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mmander of the Space Gamer RAW novel - Chapter 185
182. 다르포스 (2) >
182.
전쟁은 비극이다.
그 어떤 숭고한 이상을 목적으로 한다고 해도 전쟁이 비극이라는 사실에는 반론을 제기할 수 없다.
‘필연적인 비극···.’
온갖 첨단 문명이 잿더미로, 아니 미약한 티끌조차 남기지 못하고 사라지는데 걸린 순간은 그야말로 한순간에 불과했다. 그 모든 것이 거짓말처럼 순식간에 사라졌다.
눈을 뜨기 어려울 정도로 어려운 빛과 폭발조차 뒤이어 발생한 블랙홀에 모조리 삼켜졌다. 검은 포식자는 제 아가리에 들어온 모든 먹잇감을 게걸스럽게 삼켜버렸다.
이한은 먹먹한 심정에 휩싸여 다르포스의 모행성, 로포 행성이 있던 자리를 바라봤다.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에스타른족의 기록에 의하면 다르포스족은 수없이 많은 종족을 멸족시키고 그들의 행성을 파괴한 족속이다. 멸족시키지 않으면 멸족시키려고들 족속들이다. 그게 복수든 유희든 어떤 이유든지 타종족을 말살시키는 것을 즐거워하는 족속이니까.
그래서 에스타른족의 대장로, 헤르삭에게 질문을 던진 것이다. 멸망의 주사위를 던지기 전에, 모든 것이 결정되기 전에 다른 방법을 찾기 위해서.
하지만 그런 방법 따윈 없었다.
평화를 지키기 위한 가장 확실한 방법은 역설적으로 전쟁 준비를 철저히 하는 것이라고 했던가?
이유는 간단하다. 평화는 혼자서 지켜낼 수 없지만, 전쟁은 어느 한쪽이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일으킬 수 있으니까.
하하호호 우리 서로 평화롭게 지내자라고 한다면 무슨 문제가 있겠냐마는 상대편에서 나를 죽이고자 칼을 들고 달려드는데 나는 평화주의자라고 백날 외쳐봐야 그게 대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철저한 전쟁 준비를 통한 전쟁억지력? 별 것 아니다. 나를 건드리면 너도 뒈진다. 네가 나와 내 가족을 죽이려 한다면 네 숨통을 끊어버릴 것이다.
특별한 경우가 아닌 이상 그것이 이 뒤틀린 세계에 군대가 존재하는 이유다.
그래서 매정하게 그 거친 숨통을 끊었다.
이한은 눈을 질끈 감았다.
‘···. 비극이다.’
작전대로 다르포스 행성을 초토화하는 것에는 성공했다. 초토화? 아니 행성의 티끌조차 블랙홀 저편으로 갈아 넣었다. 따라서 임무는 대성공이었다.
그러나 누구도 그 사실을 즐거워할 수는 없었다. 최고 명령권자인 이한은 더더욱 그랬다.
침투시킨 모든 병사들이 대피하지 못한 건 아니다.
대피하지 못한 병사들도 상당히 많았다. 미처 피신하지 못한 병사들은 자신의 명령을 따르다가 다르포스와 함께 영원 저편으로 사라졌다.
정말 필요한 일이었던가?
이한은 다시금 자신의 결정을 되짚어봤다. 그런다고 달라질 것은 아무것도 없지만, 아니 자기합리화하기 위한 변명 정도는 만들어낼 수 있겠지. 뭐가 되었든 간에 이한은 자신의 결정을 되돌아봤다.
테라처럼 다르포스족은 그 숫자가 많지도 않고 동떨어져 살지도 않기 때문에 대다수 다르포스는 이곳 로포 행성에 주거지를 마련하고 살아갔다. 이곳을 파괴한다면 다르포스의 90%에 달하는 숫자가 소멸당한다.
일종의 본보기에 가까웠다. 다르포스는 데모스, 스타로쉬와 다르게 다른 환경에서도 적응하기 쉬운데다가 다른 종족을 손쉽게 노예화할 수 있는 능력은 테라에 끔찍한 사태를 불러올 수 있었다.
