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mmander of the Space Gamer RAW novel - Chapter 203
200. 움켜쥐지 않으면 (2) >
200.
이한과 500명의 워리어는 거짓말처럼 게이트를 통과했다.
게이트를 통과할 수 있는 숫자가 정해져 있기에 병목현상이 발생하지 않는 건 아니지만(무슨 타란트라족처럼 무한하게 밀어 넣지 않는 한 병목현상이 나타나기도 어려움.) 이한 등은 타란트라와 같은 구역, 즉 테라 구역으로 이동하려는 것이 아니었기에 순식간에 칼가로아 구역에 도착할 수 있었다.
몸이 잘게 부서졌다가 재구성되는 기묘한 감각에 인상을 찌푸리던 이한은 게이트 주변에 주둔하고 있는 자투, 볼테르안, 시구르스족의 병력을 발견했다.
이한은 즉시 투명화 실드를 펼치고 일행의 기운을 감췄다. 미처 육체가 게이트 주변에 재구성되기도 전에 펼친 이능이었기에 자투, 볼테르안, 시구르스족은 주변에 주둔하고 있었음에도 이한 등을 발견하지 못했다. 그만큼 이한의 능력과 대처가 절묘했다는 뜻이기도 했다.
하나 게이트가 작동되었다는 사실을 모를 정도로 우둔한 족속은 아니었다. 따라서 이한은 다시 정신을 고도로 집중해서 일행 전체를 게이트에서 떨어진 곳으로 공간이동 시켰다. 조금이라도 실수한다면 임무를 시작하기도 전에 끝나게 될 테니 당연히 이한은 실낱같은 기운도 흘려보내지 않으려고 전력을 다했다.
사실 이건 미친 짓을 떠나 불가능한 일에 가까웠다. 게이트로 인해 공간이동 되는 상황에서 공간을 간섭해서 다시 공간이동을 일으킨 것이니 즉각 소멸해도 이상할 것이 없었다.
하지만 위험을 감수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기에 이한은 지체하지 않고 이행했다.
화아악!
다행히 이한의 노력이 헛되지 않았던 모양인지 이한 등은 게이트 주변에 육체가 재구성되기도 전에 이미 공간 저편으로 이동했다.
“게이트가 작동되었습니다.”
자투족 병사가 지휘관인 투르단에게 보고했다.
“음? 확인해봐!”
이에 볼테르안의 지휘관 아스테가 의문을 표했다.
“설마 엘더 진영에서 넘어온 건가?”
그 말에 반응한 것은 시구르스의 지휘관 바르고였다.
“그럴 리가? 엘더 진영의 게이트는 현재 테라 구역에 연결되어 있는데다가 통과 인원을 최대로 유지하고 있으니 우리 구역에 넘어오고자 해도 넘어올 수 없다.”
그러자 아스테가 조소를 터트리며 말했다.
“그럼 테라 진영에서 넘어온 것이란 말이냐?”
더 말도 안 되는 일이다. 타란트라족이 무한한 샘처럼 쏟아져나오는 상황에 역으로 병력을 침투시켰다고? 그건 자신들이라고 해도 어려운 일이다. 더욱이 상황상 병력을 급파한다고 해도 자신들 구역보다는 엘더 구역에 보내는 것이 더 합리적이었다.
엘더 구역이든 자신들 구역이든 넘어오는 순간 모든 병력이 전멸하긴 매한가지겠지만 말이다.
그것을 알기에 바르고는 어깨를 으쓱거리며 말했다.
“용병 일을 오래 겪다 보면 여러 가지 변수를 맞닥뜨리게 되지. 별것 아닌 변수라도 그게 생사를 좌우하기도 한단 말이야.”
“헛소리! 그래서 테라 놈들이 진입한 것이라고? 자 봐라. 게이트를 넘어온 존재가 어디 있는지? 저 엘더라고 해도 이렇게 삼엄한 경계를 뚫고 잠입할 수는 없다. 테라? 흥!”
