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mmander of the Space Gamer RAW novel - Chapter 206
203. 쇠하지 않는 것 (2) >
203.
이한은 바이저에 뜬 정보를 확인했다. 8m에 달하는 거대한 체구에 몸의 모든 부분이 강철처럼 단단한 조직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워는 즉시 아스테의 전투능력을 추정하고 이한에게 보고했다.
『생체조직을 고려할 때 사람 정도는 한 손으로 으깨버리고도 남을 정도로 강력한 힘을 구사할 것으로 판단됩니다.』
단순히 그 정도가 아닐 것이다. 강력한 볼테르안 가운데서도 독보적인 존재로 보였으니 말이다.
‘많은 시간을 할애할 수 없다.’
언급했다시피 시간이 지체된다면 실낱같은 기회를 완전히 날리게 될 것이다.
하지만 가볍게 볼 상대가 아니었다. 느껴지는 기세가 모베르단과 나메시르가 결합한 나메르단은 물론 타란트라 여왕인 쿠가라인을 방불케 할 정도였기 때문이다.
물론 모두 물리친 마당에 놈에게 패배할 것은 염두에 두지도 않았으나 가볍게 여기다가는 역으로 자신이 당할 수 있었다.
이한이 걸음을 멈추고 무심한 표정으로 놈을 주시하자 워리어들 역시 상황을 알아차리고 즉시 진형을 형성하며 적의 공격에 대비했다.
【가소로운. 하나 기특하게 내 앞에 나타났으니 깔끔하게 찢어 죽여주마.】
별 시답잖은 말까지 일일이 반응할 필요가 없다고 여긴 이한은 양손에 사이오닉 소드를 가볍게 말아쥐었다. 저들의 목적이 무엇인지 묻는다고 놈이 대답해줄 것도 아니고 뭔 개소리를 지껄이든 어차피 죽일 놈에 불과하다.
아스테 역시 흉포한 눈빛으로 이한을 바라보며 양쪽에 낫이 날린 형태의 에너지 웨폰을 형성했다. 볼테르안의 체구에 걸맞게 역시나 거대한 무기였다.
이한은 빌리에게 말했다.
“무리하게 돌파하려 들지 말고 방어전을 치르도록!”
“알겠습니다.”
이한은 빌리의 대답이 이어지기 무섭게 응축한 기운을 전방으로 토해내며 앞으로 몸을 날렸다.
염력과 같은 이능으로 사이오닉 소드를 날릴 수도 있지만, 눈앞의 놈은 그런 식으로 죽일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초능력을 사용하지 못한다고 기운의 흐름을 끊어내지 못하거나 파악하지 못하는 건 아닐 테니까.
볼테르안, 자투, 시구르스 등과 같이 이능을 거의 사용하지 못하는 종족은 다른 부분이 탁월했다. 애초에 저들이 이능을 사용하는 종족에게 크게 밀렸다면 어찌 12종족에 속할 수 있었을까?
아니나 다를까 아스테는 짧게 코웃음을 치더니 번개처럼 짓쳐 드는 이한을 향해 에너지 웨폰을 휘둘렀다.
부아아앙!
역시나 이능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아스테가 가진 힘은 그 모든 것을 상쇄하고도 남았다.
이한은 무시무시한 파공음과 함께 자신을 베어버리고자 짓쳐 드는 아스테의 공격을 확인했다. 쳐내지 못할 정도인가? 그건 아니었다. 쳐낼 수 있었다.
‘하지만 하책이다.’
이한은 짓쳐 들던 공간을 왜곡시켰다. 이한의 사이오닉 소드는 마치 허공의 입에 삼켜지는 것처럼 모습을 감췄다. 자연히 검을 들고 있던 이한 역시 허공에 삼켜지듯 사라졌다.
이한의 모습이 사라지는 그 순간 아스테의 에너지 웨폰이 원래 이한이 짓쳐 들던 공간을 가차없이 갈라버렸다.
파지지직!
아스테는 등 뒤에서 느껴지는 살벌한 예기에 그대로 몸을 빙글 돌리며 에너지 웨폰을 횡으로 휘둘렀다.
부아아앙!
