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mmander of the Space Gamer RAW novel - Chapter 1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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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 필사즉생.
이한 역시 수십 자루의 초진동검을 준비하고 여러 정의 플라즈마건을 준비했다.
“사령관님 혼자 가면 될 것을 꼭 저를 데리고 가야겠습니까?”
빌리였다. 덥수룩한 수염을 가진 조쉬가 말없이 장비를 점검하다가 피식 웃음을 터트리며 빌리에게 말했다.
조쉬는 칼란두를 황제가 자행한 생체실험의 거의 유일한 생존자였기에 유전자 조작으로 인한 괴물 같은 능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워리어가 아니라면 상대할 수 없는 다르포스의 능력을 맨몸으로 맞닥뜨리고도 역으로 다르포스를 죽인 존재였고 당시 조쉬의 유전자를 일정 부분 해독한 약물이 다르포스족을 상대하는 데 큰 도움을 줬었다. 조쉬는 빌리에게 소속되어 그 후로 계속 함께 임무를 수행하고 있었다.
“그래서 안 갈 겁니까?”
“무슨 헛소리냐? 가야지.”
“그런데 왜 그렇게 말하십니까?”
“억울해서 그런다. 억울해서! 지위가 올라가든 얼마나 더 강해지든 매번 턱 끝까지 칼이 치미는 상황이 억울해서.”
이한은 빌리에게 다가가 그의 가슴을 주먹을 툭 치며 말했다.
“나도 억울하다. 그건 너도 잘 알잖아.”
빌리는 이한이 이 세계에 도착한 후부터 지금까지 생사고락을 같이한 두 명의 전우 중 한 명이었다. 당연히 그중 한 명은 시에라였다.
말은 저렇게 해도 누구보다 자신의 심정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이 빌리다. 일부러 툴툴대는 거다. 자신의 부담감을 조금이라도 덜어주기 위해.
빌리와 눈을 마주한 이한은 진지한 표정으로 그의 가슴을 다시 주먹으로 쳤다.
“하지만 이번에도 우리는 살아남을 거다.”
빌리는 이한의 눈을 마주하며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빌리에게서 몸을 돌린 이한은 자신을 둘러싼 300명의 워리어를 바라보며 다시 입을 열었다.
“우린 죽으려고 놈들의 소굴에 기어들어가는 게 아니다. 놈들의 척추를 꺾고 놈들의 심장을 으깨 그 피로 죽은 전우들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가는 거다. 그러니 죽지 마라. 반드시 살아남아라. 알겠나?”
척!
“예!”
“알겠습니다.”
빌리, 조쉬를 비롯한 모든 워리어가 오른 주먹으로 가슴을 치며 우렁차게 대답했다. 이한 역시 그들을 향해 절도있게 군례를 취한 다음 마음을 가다듬었다.
‘주사위는 던져졌다. 각자 맡은 임무를 충실히 수행하기를 신뢰하는 수밖에···.’
이한은 냉정한 표정으로 워에게 말했다.
“통신 연결해.”
『연결합니다.』
지상군이 타란트라족과 전투를 준비하는 사이 엔두카함에 침투한 적들은 대다수 정리되었다. 적들의 저항이 거셌기에 예상보다 큰 피해가 발생했지만 어쩔 수 없는 것까지 책임지려는 것은 순수한 것이 아니라 멍청하고 오만한 짓거리다.
세상 어떤 사람도 모든 것을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냉정하게 구분하고 자신의 할 일을 어떤 상황에서도 묵묵히 해내는 것.
내일 해가 뜰지, 폭풍우가 몰아칠지도 정확히 알지 못하는 것이 인생이다. 설혹 폭풍우에 휘말려 영원히 침몰하더라도 그게 무슨 상관이랴? 두려움에 떨며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것보다야 백배 천배 나은 것을···.
