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mmander of the Space Gamer RAW novel - Chapter 165
162. 유물이 가져온 것 (3) >
162.
이한은 멍하니 자신의 양손을 바라보다가 주변을 살펴봤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거지?’
이곳은 유적지다. 온몸이 분해되어 죽음을 맞이한 그곳. 죽지 않았단 말인가?
‘시간이 지나간 것이 아니라면 12종족과 싸워 승리하고 10년 후 내 모습을 봤다.’
다만 안개에 둘러싸인 것처럼 모호하다. 그것이 지금으로부터 10년 후인지 아니 15년, 아니 20년 후인지도 정확하지 않다. 한 가지 확실한 건.
‘그곳엔 시에라가 없었다···.’
승리도 있고 영광도 있고 강력한 힘과 취하고자 한다면 거의 모든 것을 취할 능력도 있었지만, 이 세계에 떨어진 사실 자체를 잊어버리게 만든 사랑하는 사람은 그곳에 없었다.
그곳의 자신은 세계를 구했다. 테라를 승리로 이끈 주역이다. 한 이드라실이 없었다면 테라가 승리할 수 없었을 거라고 모든 이들이 인정하고 추앙했다.
근데 그게 뭐?
그 일이 가장 소중한 것들과 맞바꿔서라도 이룰 정도로 내게 중요한 일인가? 결국 수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살렸으니 영웅적인 행동 아니냐고?
‘씨발. 영웅은 니미.’
이 여정을 끝마치는 대가로 시에라의 생명을 요구한다면 나는 그 여정을 끝마칠 생각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어코 승리로 이끈 것?
미래의 모든 것이 모호하나 명확한 감정과 기억 몇 가지는 너무나 생생하게 남아 있다. 그 감정과 기억에 입각해 미래의 나를 대변하자면 복수와 내 자신이 사라져버릴 것 같은 끔찍한 허망함에서 어떻게든 나를 추스르기 위한 발악이었을 뿐이다.
사람들을 살리는 뭔가 영웅적인 업적이라도 이루면 시에라의 죽음을 보상받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그러나 부질없는 짓거리였다. 어떤 것도 그녀의 죽음을 대신할 수는 없었다.’
두려움이 뼛속 깊이 스며든다.
이한은 양손의 주먹을 강하게 말아쥐며 눈을 부릅떴다.
‘아니! 아니다. 내 두려움이 형상화된 미래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정해져 있는 미래 따위는 없다. 만약 그렇다면 현재 시에라가 살아있는 것 자체가 모순이다. 그러니!’
그 순간 씁쓸한 자신의 미소가 떠오름과 동시에 형언할 수 없는 감정이 휘몰아쳤다. 이건 이한 자신의 감정이자 자신의 감정이 아니었다. 12종족과 싸워 승리하고 10년 후 피폐해진 자신이 지은 미소와 감정이었다.
“······.”
이한은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이해할 수 없지만, 지금의 상황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니 이해한다.
하지만 이해한다고 말한다면 이건 정말이지 너무 고통스러운 자신이 확정되는 것이 아닌가? 그 엄청난 무게에 가슴이 짓눌려 이한은 감히 어떤 말도 뱉을 수 없었다. 숨을 쉬는 것조차 버거울 지경이었다.
『사령관님! 사령관님!』
“······. 워.”
『잠시지만 사령관님과 연결이 완전히 끊어졌습니다. 하여.』
“연결이 완전히 끊어졌다?”
이한은 워에게 입을 열었다.
『예. 그 현상은 마스터의 죽음 이후에나 발생할 수 있는 현상입니다.』
이한은 눈매를 좁히며 고개를 흔들었다.
“내가 잘못 직감한 건 아니라는 소리였군. 어쨌든 현재 나는 이곳에 있지만···.”
『자세한 것은 후에 파악해도 늦지 않습니다. 사령관님 일단 함선으로 복귀하시길 바랍니다. 강력한 에너지 파장으로 인해 사령관님이 계신 소행성의 지각에 극심한 충격을 가했을 겁니다. 머잖아 산산이 박살 날 수 있습니다. 서둘러 피신하셔야 합니다. 더욱이 이 정도 에너지 파장이라면 외부에 함대가 있었다면 반드시 확인했을 겁니다.』
이한은 고개를 끄덕이며 워에게 말했다.
“그래. 알았다.”
워가 보고하지 않아도 주변의 상황이 심상치 않음은 이한도 체감할 수 있었다. 천장을 비롯한 곳곳에서 거대한 무언가가 부서지는 소음과 함께 암석과 돌가루 등이 떨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르릉. 쿵! 후두둑!
워의 보고에 의하면 점점 빠르게 확산되는 이 균열은 소행성 전역에서 발생하고 있었다. 이곳에서 허무하게 죽음을 맞이할 생각은 없었다.
이한은 즉시 땅을 박차고 워가 방금 보내준 활로를 따라 이동하기 시작했다.
후두둑!