확실히 게이트는 작동했지만 넘어온 존재는 어디에도 없었다.
바르고는 고개를 끄덕이며 아스테의 말에 동조했으나 한 마디 말을 덧붙였다.
“장담할 수 있는 일이란 없다. 그걸 아직 모르나보군.”
“흥! 그건 모두 나약하기에 지껄이는 말에 불과하다. 압도적인 힘은 변수 자체를 용납하지 않아!”
“그럴지도 모르지. 하나 아스테. 네가 뛰어난 전사라는 건 알겠다만 모든 것을 알지는 못하지 않나?”
“그래서 뭐? 지금 나한테 시비 터는 거냐?”
가장 작은 개체가 5m에 달할 정도로 거대한 족속이 볼테르안이었다. 이들은 파충류에 가깝고 그중에서도 공룡의 모습과 매우 흡사했는데 아스테는 무려 8m에 달하는 거대한 체구를 지니고 있었다.
온갖 첨단 장비를 걸친 아스테가 발을 구르며 바르고에게 으르렁거리자 흡사 천지가 요동치는 것 같은 느낌을 자아냈다.
그러자 3m 정도 되어 보이는 고릴라처럼 생긴 바르고가 서늘한 눈빛으로 아스테에게 말했다.
“그게 네가 원하는 것이라면 얼마든지.”
이에 아스테는 비릿한 웃음을 짓더니 걸음을 몇 발자국 옮기며 자신의 체구만큼이나 거대한 무기를 들어 올렸다.
“예전부터 네놈의 머리통을 뜯어버리고 싶었지.”
이에 지금껏 게이트를 주시하던 자투족 지휘관 투르단이 표정을 굳히며 입을 열었다. 자투족의 특유의 암석질 피부를 지닌 투르단의 표정은 그야말로 바위보다 딱딱하게 굳어있었다.
“과거의 해묵은 감정은 접어둬. 우리끼리 싸우지 않아도 싸울 적은 넘쳐나니까. 지금 소꿉장난이나 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이에 아스테가 투르단에게 버럭 소리를 질렀다.
“소꿉장난?”
“그래. 소꿉장난 말이다. 네놈이 얼마나 뛰어난 전사이건 간에 네놈의 행동이 동맹의 화합을 무너뜨린다면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야. 그 정도 눈치는 있지 않나?”
아스테는 투르단을 한참 주시하다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으르렁거렸다.
“크으으으.”
“싸울 전장은 넘쳐난다. 괜한 불화를 일으키지 마라. 그리고 테라족을 우습게 보면 곤란해. 비단 우리가 테라족에게 크게 당했기 때문이 아니다. 상황을 분석해보면 그간 테라족이 얼마나 영민하게 움직였는지 모르지 않을 거다. 그러니 바르고의 말에도 일리는 있다.”
이에 바르고가 투르단에게 말했다.
“확인된 것은?”
“없다.”
이에 아스테는 코웃음을 치며 입을 열었다.
“흥! 나약한 테라족의 시체라도 넘어왔나 보군.”
최소한의 방어력을 갖추지 못한다면 설혹 게이트를 넘어와도 가루가 되어버린다. 테라족의 육체는 타란트라 등과 다르게 너무 나약하기에 맨몸으로 넘는다면 게이트의 강력한 기운을 견딜 수 없다. 아스테가 언급한 점은 그런 것이었다.
투르단은 고개를 끄덕이며 아스테에게 대답했다.
“일단 그런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하지만 바르고는 투르단이 남긴 말의 여운에서 그가 다른 것을 의심하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뭘 생각하는 거지?”
“우리 모두 눈치채지 못할 수준의 강력한 적이 넘어온 경우.”
투르단에 말에 아스테는 그의 말을 일축했다.
“헛소리!”
투르단은 눈매를 좁히며 아스테를 바라봤다.