“작전을 시행하기에 앞서 한 가지만 말하겠다. 외나무다리를 걸을 땐 한 걸음만 잘못 내디뎌도 그다음은 없다. 그러니 우리에게 실패는 없다. 임무를 성공시키지 못한다면 죽어서라도 아군의 길이 되어라.”
그만큼 위험한 임무였다. 이 임무 가운데 대체 얼마나 많은 생명이 사라질지 가늠하기도 어렵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드시 승전해야만 한다. 승전만이 생존할 수 있는 유일한 방안이었기에 배수의 진을 치고 죽을 각오로 전투에 임할 수밖에 없다.
임무에 나서는 병사들 역시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이한의 발언은 결국 모두의 심정을 대변한 것에 지나지 않았다.
“작전을 시행한다!”
*
무저갱으로 들어가는 입구처럼 보이는 곳을 향해 무수히 많은 병력이 진격하기 시작했다. 굴을 뚫은 장본인이 타란트라족이니 이한의 병사들에 비해 유리한 것은 더 말할 것도 없었다.
『사령관님. 아군의 병력이 각 목표점을 향해 빠르게 침투하고 있습니다. 타란트라족의 저항이 거세긴 하나 예상만큼 강력하지는 않습니다.』
“놈들도 한 방을 노리는 것이겠지. 그러나 그 한 방은 사용하지 못할 거다. 내가 놈의 위치를 꿰고 있는 이상.”
이한은 서슬 퍼런 눈빛으로 전투 준비를 완료한 삼백여 명의 워리어에게 말했다.
“내 곁으로 모여라.”
이상한 명령이었지만 워리어들은 조금의 머뭇거림도 없이 이한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삼백여 명의 병사들이 이한을 중심으로 두고 빽빽하게 모인 상황에서 이한은 두 손을 하늘로 들고 눈을 감았다.
그러자 이한의 두 팔이 흐릿해지더니 거대한 기운이 삼백 명의 병사를 휘감기 시작했다. 묘한 기운에 워리어들은 저마다 움찔거렸지만 저항하지 않고 긴장한 표정으로 전투태세를 무너뜨리지 않았다.
이한은 원자핵까지 주시할 수 있는 세계 속에서 모베르단, 아니 나메르단이 보여준 원리 그대로 규정할 수 없는 기운을 세밀하게 움직였다.
그러자 이한의 팔은 물론 삼백여 명의 워리어들 역시 흐릿해지기 시작했다. 그 중심에 있던 이한은 말할 것도 없었다. 이한이 흐릿해진 손을 움켜쥐는 순간 이들 모두가 공간 저편으로 사라졌다.
이한 등을 주시하고 있던 스페이스 마린은 놀란 표정으로 저들이 사라진 자리를 주시할 뿐이었다.
*
호랑이를 잡으려거든 호랑이굴에 들어가라! 어리석은 행동이다. 굳이 호랑이굴에 들어갈 필요가 있을까 싶다.
하지만 요점은 호랑이굴에 들어갈 각오도 없이 호랑이를 잡을 생각도 하지 말라는 뜻이리라.
휘이이잉!
이한은 정확하게 타란트라 여왕이 있는 굴 주변으로 공간 이동했다. 자신은 물론 삼백여 명의 워리어를 대동하고 공간이동에 성공했으니 나메르단의 예측대로 그의 공간 활용능력은 이미 적정수준을 넘어선 셈이다.
이한은 차분한 눈빛으로 이리저리 헤집어져 있는 굴을 바라봤다. 빛 하나 없는 암흑천지였지만 이한이 주변을 살펴보는 건 전혀 문제 되지 않았다.
이한과 함께 공간이동한 워리어들은 그럴 수 없었기에 즉시 빛을 밝히고 기계장치를 활용해 주변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굳이 그럴 필요가 없었다. 저들이 유용한 정보를 수집하기 전에 이한이 방향을 지시했기 때문이다.
“이쪽으로.”
“알겠습니다.”
이한의 명령이 내려지기 무섭게 워리어들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며 적습에 대비한 대열을 구축했다.
