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mmander of the Space Gamer RAW novel - Chapter 161
158. 유령처럼 (2) >
158.
워리어들의 보고를 들은 빌리가 입을 열었다.
“단말기에 표시된 지역을 따라 시의적절하게 이동해야 한다.”
초인공지능 워가 어느 시점에 어떤 지점으로 움직여야 발각되지 않는지 상시 표시해주고 있었다. 지시대로 움직인다면 빠듯하기는 하나 불가능한 임무는 아니었다.
“상세한 내용은 이미 숙지했을 테니 이하 내용은 생략한다. 이동!”
피슛! 피슛!
작은 소음과 함께 가스가 분출되며 우주 공간에 놓인 워리어들을 일제히 앞으로 밀어냈다. 열을 발생하는 추진체가 아니기에 걸릴 위험은 거의 없었다.
또한 감지 시스템을 왜곡시키는 장치가 각 워리어의 아머에 탑재되어 있었기에 특별히 이곳을 확대해서 확인하지 않는 이상 우주의 먼지 정도로 감지될 것이다.
우주에 떠다니는 먼지까지 일일이 확인하는 건 극도로 비효율적인 행위이니 특별한 일이 발생하지 않는 한 소행성에 도착하는 일 자체는 큰 문제가 없었다.
*
격납고에 다다른 이한은 격납고에 위치한 7기 정도의 함재기를 바라보고 있었다. 정찰함이다 보니 함재기 탑재 한도가 이쯤되었다.
무심한 눈빛으로 ‘아이언’과 마찬가지로 검게 번쩍이는 요격기를 바라보던 이한은 손에 들고 있던 헬멧을 머리에 장착하고 요격기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아이언’에 탑재된 함재기인 만큼 역시나 은폐 기능이 탁월한 기체였다.
저벅저벅.
그런 이한에게 워의 보고가 이어졌다.
『여덟전투조 모두 소행성에 무사히 안착했습니다. 곧 기지 침투에 돌입합니다.』
이한은 고개를 끄덕인 뒤 돌연 훌쩍 뛰어서 깃털처럼 가볍게 조종석에 앉았다.
“기지 침투 후 역장 무력화 시간까지 얼마나 걸리지?”
『변동 사항이 있든 없든 적어도 30분 안에 역장을 무력화시켜야만 합니다. 그 이상의 시간이 지나면 적이 기지에 침투한 워리어들을 특정하기 시작할 겁니다. 따라서 30분 이후부터는 성공 확률이 급격하게 떨어집니다.』
“30분의 골든타임이라···.”
띡!
이한은 버튼을 눌러 조종석의 창을 닫으며 가만히 눈을 감고 명상에 잠겼다. 적 기지에 침투한 워리어가 여덟 기지 모두 작전을 성공시킨다면 좋겠지만 이한은 그렇지 못할 경우도 상정하고 있었다.
모두 성공시킬 확률이 희박하듯 모두 실패할 확률 역시 상대적으로 희박할 터, 작전이 실패하더라도 역장에 틈이 생길 수밖에 없다.
따라서 작전이 잘못되더라도 자신은 그 빈틈을 뚫고 중앙 소행성 기지에 진입할 것이다. 레이져 포격까지도 예지하여 미리 방향을 틀게 만들었던 능력은 요격기를 조종할 때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전에도 적 요격기를 농락한 전적이 있으니 이건 의심할 것도 없었다.
‘반드시 성공시킨다.’
비등한 적과 적이 싸울 때 승부는 아주 작은 요소 하나로 결정된다. 극심한 격차로 인한 패배는 생각보다 그리 많지 않다. 아주 작은 차이가 승패와 생사를 가른다.
따라서 이한은 앞으로 있을 치열함에 대비하기 위해 명상을 통해 요격기와 자신의 일체감을 높이고 있었다. 아주 미약한 그것이 최후의 순간 빛을 발하는 법이니까.
*
빌리와 24명의 워리어들은 은밀하면서도 신속하게 시구르스의 기지로 향해 이동했다.
