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mmander of the Space Gamer RAW novel - Chapter 152
149. 정석(定石) (2) >
149.
“무슨 일이 발생한 거지?”
『현재 기지의 배리어가 빠르게 손상되고 있습니다.』
배리어가 손상되고 있다고?
“적인가? 적의 규모는?”
『알 수 없습니다.』
“알 수 없다니! 그 무슨! 배리어가 손상되는 원인이 뭔데 그럼?”
『형태가 없습니다. 배리어를 둘러싼 것은 운무와 같은 연기에 불과합니다.』
“그런데도 배리어가 손상되고 있다고?”
『그렇습니다.』
이한은 굳은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컨트롤 센터와 병영 등이 완공되려면 얼마나 남았지?”
컨트롤 센터는 둘째치고 병영은 병사들의 숙소이자 방어기지다. 배리어가 없다면 병영이 곧 적을 방어하는 성벽이 된다.
『아직 완공되려면 시간이 더 필요합니다.』
“성분을 분석해봐!”
『이미 성분 분석을 시도했으나 실패했습니다. 다만 운무가 초자원의 특성을 가진 것으로 보입니다.』
“초자원의 특성을?”
이한은 눈매를 꿈틀거리다가 그 지점으로 향했다. 주변으로 가자 병사들이 당황한 표정으로 배리어를 타고 오르는 운무를 바라보다가 이한에게 급히 경례했다.
이한은 대충 경례를 받고 운무부터 살펴봤다.
확실히 초자원의 기운이 강하게 느껴졌다.
“포스 행성의 특성인가?”
『송구하나 아무것도 알 수 없는 상황입니다.』
이한은 가만히 서서 기운을 운용하다가 저 운무를 다스릴 수 있겠다는 판단이 들었다.
이한은 차분한 표정으로 운무를 바라보다가 양손을 앞으로 가볍게 내밀었다. 그러자 운무가 거짓말처럼 뒤로 밀려나더니 씻은 듯이 사라져 버렸다.
“음.”
그 모습은 마치 자신의 기운을 피해 움직인 것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이한이 침음을 뱉을 때 워의 보고가 이어졌다.
『정체불명의 운무가 사라졌습니다.』
“생명체인가?”
『생명체라기보다는 어떤 현상으로 보입니다. 그보다 사령관님. 엘카힘 유물 탐사대로부터 연락이 왔습니다. 특이한 파장을 지닌 지역을 찾아냈다고 합니다.』
어차피 이곳에서 자신이 할 일은 없다. 20명의 사령관이야 기지 방어와 초자원 채취를 알아서 할 것이고 병력 지원이야 워가 자신보다 더 세밀하게 명령을 하달할 수 있었다. 그러니 엘카힘의 유물을 확인할 수 있을 때 확인하는 것이 최선이었다.
이한은 미간을 좁히다가 워에게 말했다.
“그래? 그럼 워리어 100명과 함께 그 지역으로 향하겠다. 기지를 구축하고 초자원 채취를 계속해서 진행하도록.”
『알겠습니다. 사령관님.』
*
수송선을 타고 이동한 이한은 워리어의 안내를 따라 한참 동안 수풀을 헤치고 이동했다. 참고로 기존 탐사대 가운데 20명의 워리어를 제외한 스펙터는 기지로 수송선을 타고 귀환한 후였다. 잠시 뒤 완전무장한 워리어가 이한에게 말을 꺼냈다.
“저곳입니다. 가까이 다가가지 말라는 명령에 의해 이곳까지만 탐사했습니다.”
확실히 특이한 파장을 느낄 수 있었다.
이한은 워리어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현명한 판단이다. 잠시 이곳을 탐색해보겠다.”
“알겠습니다.”
이한은 먼저 기감을 넓게 펼쳤다. 주변의 위험을 파악하기 위해서였다. 자연스럽게 영역을 넓혀가던 이한은 워리어들에게 낮고 빠르게 외쳤다.
“은신!”
탐사대까지 120명의 워리어는 이한의 명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저마다 은폐·엄폐를 통해 몸을 감추었다. 자투의 기술을 응용한 투명화 기술을 사용했기에 정밀한 기계로 세밀히 살피기 전에는 알아차리기 어려울 것이다.
쿠구구구구궁!
그와 동시에 하늘에서 요란한 굉음과 함께 둥근 비행물체가 나타났다.
‘UFO?’
그곳엔 미확인 비행 물체, UFO의 이미지와 딱 떨어지는 비행체가 떠 있었다. 이한은 잠시 황당한 표정으로 그것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흔들었다.
‘UFO가 대수냐?’
역시 은폐기능을 활성화시켜 몸을 숨기고 있던 이한은 어떤 종족이 모습을 드러낼지 유심히 지켜보고 있었다.
위이잉!
쿵! 쿵!
이윽고 빛과 함께 정체불명의 종족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한은 빛나는 저들의 금속형 육체를 보는 순간 놈들이 어떤 종족인지 바로 알아차렸다.
‘칼가로아!’
저들은 칼가로아가 분명했다. 이들은 기계족이다. 금속류를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는 종족으로 놈들을 상대로 기갑병기를 들이민다면 자살행위나 다름없게 된다. 기갑병기가 순식간에 적군으로 돌변할 테니까.