걸음을 옮기던 이한은 미간을 좁히며 빌리 등에게 말했다.
“속도를 올린다.”
그래도 여왕급 타란트라란 말인가? 여왕이 공간이동을 감지하고 방해한 것인지 원하던 지점보다 먼 거리에 공간이동하게 되었다.
하긴 나메시르, 모베르단과 같이 작전을 수립한 개체라면 타란트라 내에서도 무시할 수 없는 능력을 지닌 여왕일 것이다. 공간이동을 막을 수는 없어도 어느 정도 방해할 수 있던 모양이다.
별로 상관없기는 하지만 여왕이 눈치챈 이상 자신의 안전을 위해 다른 굴로 이동하려 할 것이다. 시간이 지체되면 놈은 이리저리 퍼져있는 병력을 자신의 소굴로 끌어들일 테니 그 전에 놈의 생명을 끊어버려야 한다.
이한 자신이 여왕을 죽이는 것에 성공하더라도 여왕이 되기 위해 준비 중인 고위급 타란트라를 죽이는 것에 실패한다면 상황을 반전시키기는 어렵다.
또 다른 여왕이 탄생한다면 기존 여왕의 죽음으로 무너진 지휘체계는 금세 원상 복구될 테니 지금의 작전 자체가 무색해진다. 다시 실행하면 되지 않냐고 묻는다면 현재 테라의 적은 타란트라만이 아니었다.
워리어, 스펙터 등의 고급병력의 공백을 눈치챈 자투족의 역습이 이어질 테니 기회는 지금뿐이다. 타란트라, 자투 양측으로부터 동시에 공격을 받는다면 어떻게 생각해도 패전할 거란 예측밖에는 떠오르지 않았다.
사실 지금도 위태로운 상황이다. 워리어, 스펙터가 제외된 상황에서 스페이스 마린이 자투족이 알아차리지 못하게 고군분투하고 있다고 보면 되었다.
지금이야 자투족이 자신들의 허점을 노리기 위해 테라가 고급병종을 운용하지 않는다고 여길지 모르나 자투족이 바보가 아닌 이상 머잖아 테라의 상황을 눈치채게 될 것이다.
엔두카함급 함선 건조는 여전히 진행 중이나 시간이 더 필요했다. 아주 절묘한 타이밍이었다. 시간이 조금만 더 주어졌더라면···.
그러나 그런 아쉬움은 어떤 순간에나 존재하기 마련이다. 과거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등지의 아쉬움이야 선택과 기회가 지나간 후에 매번 하는 생각들이 아닌가?
그러니 그런 종류의 생각에 사로잡혀 시간을 낭비할 이유가 없다. 부질없는 망상에 불과하다.
‘놈을 죽인다. 그런 후에 역으로 게이트를 침공한다. 그것 외에는 생각할 필요가 없다.’
그것을 위해 치러야 할 대가? 희생? 다 무시했다. 실패한다면 그 희생과 대가보다 더 큰 재앙이 기다리고 있었으니까.
키에엑! 키에에엑!
곳곳에서 타란트라족이 까마득하게 몰려오기 시작했다. 워리어들은 조금도 당황하지 않고 플라즈마건을 날려 놈들을 소멸시켰다.
슈슈슝! 슈슝!
하지만 당연히 간에 기별도 가지 않는 공격에 불과했다.
“머무르지 않는다. 계속해서 진격해!”
딱히 이한의 말이 없었어도 모두가 알았다. 한곳에 머무르는 순간이 곧 자신들의 마지막이라는 걸 말이다. 전투의 달인이라 할 수 있는 이들이니 모를 수가 없었다.
이한은 수십 자루의 초진동검을 띄움과 동시에 워리어들이 챙겨온 초진동검 역시 허공에 띄웠다. 그 숫자가 무려 300자루가 넘었다. 이한은 검의 폭풍을 일으키며 앞을 가로막는 타란트라를 모조리 베어 넘겼다.
“진격로에 해당하는 전방은 내가 뚫는다. 후방과 좌우를 방어해!”