빌리 역시 적의 모습을 확인했다. 적은 고릴라처럼 거대했는데 기본적으로 2m는 넘는 신장을 가진 것으로 보였다. 체구의 크기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워리어들도 2m에 달하는 거구들이 상당히 많았으니까.
빌리는 단말기에 뜬 정보를 확인한 뒤 병사들에게 명령을 하달했다.
“우회할 수 없는 위치다. 적을 사살하고 곧바로 작전 지역으로 이동한다.”
이에 빌리를 비롯한 워리어가 일제히 시구르스를 향해 신속하게 짓쳐 들었다. 총기를 사용하지 않는 건 가장 은밀하고 확실하게 죽일 수 있는 수단이 따로 있었기 때문이다.
적의 주변에 다다른 워리어들은 빌리의 신호에 맞춰 각자 맡은 시구르스를 향해 쇄도했다.
【≒шIJ∀!!】
경계를 서고 있던 시구르스들은 투명한 무언가가 자신들을 향해 짓쳐 들자 다급하게 뭐라고 소리쳤지만, 그 외침은 제대로 울려 펴지기도 전에 사그라졌다. 소리를 지르는 순간 에너지 소드에 모조리 목이 잘려나갔기 때문이었다.
서걱! 서걱!
사방에서 섬뜩한 절삭음이 울려 퍼졌다. 에스타른족의 기술은 과연 명불허전이었다. 전투의 전문가들이라 할 수 있는 시구르스들조차 미처 감지하지 못할 정도였다. 물론 워리어들의 전투 실력이 뛰어난 부분이 가장 컸다.
투명화 기능을 유지한 채 작전 지역으로 향하는 길목 위에 서 있던 시구르스를 모조리 처치한 워리어들은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앞으로 내달렸다.
“시간이 많지 않다. 역장을 무력화시켜야 한다!”
*
『역장이 약화 되었습니다. 현재 다섯 기지에서 신호를 대기 중입니다.』
이한은 슬쩍 눈을 뜨고 남은 시간을 확인했다. 시간은 00:28:19를 지나가고 있었다.
“시간이 많지 않군. 남은 세 기지는 내버려 두고 역장 해제를 실행해!”
『하지만 그리 될 경우 역장이 제대로 해제되지도 않을뿐더러 복구 시간 역시 예측하기 어려워집니다.』
“실시해!”
이한은 짧게 말한 뒤 요격기의 엔진을 점화시켰다.
콰가가가가!
이에 워는 즉시 이한에게 대답했다.
『역장 해제되었습니다. 해제된 지역을 표시합니다만 상시로 변하기에 역장을 통과하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합니다.』
워의 보고에도 이한은 조종간을 잡아채며 짧게 말했다.
“각자 맡은 일을 수행할 뿐.”
그 말과 함께 이한이 탄 검은 색의 요격기는 뒤에서 한 차례 불꽃을 뿜어낸 뒤 번개처럼 정찰함 아이언을 벗어났다. 아이언을 벗어나기 무섭게 은폐와 은신 기능을 작동했기에 육안으로나 기계로도 요격기의 모습을 감지할 수 없었다.
워가 전송해주는 정보는 정확하지만 이미 죽은 정보다. 시시각각 변하는 상황이니 예지에 가까운 자신의 능력을 믿는 수밖에 없었다.
이한은 활로라 여겨지는 곳을 향해 엄청난 속도로 요격기를 조종했다.
스스스스!
독사가 수풀을 빠르게 기어서 먹잇감을 낚아채는 것처럼 우주 공간을 꿰뚫고 역장의 빈틈을 파고들었다.
이한이 지나치기 전까지만 해도 강한 역장으로 뒤덮여있던 자리였는데 이한이 지나는 순간 역장이 사라졌다. 그리고 역장이 없던 곳은 역장으로 뒤덮였고 말이다.
그런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이한은 무심하고 서늘한 표정으로 요격기를 조종했다.
슈수우우웅!
