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mmander of the Space Gamer RAW novel - Chapter 154
151. 쟁탈전 (1) >
151. 쟁탈전.
이한은 눈을 질끈 감고 석주에 손바닥을 가져갔다.
이번에도 역시 석주에서 시각적으로 뭔가 특별한 일이 발생하지는 않았다. 마찬가지로 그 특별한 일은 석주에 손바닥을 댄 이한에게만 국한되었다.
그러나 전처럼 어떤 메스꺼움이나 어지러움은 느껴지지 않았다. 단지 눈을 떴을 때 거대한 동굴이 아니라 어떤 거대한 사원 같은 곳의 공터가 눈앞에 펼쳐져 있었을 뿐이었다.
“이게?”
공간 이동이라도 한 것일까? 알 수 없었다. 이한이 신중하게 주변을 둘러보고 있을 때 그 앞에 기묘한 빛무리가 결집하기 시작했다.
파츠즈즈.
기묘한 빛무리는 이내 곧 사람의 형상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당연히 이한은 긴장한 표정으로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환한 빛이 사라지자 이한의 표정은 냉담하게 굳을 수밖에 없었다.
빛무리가 그려낸 모습은 바로 이한 자신의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한 이드라실도 아닌 바로 이한 자신의 본래 모습을 말이다.
다만 그 이한은 매우 잘 단련된 육체를 가지고 있었다. 자신이 극도로 단련하면 저런 모습일까 싶을 정도의 육체를 말이다.
“대체 어떻게?”
이한은 얼음장 같은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이한의 모습을 한 정체불명의 존재가 감고 있던 눈을 떴다. 그 존재가 눈을 뜨자 푸르고 강한 빛이 강렬하게 터져 나왔다. 정체불명의 존재와 눈을 마주한 이한은 자신의 폐부 깊숙한 곳까지 훑어보는 것 같은 기이한 느낌에 휩싸였다.
【계승자의 자격을 얻은 이여.】
이한의 모습을 한 존재는 분명 입을 굳게 다물고 있음에도 거대한 음성을 사방에 울리게 만들었다.
【그 자격을 시험해보리라.】
이한은 당황한 감정을 뒤로 하고 차가운 눈빛으로 정체불명의 존재를 바라봤다.
“엘카힘인가?”
【맞다. 하나 우리는 엘카힘의 파편이다. 그리고 너의 본질에 닿아 있기도 하다.】
“나의 본질? 네가 엘카힘이라면 네 모습이나 드러내라!”
【우리가 존재했어도 너는 우리를 볼 수 없을 것이로되 존재하지 않는 우리의 모습을 밝히 드러낼 방법은 네 스스로 보는 수밖에 없다.】
이게 무슨 헛소리란 말인가? 이한은 살짝 인상을 쓰다가 입을 열었다.
“존재하지 않는다면 너희 엘카힘은 멸망했다는 말인가?”
【진정한 계승자가 탄생한다면 그로 인해 밝히 드러나리라.】
이한은 기묘한 표정으로 과거 자신의 모습, 아니 훨씬 발전된 자신의 모습을 바라봤다. 자신이 저렇게 멋진 놈이었던가?
뭐랄까? 뿌듯함과 창피함이 공존하는 매우 기묘한 느낌이었다. 창피함은 자신의 나약함과 게으름으로 인한 것이었고 뿌듯함은 자신의 온전한 모습에서 오는 즐거움에 가까웠다.
이한은 깊게 숨을 뱉은 뒤 입을 열었다.
“나의 자격을 시험한다는 건 대체 무슨 뜻이지?”
그러자 파편이라 일컬은 존재는 단호한 표정을 지었다. 여전히 그의 입은 굳게 닫혀 있었다.
【나를 베어라. 베지 못하면 네가 찢어질 것이다.】
“뭐?”
【준비하라. 계승자!】
그 말과 동시에 파편의 손에 사이오닉 소드 두 자루가 생성되었다. 푸르게 타오르는 사이오닉 소드는 당장에라도 이한은 양단할 것처럼 매섭게 일렁이고 있었다.
