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mmander of the Space Gamer RAW novel - Chapter 15
15. 우리 제발 이러지 말자 (2)
15.
우리 제발 이러지 말자. 급에 맞게 어울려야 지켜보는 사람도 재미있지. 이건 진짜 아니잖아?
이한은 앗흐트랄계를 향해 제멋대로 흩어지려는 정신을 간신히 붙잡았다.
현재 아군 병사는 30명이 전부다. 100여 마리도 넘는 크락투를 무슨 수로 막는단 말인가? 그렇다고 입구를 제외하고 주변 지형이 막혀있는 것도 아니고. 아니 막혀있어도 진짜 씨발! 이 상황에서 100마리는 너무 하잖아?
벙커를 비롯한 방어시설은 이미 개박살 난 지 오래다.
그때 워의 보고가 이어졌다.
『기갑병 ‘블레이드’를 생산했습니다. 기묘한 파장의 약화로 기갑병들과 연결 또한 양호합니다. 바로 전장에 투입하시겠습니까?』
이한은 조금이나마 숨통이 트이는 것 같았다.
블레이드는 장갑차에 강화한 초진동 칼날을 장착한 형태다. 장갑차를 개조한 이상 그 안에 병사들이 탈 수도 있고 병사가 타지 않더라도 워의 지시로 움직이는 기갑병기다.
바로 대 크락투전을 대비해 개조한 기갑병이었다. 다른 병기도 좋지만 초진동 칼날의 진동을 버텨내기엔 기갑병만한 게 없고 무엇보다 생산 및 개조에 용이하다. 일단 기존에 보유하고 있던 기갑병에 초진동 칼날만 장착하면 될 일이니까.
“바로 투입해! 개조된 기갑병이 몇 기나 되지?”
『총 7기입니다. 이어서 후방을 받쳐 줄 전차를 생산하도록 하겠습니다.』
7기······. 다시금 분노가 치밀어올랐지만 혼자 헛지랄 떨고 있을 때가 아니다. 그래도 이게 어딘가?
이한은 감정을 억누르고 냉정 하고자 애썼다. 거 뭐냐 영화 같은 데서 보면 주인공이 그러더라고.
그런데 의외로 이게 효과가 없진 않은 모양인지 감정과 상황이 분리되기 시작했다.
“아니 전차는 됐고 블레이드를 더 생산해!”
전차는 강력한 화력을 자랑하지만, 개떼처럼 몰려드는 크락투를 방어하지 못하는 상황에선 차라리 근접전에 특화된 기갑 병기를 생산하는 게 현명하다고 판단했다.
『하면 ‘블레이드’를 생산하도록 하겠습니다.』
워가 설계한 블레이드의 기본형은 늑대 형상이었다. 금속으로 이뤄진 사족 보행의 칼날 늑대가 바로 블레이드의 기본형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장갑차 주변으로 초진동 칼날을 장착하는 형태로 생산할 예정이었다. 그게 가장 간단하고 빨랐으니까.
“후발대 놈들과 조우하면 배리어를 해제했다가 다시 덮어씌워!”
배리어를 이용해 놈들을 분산시키려는 의도였다. 잠깐이라도 병력을 분산시키면 아군에게 가해지는 압박이 그만큼 덜해질 테니까.
『알겠습니다.』
입안이 바짝바짝 마르는 것을 느꼈다. 간혹 다급한 상황에서 사람들이 왜 어리석은 선택을 하나 했더니 이런 상황에선 제대로 된 판단을 하기는커녕 제정신을 유지하기도 어려웠다.
‘이건 게임이다. 그러니까 나는 지금 전략게임 스페이스 워를 하고 있는 거야. 패배할지언정 게임을 하면서 공포심에 휩싸여 명령조차 못 내리는 머저리는 없어!’
*
콰직! 콰지직!
시시각각 벙커의 외벽이 찢어지고 파괴되는 모습에 마린들은 숨을 쉬지 못할 정도로 강한 압박감을 느꼈다.
갈가리 찢어진 강판의 모습은 자신들에게 일어날 미래를 고스란히 투영한 것 같았으니까.
화르르르르!
“버텨! 어떻게든 버텨! 존나게 버티면 살 수 있다!”
화염방사기로 짓쳐 든 크락투를 다시금 불살라버린 빌리가 우렁찬 목소리로 소리쳤다.
빌리의 외침에 병사들 역시 악에 받쳐 소리를 지르며 두려움을 털어냈다.
“죽어라!”
“으아아아아!”
압박감은 압박감이고 나는 내 임무를 수행한다. 죽는 그 순간까지 내 손가락은 방아쇠를 당기고 있을 거다.
빌리와 함께 싸우는 병사들은 어떤 이유에서든지 이곳에 자원한 이들이고 백전을 겪은 베테랑이다. 그 때문인지 병사들은 살아남을 수 없을 것 같은 절망 가운데서도 무너지지 않았다.
두두두두! 두두두!
“크크크. 이거 이번엔 탄약을 다 쓰기도 전에 운명하실 각인데?”
에리오가 빠르게 탄창을 갈면서 시니컬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아니나 다를까 징글징글한 놈들의 파도가 뒤편에서 더 밀려오고 있었다. 그러자 옆에 있던 병사가 라이플을 연신 갈기면서 답했다.
두두두!
“씨벌. 인생 뭐 있습니까?”
“새끼.”
에리오는 가볍게 웃어넘긴 다음 서늘한 눈빛으로 다시 사격을 가하기 시작했다.
그때 커다란 굉음이 벙커를 뒤흔들었다.
콰아아앙!
