보다 더 많은 변수가 있기에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었고 어찌 된 영문인지는 알 수 없어도 초인공지능은 이미 마스터와 반쯤 결합된 형태로 존재했다.
바로 이 사실이 인공지능과 인간의 결합시키려는 연구에 종지부를 찍은 셈이다.
다만 이 연구를 통해 얻은 것이 없지는 않은데 인간이 정보의 세계에 제한적으로나마 접속할 수 있는 기술을 마련했다는 점이다.
그러나 이건 너무 위험하고 비효율적이라 사장된 기술이었다. 인간의 의식은 인공지능화될 수 없고 인공지능화된다면 그는 더 이상 인간이 아니게 된다.
워가 경고한 것이 이러한 점이었다.
초인공지능은 마스터와 연결되어 있으나 마스터를 매개체로 기능하지는 않는다. 보조장치와 컨트롤 센터를 통해 기능을 수행하고 마스터를 매개체로 기능할 수도 없다.
그러나 워는 이한을 매개체로 활동할 수 있게 되었다. 무슨 이한을 제어한다는 말이 아니라 이한이 어떤 기계장치 등에 손을 대면 초인공지능 보조장치를 기계장치에 설치한 것처럼 완전히 통제할 수 있게 되었다는 말이다.
매우 편리한 기능이었지만 매우 위험한 부분도 존재했다. 워가 그런 식으로 기능할 때 이한이 자신의 의식을 정보의 바다로 던져버리면 그 결과는 워도 어떻게 될지 장담할 수 없다는 점이었다.
정보의 바다에 의도적으로 의식을 던지지만 않는다면 위험할 일이 없었다.
그러나 이한은 워의 경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어떤 이끌림에 이끌려 의식을 집어 던졌다. 한마디로 미친 짓이었다.
*
정보의 바다라고 통칭하더니 그야말로 광활한 바다처럼 아니 우주처럼 광대한 곳이었다. 형언할 수 없고 헤아릴 수 없는 것들이 이한의 주위를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그 모든 정보를 파악할 필요도 없고 그 모든 정보를 받아들일 이유도 없다. 이한에게 필요한 것은 한 가지다. 정신없이 무언가를 찾아 헤맸다. 이한은 자신의 의식이 갈라지고 갈라져 수십 수백 조각으로 갈라졌음에도 멈추지 않았다.
어느 순간 이한은 따뜻한 이불 속에 들어온 것처럼 편안한 감각을 느꼈다. 이불? 적당한 표현이 아니다.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자궁 속에 들어온 태아의 편안함에 가깝다고 해야 할까? 안전하고 충만한 감각으로 자신의 모든 것이 들어차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어느 순간 그 모든 것이 깨어져 나갔다.
“으음.”
“한! 한! 정신 차려요! 한!”
시에라의 목소리에 이한이 눈을 뜨자 워의 강한 질책 역시 이어졌다.
『사령관님! 분명히 경고했습니다. 정보의 바다를 인간의 의식으로 접속하는 것은 자살행위나 다름없다고 누차 경고를 드렸습니다!』
“대체 무슨 짓을 한거에요!!”
시에라가 분노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자 이한은 잠시 멍한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흔들었다.
자신도 자신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위험성을 인지하지 못한 것은 아니지만 자신 안에서 번뜩인 그것을 쫓아 무조건 따라가야 한다는 생각이 너무나 강했다. 그래서 정보의 바다에 자신을 던졌다. 어떤 두려움도 없이.
‘그게 가능한 일인가?’
이런 미친 짓을 어떤 두려움도 없이 행했다고? 자칫하면 의식이 갈가리 찢어지면 죽는 것과 다를 바가 뭐랴? 이한은 뒤늦게 찾아온 한기에 몸을 가볍게 떨었다.
“내가 멍청한 짓을 했군.”
『그걸 지금이라도 인지하셨으면 다행입니다.』
“한!”
시에라가 다시 성난 어조로 자신을 쏘아붙이자 이한은 머쓱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얼버무렸다. 자신도 제정신이 아니었다. 워가 왜 그렇게까지 경고를 했는지 이제야 실감할 수 있었다.
“음. 그게. 미안해.”
“애초에 미안할 짓을 하지 말았어야죠!”
“아. 그게. 흐음.”
이한은 말을 얼버무리다가 워에게 질문을 던졌다.
“워! 행성폭탄은?”
『사령관님이 의식을 잃은 즉시 핵이 순간적으로 요동쳐서 핵 주위의 행성폭탄을 삼켜버렸습니다.』
이한은 당황한 표정으로 워에게 반문했다.
“뭐? 그게 무슨 소리야?”
『제가 사령관님께 묻고 싶은 말입니다. 이 일은 사령관님께서 정보의 바다에 의식을 던진 일과 깊은 연관이 있는 것으로 파악됩니다. 어떻게 하신 겁니까?』
“그걸 내가 알면 너한테 지금 묻겠냐? 그래서 핵은? 핵은?”