‘그래도 놈들의 정체를 빨리 알아차려서 다행이다. 기갑병기의 숫자를 최대한 줄이는 방향으로 가야겠다. 초인공지능이 지배하는 기갑병이라면 안전할 수도 있지만, 그 한계야 너무나 명확하니.’
이들은 태생이 기계족이다. 상대하기 매우 어려운 종족 중 하나다. 클론 군단처럼 통합 체계를 지녔을뿐더러 개별적인 사고까지 할 수 있다.
게다가 생명체와 달리 금속형의 강력한 육체를 기반으로 전투를 치르고 주변에 금속만 존재한다면 자가 치료까지 가능한 놈들이라 매우 위험한 종족이다.
쿵! 쿵!
【¢∂《∥∝∨¬】
육중한 발소리와 함께 알아들을 수 없는 기계음을 늘어놓던 이들은 엘카힘의 유물이 있는 방향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원반 비행체에서 내린 칼가로아의 숫자는 100명 남짓했지만, 주변으로 빛과 함께 그런 원반 비행체가 수십 개가 더 생성되었다. 최소 수천에 달하는 칼가로아가 이곳에 모습을 드러냈다는 뜻이었다.
반면 이한의 병력은 120명에 불과했다. 세 가지 방안이 있었다.
첫째, 병력을 충원해서 놈들과 한 판 붙는다. 그러나 전투를 치르는 사이 칼가로아가 유물을 탈취할 확률이 높아진다. 저들이 유물을 탈취하면 칼가로아와 싸울 이유가 사라지는 셈이다. 쓸데없이 칼가로아의 적의만 사게 되는 셈이다.
둘째, 이대로 조용히 물러나는 방법. 안전하기는 하나 현명한 태도라고는 할 수 없다. 엘카힘이 남긴 유물이 무엇이든 간에 그건 매우 강력한 기술이나 지식이 될 테니까.
마지막으로 세 번째, 이대로 조용히 놈들의 뒤를 밟는다. 자신이 기운으로 워리어를 감싸 은폐시킨다면 놈들에게 들키지 않고 뒤를 밟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이한은 선택은 당연히 마지막 세 번째였다. 이에 이한이 워리어들에게 말을 꺼내려는 찰나 다시 지축이 흔들리는 굉음이 울려 퍼졌다.
그 발걸음의 주인을 바라본 워리어들은 흠칫 놀라며 거대한 거체를 바라봤다. 무슨 거대한 파충류가 첨단 장비를 차고 이곳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치 공룡이 문명화된 모습이라고 해야 할까? 얼추 그것과 매우 흡사한 느낌이었다.
이한은 놈들의 정체를 확인하곤 다시 안색을 굳혔다. 공룡이 아니다. 차라리 공룡이었다면 마음 편했으리라.
‘볼테르안···.’
가장 작은 개체가 5m에 이르는 거대한 파충류 종족이 바로 이 볼테르안이었다. 덩치가 덩치인 만큼 강력한 힘은 더 말할 것도 없었다.
다행히 이한 등은 유적지로 보이는 곳에서 제법 멀리 떨어진 곳에 있었기에 이번에도 발각되지 않고 상황을 살펴볼 수 있었다.
이윽고 볼테르안과 칼가로아 두 종족은 대치 상태에 들어갔다.
“워. 저 두 종족의 언어 해석이 가능한가?”
『기존의 정보를 이용하여 해석 중입니다.』
“좋아.”
작게 워와 대화한 이한은 일단 대기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자신과 마찬가지로 볼테르안, 칼가로아 모두 엘카힘의 유물을 얻기 위해 이곳에 다다른 것이리라.
【지지직. 비키십시오. 이곳은 저희 칼가로아가 먼저 선점했습니다.】
【크륵. 헛소리! 이곳의 유물은 우리 볼테르안의 것이다!!】
【이곳의 유물을 잘못 건드리면 행성 전체가 날아가버린다는 걸 모르지 않아서 그런 소리를 하는 겁니까? 띡. 띠딕.】
칼가로아의 음성은 기계음이 가득했고 볼테르안의 말소리는 뭔가 울부짖는 느낌이 강했다. 어쨌든 워로 인해 그 뜻은 알아 들을 수 있었다. 해독한 정보를 모두에게 전송할 테니 인공지능을 통해서도 충분히 저들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아무리 워라고 해도 부족한 자료만으로 이렇게 빨리 해석할 수 없지만 자투족에게 저들에 대한 정보가 부족하게나마 정말로 존재했기 때문에 그 일이 가능했다.
【크륵. 크륵. 우리가 할 소리를 하는군. 너희 깡통들이 초능력에 대해 대체 뭘 안다고 나서려고 하는 것이냐?】
【덩치만 큰 파괴자들 주제에 지금 저희 칼가로아에게 충고라도 하려는 것입니까? 당신들도 초능력에 대해 문외한이긴 매한가지입니다. 차라리 당신들보다는 우리 칼가로아가 훨씬 나을 겁니다.】
【크륵! 긴말하지 않겠다. 비켜라! 이 유물은 우리 볼테르안이 가져갈 것이다.】
‘유물을 잘못 건드리면 행성이 날아간다고?’
