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mmander of the Space Gamer RAW novel - Chapter 19
19. 그거 거짓말이다 (3)
19.
신의가 사라진 시대.
편법이 왕도가 된 시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제 이득을 취하는 건 지혜가 되고 희생을 감내하는 건 우둔함이 되어버린 시대.
사실 언제는 아니 그랬던가? 그러니 시대의 흐름을 법인들 막을 수 있으랴? 폭력인들 막을 수 있으랴? 끊어진 레일 위를 질주하는 기관차처럼 그 끝에 다다라서야 미친 질주가 끝날 뿐.
그러나 레일 위에서 내동댕이쳐진 기관차는 그 순간에도 끝없이 바퀴를 굴린다. 마치 나는 끝나지 않았다는 듯이.
“으흠. 아무리 생각해도 별로 현명한 판단 같지 않은데······.”
스틸아머를 걸친 사내가 탐탁지않다는 표정으로 우주 저편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미 명령이 떨어졌다. 아니면 항명하고 뒈지던가?”
“젠장. 이건 미친 짓이다.”
“나도 알아. 새끼야. 그리고 이미 말했다. 명령이 떨어졌다고… 우리 같은 잔챙이들이야 시키는 대로 하고 돈이나 받고 사라지면 될 일이야.”
틀린 말이 아니다. 어떻게 피할 수 있는 일도 아니고 명령을 어겼을 시에는 처절한 죽음만이 뒤따를 뿐이다. 변명은 통하지 않는다. 말 그대로 처절한 죽음뿐이다.
죽음과 가까운 삶을 살았을수록 결코 함부로 죽음을 입에 담지 않는다. 그런 자들이 입 밖으로 내뱉는 죽음은 반드시 그대로 된다.
거칠게 생긴 사내는 인상을 팍 구기더니 크게 소리쳤다.
“밥 먹을 시간이다. 새끼들아!”
“니미! 밥 먹을 시간은!”
“알았수다!”
“뭘 차려놓고 밥을 먹으라고 해야지. 이건 뭐!”
“시끄러! 이 새끼들아! 준비해!”
“예이. 예이.”
껄렁하게 대답하는 말과 다르게 뿜어져 나오는 기세는 칼처럼 날카로웠다.
*
“이병! 정신 안 차리나?”
기차 화통을 삶아 먹은 것 같은 우렁찬 목소리가 귀 바로 옆에서 울려 퍼지니 골이 울릴 지경이다.
슈우우웅! 콰아앙!
주변에서는 커다란 폭발음이 마치 배경음악처럼 쉴 새 없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이게 가상현실이라고?’
어딜 봐서 이게 가상현실인가? 현실이지. 재차 확인해도 놀라울 지경이었다.
“한 이병! 내 말이 지금 안 들리나?”
옆에서 다시 버럭 소리지르는 맥 카터 중사의 고함에 이한은 저도 모르게 대답했다.
“이병 한! 아닙니다!”
이한은 시에라의 당부가 떠올랐다.
고도로 구현된 가상현실은 그 자체로 현실과 같다고. 치명상을 입거나 죽음에 이르렀을 시에는 그만한 부작용을 감내해야만 할 것이라고. 그러니 결코 우습게 보지 말라는 당부 말이다.
성격이 지랄 맞아 보이는 맥 카터 중사는 전장의 인도자이자 보호자 역할을 감당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이 가상현실은 병사의 훈련을 목적으로 하고 있기에 항명은 용납되지 않고 그런 행동을 한다면 적절한 응징이 뒤따른다.
이한이 가상현실의 상관에게 관등성명을 외치면서 눈치를 보는 이유였다. 아울러 왜 하필 이병이냐면 말 그대로 기초훈련 프로그램이라서.
“정신 똑바로 차려라!”
이한에게 눈길을 거둔 맥 카터는 다른 병사들을 바라보며 다시 소리쳤다.
“적 기갑부대의 포격에 휘말려 소대장님의 생사가 불분명한 상황이니 내가 다시 목표를 하달한다.”
