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mmander of the Space Gamer RAW novel - Chapter 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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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5. 재앙의 전조.
그렇게 6개월이라는 시간이 쏜살같이 흘렀다.
이한은 심드렁한 표정으로 귀를 파면서 입을 열었다.
“헛소리하고 있네. 까불면 뒈지는 수가 있다.”
【그럼. 전쟁이군.】
흉악한 얼굴의 자투족이 단정적으로 말을 뱉자 이한은 앉은 자리에서 자세를 바로하며 턱을 괴며 말했다.
“자투족하고 전쟁하는 건 너무나 당연한 거고. 선발대를 잃었다고 앗 뜨거워 하고 발을 뺄 놈들이 아니지 않나? 당연한 사실은 그만 지껄이고 용건이 뭐야?”
【말했다시피 너희에게 남은 모든 초자원과 너희가 얻은 엘카힘의 유물을 내놓으면!】
이한은 사나운 눈빛으로 다시 말했다.
“헛소리하지 말라고 했다.”
【테라의 모든 영역을 전쟁터로 만들고 싶은 것이라면 얼마든지.】
“이 새끼. 끝까지 발뺌하네. 까불지마라. 심지어 넌 자투족도 아니잖아?”
이한의 말에 이한 주위에 있던 군인들이 이상한 눈으로 그를 바라봤다. 누가봐도 자투족이었다. 홀로그램이라면 프로그램을 통해 조작할 수도 있겠지만 눈앞에 있는 자투족은 말 그대로 자투족 그 자체였다.
그런데 자투족이 아니라니? 이게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란 말인가?
사절로 온 자투족은 무심한 눈빛으로 주변을 둘러보다가 이한을 다시 바라봤다. 역시나 무심한 표정으로 이한을 바라보던 자투족의 표정에 다채로운 감정이 뒤섞이기 시작했다.
【그래도 모든 테라족이 당신 같지 않아서 다행이로군.】
그와 동시에 자투족은 거의 완벽한 신체 비율을 가진 나체의 여인으로 변화했다. 눈을 감았다가 뜨니까 흉악한 자투족은 사라지고 아름다운 여인이 짠 하고 나타난 셈이었다.
“아! 아니! 이럴 수가?”
“뭐지? 분명히 자투족이라고 판별되었는데 어떻게?”
군인들은 당황한 표정으로 나체의 여인을 바라봤다. 자투족의 모습이 허물어지고 여인이 나타난 것도 아니고 거짓말처럼 순식간에 나체의 여인이 눈앞에 서 있었으니 놀라지 않는 게 이상한 일이었다.
이한은 자유자재로 모습을 변화시키는 모습에 눈매를 좁히며 여인으로 화한 존재를 바라봤다. 뇌파를 교란시켜 모습을 감추거나 자신의 육체를 자유자재로 변화시킬 수 있는 특성에 부합하는 종족이라면 분명 ‘라페이드’일 것이다.
라페이드의 실제 모습은 연체류나 액체류에 가까울 것으로 추정되는데 그마저도 확실하지는 않다. 이들은 상대방의 뇌파 등을 읽어 대개 상대방이 선호하는 모습으로 변화하곤 한다. 상대방에게 호감을 얻기 쉬운 형태를 취하는 것이다.
아름다운 나체의 여인? 건장한 남자치고 이 모습에 호감을 느끼지 않을 사람이 뭐 얼마나 되겠는가?
모습을 자유자재로 변화시킬 수 있고 라페이드인 걸 짐작해도 알아차리기 어려운 변신술 덕택에 라페이드는 거의 모두 천부적인 암살자의 특성을 가지고 있었다.
“다시 묻겠다. 용건이 뭐지?”
【당신과 뜨거운 밤을 보내는 것?】
라페이드로 추정되는 외계인은 야릇한 미소를 지으며 이한에게 눈웃음쳤다. 분위기나 모든 것이 뇌쇄적이었기에 그 모습을 지켜본 군인들은 자신을 향한 유혹이 아닌데도 그래! 라고 대답할 뻔했다. 역시나 감정을 읽고 움직이는 족속다웠다.