인구수가 많다면 많은 대로 다르포스의 병사가 되어 활약하게 될 테니까.
아닌 게 아니라 에스타른족의 모행성을 파괴한 것은 다르포스족이 아니었다. 에스타른족 스스로 에스타른족을 구원하기 위해 자신들의 행성을 파괴했었다.
다르포스는 고칠 수 없는 역병과도 같다. 테라에 다르포스족이 뿌리를 내리고 테라인들 사이에 숨어버리면 그때는 이한 역시 행성파괴라는 극단의 조치를 내려야 할지도 몰랐다.
다르포스 노예들의 비쩍 마른 몰골? 노예들이 생체력을 흡수하게 되면 다시 생전의 모습을 회복한다.
분간하기도 어려워지고 다르포스는 테라인들로 이뤄진 군대를 지휘하여 테라인까리 상잔하게 만들 것이다. 에스타른족이 그러했듯 저들이 멸족시킨 종족들이 그러했듯 말이다.
그로 인한 피해는 대체 얼마나 될까? 백만? 1억? 10억? 100억 명? 짐작하기 어려웠다.
제때 대처한다면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겠지만, 적대행위를 서슴치 않고 행할 족속을 대체 무슨 이유로 기다려준단 말인가? 나는 평화주의자니까 먼저 때릴 때까지 기다린다고? 주먹질 한 방에 최소 수십만의 생명이 사라진다. 그래도 맞을 때까지 기다려야 하나?
그러므로 다르포스 행성을 폭파하기로 한 결정 자체는 후회하지 않는다.
하지만 자신의 명령을 따르다 사망한 병사들은? 이번 임무에서 사망한 병사들만 30만은 족히 넘을 것이다. 그 무게가 이한의 어깨를 짓눌렀다.
이한은 말없이 길게 숨을 뱉었다.
전쟁은 그 어떤 미사여구를 붙여도 처참하고 추악한 본질을 감출 수 없고 심지어 그 전쟁은 아직 끝나지도 않았다. 이제 시작일 뿐이다.
‘너희가 시작한 전쟁이나 종지부는 너희가 찍을 수 없을 것이다.’
로포 행성이 있던 자리를 바라본 그 짧은 순간 동안 이한은 자신의 마음을 다잡았다.
적어도 병사는 싸우기 위해 존재하는 자들이다. 싸우다 죽기로 결의한 자들이다. 저들의 결의를 퇴색시키는 것은 저들의 죽음이 아니라 저들이 목숨까지 바쳐 지키려 하던 것을 지키지 못하는 일이다.
그때 워의 보고가 다시 이어졌다.
『사령관님! 다르포스족의 함대입니다. 타고르스함을 향해 주포 공격을 실시합니다. 포격에 대비하십시오.』
콰아아아앙!
콰아앙!
코스모스 포격을 실시한 직후라 주포를 완벽히 막을 수 없던 타고르스함 이곳저곳이 사정없이 파괴되었다. 포격으로 이리저리 흔들리는 와중에도 홀로그램에 뜬 다르포스의 함대를 발견한 이한은 급히 함내통신을 실시했다.
“강습선이다. 타고르스의 전 병력은 타고르스함으로 침투하는 다르포스족을 제거하라!”
『사령관님! 다르포스족이 타고르스함의 강력함을 인지하고 함선을 탈취하려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한은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의 무구를 챙겼다.
“이 시점에서 타고르스함을 빼앗겨서는 안 된다. 빼앗길 자신도 없지만.”
최선을 다해 적을 섬멸하는 것. 총사령관으로 존재하는 한 그것이 지금도 앞으로도 내가 해야 할 일이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한은 차가운 눈빛을 발하며 워에게 소리쳤다. 그의 결의는 강철보다도 단단해져 있었다. 거듭된 죽음의 무게는 이한을 어느새 승리를 위해서라면 제 목숨도 아랑곳하지 않는 투사로 변모시켰다.