띠딕!
그와 동시에 이곳의 지형도가 바이저 위에 떴다.
“현재 아군의 위치는 이 지점이다. 엠파이어 놈들의 기갑부대는 동편의 이 지점에 위치하고 있으니 아군은 이곳과 이곳의 거점을 사수하여 놈들의 진격을 최대한 저지한다. 시간이 없는 관계로 각 분대장의 인도에 따라 신속하게 이동한다. 실시!”
“실시!”
바이저에 뜬 지형도에는 맥 카터가 가리킨 지점이 알아보기 쉽게 각각 따로 표시되어 있었다.
“한! 너도 날 따라온다.”
“알겠습니다.”
이한은 라이플을 움켜쥐며 끝없이 울려 퍼지는 포성에 몸을 슬쩍 떨었다.
포탄이 몸 위로 떨어지면 뼈도 못추릴 것이다. 시에라의 안내로 가상현실의 고통이 가볍게 여길 수준이 아니란 것을 인지하고 있었고 죽을 때의 고통은 더욱 극악하다고 들었다.
이건 유희가 목적이 아니라 실제 전투가 목적이기에 죽음을 경솔하게 대하지 않는 마음과 강철갑옷을 입는 병사답게 강철과 같은 정신을 배양하기 위해서였다.
따라서 훈련병에 대한 배려는 맥 카터의 인도가 전부다. 포탄의 궤적까지도 랜덤이기에 언제든 머리통 위에서 터질 수 있다. 그러니 여러 번 가상현실을 겪은 병사나 실제 전장을 겪은 병사라고 해도 긴장하지 않을 수 없다.
이한이 그렇게 맥 카터의 뒤를 따라 빠르고 이동하고 있을 때 워의 음성이 울려 퍼졌다.
『한 사령관님. 어서 피하십시오.』
“워? 네가 어떻게”
초인공지능은 컨트롤 센터가 건설되어야만 그 기능을 수행할 수 있다. 그런데 어떻게 워가 자신에게 말을 건넨단 말인가? 이한은 의구심에 휩싸일 수밖에 없었다.
『일단 그 지점을 서둘러 벗어나야 합니다.』
짧은 시간이지만 워의 말을 들어서 손해 본 적이 있던가? 이한은 지체하지 않고 워의 말을 따랐다.
“한! 뭐 하는 거냐?”
부스터까지 사용해서 멀어지는 이한의 뒤로 맥 카터의 성난 음성이 울려 퍼졌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시에라의 조언을 정리하면 맥 카터는 치트키가 아니다. 그건 맥 카터뿐만이 아니었다. 목표와 임무는 있지만 정해진 스토리는 같은 건 없었다. 인공지능이 계속해서 상황을 변경하기 때문이다.
콰아아앙!
그 순간 이한은 뒤편에서 울려 퍼진 강력한 폭발로 인해 달려가던 방향 그대로 날아가 버렸다.
쿠당탕탕!
“크헉!”
이한은 격통을 느꼈지만, 금세 다시 몸을 일으켜 세웠다. 다행히 큰 이상은 없었다.
“허······.”
맥 카터와 분대원들이 있던 장소를 급히 바라본 이한은 헛웃음을 터트리지 않을 수 없었다. 움푹 팬 그곳엔 그을음만이 자욱했다. 갈가리 찢어진 시체 조각은 덤이었고.
“여긴 어째 현실이나 가상이나 죄다 하드코어냐? 썩을.”
치열한 전장이라지만 자신은 아직 총 한 번 쏘지 못한 상황이다. 그런데 게임오버라니······. 워가 아니었다면 지독한 고통을 뼈와 살에 새기며 헉헉거리며 눈을 떴을 것이다.
“그건 그렇고······. 어떻게 된 거지? 넌 아예 분리되어있는 거 아니었나?”
초인공지능 장치가 센터에서 분리되었는데 무슨 수로 작동한단 말인가?
『인공지능과 초인공지능은 다릅니다.』
“뭐가 어떻게 다른데?”