이한이 땅을 박차고 이동할 때 그의 머리 위에서 엄청난 크기의 바위가 맹렬하게 떨어져 내렸다.
‘피할 수야 있지만 그리되면 워가 설정한 활로가 저 바위로 인해 완전히 막혀버린다. 단순히 막히는 정도라면 오히려 다행일 터, 그 충격으로 주변 지형 자체를 변화시킬 테니 상당히 위험한 상황에 처할 수 있다.’
이미 지금도 극도로 위험한 상황이었다. 그러니 여기서 더 나빠지는 건 무조건 피해야만 했다. 순식간에 상황을 파악한 이한은 멈추지 않고 더욱 빠르게 달리면서 허공을 향해 손을 뻗었다.
우우웅!
그러자 놀랍게도 그 거대한 바위는 마치 투명한 막에 부딪혀 미끌어지듯이 이한을 스쳐서 떨어졌다.
콰아앙!
이한이 좁은 통로로 몸을 통과한 후에 바닥에 떨어진 바위는 이한의 예상대로 주변의 모든 환경을 변화시켰다.
아주 잠깐 이능을 사용했을 뿐이지만 이한은 자신의 이능이 더욱 강력해졌음을 느낄 수 있었다.
자신이 만진 구 형태의 돌이 엘카힘의 유산인지 아닌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이곳에서 뭔가를 얻은 것만은 확실했다.
다만 워는 잠시지만 자신과 연결이 완전히 끊어졌다고 했다. 이는 자신의 육체가 세포 단위 아예 분자를 넘어 원자 단위까지 분해된 현상이 어떤 환상이 아니라는 소리였다.
심지어 그렇게 분해된 육체가 다시 원래 상태로 복구되었다. 이게 가능한 일인가? 대체 어떤 원리로? 이런 일이 발생했다는 사실조차 믿기 어려운 일이었다.
수많은 생각이 이한의 머릿속을 어지럽혔지만, 이한은 일단 이곳을 탈출하는 것에만 집중하기로 결정했다.
소행성 전체가 박살 나며 극심한 지각변동이 이한의 생사를 위협했지만, 이한은 강력한 이능을 바탕으로 결국 소행성의 지표면까지 탈출할 수 있었다.
『시간이 없습니다. 소행성이 곧 산산이 폭발할 것으로 보입니다.』
소행성이 왜 폭발하냐 이런 질문은 던질 필요도, 여유도 없었다. 이한은 즉시 우주 공간을 향해 몸을 던졌다.
역장이 펼쳐져 있거나 말거나 워는 ‘아이언’을 이끌고 소행성 주변에 이르렀겠지만, 다행히 역장이 해제된 상황이었다. 소행성 전체가 파괴되고 있었기에 소행성 위에 설치된 시구르스 기지 역시 기능을 제대로 수행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워는 우주 공간을 부유하는 이한을 탑승시킨 뒤 즉시 고속으로 이 주변을 빠져나갔다.
이한이 아이언에 탑승하고 아이언이 이곳을 벗어나기 무섭게 커다란 굉음과 함께 소행성이 폭발했다. 그 위에 있던 시구르스의 기지 역시 폭발했음은 두말할 것도 없었다.
콰아아앙! 콰아앙!
*
이한은 이리저리 부서진 헬멧을 격납고에 내팽개치고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 그런 이한을 향해 대기 중이던 워리어들이 가볍게 경례했고 이한 역시 약식 경례로 저들에게 답했다.
워리어들이 없었더라면 이번 임무는 절대로 성공할 수 없었다. 각자 맡은 자리에서 임무를 성공시켰기에 열악한 상황에서 유적을 탈취할 수 있었다.
지금 보니 적법한 존재가 나타날 때까지 유적이 무사했을 확률이 매우 높지만 말이다. 근거라면 간단하다. 울토르라는 시구르스도 분해되었고 자신도 분해되었다.
그러나 돌아온 것은 자신뿐이었다. 그걸 어찌 아냐고? 후에라도 나타날 수 있는 것 아니냐고? 아니 확실했다. 유물은 오직 한 존재에게만 적용된다. 그리고 그 유물을 얻은 자는 바로 이한 자신이었다.
『사령관님. 서둘러 워프해야 합니다. 대규모 함선의 워프 흐름이 파악됩니다. 예상컨대 시구르스의 함대로 파악됩니다.』
“워프해! 단 포스 행성이 아니라 테라로 향한다.”
퍼스트, 세컨드, 써드, 포스 행성에 자리 잡은 아군의 상황이 여유로운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극심한 위기에 처한 건 결코 아니었다.
포스 행성이 조금 위태위태하긴 하나 임무를 수행하는 것에는 큰 지장이 없을 것이다. 그러니 이 네 곳은 각 사령관의 재량에 맡기는 것이 더 효율적이다.
테라로 향하는 일? 테라의 주요 인사들의 실종사건을 조사하는 것도 조사하는 것이지만 시에라가 보고 싶어졌다. 그게 가장 큰 이유였다.
