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mmander of the Space Gamer RAW novel - Chapter 20
20. 드루와! (1)
20. 드루와!
워의 말대로 확실히 혼자 싸우고 있는 건 아니다. 선명한 아군의 비명이 지금도 귓가를 크게 울리고 있었으니까.
이한은 번쩍거리며 섬멸하는 포화를 미간을 좁히며 바라봤다. 누가 봐도 엠파이어가 우위를 점하고 있다. 그러니 미션도 엠파이어의 섬멸이 아니라 진격을 저지하라는 식으로 떨어졌겠지.
이런 상황에 이한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참호나 벙커에 틀어박혀 연합군 병사들과 함께 고함을 지르거나 비명을 지르는 게 전부일 것이다.
전장을 경험해보는 차원이라면 그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상황이 바뀌었다. 함부로 죽어서도 안 되겠지만 아무 성과도 없이 훈련을 마치는 건 더더욱 안 될 일이다.
‘여유가 없다. 전쟁은 끊이지 않고 발생할 테고 포기하거나 도망칠 수도 없다. 사령관이 된 이상 전쟁을 포기하겠다는 건 연합군에게도 죽여달라는 소리나 다를 바가 없으니까. 생존하려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무조건 승리하고 올라가는 수밖에 없어.’
포격을 피해 주변의 참호에 틀어박힌 이한은 시에라에게 배운 대로 장비를 점검하며 다시 생각을 정리했다.
‘레벨업의 기본 골자는 경험의 축적이다. 워의 말대로라면 전공만이 그 경험이 될 테고. 그러니 무조건 전공을 쌓아야 한다. 위험요소가 분명하지만 적어도 주인공이 훈련 중에 뒈졌다는 설정은 본 적이 없어.’
아니 이것도 넘어서지 못한다면 차라리 이쯤에서 끝내는 것도 나쁘지 않다. 앞으로는 더욱 거센 풍랑이 몰아닥칠 테니까. 그러니 시험해본다. 나 자신을.
‘기갑전이나 보병전이나 모두 열세인 건 너무나 명확한 사실이고. 병력 자체가 열세이니 거점을 점령하는 것도 요원한 일이다. 힘들게 거점을 점령한다고 해도 놈들을 막아낼 수 있을 것 같지도 않아.’
거점을 점령하고 거점의 배리어나 방어 시설을 이용해 버틴다는 게 작전의 골자인 것 같은데 그걸 적이라고 예상하지 못할까?
가용한 모든 것을 활용한다. 그나마 내게는 워가 있다. 부를 때마다 참 병맛스러운 이름 같긴 하다만 그렇다고 구태여 바꿀 생각은 없다.
“워! 적 지휘부의 위치를 파악할 수 있나? 적이 상당수의 기갑병을 계속해서 생산하고 운용하는 걸 보면 센터까지는 아니더라도 타워는 있을 것 같은데······.”
『정상적인 루트로 가상현실에 접속했다면 가상현실의 모든 정보를 파악할 수 있겠지만 특수한 루트로 기능하고 있기에 사령관님이 얻은 정보를 토대로 분석하는 것이 전부입니다.』
“그러니까 센터를 통하지 않고 내 특성으로 인한 것이라 불가능하다는 소리?”
『불가능하다고 답변하지는 않았습니다. 사령관님이 얻은 정보를 토대로 분석한 결과 북부나 서부에 적 지휘부가 위치할 확률이 높습니다.』
이한은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북부나 서부? 뭔가 착각하고 있는 거 아냐? 엠파이어의 파상공세가 가장 강한 지역은 바로 동부야!”
전체적인 관점에서 엠파이어 군은 유니온을 포위하듯이 둘러싼 상황이었지만 동편의 공격이 가장 강했다.
워는 예의 중성적인 음성으로 답변했다.
『추천하지 않습니다.』
“갑자기 뭘?”
『적 지휘부에는 사령관께서 감당할 수 없는 병력이 다수 상주하고 있을 확률이 높습니다. 따라서 사령관께서 세운 작전은 자살행위에 불과합니다.』
이한은 다소 황당한 표정을 지으며 반문했다.
“나는 멍청하고 너는 똑똑하다 뭐 그런 걸 드러내려고 이제 알려주는 건가?”
『그런 우월감은 생명체에게나 존재하는 것으로 생명체와 달리 모든 A.I는 감정이 없습니다. 감정이 있는 것처럼 프로그램되었을 뿐입니다. 혹 그런 설정을 원하신다면』
“됐고! 이유!”
『암살은 불가능하지만, 정찰은 사령관께 그나마 적합한 임무이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현재 유니온은 사령관님의 추측대로 적 기지가 동부에 있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콰아아앙!
후두둑!
그때 참호 주변에 포탄이 떨어졌다. 폭발의 여파로 날아온 흙더미가 이한의 몸을 얼마간 뒤덮었다. 이한은 고개를 흔들어 흙을 가볍게 털어내며 워에게 다시 말했다.
“으흠. 유니온의 추측이 틀렸다고?”
『그렇지는 않습니다. 당초 예상대로 동부에 기지를 구축했겠지만 정작 지휘부는 기지 외부에서 활동 중일 확률이 상당히 높습니다.』
“그거 위험한 거 아냐?”
적의 기지가 센터든 타워든 간에 모든 시설물 중 가장 안전한 방어 시설임은 더 말할 것도 없다. 사령부가 안전하다는 건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전술 운용이 가능하다는 점도 된다. 그런 안전한 기지를 떠나 외부에서 활동 중이라고? 대체 왜?