바늘과 같은 틈이 수시로 변하는 데 그것을 뚫고 이동하는 것이나 다름없는 상황이었다. 상황이 매우 위험하다고 다급한 것치고는 이한은 너무나 순조롭게 절반 이상의 역장을 통과했다. 당연히 시구르스의 경계망에 걸리지도 않았다.
그러나 그런 이한에게도 위기는 찾아왔다.
역장의 불안정해지자 중앙 기지가 중앙 소행성 주변의 역장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역장을 재설계했기 때문이다. 그 어디에도 빈틈이란 존재하지 않았다. 뚫고 갈 바늘처럼 작은 틈마저 사라졌다는 뜻이었다.
이런 상황이라면 요격기를 멈춰 세우는 것이 답이었지만 멈춰 세우면 멈춰 세우는 대로 문제가 될 것이다.
현재 안전한 지역도 찰나에 불과했으니까. 이한이 요격기를 멈춰 세우게 된다면 역장에 의해 발각당하거나 역장을 이기지 못하고 요격기 자체가 폭발할 수도 있었다.
절체절명의 상황이라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한은 주저 없이 요격기를 더욱 가속시켰다. 이는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것보다 더한 광경이라 할 수 있었다.
슈우우우웅!
지금껏 이한의 집중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침묵을 지키던 워가 급히 이한에게 경고했다.
『사령관님! 활로가 전혀 없습니다. 요격기를 반전하십시오. 적에게 발각당하더라도 죽음에 이르진 않을 겁니다! 하지만 이대로라면!』
그러나 이한은 냉철한 눈빛으로 요격기의 속도를 더욱 높였다.
부아아앙!
『사령관님!!』
그 순간 이한의 앞을 가로막고 있던 역장이 거짓말처럼 사라져버렸다. 워리어들이 남은 세 기지의 역장 해제에 성공한 것이었다.
이에 이한은 번개처럼 모든 역장을 통과해 중앙 소행성에 도달했고 이한이 소행성에 도달하기 무섭게 역장이 더욱 강력한 형태로 재생성되었다.
아찔한 순간이었다. 조금만 늦거나 빨랐다면 이한은 우주의 먼지로 화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한은 마치 그렇게 될 줄 알았다는 듯 표정 하나 변하지 않은 채 요격기의 속도를 줄이며 소행성 위에 천천히 착륙시켰다.
위이이잉! 취이익!
이한은 조종석 밖으로 몸을 날리며 워에게 짧게 말했다.
“기지의 구조나 시설물에 대한 정보가 필요하다.”
『주변 정보를 수집한 후 전송하겠습니다.』
이한은 우둘투둘한 소행성 위에 가볍게 착지한 뒤 슈트의 은신 기능은 물론 이능으로 자신의 흔적을 완전히 지워버렸다.
“아이언을 기동해 복귀하는 워리어들을 모두 탑승시키도록!”
『그 점은 염려마십시오.』
“나 역시 제한 시간이 30분인가?”
【더 짧을 수도 더 길수도 있습니다. 자세한 것은 정보 수집 후 말씀드리겠습니다.】
어쨌든 남은 시간이 많지 않다는 건 확실했다.
“그래. 알겠다.”
이한은 대답과 함께 빠른 속도로 시구르스의 기지가 건설된 지역으로 이동했다. 워리어들은 자신의 임무를 거의 완벽하게 수행했다. 적어도 아직까진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그러니 이제 자신이 놈들에게 발각되지 않은 채 유물인지 뭔지 모를 것을 탈취하는 일만 남았다.