“주요 강습 지점 즉시 전송해!”
『전송합니다.』
이한은 가장 치열한 전장이 될 것이라 예상되는 지점을 향해 바람처럼 내달렸다.
*
타고르스함으로 복귀한 병사들, 어쩌면 복귀하지 못한 병사들도 이한을 탓하지 않는다.
전장에서 죽음은 언제 어떻게 찾아올지 모르니까. 조금 전까지 웃고 떠들던 전우의 머리가 눈앞에서 터져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곳이니까. 그 순간에도 슬픔에 힘겨워하기보다 분노와 전의를 불태우며 적과 싸워야 하는 지랄 맞은 곳이니까.
플라즈마탄에 머리통이 사라진 전우를 힐끗 바라본 스페이스 마린은 인상을 슬쩍 찌푸린 뒤 눈앞의 괴물을 향해 역시 플라즈마탄을 날렸다.
다르포스라고 플라즈마와 같은 무기를 사용하지 않는 게 아니었다. 종족 특성과 병행해서 사용하면 전투를 훨씬 더 효율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데 사용하지 않을 까닭이 없지 않은가?
다르포스를 처음 본 마린들은 악귀처럼 생긴 놈이라고 생각했다. 하는 짓도 악귀나 다름없었다. 다르포스 손에 잡힌 병사들은 끔찍한 비명을 지르며 저들의 노예가 되었다.
예전에 비해 확연히 느려지고 약해진 모습이었지만(생체력을 흡수하면 달라지고 많은 생체력을 흡수한 경우엔 매우 강력해지기도 하지만) 총을 들고 사격하는 것에는 많은 힘을 필요하지 않기에 저들은 금세 다르포스의 군대가 되어 이한의 병력을 압박해왔다.
그 모습에 빌리와 함께 간신히 함선으로 복귀한 조쉬가 분노한 표정으로 소리쳤다.
“이 괴물 새끼들! 여기 잔뜩 있었구나!”
조쉬가 무작정 앞으로 달려가려고 하자 빌리가 그를 만류했다.
“조쉬! 물러서!”
“하지만!”
“네놈까지 놈들의 노예가 되면 정말 답이 없어진다. 시간은 아군의 편이다. 전선을 유지하고 버티면 나머지는 총사령관께서 처리하실 것이다.”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총사령관님이 무슨 초능력자도 아니고. 초능력자라고 해도 함선 곳곳에 침투한 놈들을 무슨 수로 처리합니까?”
“시끄럽고! 네 자리나 지켜! 네 역할은 전우를 지키는 거다. 무슨 말인지 알겠나?”
“제길! 알겠습니다. 우선 명령에 따르도록 하겠습니다.”
빌리는 피식 웃음을 터트린 뒤 고함을 질렀다.
“에너지 웨폰으로 놈들을 숨통을 끊어 놓는다! 단 너무 무리하지 말도록! 네놈들을 내 손으로 베어 버리고 싶지는 않으니까!”
“알겠습니다.”
그런 빌리와 조쉬, 워리어들 앞에 상당히 많은 다르포스가 몰려오고 있었다. 저들은 다르포스 특유의 능력을 사용해서 생체력을 빼앗으려 했고 플라즈마탄을 쏘아내며 병사들을 죽이려고 했지만, 이들은 산전수전 모두 겪은 배테랑들이라 결코 호락호락 당하지 않았다.
실제로 격돌이 일어나자 죽어 나가는 것은 워리어가 아니라 다르포스족이었다.
*
이한은 자신을 얽매어오는 음습한 기운을 느꼈다. 다르포스의 흡수능력에 의한 현상이리라.
계속된 놈들의 공격에 실드가 소멸된 지 오래였다.
그러나 어찌된 영문인지 다르포스의 공격은 이한의 생명력을 조금도 빼앗아 갈 수 없었다. 무슨 강력한 이능으로 생명력 흡수를 막은 것도 아니었다. 이한은 엘카힘의 유물을 얻으면서 변화된 현상때문이겠거니 생각할 뿐 깊게 생각하지는 않았다.