『극도로.』
이한은 발작적으로 외쳤다.
“제길! 극도로 불안정하다고?”
『아닙니다. 극도로 안정되었습니다.』
“이 새끼가 지금!”
『저를 탓하지 마십시오. 사령관님께서 제 말을 끝까지 듣지 않으신 겁니다. 그리고 저는 무생물입니다. 감정도 없습니다. 언젠가도 말씀드렸지만, 사령관님께서는 그 감정을 좀 다스릴 필요가 있습니다. 이번 일만 해도 이성적으로 판단하셨다면 결코 일어나지 않았을 일입니다. 따라서 강도 높은 명상과 수양을 추천드립니다.』
이한은 다시 발끈해서 워에게 외치려다가 서늘한 목소리를 듣고 입을 다물었다.
“지금 워에게 욕설이나 뱉고 있을 때인가요?”
“흠. 미안해.”
시에라는 이한을 싸늘하게 노려보다가 쓰러진 그의 얼굴을 가슴에 안으며 말했다.
“그래도 다행이에요. 그리고 수고했어요.”
본의 아니게 시에라의 풍만한 가슴에 얼굴이 묻힌 이한은 여러모로 편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시에라 너도.”
*
이두르카는 한 사령관을 처참하게 죽이고 행성폭탄을 다시 활성시켜 자투족에게 대항하면 어찌 되는지 전 테라인에게 똑똑히 보여주고자 했다.
그런데 오히려 이한에게 역관광 당하면서 이한과 시에라의 활약상을 찍은 영상이 되어 버렸다.
300억 이상의 테라인을 구한 사람이 영웅이 아니라면 이 세상에 영웅이라 불릴 존재는 아마 아무도 없을 것이다. 이한은 그전에도 테라의 영웅이었지만 그야말로 명실공히 인류의 영웅으로 부각되었다.
시에라는 인류 최강의 초능력자로 불렸고 이한은 웨폰마스터 내지 소드마스터 라는 별명이 붙었다.
실제 전투 광경이라 공중파 등에 송출하기에 부적절한 광경은 모두 잘려 나갔지만 최초 송출된 영상은 곳곳으로 공유되어 사람들이 가장 즐겨보는 영상 1위를 장식하기에 이르렀다.
사람들은 그 영상에 잔인함을 느끼기보다 통쾌함을 느꼈고 자투족의 강력함에 경각심을 가졌다.
자연히 유니온의 영향력은 이한 한 사람이 가진 영향력보다 적어질 수밖에 없었다.
UNC, UNP 함대가 테라를 제대로 방어하지 못한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로 각 섹터의 알력이 꼽히자 거의 모든 테라인이 그들을 비난했고 자연스럽게 이들의 영향력은 나날이 줄어들었다.
다만 섹터의 대표는 어찌 되었든 섹터의 시민들이 선출한 자들이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마음대로 죽일 수 없었다. 그건 시민을 무시하는 처사며 법적으로도 옳지 않다. 오히려 지독한 혼란을 불러올 뿐이다.
대신 이한은 저들에게 숨쉴 기회 따위는 주지 않겠다는 듯 모든 지휘권은 인계받고 저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하기 시작했다.
쓸데없는 짓거리하다가 하나라도 걸리면 일벌백계하기 위해서였다. 물론 법적으로 처벌 가능한 자들은 이미 남김없이 모조리 처내고 있었다.
서슬 퍼런 이한의 태도에 유니온의 인사들은 복지부동한 상태로 움직이지 않았다. 그런 가운데 루퍼스가 인사권을 잡고 불필요한 인물들을 쳐내고 필요한 인물들을 요직에 앉히고 있었다.
작금의 여론을 들끓게 만든 배후에 루퍼스 역시 있으리라 짐작했지만 구태여 따로 묻지 않았다. 자투족과의 전투에 대비하기 위해서라면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었기 때문이었다.
얼추 정리가 끝나자 이한은 루퍼스 사령관과 사무총장 젤린도 보르딘에게 남은 일을 맡기고 칩거했다. 훈련이 더 필요하다고 여겼기에 워에게 필요한 사항을 지시한 후 본인은 치열하게 훈련에 임했다.
젤린도 보르딘? 젤린도 보르딘은 어쨌든 유니온의 사무총장이었다. 그를 아예 무시할 수는 없었다. 수완 자체는 나쁘지 않았기에 그에게 유니온을 안정시키는 역할을 맡겼다.
최종 결정은 젤린도 보르딘에게 있지만, 실질적인 인사권은 루퍼스에게 있었기에 실권은 모두 루퍼스에게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렇게 6개월이라는 시간이 쏜살같이 흘렀다.
이한은 심드렁한 표정으로 귀를 파면서 입을 열었다.
“헛소리하고 있네. 까불면 뒈지는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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