힘이 얼마나 강력해야 엄청난 속도로 휘둘러지던 무기를 곧바로 방향전환 할 수 있는 건지 감이 오지 않았다. 힘은 물론 육체가 얼마나 튼튼한지도 알 수 있는 광경이었다.
아스테의 뒤에 모습을 드러낸 이한은 즉각 자신을 향해 휘둘러지는 아스테의 무기를 쳐냈다.
쾅! 콰아앙! 콰앙!
짧은 순간 수십 차례의 공방이 오가고 이한과 아스테는 잠시 뒤로 떨어졌다.
이한과 아스테가 전투를 치르는 사이 워리어들과 볼테르안 전사들의 전투 역시 시작되었다. 플라즈마탄이 서로 간에 오갔으나 금세 백병전에 돌입했다. 플라즈마건은 강력한 무기지만 적의 실드를 무력화하기 전에는 적에게 타격을 주기 어렵다.
하나 에너지 웨폰은 그렇지 않다. 실드는 물론 적의 방어구 자체를 무시하기에 적을 단번에 참살할 수 있는 매우 강력한 무기였다. 바로 그런 이유로 볼테르안은 물론 자투, 시구르스 역시 에너지 웨폰을 주로 사용하는 것을 선호했다.
따라서 초반에 사격된 플라즈마탄은 워리어들의 것이 주류를 이루었고 단단한 실드를 믿고 순식간에 거리를 좁힌 볼테르안족으로 인해 백병전 형태로 전환되었다.
아스테는 세로로 갈라진 눈동자로 이한을 노려보며 입을 열었다.
【제법이로군. 죽일 맛이 있는 놈이야.】
하지만 이한은 아스테의 말을 듣고 있지 않았다. 워의 보고를 듣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사령관님. 정확한 건 아직 알 수 없으나 여러 정황을 살펴볼 때 저들은 초월구조체와 관련된 무언가를 하고 있을 확률이 매우 높습니다.』
“이유는?”
이한은 워에게 말했으나 아스테는 자신에게 한 말인줄 알고 대답했다.
【이유? 적을 죽이는 것에도 이유가 있나?】
그 가운데 워의 보고가 다시 이어졌다.
『마르지 않는 프로젤과 세라메틱을 확보했고 그것을 충분히 활용할 기술력을 보유한 칼가로아 연맹이 발전하지 못한 정황이 첫 번째이며 두 번째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 종족은 칼가로아족 뿐만 아니라 엘더족 역시 마찬가지라는 점입니다.』
이한은 미간을 좁히며 생각에 잠겼다.
‘가능성이 있긴 하지만 그게 꼭 초월구조체와 연관이 있다고 볼 수는 없지 않나?’
그런 이한의 의문을 알아차렸던 것인지 워의 보고는 계속되었다.
【초월구조체로 단정한 이유 역시 크게 두 가지입니다. 첫째 모든 기술은 상황과 환경에 맞게 효율적으로 발전합니다. 초자원은 12종족에게도 희귀한 자원이었고 특별한 일이 없는 한 12종족의 기술은 이러한 초자원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을 겁니다. 그러니 12종족에게 마르지 않는 초자원을 총동원해서 생산할 무기는 아직 존재하지 않을 확률이 훨씬 높습니다.】
“시간이 없었기 때문에?”
아스테는 인상을 찌푸리며 이한에게 말을 꺼냈다.
【시간이 없다? 시간이 없는 건 너희겠지. 어서 오는 게 좋을 텐데? 아니 이번엔 내가 가지.】
『그렇습니다. 심지어 막대한 양의 초자원을 거의 총동원해 만드는 무기입니다. 설혹 재빨리 모든 것을 설계했더라도 여러모로 검토할 시간이 필요합니다. 두 번째 이유는 적이···.』
워의 보고는 마저 이어질 수 없었다.
땅을 박차고 짓쳐 든 아스테로 인해 전투가 재개되었기 때문이었다. 이한은 아스테의 공격을 쳐내면서 현 상황에 대해 고심했다.
‘워의 말에 일리가 있다. 내가 엘카힘을 유물을 얻었듯이 저들 또한 그에 준하는 어떤 정보나 기술을 얻었다면? 그간 상황이나 환경이 구축되지 못해서 하지 못했던 기술을 실현할 수 있게 된 것이라면?’