“알겠습니다!”
길게 대답할 여유 같은 건 없었다. 그러는 순간에도 엄청난 숫자의 타란트라가 몰려오고 있었고 더 많은 타란트라가 몰려올 테니 말이다.
이곳의 상황보다는 나을지도 모르나 결국은 비슷한 양상이 고위급 타란트라를 목표로 침투한 병사들에게도 벌어지고 있을 것이다. 저들에게는 이한이 없으니 어쩌면 각 병사가 느끼는 전투의 난이도는 비슷할 것이다. 어쩌면 저들이 더 위험할 수 있었다.
이한은 삼백 자루의 초진동검을 폭풍처럼 휘둘러 앞을 가로막는 타란트라의 벽을 갈가리 분쇄해버렸다. 놈들의 체액과 괴성이 끊이지 않고 울려 퍼졌다.
타란트라로 이뤄진 암석을 초진동검으로 이뤄진 드릴로 뚫는 것과 같은 형상이었다. 더 놀라운 것은 그렇게 뚫린 타란트라 벽은 금세 그 자리를 메우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이한과 워리어들은 그야말로 타란트라에게 둘러싸인 채로 끝없이 전진하기 시작했다.
워리어들은 플라즈마건은 물론 에너지 웨폰을 꺼내들고 짓쳐 드는 타란트라를 상대하기 시작했다. 전투 중에 낙오되는 워리어는 이를 악물고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다가 전사했다. 전우는 물론 이한에 대한 원망따위는 자리하지 않았다.
그 대신 간절한 염원만이 자리했다. 반드시 여왕을 죽이고 이 난장판 같은 전투에서 승리하기를 말이다.
다행히 아직까지 낙오되는 워리어의 숫자는 소수였지만 놈들의 저항이 점점 더 거세지고 있었기에 가랑비에 온몸이 젖어들 듯 병력의 숫자가 계속해서 줄어들고 있었다.
이한도 그 사실을 인지했지만 그런 사실은 조금도 염두에 두지 않았다. 이한은 오직 빌어먹을 타란트라 여왕을 죽이는 것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비켜! 이 찢어 죽여도 시원찮을 것들아!”
워리어들이 낙오되고 죽음을 맞이할수록 오히려 이한은 더욱 강한 기세로 타란트라를 밀어붙였다. 초진동검으로 이뤄진 검의 폭풍은 그런 이한의 분노를 형상화하기라도 한 것처럼 맹렬하게 타오르며 앞을 가로막는 타란트라를 모조리 말살시켰다.
삼백 자루의 검이 제멋대로 움직이고 있는 것처럼 보여도 모두 치명적이고 가장 효율적인 검로를 따라 움직이고 있었기에 타란트라는 어떻게 대항하지 못하고 이한에게 자신의 목숨을 내어줄 수밖에 없었다.
그런 이한에게 기괴한 음성이 울려 퍼졌다.
【실로 무모한 존재로다. 나의 둥지에서 네가 살아남을 수 있을 것 같더냐? 설혹 나를 죽이는 것에 성공해도 너는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야.】
타란트라 여왕의 음성이 분명했다. 드디어 놈의 지척까지 다다랐다. 놈의 목숨을 끊을 시간이 머지 않았다. 이한은 버럭 고함을 지르며 속도에 박차를 가했다.
“지랄 떨지 말고 목숨이나 내놔라!”
이한이 다시 삼백여 자루의 초진동검을 전방을 향해 쏘아냈다.
챙채챙! 채채채챙!
그러나 전과 다르게 뭔가 잔뜩 부서지는 소음만 연신 울려 퍼질 뿐이었다.
【더 이상 이따위 장난감으로는 나의 아이들을 벨 수 없을 것이야. 클클클.】
타란트라 여왕의 음성이 울려 퍼지기 무섭게 이한이 날린 초진동검은 산산이 부서져 무수히 많은 조각으로 화해 허공에 흩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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