이한은 섬뜩한 기분에 휩싸였다. 하이모스에도 엘카힘의 유물이 있지 않았던가? 잘못 건드렸다면?
‘어쨌든 잘못되지 않았으니 이건 일단 넘어가고.’
이한은 눈매를 좁히며 저들의 대화와 주변을 주시하다가 기묘한 느낌을 느꼈다. 전에 자투족 사절이 왔을 때 느낀 감각이랑 비슷했는데 그보다 훨씬 더 교묘했다.
‘두 종족이 아니라 세 종족이었군. 라페이드족도 끼어 있었어.’
라페이드는 놀랍게도 칼가로아와 볼테르안 양쪽 모두에 숨어 있는 것으로 보였다.
‘이걸 잘 이용하면 놈들끼리 싸우게 만들고 유물만 어떻게 탈취할 수도 있겠는데? 하지만 워리어들과 함께 진입하는 건 아무래도 무리다. 혼자서도 버거워.’
홀로 그런 위험을 감수할만한 가치가 있을까?
뭐 놈들에게 걸린다고 당장 죽거나 그러지 않을 자신이 있으니 하는 생각이긴 하지만 위험하다는 건 더 말할 것도 없으니 고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워. 네 판단은?”
『저들과 뒤따라 침투하는 부분에 대해 말입니까? 글쎄요. 이 부분에 대해 딱히 조언해 드릴 것은 없습니다. 전에 얻은 유물 역시 제가 관여한 부분이 아니라 더더욱 그렇습니다. 다만 워리어와 함께 침투한다면 머잖아 발각당하고 말 겁니다.』
“나 홀로 침투한다면?”
『제법 가능성이 있긴 하나 상당히 위험합니다. 마스터 시에라가 곁에 없다는 것을 감안하셔야 합니다.』
이한은 헬멧 안에서 미간을 좁히다가 워리어들에게 말했다.
“나 홀로 침투한다. 너희는 여기서 더 물러나서 대기하라.”
“그렇다고 놈들이 유물을 탈취하게끔 내버려 둘 수 없다. 적어도 유물이 잘못되는지 아닌지 정도는 파악해야만 해.”
유물을 잘못 건드리는 경우 행성이 폭발한다는 게 사실이라면 유물이 어찌 되는지 반드시 살펴봐야 한다. 안 그랬다간 포스 행성에 초자원 채취에 나선 병력 모두가 말살당하고 말 테니까.
“워. 혹시 모르니 500명의 워리어를 추가로 이곳으로 보내도록!”
『알겠습니다. 다만 유물의 위치를 파악하고 있다면 저들이 테라 기지의 위치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을 리 없습니다. 그 점은 어떻게 대처하시겠습니까?』
이한이 뭐라 대답하기 전에 저들 사이에서 테라에 대한 이야기가 흘러 나왔다.
【테라족이 이 근방에 기지를 건설한 것 알고 있습니까?】
【크륵. 크륵. 테라족이라면 건방진 자투족을 상대로 승전했다는 미개 문명을 말하는 것이냐?】
【그렇습니다. 저희 칼가로아가 발 빠르게 움직인 이유 또한 테라족 때문입니다. 미개한 테라족은 이 유물을 해독할 능력이 전무합니다. 오히려 행성을 날려 먹지나 않으면 다행이겠지요.】
‘미개? 이 깡통 새끼들이.’
이한은 짜증이 살짝 올라왔지만, 다시 저들의 대화에 집중했다.
【흥! 그럼 쓸어버리면 될 일 아닌가?】
【볼테르안이 해주신다면 기꺼이 받아들이지요.】
【크르륵! 테라족은 후에 쓸어버리면 될 일이다. 대화는 여기까지다.】
【이곳에 유물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우리 칼가로아와 전투를 치르겠다는 뜻입니까? 이대로 테라족에게 유적지가 여기 있다고 광고라도 하시지 그러십니까? 역시 덩치만 큰 파괴자답군요.】
【크르르륵! 감히!】
이한은 저들의 대화를 들으며 어떤 이유 때문인지 저들의 병력수가 아직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을 직감했다. 저들의 숫자가 많았다면 그러니까 테라의 병력를 압도했다면 테라를 경계할 것 없이 쓸어버리고 유적지를 탐험하면 될 일이니까.
【볼테르안. 우리가 당신들과 전투를 두려워하기 때문에 전투를 꺼리는 것이라 착각하지 마십시오. 유적지가 파괴되면 유물은 물론 행성 역시 사라집니다. 당신들도 우리들도 물러날 생각이 없다면 이대로 함께 유적지에 진입하는 것이 차선이라고 생각합니다만?】
【크르륵. 좋다. 그러나 유물은 우리 볼테르안의 것이다.】
【그건 그때 가서 결정하면 될 일입니다.】
이한은 숨을 죽이며 저들의 대화를 듣고 있다가 마음에 결정을 내렸다.
‘유물? 그건 내가 날름 삼켜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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