『트리탄을 계속해서 생산하고 있는 엠파이어와 달리 유니온은 접전 초기에 올리펀트를 생산한 것 외에는 별다른 기갑병기를 생산하고 있지 않습니다.』
트리탄은 전차와 자주포의 결합형인 전형적인 탱크였고 올리펀트는 사족보행형 기갑병기로 트리탄에 비하면 포격 속도가 늦지만, 상대적으로 강한 위력을 가진 주포를 보유하고 있었다.
두 기갑병기의 승패는 전술 운용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데 계속해서 트리탄을 생산하는 엠파이어와 달리 유니온은 생산을 멈춘 상황이기에 전선이 급격하게 밀리고 있는 상황이었다.
『유니온은 공중 병력을 이용한 적 지휘부 타격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지상군은 그것을 위한 미끼에 가깝습니다.』
이한은 뭔가 알아챘다는 듯 워에게 되물었다.
“동부기지를 미끼로 엠파이어가 역으로 유니온을 낚고 있다?”
『유니온의 전략대로 공중폭격으로 엠파이어 지휘부를 괴멸시킨다면 유니온의 승리가 되겠지만 엉뚱한 곳을 폭격한다면 엠파이어는 흩어놓은 병력을 모아서 단번에 밀고 내려올 겁니다. 이걸 유니온은 막을 수단이 없습니다.』
그러나 폭격으로 기지가 박살 난다면 엠파이어도 상당한 타격을 입는다. 그런 기지를 포기한다는 증거가 어디 있나?
“지휘부가 기지를 벗어났다는 걸 무슨 수로 증명할 건데?”
『증거가 있다면 이미 유니온이 적의 계략을 파악했을 겁니다. 유니온을 속이기 위해 엠파이어는 실제로 기지 방어에 상당량의 자원을 쏟아부었을 겁니다.』
“유니온은 엠파이어가 단번에 밀고 내려오지 않는 이유가 거기 있다고 오판하고?”
전쟁준비는 일반 자원을 동원해도 할 수 있지만, 전쟁에 돌입하면 프로젤과 세라메틱을 활용할 수 있는 기지를 얼마나 안정적으로 지킬 수 있으냐가 전쟁의 승패를 좌우한다. 프로젤과 세라메틱을 활용한 병기 생산보다 빠른 건 없기 때문이다.
그런 기지를 버리고 역공격을 준비할 것이라곤 통상적으로는 예측하기 어려운 판단이다. 더욱이 우위까지 점하고 있는 상황에서.
『각자의 주력 공격이 무엇인지 정도는 양자 모두 알고 있습니다.』
속이는 놈이 잘못이 아니라 속는 놈이 병신이다 라는 어처구니없는 말이 전장보다 잘 통용되는 곳도 있을까?
고개를 두어 번 설레설레 젓던 이한이 워에게 말했다.
“내가 뭘 해야 하는지 알겠다. 그래서 서부야? 북부야?”
『엠파이어 측에서 보자면 서부보다는 북부가 안전합니다. 대신 서부는 유니온의 사령부를 타격하기 더 전략적인 지점입니다. 유니온의 방어 병력 역시 북부보다는 서부 쪽이 더 적습니다.』
장단점이 있지만 이미 위험을 감수하기로 결정했다면 더 큰 위험을 감수하지 못 할 이유가 없었다.
이유야 어쨌든 사령부 보호를 위해서 최정예병력을 대동했을 텐데 그 최정예병력으로 적의 취약부를 타격하고 전체적인 공세에서도 우위를 차지한다면 승리를 손쉽게 가져갈 수 있다. 힘의 공백을 절묘한 전술로 삼는 셈이다.
“그럼 서쪽으로 이동 중일 확률이 높겠네.”
『사령관께서 적 지휘부를 특정할 수 있다면 미션을 초과 달성하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그건 설명해주지 않아도 알겠다. 계급도 하바리 말단 이병이라 어차피 내 말에 귀 기울일 사람도, 지휘할 병력도 없으니 동떨어져서 정찰이나 하는 게 현 상황에서 가장 적합할 테고.”
이한은 그 즉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네 판단이 맞다면 사령부까지는 아니어도 적의 주력 타격대가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고 있다는 뜻일 테니······. 바로 이동해야겠군.”
*
투투퉁!
이한은 급히 주변 엄폐물에 몸을 숨겼다.
엠파이어 측의 마린이었다.
고지대에서 자신을 발견한 정찰병, 아니 척후병은 이한을 어떻게든 죽이고자 계속해서 라이플을 쐈다.
두두두!
워의 경고가 아니었다면 벌써 사망하셨을 거다. 다행히 몸을 피할 때까지 쉴드가 버텨줬으니 망정이지 그게 아니었다면 라이플의 탄환이 스틸아머에 이어 자신의 몸까지 관통하고도 남았을 것이다.
투투퉁!
파지지직!
이한을 몸을 둘러싼 육각 단면으로 이어붙인 것 같은 푸르스름한 원이 깨어졌다. 결국 쉴드가 모든 에너지를 다 사용한 모양이었다.
“제길! 한 놈이 아니잖아!”
『한 명이라고 답변드린 적은 없습니다.』
“아무래도 맞는 것 같지?”
『이곳에 척후병을 둘 이유가 없습니다. 제대로 찾은 듯합니다. 그러나 상황이 좋지는 않습니다.』
“이제 지들이 어쩔 거야? 이병 한 이드라실. 서쪽 방면 X292 Y832 Z······. 이거 왜 이래?”
『통신 불가능 지역입니다. 방해전파로 인한 것으로 보입니다. 서둘러 이 지역을 벗어나 재시도하시길 바랍니다.』
이 상황에서 대체 무슨 수로?
이한은 썩은 표정을 지으며 라이플을 움켜쥐었다.
“오냐 이 새끼들아. 드루와! 다 드루와! 내가 묵사발을 내주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