이한은 긴장한 표정으로 양손에 사이오닉 소드를 나눠 쥐며 기운을 운용했다.
지이잉!
두 자루의 사이오닉 소드가 붉은 섬광을 토해내며 사납게 울부짖었다.
【이제부터 네 자격을 시험하겠다.】
이한의 모습을 한 파편은 그 말과 동시에 이한에게 짓쳐 들었다. 공간을 격하고 날아드는 모습은 그 어떤 적보다 위협적이었다.
이한은 푸른 빛을 발하는 두 자루의 사이오닉 소드가 자신을 베고자 날아오자 즉시 사이오닉 소드로 파편의 공격을 쳐냈다.
파츠즈즈즈. 파츠즈.
한 번의 격돌이었음에도 그 짧은 순간 수십 번의 검격이 둘 사이에 오갔다.
이한은 뒤로 물러서기 무섭게 이번엔 역으로 파편에게 짓쳐 들었다. 자신의 모습이든 뭐든 자신을 죽이려고 든다면 말살해야 할 존재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이한은 사나운 표정을 하고 과거의 자신을 베어 넘기기 위해 양손의 사이오닉 소드를 미친 듯이 휘둘렀다.
붕! 부붕!
육중한 파공음이 울려 퍼지고 이한의 오른손의 사이오닉 소드는 파편의 왼팔을 베어갔고 왼손의 사이오닉 소드는 파편의 허리를 베어갔다.
쾅! 쾅!
그러나 파편도 결코 호락호락한 존재가 아니었다. 이한의 전투술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었고 어떤 면에서도 그보다도 뛰어났다. 따라서 대수롭지 않게 이한의 공격을 쳐내고 역습을 가했다.
이한은 검을 쳐낸 충격에 팔이 뒤로 튕겨 나가는 것을 느꼈지만 따로 저항하지 않고 그 움직임을 이용해 몸을 팽이처럼 돌리며 뒤로 물러섰다. 물러선 그 자리로 파편의 사나운 사이오닉 소드가 폭풍처럼 휘몰아쳤다.
물러서지 않았다면 온몸이 갈가리 찢어지고 남았을 정도로 강맹한 공격이었다.
쇠할 때가 있으면 흥할 때가 있고 흥할 때가 있으면 쇠할 때가 있다. 전투의 흐름 역시 마찬가지다.
이한은 파편의 공격이 무위로 돌아가기 무섭게 그것을 파고들어 다시 역으로 공격을 가했다.
팽이처럼 돌아가던 몸의 회전력을 이용해 반원을 그리듯 파편에게 검을 들고 쇄도했다.
챙! 채채챙!
파편은 두 자루의 사이오닉 소드를 현란하게 휘둘러 이한의 공격을 모조리 막아냈다.
다시 수십 번의 검격이 오간 뒤 서로가 서로를 스쳐 갔다.
‘백중세. 아니 내가 불리하다.’
짧은 순간 벌써 수백 합을 나눈 이한은 자신의 실력이 파편에 비해 뒤처진다는 것을 체감했다.
그러나 이대로 포기할 수 없었다. 언제부터 자신이 우월적이고 압도적인 능력으로 적을 압살했던가? 자신이 맞닥뜨린 적은 언제나 자신보다 강력했다.
약간 밀린다는 점 따위가 이한의 전투 의지를 꺾을 수 있을 리 만무했다.
“내가 이대로 죽어줄 것 같냐?”
이한은 버럭 소리를 지르며 다시 파편을 향해 쇄도했다.
이한은 오른손의 사이오닉 소드로 파편의 머리를 후려치기 무섭게 빙글 돌며 왼손의 사이오닉 소드로 옆구리를 베었다.
파편은 왼손을 들어 이한의 공격을 막다가 옆구리를 파고 들어오는 이한의 공격에 급히 몸을 왼쪽으로 뒤틀며 오른손의 사이오닉 소드를 뻗어 이한의 공격을 막아섰다.