이한은 피식 웃음을 터트리며 입을 열었다.
“이 자리에 시에라가 없는 걸 다행으로 여겨라. 당장 피떡이 되었을 테니까.”
【엘더에 버금간다는 그 초능력자 말인가요?】
나긋한 어조로 말을 꺼내는 외계인을 바라보던 이한이 다시 말했다.
“정체가 까발려졌으면 스스로 소개부터 좀 하지 그래? 자꾸 그런 식으로 나오면 토막쳐 버리는 수가 있다.”
【냉정한 분이네요. 뭇 테라인이 이렇게 사랑스러워 하는 형태를 토막 쳐버리겠다니. 가슴 아픈 일이에요.】
다시 교태를 부리던 여인은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하긴 자투의 대전사장을 죽인 당신이라면 정말 그럴 수도 있겠네요. 저희는 라페이드라고 해요. 저는 라페이드의 랏샤라고 합니다.】
“라페이드?”
“새로운 외계종족인가?”
사람들이 웅성거릴 때 이한이 말을 꺼냈다.
“그래. 사기꾼 랏샤! 누차 말하지만 용건이나 말해라.”
【사기꾼이라니? 고차원적인 외교기술이라고 해주세요.】
“지랄 그만 떨고!”
이한이 그렇게 화를 낼 때 워의 조언이 들렸다.
『엘카힘이 뭔지에 대해 물어보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 이한이 랏샤를 노려보며 질문했다.
“엘카힘이 뭐지?”
【초고대문명의 주인. 초자원을 탄생시킨 문명이라고 하면 이해하기 쉬울까요?】
“초고대문명?”
【엘카힘이 누군지도 모르는 문명이라니. 역시나 속여서 뺐는 것이 상책이었는데 말이죠. 장기적인 안목으로 보면 하책이긴 하지만요.】
“테라는 그 엘카힘이라는 초고대문명의 유물을 얻은 적이 없는데 대체 무슨 소리냐?”
【초인공지능. 그게 설마 테라의 기술로 완성된 것이라 말할 생각인가요?】
“음?”
생각해 보면 삼대 세력은 초인공지능 연구에 대해 별다른 제약을 가하지 않았다. 연구를 하는 민간기업이 초자원과 적절한 ESP 능력자를 얻는 일조차 매우 어렵기에 내버려 둔 것이라 판단했는데 그게 아니라 현존하는 테라 기술로는 초인공지능에 도달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라는 걸 알고 있었던 것이라면? 그러니까 초인공지능 자체가 오버테크놀러지라는 걸 인지하고 있었던 것이라면?
테라가 고대 유물로 인해 초인공지능을 완성한 것이 사실이라면 알려진 대로 초자원 + ESP 능력자 + 테라의 기술이 아니라 모종의 특별한 조치가 필요했던 건 아닐까?
이 부분에 대해 자세하게 확인할 필요를 느꼈다. 확실히 초인공지능에 대해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점이 많았다.
‘그나저나 이걸 역으로 생각하면···.’
이한은 눈매를 좁히며 랏샤에게 되물었다.
“그러니까 너희는 초인공지능을 보유하고 있지 않다?”
랏샤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뭐. 엘카힘의 기술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초인공지능은 존재하지 않지요. 그게 아니라면 구태여 당신들에게 그 기술을 얻으려고 할 필요도 없겠죠. 그런데 이런 미개한 기술력으로 대체 어떻게 초인공지능을 생산한 거죠? 아니 그래서 이런저런 제약이 생긴 건가? 뭐 아무래도 상관없겠죠. 어쨌든 저희의 용건은 간단합니다. 초인공지능 생산 기술에 대한 모든 것을 넘기세요. 보유한 초자원도 함께!】
이한은 미간을 좁히며 랏샤를 노려봤다.