마르지 않는 초자원이 그 조건 중 하나일지도 모르지.
“뭐가 되었든 네놈은 서둘러 처리해야겠군.”
이한이 잠시 다른 생각을 하긴 했으나 아스테의 공격이 만만했기 때문이 아니라 매우 중요한 내용이었기 때문이었다.
【가소로운 놈!】
이에 아스테는 이한을 반으로 갈랐다.
후아아악!
강력한 공격이 이한의 머리 위에서 내리쳐졌고 이한은 양손의 검을 교차해서 아스테의 공격을 막아냈다.
콰아앙!
그것을 시작으로 아스테의 지치지 않는 공격이 계속해서 이어졌다.
쾅! 콰아앙! 콰앙!
서로의 공격이 부딪칠 때마다 폭탄이 터져나가는 것 같은 굉음이 연신 울려 퍼졌고 실제로 그 충격파는 땅을 헤집을 정도로 강력했다.
아스테는 이한을 무시하는 발언을 반복하긴 했으나 결코 방심하지 않았다. 전투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실수로 죽었든 운으로 죽였든 살아남은 존재는 강한 존재가 되기 마련이다.
따라서 아스테는 자신의 모든 전투능력을 총둥원해서 이한을 밀어붙였다.
이한은 무심한 눈으로 사선으로 날아오는 아스테의 공격을 바라봤다. 강력한 공격이다. 어지간한 존재는 저 일격을 받아내지도 못하고 즉사하고 말 것이다.
‘단조롭군.’
강력한 힘과 엄청난 속도로 휘둘러지는 공격이니 단조로울 리가 없었다.
하지만 이한에게는 매우 단조로운 공격에 불과했다. 이능을 사용할 수 있는 존재들은 기존의 물리법칙을 벗어난 움직임과 현상을 일으킬 수 있다.
아스테가 강력한 존재이긴 하나 이능은 사용할 수 없었다. 공격 루트가 다양하긴 해도 정해져 있다는 뜻이었다.
이한은 몸을 슬쩍 움직여 아스테의 에너지 웨픈을 피해내고 빙글 몸을 돌려 놈의 다리를 향해 사이오닉 소드를 날렸다.
쐐에에엑!
【흥! 그따위 잡기 따위로!】
아스테는 그런 이한을 비웃으며 발을 들어 올린 뒤 다시 횡으로 에너지 웨폰을 휘둘렀다. 그 속도가 어찌나 재빠르고 강력했던지 아스테의 공격은 순식간에 이한을 베고 지나갔다.
부아아아앙! 서걱!
반 토막이 된 이한의 상체는 그대로 땅으로 떨어지다가 연기가 되어 사라졌다. 또 하나의 강력한 사냥감을 처리한 순간이었다. 자연히 의기양양한 표정을 짓던 아스테는 의문 섞인 표정으로 옆으로 기울어지는 세상을 확인했다.
【응?】
몸을 옆으로 굽히지도 않았는데 어째서 초점이 달라진단 말인가? 대체 무슨 일이 발생한 것이지?
그렇게 의문을 품던 아스테는 붉은빛이 자신을 덮는 것을 보고 황당한 심정에 휩싸였다.
내가. 설마 내가 당했단 말인가? 지금껏 만난 모든 적을 무참히 살해하고 저들을 전리품으로 삼았던 나 아스테가 당했냔 말이다. 믿을 수 없다! 믿을 수 없어!
퍼석!
아스테의 반 토막 난 상체가 땅으로 떨어지다 말고 지면에 남은 하체와 함께 한순간에 핏물이 되어 허공으로 비산했다. 그게 아스테의 마지막이었다. 아스테는 자신이 어떻게 죽었는지도 인지하지 못했고 그건 주변의 모든 사람이 마찬가지였다.
아스테의 죽음을 목도한 볼테르안들은 더욱 사나운 기세로 워리어를 몰아붙이기 시작했다. 볼테르안족의 시체가 워리어들 주변에 즐비했지만 워리어들의 시체 역시 주변에 늘어져 있긴 매한가지였다.