그러나 그것은 이한의 노림수였다. 이한은 내뻗은 파편의 검을 파고 올라가 파편의 오른 상박을 베어버렸다.
부우웅!
그 순간 강력한 기운에 의해 이한은 뒤편으로 강하게 밀려났다. 이한의 공격은 아슬아슬하게 오른 상박을 벗어나 허공을 베어 넘겼다.
이를 악문 이한은 허공을 잡아당기듯이 끌어서 다시 파편에게 쇄도하며 검격을 미친 듯이 퍼부었다.
쾅! 콰광! 쾅!
검격을 퍼부으며 이한은 땅바닥을 딛고 지탱하고 있는 파편의 오른 다리를 이능으로 끌어당겼다.
우우웅!
공간이 요동치는 것이 그 힘이 예사롭지 않음을 방증하고 있었다.
그러나 파편은 오른 다리를 바닥에 내디디며 강한 울림을 만들어냈다.
이한의 이능은 끊어졌고 역으로 강한 충격파가 지면을 타고 이한에게 빠르고 쇄도했다.
이한은 급히 이능으로 몸을 공중에 띄우며 그 자세 그대로 파편에게 다시 검격을 퍼부었다.
서로 한 치도 물러서지 않는 박빙의 승부가 끝없이 펼쳐졌다.
이한은 다시 이능으로 몸을 잡아채며 뒤편으로 끌어당겼다. 그러자 파편의 폭풍 같은 이능이 이한이 있던 자리를 휩쓸고 지나갔다. 막았더라도 자세가 흐트러졌을 테니 낭패를 면치 못했을 것이다.
이한은 그 자세 그대로 파편을 향해 이능을 방출했다. 이한의 이능은 과거 얻었던 진천마신공과 초월의 마도서 등에 수록된 여러 가지 초식과 마법이 이리저리 뒤섞여 화려한 빛을 발하며 파편의 가슴을 향해 날아갔다.
그대로 파편을 찢어버릴 정도로 강맹한 공격이었다.
그러나 파편 역시 이한과 마찬가지로 여러 초식과 마법을 운용해 화려한 빛무리를 검으로 형성해 그 모든 이능을 갈가리 파훼시켜버렸다.
콰아아앙!
커다란 폭발음이 울려 퍼지고 이한과 파편은 잠시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다.이한은 두 자루의 사이오닉 소드를 곧추세우며 서늘한 눈빛으로 파편을 바라봤다.
파편은 자신이 사용하는 이능을 모두 활용하고 있었고 자신보다 더 능숙하게 사용하는 부분도 있었다. 따라서 이능을 사용하는 모습을 보며 배우는 경우도 허다했다.
이한은 그 모든 것을 철저하게 자신의 것으로 체화시켰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이번 전투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건 자신이 되고 말 테니까.
“이제 끝을 내자.”
이한은 그렇게 말하며 사이오닉 소드에 자신이 활용할 수 있는 모든 이능을 불어넣었다.
이한의 사이오닉 소드는 폭발적인 기세를 발하며 붉게 타오르기 시작했다.
파편 역시 이한의 기세에 호응이라도 하듯 사이오닉 소드의 기세를 더욱 강화시켰다. 푸른 빛을 발하며 타오르는 파편의 사이오닉 소드는 이한의 그것을 능가할 정도로 강력했다.
그러나 이한은 위축되지도 않았고 두려움을 느끼지도 않았다. 그의 마음을 지배하고 있는 것은 오직 하나, 놈을 벤다 라는 생각뿐이었다.
활용할 수 있는 모든 이능을 쏟아부은 이한은 그 즉시 번개처럼 파편을 향해 쇄도했다.
파편 역시 기다렸다는 듯 사이오닉 소드를 들고 이한을 향해 짓쳐 들었다.
그 모습은 마치 붉은 번개와 푸른 번개가 맞부딪치는 모습을 방불케 했다.
파지지직!
끝없이 이어질 것 같던 승부는 단 한 번의 격돌로 끝을 맺었다.