“그걸 테라가 받아들일 거라 생각하는 건가?”
【자투족을 막아낼 자신이 있는가 보죠? 아니 자투족뿐일까요? 전 우주로 누비고 다니는 강대한 세력들이 모두 테라의 영역으로 몰려올 겁니다. 자투의 함대를 쳐부쉈다고 당신들 홀로 그 강대한 세력을 막아낼 수 있을 거라 착각하고 있는 건 아니겠지요?】
“그러니까 초자원과 고대문명의 기술을 바치고 너희의 도움을 얻어라? 방금까지 자투족인 척하며 기술과 자원을 빼가려던 사기꾼들에게?”
【협상이라는 것도 협상할 대상에게 하는 겁니다. 그게 아니라면 빼앗으면 될 뿐이죠.】
“테라족을 시험해본거다?”
【예. 안타깝게도 그 시험에 통과했지만 말입니다.】
“그 시험이란 것에 통과하지 못했다면 초자원을 너희에게 내어준 채로 자투족과 전투도 치러야 했겠군.”
【저희가 그것까지 고려할 필요가 있나요?】
이한은 품에서 에너지 소드를 꺼내 랏샤에게 집어던졌다.
부우웅!
에너지 소드는 붉은빛을 발하며 풍차처럼 랏샤에게 쇄도했다.
하지만 랏샤는 미소지은 표정 그대로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을 뿐이었다. 이한의 에너지 소드는 그런 랏샤를 스치고 바닥 깊숙이 박혔다.
【현명한 선택입니다. 제게 위해를 가했다면 자투족에 이어 라페이드의 공격도 받아야만 했을 테니까요.】
이한은 랏샤를 바라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엘더, 시구르스, 자투, 데모스, 타란트라, 칼가로아, 두르둔, 볼테르안, 다르포스, 스타로쉬, 라페이드, 모베르단은 초자원을 활용할 수 있는 강대한 12종족. 그들이 테라의 영역으로 다가올 이유는 초자원 내지 네가 말한 엘카힘의 유물 때문이겠군.”
【호오. 강대한 12종족에 대해 이미 파악하고 계셨습니까?】
“그래. 달리 생각하면 굳이 초장부터 뒤통수나 치려는 너희와 손을 잡을 필요가 없다는 소리지.”
부웅!
에너지 소드는 다시 이한의 손에 들어왔다. 그 전에 랏샤의 팔을 가르고 말이다.
【이건 무슨 뜻입니까? 저희 라페이드와 전쟁이라도 치르겠다는 뜻입니까?】
언제 팔이 잘렸냐는 듯 온전한 팔을 가진 랏샤가 싸늘한 표정으로 이한에게 반문했다.
“협상이라는 것도 협상할 대상과 하는 것이라고 말했냐? 그 말 그대로 그대로 돌려주지. 너희같은 사기꾼 새끼들과는 일없다. 꺼져! 네가 사절 비슷한 게 아니었다면 정말 토막을 쳐버렸을 거다.”
라페이드 이 새끼들은 어차피 테라에 적대적인 성향을 가진 족속이다. 이런 새끼들과 동맹을 맺느니 그냥 적으로 삼는 게 훨씬 안전하다. 테라 내부 깊숙이 섞여들면 어떻게 색출하기도 어렵다.
【후회하지 않으시겠습니까?】
“네 동료들이나 걱정하는 게 좋을 거다. 사기꾼 새끼야. 다시 헛소리를 내앞에서 늘어놓으면 같이 죽겠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주지.”
랏샤는 조금 커진 눈으로 이한을 바라보다가 바람처럼 그 장소를 벗어났다.
이한은 랏샤가 사라진 방향을 바라보다가 워에게 말했다.
“하이마스터 라하르와 연결해.”
『연결했습니다.』
“하이마스터 라하르!”
“테라에 침투한 놈들은 어찌 되었습니까?”