그러나 아스테가 죽는 순간 주변의 나머지 모든 볼테르안 역시 한줌의 핏물로 화해 사라졌다.
촤아아악!
놈이 강력하다고 생각했다. 맞다 강력한 존재였다.
그러나 자신의 착각이자 오류였다. 그건 예전 기준에 지나지 않았다. 그랬다. 이한은 강력한 존재들과 전투로 인해 더욱 강력해졌다. 그리고 여전히 강력해지고 있었다. 자신조차 그 강력함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할 정도로···.
이한은 무심한 표정으로 워리어들을 살폈다. 그 짧은 순간 50명에 달하는 자들이 죽음을 맞이했다.
“이동한다.”
전사자들에 대한 애도는 승리한 후에 해도 늦지 않다.
*
이한과 450명의 워리어는 결국 저들의 추격과 경계를 뚫고 워가 예측한 지점까지 다다를 수 있었다. 그곳에 다다른 이한 등은 잠시 말문을 잃을 수밖에 없었다.
“이게 대체?”
모두의 심정을 대변하는 조쉬의 말에 빌리가 이한을 바라봤다. 이한 역시 심각한 표정으로 눈앞의 광경을 주시했다.
다행히 이 지점에 칼가로아족이 모여있을 것이라 짐작한 워의 예측은 정확했다.
하지만 그런 워조차도 예측하지 못한 사실이 한 가지 있었다.
이곳은 칼가로아 기지가 아니라 무덤이었다. 칼가로아족의 무덤 말이다.
살아있는 칼가로아족은 단 한 개체도 존재하지 않았다. 물론 칼가로아족은 기계족이라 살아있다는 표현보다는 작동하고 있는 표현이 적절하겠지만 어쨌든 이곳에는 이리저리 부서진 칼가로아족의 잔해만 가득할 뿐이었다.
말없이 선 이한을 바라보던 빌리가 걸음을 옮기며 말을 꺼냈다.
“이게 대체 뭔 상황인지 모르겠으나 병사들과 함께 일단 확인해 보겠···.”
이한은 그런 빌리를 향해 즉각 외쳤다.
“멈춰!”
“예?”
“가까이 다가가지 말고 물러나!”
단말기나 바이저에 확인된 바로는 위험할 것이 전혀 없었다. 말 그대로 이곳에 있는 것은 몰살한 칼가로아족이 전부였을 뿐이다.
그런데 왜 독극물을 앞에 둔 사람처럼 다급하게 외친단 말인가? 빌리는 영문을 알 수 없었지만, 이한의 심상치 않은 표정에 두말하지 않고 병력을 인솔해 뒤로 물러났다.
주변을 심각한 표정으로 확인하던 이한은 워에게 말했다.
“무슨 일이 발생한 거지?”
『재차 확인하고 있습니다만···. 슈퍼아머 등에 내장된 장치 확인 사실과 크게 다를 바 없는 결과만 도출될 뿐입니다.』
앞서 이한은 물론 빌리 등이 확인한 대로 칼가로아족의 잔해. 그게 전부라는 뜻이다.
“그럴 리가 없다는 건 너도 알고 나도 안다.”
이곳이 단순히 무덤일 뿐이라면 대체 왜 저들이 필사적으로 막으려 한 것이란 말인가? 막대한 양의 초자원은 대체 어디에 사용된 것이고? 그러니 이곳이 단순히 칼가로아족의 잔해로 가득한 무덤일 리가 없다.
설혹 단순한 무덤일지라도 아무 이유 없이 이런 일이 발생하지는 않았을 테니 최소한의 단서 정도는 남아 있을 것이다.
『확실한 것은 사령관님께서 칼가로아족의 잔해를 직접 확인하는 것이나 불확실한 위험이 도사리고 있기에 추천하지 않습니다.』
“나를 통하면 이 사태를 파악할 수 있고?”
『확답을 드릴 수는 없습니다. 다만 사령관님의 신체를 통해 전해지는 정보는 그 어떤 장치보다도 정확하고 세밀합니다. 역시 이유는 알 수 없으나 엘카힘의 유물 때문으로 추정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