*
【Ħ§⊆≒∵ж?】
【шIJ∀!!】
고릴라 모습을 한 시구르스들이 기지 입구에서 낮게 으르렁거리는 것처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처음에는 무슨 뜻인지 들리지 않았지만 워의 도움으로 금세 저들의 말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단순 오류 아닌가? 역장이 모두 해제되기 전에는 역장이 펼쳐져 있는 것과 다름없는 상황이라 의미가 없고 역장이 모두 해제된 시간은 10초도 되지 않는 시간 아니었나?】
【경계를 강화하라는 명령이 떨어졌으니 그대로 시행하는 수밖에.】
【흥! 무슨 엘더족이라도 나타나지 않는 이상 기지가 뚫릴 리는 없어. 아니 엘더라고 해도 그토록 짧은 시간동안 이곳까지 침투하는 건 불가능할 거다. 무엇보다 유물 발굴도 이제 막바지 작업 아닌가?】
【그러니까 더 경계 태세에 만반을 취하라는 거겠지.】
【우스운 일이야. 주변의 다른 기지라면 몰라도 이곳 기지는 초능력으로 은신을 펼쳐도 바로 감지하고도 남는다. 그러니 경계를 더 강화하고 말 것도 없는 상황 아닌가?】
【일단 가서 대충 탐색하는 흉내라도 내야겠지. 이미 명령이 떨어졌으니 말이다. 아니면 네가 직접 올라가서 거부의사를 표하던가? 네 머리통이 앞으로도 온전할지는 의문이지만 말이야.】
【젠장. 내가 이쪽으로 갈 테니 넌 저쪽을 수색해보도록 해. 딱히 뭐가 있을 것 같지도 않지만. 쳇. 이게 뭔 헛짓거리인지 모르겠군.】
【알겠다.】
기지 입구를 벗어난 두 명의 시구르스는 제각각 흉악한 표정을 지으며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주변에 은신하고 있던 이한은 저들의 대화를 들으며 생각에 잠겼다.
‘초능력으로 펼친 은신도 발각된다면 은신 기능은 더 이상 의미가 없다.’
하지만 이한에게는 워가 있었다.
이한은 기지에 손을 대고 있는 것만으로도 기지 방어에 사각 지대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 어떤 장치가 없어도 이한을 통해 워가 즉각적으로 활동할 수 있으니 충분히 가능했다. 어쩌면 이게 은신화나 투명화보다 더 사기적인 능력이었다.
이한은 시구르스 경계병의 움직임을 주시하고 있다가 라페이드의 변신술을 떠올렸다. 라페이드의 변신술이 있다면 저들 중 한 명의 죽이고 시구르스로 가장해서 침투하면 수월할 텐데 말이다.
물론 경계가 이토록 삼엄하다면 라페이드의 변신술 역시 발각될 확률이 높지만 말이다.
여전히 주변에 은신한 채로 앞으로의 계획을 구상하고 있을 때 워의 보고가 이어졌다.
『유물로 특정되는 물체를 확인했습니다. 목표물은 소행성 내부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최적의 이동 경로를 계산해서 전송하겠습니다.』
이윽고 워가 보내준 정보가 이한의 단말기에 표시되었다.
『중앙 기지의 병력 현황은 대략 3만 명으로 추산됩니다. 최단 거리 대로 움직일 수만 있다면 최선이겠지만 사령관님께서도 체감하시다시피 이대로는 자살 행위나 다름없습니다.』
이한은 미간을 좁히며 워에게 말했다.
“메인 시스템을 먼저 장악해라?”
『사령관님께서 은밀히 메인 시스템이 위치한 곳에 잠입할 수 있다면 이곳 기지를 해킹할 수 있습니다. 정보를 교란시킨 후에 병력이 분산되면 그때 침투하면 성공 확률을 높일 수 있습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워의 보고에 이한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이대로 침투하는 것도 나쁘진 않다.
하지만 제한시간이 걸린다. 기지 전체를 해킹하거나 워가 진입할 수 있는 일종의 백도어를 만들어 둘 수 있다면 자신이 발각될 위험이 크게 낮아진다. 과감함보다 신중함이 필요하다고 판단을 내린 이한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은 것 같군.”
『변동 사항이 발생하면 즉시 사령관님께 보고 드리겠습니다.』
미미하게 고개를 끄덕인 이한은 더 지체하지 않고 워가 만든 사각지대로 잠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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