자투의 사절은 홀로 테라로 찾아왔다. 그러니까 자투의 모습을 한 라페이드족 말이다.
그러나 그 외에도 10명의 라페이드가 함께 했었다. 이놈들이 주요인사로 변신한다면 상당히 골치 아픈 일이 발생한다. 이한을 찾아온 것도 그 일의 일환으로 가능하다면 이한을 처리하고 이한으로 변신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이한은 신중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이번 일도 그렇지만 날이 갈수록 테라네스의 역할이 막중합니다. 거의 모든 초능력자를 전장에 투입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사이오닉 소드 개발이 거의 완료되었습니다. 모든 ESP 능력자는 이 사이오닉 소드를 다룰 줄 알아야만 합니다.”
통신을 마친 이한은 워에게 질문을 던졌다.
“별개로 침투한 외계 함선은?”
『없습니다.』
6개월 동안 워는 매우 견고한 방어체계를 구축했다. 핵심은 초인공지능이다. 테라에 현존하는 초인공지능이 각자의 영역을 도맡아 방위체계를 구축하고 있었다. 참고로 현존하는 초인공지능 마스터의 숫자는 50명 가량 되었다.
워는 그 모든 방위체계를 총괄하고 있었다.
다만 초인공지능이라고 해도 당연히 우주의 광활한 영역을 모두 감시할 수는 없다. 이들이 감시하는 지역은 테라인의 주거주지역인 행성 등에 국한되는 편이었고 그마저도 완벽하다고 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예전처럼 자투의 함선이 은밀히 행성에 침투하는 일은 확실히 어려워졌다.
이한은 홀로 밖으로 나와 한숨을 내쉬며 하늘을 바라봤다. 12종족이 몰려온다. 자투족만 해도 버거운데 자투족에 준하는 그보다 강력한 11종족이 더 몰려온다는 말이다.
“막아낼 수 있을까?”
『자투족이 본대를 보내지 않는 이유에 대해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 이유가 뭐라고 판단하는데?”
『전력을 최대한 보존하기 위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한은 미간을 좁히며 워에게 되물었다.
“그 호전적인 놈들이 전력을 보전하려고 전투를 피하고 있다고? 말이 되지 않는데?”
이한의 의문에 워가 다시 대답했다.
『라페이드족은 초자원과 엘카힘의 기술에 대해 언급했습니다만 정작 주목적이 그게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그게 무슨 뜻이야?”
『테라가 초자원을 최초로 발견한 지역은 미탐사지역이 아니었습니다.』
“음?”
『그것을 토대로 추측할 때 초자원은 머물러 있지 않습니다. 나타났던 초자원이 일제히 사라질 수도 있고 사라진 초자원이 우주 저편 어딘가 생성될 수도 있습니다. 우주의 강대한 12종족이 테라의 영역으로 다가온다는 정보를 달리 생각하면 이 지역 주변으로 대규모 초자원 지대가 형성될 확률이 상당히 높습니다.』
“대규모 초자원 지대가 테라 영역에 형성된다고?”
이게 사실이라면 가히 재앙이나 다름없다. 그 초자원이 테라나 하이모스 같은 거주행성에 형성된다면? 음.
『원인은 알 수 없지만 드러난 정황으로 볼 때 확률이 상당히 높습니다. 라페이드는 우위를 점하기 위해 자신들의 변신술을 이용해 테라를 장악하려고 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총알받이로 삼겠다? 그래서 워 네 판단은?”
『12종족 전체를 움직일만한 것이 대규모 초자원이든 엘카힘의 기술이든 무엇이든 간에 테라 역시 쟁탈전에 합류해야만 생존할 확률을 높일 수 있습니다.』
이한은 깊게 한숨을 내쉰 뒤 짧게 말했다.
“그건 돌려 말하면 살 떨리는 외줄타기를 계속해야 한다는 말이군.”
이한은 질끈 감았다가 뜨며 단호하게 말했다.
“어디 한번 해보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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