『알겠습니다. 좌표 재설정합니다. 즉시 워프합니다. 5.4.3.2.1. 워프!』
아이언은 빛줄기처럼 늘어지다가 모습을 감췄고 아이언이 사라지기 무섭게 워의 예상대로 시구르스의 함대가 모습을 드러냈다.
슈슈슝! 슈슝!
기함으로 보이는 함선을 타고 있던 시구르스가 사나운 기세를 발하며 입을 열었다.
“이곳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파악해라! 울토르 그놈은 결코 곱게 죽이지 않을 것이다.”
유적지를 발견하고도 자신에게 숨기다니. 가만두지 않으리라. 라카르는 강력한 살의를 느끼며 주먹을 움켜줬다.
꾸우우욱!
그 모습을 바라본 시구르스는 긴장한 표정으로 급히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라카르 님.”
*
창 너머로 아름다운 빛을 토해내는 행성이 모습을 드러냈다.
『테라입니다.』
이한은 머리가 징 하고 울리는 느낌을 받았다. 모호한 기억이지만 시에라는 이곳 테라를 구하기 위해, 그리고 자신을 대신해 죽었다. 자신이 느낀 엄청난 상실감과 별개로 그녀의 희생은 당시 절대적으로 필요한 행동이었다.
정확히 어떤 일이 발생했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12종족과 전투에서 승리하고 10년 후의 자신이 되었을 때는 모든 것이 명확했는데 기이하게도 지금은 모든 것이 흐리멍텅했다.
점점 더 자신의 추측이 맞아떨어지고 있었다. 씁쓸한 사실이었다.
이한은 그런 모든 감정을 털어버리고 워에게 말했다.
“내가 복귀한 사실은 테라에 알리지 마라. 비공식적으로 움직이겠다.”
『테라 내부자들의 소행일 확률이 높다고 보시는 겁니까?』
“단순히 내부자들의 소행에 불과할 리는 없겠지. 그랬다면 어떤 증거라도 남았을 것이다. 그러니 외계 종족과 결탁한 이들이 일으킨 일이라고 보는 게 더 정확하겠지.”
『12종족 가운데 이런 일을 벌일 수 있는 종족을 선별해봤습니다.』
“먼저는 라페이드족이겠군.”
『그렇습니다. 저들의 변신술은 12종족도 판별하기 어려울 정도로 정교합니다. 사령관님께 다가오기 전에 이미 훨씬 많은 숫자의 라페이드족이 암약하고 있었다면 사령관님과 테라의 병력이 사라진 상황을 기회로 삼아 루퍼스 사령관, 에메스토 공작을 사라지게 만들 수 있습니다.』
“나머지는?”
『여러 종족이 있지만, 그중에서 나메시르족에 대해 집중했습니다.』
“이유는?”
『에너지 형태를 기본으로 하는 특수한 종족인 데다가 나메시르족은 꿈과 기운을 흡수하며 살아가는 종족이라고 들었습니다. 맞습니까?』
“맞다. 대신 흡수당한 자는 극심한 후유증에 시달리게 되지. 심한 경우엔 죽음에 이른다.”
이한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하자 워가 다시 보고했다.
『테라에는 그야말로 수많은 생명체가 기거하고 있습니다. 사령관님의 말씀대로 나메시르족이 그런 성향을 가지고 있다면 초자원이나 엘카힘의 유물보다도 테라에 대한 탐욕을 보일 것이라 판단했습니다.』
“라페이드와 나메시르라.”
『두 종족 모두 함께 나선 것일지도 모릅니다. 라페이드가 원하는 것이 테라의 병력이라면 나메시르는 인류 그 자체입니다. 두 종족이 손을 잡고 테라를 침공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이한은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워에게 질문을 던졌다.
“시에라는?”
『테라네스 초능력자들과 함께 관련자들을 색출하고 있지만 별다른 성과를 얻지 못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역시나 자신이 기억하고 있는 그대로였다. 기억의 파편에 불과하기에 정확하지도 않고 단편적인 정보가 대다수이긴 하나 어쨌든 시에라는 이번 임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하지 못했다. 그리고 나는 포스 행성에서 대다수 초자원 채취를 성공시켰다. 간단히 시에라와 함께하지 않았다는 소리다.
단순히 시에라를 보고 싶어서? 그것도 맞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으로는 미래를 뒤틀려면 자신이 기억하고 있는 큰 줄기를 뒤틀어야만 한다.
주요 인사의 실종, 시에라의 임무 실패, 그리고 후에 다가올 테라의 극심한 위기는 서로 깊은 연관을 맺고 있다. 이걸 그대로 이어지게 내버려 둔다면 훗날 시에라의 죽음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었다. 절대 그렇게는 안 된다.
안타깝게도 뭐가 어떻게 어떤 식으로 연관을 맺고 있는지까지는 떠오르지 않기에 이건 단순히 어떤 직감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상관없다. 그건 지금부터 알아내면 될 일이니까.
“루퍼스 사령관이 사라진 곳이 어디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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