“일반적이라면 그렇겠지. 하지만 테라족이 마스터 종족이 될거라 예상한 종족이 누가 있었지? 테라족이 마스터 종족이 되는 일은 우리도 눈치채기 힘든 강력한 존재가 게이트를 넘을 확률보다도 훨씬 미약했다. 그런데 어떻게 되었지? 그런데도 너는 과거의 상식만으로 단언하고 있는 건가?”
아스테는 다시 분노가 치밀었지만, 구구절절 옳은 말이었기에 별다른 반론을 펼치지 못하고 표정을 구기며 침음만 뱉었다.
“으흠.”
바르고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투르단에게 말했다.
“최소한 그 일을 수행할 수 있으려면 엘더 이상되는 능력을 보유하고 있어야만 한다. 하지만 테라 최강 능력자인 시에라라는 존재는 테라의 웜홀 게이트를 지키고 있다. 테라족일 확률은 아무래도 미미해.”
“테라족이라고 단정 지은 적은 없다. 하지만 주변을 철저하게 수색할 필요는 분명하다. 설혹 작전을 늦추는 한이 있더라도 말이야.”
“으흠. 동의한다. 확실히 칼가로아족을 방해하기 위해 엘더 진영에서 움직였을 가능성도 간과할 수는 없겠지.”
엘더족이 언급되자 아스테 역시 수긍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제길. 나도 동의한다.”
자투, 볼테르안, 시구르스 지휘관의 의견이 일치되기 무섭게 게이트 주변에 모여있던 병력이 일사불란하게 주변으로 퍼지기 시작했다.
*
이한은 역력하게 지친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봤다.
불가능에 가까운 공간이동을 혼자도 아닌 500명에 가까운 인원을 동시에 행했으니 지치지 않을 수 없었다. 찰나의 순간 모두가 허공 저편으로 사라질 뻔한 위험만 수백 번이 넘었다.
그 모든 것을 일일이 바로잡고 무마했으니 이한은 극도로 지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쉴 틈이 없었다. 지쳤거나 말거나 계속해서 움직이지 않는다면 그 결과는 죽음뿐이리라. 따라서 주변을 살피던 이한은 바로 워리어들에게 입을 열었다.
“한곳에 머무를 수 없다. 적들이 곧 주변을 샅샅이 수색할 것이다.”
일행의 기운을 감추고 투명하게 만드는 이능은 지금 역시 펼치고 있었으나 일행이 직접 이동한 흔적까지 지울 수는 없다. 그럴 만한 상황도 아니었고 시간적인 여유도 없었으니까.
“적들은 결국 우리의 존재를 인지할 것이다. 놈들 몰래 기지를 건설하고 버틸 수 있다면 좋겠지만 현 상황에서는 불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빌리가 대표로 나서서 말했다.
“상황이 어렵다는 건 저희도 잘 알고 있습니다. 성공시켜야 할 임무에 대해 말씀해주십시오.”
이한은 어두운 표정으로 워리어들을 바라봤다.
“황당한 소리처럼 들리겠지만, 지금부터 그걸 알아봐야 한다. 칼가로아족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파악하고 그 일이 테라에게 위험하다면 그것을 저지하는 것이 최우선 목표가 될 것이고 그렇지 않다고 아군의 지원이 있을 때까지 생존하는 것이 최우선 목표가 될 것이다.”
이에 조쉬가 굳은 표정으로 이한에게 말했다.
“아군의 지원 말입니까? 송구하지만 그게 정말 가능한 일입니까?”
칼가로아 구역으로 아군이 지원을 온다는 소리는 테라가 칼가로아 구역을 총공격한다는 소리나 다름없다.
하지만 현재 테라에 그럴만한 역량이 있는가? 타란트라족이 끝없이 몰아붙이는 상황이고 아마 그 공격은 테라의 구역을 점령할 때까지 이어질 것이다. 화력을 보강해도 시원찮을 판국에 칼가로아 구역을 공격한다고? 애초에 테라가 칼가로아 연맹보다 강력한 병력을 보유하고 있던 것도 아니지 않나?
따라서 조쉬의 의문은 당연한 질문이었고 모두의 의문이기도 했다.