놈들의 공격은 이한에게 아예 통하지 않았다. 플라즈마탄과 같은 무기는 여전히 이한에게 위협적이었지만 모든 것을 거의 본능적으로 파악하고 회피할 수 있는 이한이 플라즈마에 맞는 경우는 그가 직접 얻어맞고자 하지 않는 이상 불가능에 가까웠다.
이한은 사이오닉 소드를 휘둘러 함선에 침투한 다르포스를 거침없이 베어 넘겼다. 그의 모습이 어찌나 신속했는지 이한과 함께 작전을 수행하던 병사들은 이한의 모습을 제대로 파악하지도 못할 정도였다.
뭔가 눈앞에서 번쩍 번쩍하면 다르포스가 기괴한 비명을 지르며 반으로 갈라지는 모습이 전부였을 뿐이다.
이한은 무심한 표정으로 함선에 침투한 다르포스들을 제거하며 워에게 말했다.
“코스모스 주포 충전은 얼마나 남았지?”
『곧 충전이 완료됩니다.』
“놈들의 주력함은 이미 파악했겠지?”
『물론입니다.』
“충전이 되는 대로 놈들의 함선을 파괴하도록!”
『하지만 사령관님! 그리될 경우 잠시지만 타고르스함은 완전히 무방비 상태가 됩니다. 적 함대는 그 짧은 순간 동안 타고르스함을 격추시킬 수 있습니다.』
이한은 다시 다르포스를 베어낸 뒤 워에게 말했다.
“놈들이 타고르스함을 격추시키려고 한다면 그렇겠지. 하지만 놈들은 타고르스함을 탈취하려고 하고 있다. 그게 아니라면 놈들의 능력이 아군보다 백병전에 유리하다고 해도 이렇게 강습할 이유가 없었겠지. 그러니 결국 격추되는 건 타고르스함이 아니라 다르포스의 함대가 될 것이다.”
확실히 조금 전 상황은 함대의 화력을 타고르스함에게 집중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었다.
『알겠습니다. 하지만 안전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사령관께서 허락하신다면 코스모스 주포를 사용하되 최소한의 동력을 남겨두어 유사시 미약한 배리어를 펼치도록 하겠습니다. 코스모스 주포의 위력은 놈들의 배리어를 소멸시키고 함선을 파괴하기에 충분하기에 행성을 파괴할 때처럼 완충하지 않아도 충분합니다.』
“그럼 그렇게 하도록!”
다르포스는 이한 등이 반격하기 전에 타고르스함을 장악할 생각이었겠지만 그렇게 되지 않을 것이다. 다르포스족에게 가장 적대적인 환경이 있다면 타고르스함 내부를 빼놓을 수 없다.
에스타른족의 염원을 생각하면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타고르스라는 이름 자체가 다르포스의 멸망이라는 뜻을 담고 있었으니까. 그러니 다르포스 입장에서는 차라리 함선을 파괴했어야 했다.
다르포스는 강습함 등을 내보내고 저들을 엄호하느라 타고르스함 주변을 포위하고 있었고 이는 역으로 이한 등에게 기회가 되었다. 간단히 코스모스 주포 공격이 이뤄지면 다르포스족은 미처 대응하지도 못하고 모조리 파괴되고 말리라.
상황이 이러한데 심지어 이번 작전에서 쐐기를 박을 군대는 아직 모습을 드러내지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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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고르스함 주위를 둘러싼 다르포스 함대 저편으로 수많은 함선들이 광속이동 해왔다.
슈우웅! 슈우우우웅!
함선들은 전열을 갖추기 무섭게 다르포스의 함대를 향해 강력한 포격을 가하기 시작했다.
콰아아앙! 콰아앙!
뿐만 아니라 다르포스 함선이 워프하지 못하도록 주변에 에너지장을 두르기까지 했다. 이들은 바로 테라의 동맹인 두르둔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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