결국 벙커의 한쪽 외벽이 무너진 모양이다. 에리오가 크게 안색이 변해 몸을 돌릴 때 이미 그곳을 향해 달려가는 마린을 발견할 수 있었다. 바로 시에라 중위였다.
그녀는 초진동검으로 번개처럼 짓쳐 드는 크락투의 머리통을 그대로 갈라버렸다.
지이잉!
키에에엑!
그리곤 다시 뒤편에서 짓쳐 드는 크락투를 레이저건으로 토막 쳐버렸다. 그녀는 재빨리 물러서며 버럭 소리를 질렀다.
“뭐해? 차폐장! 차폐장 생성시켜!”
위이이잉!
미처 대답이 떨어지기도 전에 레이저로 이뤄진 차폐장이 부서진 지역을 가로막았다.
얼마 버티지 못할 거다. 공업용 레이저는 레이저건보다 강한 위력을 발휘하지만, 놈들을 막아내기엔 역부족이다. 놈들이 차폐장치를 망가뜨리기 전에 먼저 과부화에 걸려 레이저 생성장치가 터져버릴 거다.
시에라는 벙커 안에 배치된 라이플을 쥐어 들고 말없이 사격을 가했다. 모두가 원치 않는 그 순간, 모두의 마지막이 코앞까지 다가왔다.
죽음이 가져오는 악취가 코를 마비시킬 정도였다. 물론 전장에서의 마지막이 향기로울 것이라 생각하진 않았지만 이렇게까지 지독한 악취를 풍길 줄이야.
시에라는 머릿속을 스쳐 가는 한 장면에 마음을 강하게 다잡았다. 한 마리라도 한 마리라도 더 죽인다.
“차폐장이! 곧 사라질 겁니다!”
“다른 위치에 있던 레이저 생성기라도 가져다 설치해!”
“그렇게 되면!”
“일단 그렇게 해!”
“알겠습니다.”
콰아아앙!
콰아앙!
다시 굉음이 울려 퍼지고 벙커의 여러 부분이 한꺼번에 무너졌다. 그 모습에 누구도 말을 꺼내지 않았지만, 모두가 직감했다. 모든 게 끝이라는 것을.
두두두두! 두두두!
물론 그 순간에도 싸우기를 포기하지 않았지만 크락투는 비명을 지르면서도 착실하게 거리를 좁혀오고 있었다.
키에에에엑!
키에엑!
“음?”
빌리는 이상한 느낌이 들어 뒤편을 바라봤다. 크락투의 비명이 왜 뒤편에서 울려 퍼진단 말인가?
위이이이잉!
키에에엑!
키에엑!
위이잉!
뭔가 맹렬하게 돌아가는 소리와 함께 크락투의 비명이 동시다발적으로 전장에 울려 퍼졌다.
그리고 그것에 맞춰 이한의 음성이 이어졌다.
감정이 듬뿍 담긴 이한의 절절한 외침에 빌리가 웃음을 터트렸다.
“사령관께서 존버하시란다! 이 새끼들아! 버텨!”
*
블레이드의 위력이 생각보다 대단했다. 7기에 불과했지만, 그 강력한 크락투들을 분쇄기에 갈아버리듯 모조리 썰어버리고 있었다.
“워? 어떻게 된 거야?”
『방어력을 약화하고 신경계를 교란하는 가스를 함께 장착시켰습니다. 하지만 주입된 독가스가 모두 떨어지면 지금처럼 강한 위력을 발휘하기는 어렵습니다.』
산성 크락투가 효자 역할을 톡톡히 한다. 크락투 같은 자식새끼는 낳은 적도 없다만.
『흐름을 볼 때 블레이드 추가 생산까지 아군이 버틸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블레이드가 생산되면 어떻게든 막아낼 수 있을 것으로 계산.』
워의 보고가 순간적으로 끊어지자 이한은 불길함에 휩싸였다.
“또 뭔데?”
『2시. 2시 방향에서도 100여 마리의 크락투가 포착되었습니다.』
“큭큭큭큭. 뭐? 와 씨발. 이건 진짜 그냥 죽으라는 거네.”
실없이 웃음을 터트리면 이한이 돌연 냉정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 알리지 마.”
『알겠습니다.』
“스틸아머 준비해. 이대로 있느니 라이플이라도 갈기다 죽어야겠다.”
그러나 워의 대답이 이상했다.
『이상반응을 감지. 탐색합니다. 한 이드라실 사령관께 나타난 이상현상에 대한 적절한 단어를 배치합니다.』
『경험치 한계에 도달. 레벨업 하셨습니다.』
“그래. 레벨… 뭐? 레벨업?”
이건 또 무슨 개소리야? 레벨업? 스페이스 워에 레벨업 시스템도 있었나? 기억하기로는 없었는데?
『사령관님의 권한이 조금 더 확장됩니다. 권한 상승으로 자원채집 속도를 비롯한 병력생산 속도가 소폭 상승합니다.』
“이 상황에서 무슨 헛소리야? 갑자기 레벨업이라니?”
『간단히 프로젤과 세라메틱 활용력이 상승했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보다 블레이드 생산을 완료했습니다. 지시를 내려주십시오.』
뭐든 간에 일단 살고 보자.
“총 몇 기인데?”
『현재 10기. 다시 5기가 생산 완료될 예정입니다.』
“2시 방향으로 보내서 어떻게든 지연시켜! 다시 생산될 5기 중 3기는 2시 방향, 2기는 7시 방향에 지원해!”
『알겠습니다.』
왜 이런 일이 발생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이걸 어떻게 활용할지만 중요할 뿐이다. 이한은 워에게 다시 말했다.
“그래서 레벨업 조건이 뭐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