이한은 조쉬와 워리어들을 바라본 뒤 짧게 말했다.
“별다른 변수만 생기지 않는다면.”
이한의 말에 침묵을 지키고 있던 빌리가 말했다.
“총사령관께서는 변수가 있는지 없는지 파악하고 있다면 제거하기 위해 움직인 것이라 봐도 됩니까?”
“맞다.”
이에 조쉬가 다시 물었다.
“별다른 변수가 없다면 테라가 승리할 수 있다고 봐도 되겠습니까?”
이한은 지친 와중에도 형형한 눈빛을 발하며 단호하게 외쳤다.
“반드시. 반드시 그렇게 만들 것이다.”
말을 멈춘 이한은 워리어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따르겠는가?”
“이미 목숨을 걸었습니다.”
“물론입니다.”
저마다의 방식으로 긍정을 표하는 워리어들을 훑어본 이한은 단말기를 확인하며 입을 열었다. 단말기에는 이곳의 지형도와 아까 확인한 적들의 위치가 표시되어 있었다.
당연히 적의 위치가 실시간으로 갱신되지는 않았다. 전파 하나도 조심해야 하는 상황이다.
“최우선 목표는 칼가로아족의 동태를 파악할 때까지 적에게 발각되지 않는 것이고 발각되더라도 적과의 교전을 최대한 피해야 한다. 각 지휘관의 지휘에 따라 이동하되 유기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는 지역에 위치한다. 죽어도 같이 죽고 살아도 같이 살아남는다.”
500명의 워리어. 엄청난 숫자의 전력이지만 적의 숫자에 비하면 벼룩떼에 불과하다. 그러니 병력을 더 나누는 건 현재 의미가 없다.
“워. 칼가로아족의 위치는?”
『예측한 지점 몇 군데를 전송했습니다. 다만 기기의 부족으로 파악할 수 있는 상황이 매우 제한적입니다. 기지를 비롯한 제반 시설을 칼가로아 구역에서 건설한다면 보다 양질의 정보를 획득할 수 있습니다.』
컨트롤 센터를 건설하지도 않았는데 실시간으로 마스터와 대화하고 기능을 일정 부분 활용할 수 있는 초인공지능은 워가 유일했으나 누차 언급했다시피 워는 만능이 아니다. 적을 감지할 수 있는 장치 등이 없다면 워가 아무리 뛰어난 초인공지능이라고 해도 제한이 있을 수밖에 없다.
물론 그럴지라도 정보를 조합하고 도출해내는 능력은 그 어떤 인공지능이나 초인공지능도 따라오지 못할 정도였으니 제한적인 정보임에도 워는 칼가로아족의 위치를 추정할 수 있었다.
“알다시피 그건 불가능하다. 현재 이곳에 아군의 기지를 건설하는 게 목적이 아니라 칼가로아족이 무엇을 계획하고 있는지 파악하는 것이 목적이다. 이런 상황에서 아군이 발각당한다면 놈들의 계획을 더 알기 어려워질 테니 부족한 대로 움직이는 수밖에 없어.”
이한은 그렇게 대답하며 워가 전송한 지점 중 가장 확률이 높은 지점을 목표로 찍어서 워리어들에게 전송했다.
“최우선 목표 지점은 이곳이다. 지금 즉시 전속력으로 이동한다.”
은밀함과 신속함 그 어디쯤을 통과해야만 그나마 목표에 가까워질 수 있을 것이다. 머뭇거릴 시간 따위는 없다. 목표가 정해진 이상 뒤도 돌아보지 말고 달려야 한다.
벼락같이 달려가 움켜쥐지 않으면 기회는 이미 사라지고 없다. 더욱이 그 기회는 한 번뿐이다. 잡지 못하면 죽는다. 어쩌면 모두가···.
“알겠습니다.”
이한만 지친 것이 아니었다. 워리어들 역시 게이트를 통과하기 위해 사력을 다해 달리고 전투했다.
하지만 누구 하나 불평하지 않고 다시 전심전력으로 목표지점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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