이한은 무릎을 꿇으며 피를 토했다.
울컥!
그의 두 손에 쥐어져 있던 사이오닉 소드는 어느새 빛을 잃고 바닥에 아무렇게나 내팽개쳐져 있었다.
반면 파편은 양손에 여전히 푸르게 타오르는 사이오닉 소드를 들고 우뚝 선 채로 그런 이한을 바라봤다.
【계승자. 오늘의 전투는 그저 시작일 뿐이니. 고련을 거듭하지 않는다면 죽음은 너의 것이 될 것이다.】
그와 동시에 파편은 온몸에서 붉은빛을 토해내더니 그대로 폭발해 푸른 입자로 화했다. 그리고 그 푸른 입자는 무릎을 꿇고 있던 이한에게 온몸을 관통했다.
“크허헉!”
이한은 머리를 새하얗게 불태우는 것 같은 끔찍한 고통에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 쓰러졌다. 어떻게 참아낼 수 있는 종류의 고통이 아니었다.
“크아아아악!”
이한은 끔찍한 고통에 몸을 이리저리 뒤틀며 눈을 부릅떴다. 어느새 거대하고도 기묘한 사원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고 거대한 동굴과 석주가 다시 눈에 들어오는 것 같았다.
그러나 강렬한 고통으로 인해 시야조차도 불명확했기에 확신할 수는 없었다. 그저 이한은 고통에 울부짖으며 땅바닥에 데굴데굴 몸을 굴릴 뿐이었다.
그렇게 이한이 고통에 울부짖을 때 거대한 석주가 있던 동굴이 먼지처럼 산산이 날리기 시작했다. 마치 지우개로 지우듯 모든 것이 서서히 사라졌다.
그 모든 것이 사라지고 오직 이한만이 투명한 공간 위에 남은 그때 이한 역시 빛에 휩싸여 어디론가 사라졌다.
*
화아아악!
기묘한 문양을 지키고 있던 칼가로아는 문양이 갑자기 강렬한 빛을 발하자 삼엄한 태세로 문양을 주시했다. 문양에 들어선 존재는 없었으니 유적지 안으로 들어섰던 누군가 다시 밖으로 나오는 현상이리라.
칼가로아라면 상관없겠지만, 그것이 볼테르안이라면 사살해야 한다.
이윽고 문양은 어떤 존재를 그려내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발견한 칼가로아는 의아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 존재는 바로 정신을 잃고 쓰러진 이한이었기 때문이다.
【테라? 테라족?】
칼가로아는 의아한 기색을 발하며 입을 열다가 예의 기계음이 섞인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놈을 사살. 아니 생포하라. 성분 분석을 해봐야겠다.】
【알겠습니다.】
그때 사태를 관망하고 있던 볼테르안이 입을 열었다.
【무슨 헛소리를 하는 것이냐? 그 테라족은 우리 볼테르안이 차지할 것이다.】
칼가로아나 볼테르안 양측 모두 유적지에 들어섰지만, 외부로 나온 존재는 아무도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이한이 갑자기 모습을 드러냈으니 서로 그의 신병을 확보하려는 건 당연한 태도였다. 애초에 두 종족이 협력하는 사이는 아니었으니 말이다.
그때 칼가로아와 볼테르안 양측 모두에서 비명이 울려 퍼졌다. 어떤 선전포고도 없이 볼테르안은 칼가로아를, 칼가로아는 볼테르안을 공격했다.
칼가로아의 날카로운 금속은 육중한 볼테르안의 피륙을 뚫고 푸른 피를 흘리게 만들었고 볼테르안의 강력한 힘은 칼가로아를 단번에 고철 더미로 만들어버렸다.
【이런 식으로 나오겠다면!】
【당장 고철로 만들어주마!】
그것을 시작으로 칼가로아와 볼테르안 양측 모두에서 공격 명령이 하달되었다.
볼테르안, 칼가로아 두 종족이 치열한 전투에 돌입하려는 그때 투명하게 일렁이는 무언가가 이한을 향해 빠르게 다가서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