『초인공지능은 입자체로 구성되어 있고 그 입자체는 마스터를 근원으로 두고 있습니다.』
“음?”
『사령관께서 언급한 장치는 사령관 사망 시 초인공지능을 얼마간 유지하는 백업 장치이자 컨트롤 센터와 초인공지능체를 연결하는 도구에 불과할 뿐 초인공지능의 본체가 아닙니다.』
“사령관이 사망하고 일정 기간 승계가 이뤄지지 않으면 소멸하는 연유가 그럼?”
『프로젤과 세라메틱에 대해서도 규정된 바가 없기에 역시 정확하게 밝혀진 바는 없습니다. 다만 대체로 그렇게 파악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센터가 없으면 초인공지능은 기능하지 못해. 내가 잘못 알고 있는 건가?”
『현실이든 가상현실이든 센터가 없으면 초인공지능이 기능하지 못하는 게 맞습니다. 이건 한 이드라실 사령관님의 고유특성으로 판단됩니다.』
“내 고유특성?”
『사령관님의 고유특성 ‘레벨업’이 더 이뤄지면 가상현실이 아니라 현실에서도 센터의 도움 없이 기능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다만 이 경우 상당히 위험할 수도 있습니다.』
“뭐?”
이한이 표정을 굳히며 반문하자 워의 대답이 바로 이어졌다.
『불확실한 추측에 불과한 일이니 차후에 그런 상황이 발생하면 설명하겠습니다. 다만 현재 사령관께서 아셔야 할 사항이 있습니다.』
“그게 뭔데?”
『현실에서는 프로젤과 세라메틱을 이용한 행동이 레벨업 현상을 일으켰다면 가상현실에서는 어떤 목표 달성이 유의미한 변화를 일으킬 것으로 판단됩니다. 단 전자는 기지 운용에 관련된 사항이, 후자는 사령관님 정신과 신체에 강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판단됩니다.』
“음?”
『아울러 사령관님 고유특성으로 인한 부분이니 어떤 부작용이 있는지 현재로서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니 안전에 각별히 주의하십시오. 최악의 경우 가상현실의 죽음이 현실로도 이어질 수 있습니다.』
이한은 기겁한 표정으로 소리쳤다.
“뭐라고? 그럼 당장 그만둬야겠다.”
『임무 포기에 대한 패널티도 주어지는 것으로 알고 있기에 역시 비추천합니다.』
“그게 죽는 것보단 나을 거 아냐?”
『사령관께서는 앞으로도 많은 전투를 수행하셔야 합니다. 결정은 사령관님의 몫이지만 발전하지 못하면 도태당합니다. 그 중간은 없습니다.』
“허.”
하다못해 이젠 초인공지능에게도 훈계를 듣는구나. 이한은 표정을 구기며 침묵을 지키다가 입을 열었다.
“죽을 수도 있는 거지 죽는 건 아니잖아?”
『그렇습니다. 하지만 일련의 상황을 고려하면 사망할 확률이 더 높습니다.』
이 새끼. 빈말이라곤 안 하는구나.
“그래서 목표가 뭐였지?”
『거점 점령 및 엠파이어군의 진격 저지입니다.』
“나 혼자 뭘 어쩌라고?”
『맥 카터 중사와 분대원이 사망하긴 했지만, 현재 사령관님 혼자 엠파이어군과 싸우는 건 아닙니다.』
후우. 그래 한 번 해보자. 그래도 그 크락투가 득실거리던 그 미친 행성보다야 낫지 않겠어?
워의 조언이 맞다. 미래에 만날 적들을 생각하면, 나랑은 상관없는 일이면 좋겠는데······. 거의 무조건 만날 적들을 생각하면 위험을 무릅쓰고서라도 어떻게든 발전해야 한다. 경험과 실력을 조금이라도 더 쌓아야 한다.
가상현실이 위험하다고 해도 현실 전투에 비할 수 있으랴? 이것도 견디지 못하면 앞날은 그냥 없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