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mmander of the Space Gamer RAW novel - Chapter 209
206. 초공간 (2) >
206.
칼가로아족 병사의 모습은 일괄적이었다. 은빛 금속으로 온몸이 뒤덮인 모습은 중세 시대의 기사단을 연상케 했다.
이한은 스페이스 마린에게 명령을 내려 플라즈마와 레이져를 쏘아내며 진격하는 칼가로아족을 방어하게 했다.
스페이스 마린들은 이한의 명령을 받기 무섭게 진지를 구축하고 사방에서 짓쳐 드는 칼가로아족을 향해 사격을 가했다. 그러한 일이 도처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스펙터나 워리어 역시 치열하게 움직이며 더 강한 개체인 칼가로아족과 전투를 치르기 시작했다.
공중에서는 함대전이 시작되었다. 수많은 함재기가 일제히 출격하더니 서로 물고 물리는 공중전을 펼쳤다.
콰아앙! 콰앙!
단순히 국지전 수준이 아니라 전면전 수준의 거대한 규모의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으나 이들의 전투는 누카라와 이한 모두에게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이한은 정신을 집중해서 병력을 효율적으로 운용하기 시작했다. 전장의 병사들은 테라인의 모습을 지니고 있고 자율적으로 전투를 치르기까지 하나 당연히 이들은 살아있는 인간이 아니었다.
이들에게 명령을 내리는 일 또한 지휘관을 통하거나 통신 수단을 이용할 필요도 없이 머릿속으로 생각하는 것만으로 충분했다. 전장에 선 칼가로아족을 모두 소멸한다고 해서 누카라를 죽일 수 있는 건 아닐 것이다.
‘하지만 내가 이 전투에서 승리한다면 초공간을 운용할 수 있는 자원을 누카라보다 훨씬 많이 가지게 되니 이것을 기반으로 놈을 이곳에서 추방할 수 있을 것이다.’
누카라는 무심한 눈으로 이한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엘카힘이 아니었다면 우리가 엘카힘의 초공간 기술을 확보한 순간 우주를 제패했을 것이다.】
“역시 초공간 기술은 네놈들이 자체적으로 개발한 것이 아니었군. 지금 형성된 공간 역시도.”
【곧 우리의 것이 될 것이다!】
“그런 말은 나도 할 수 있겠다. 고작 이렇게 불안정한 공간을 유지하기 위해 수많은 칼가로아족을 희생시키다니. 참으로 대단하군.”
【저들은 동족의 미래를 위해 자신을 기꺼이 희생한 것이다. 무엇보다 이들은 칼가로아의 영웅들로 다시 태어나게 될 것이다.】
“글쎄. 과연 그게 네놈 뜻대로 될까? 그리고 그렇게 탄생하게 될 칼가로아족은 지금 네놈의 의지대로 움직이는 꼭두각시가 전부겠지. 그게 무슨 대단한 영광이라고 영웅씩이나?”
【어리석은. 우리를 네 종족의 기준으로 재단하려 들지 마라. 나 누카라는 개인이자 집단이다. 모든 칼가로아족과 연결되었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조금도 이해하지 못하는군. 내가 존재하는 한 칼가로아족은 영원하다.】
“그런 놈이 고귀한 동족이 희생하며 만들어낸 초공간을 제대로 제어하지도 못해서 내게 빼앗긴 것이냐? 한심하군.”
이한의 도발이 이어졌지만 누카라는 차분한 눈빛으로 이한을 주시했다.
【어리석은 놈. 네가 얻은 것이 네가 뛰어나서 얻은 것이라 여길지 모르나 애초에 네게 주어지지 않았다면 너는 아무것도 얻을 수 없었을 것이다.】
누카라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전체적인 전황이 누카라에게 유리하게 흘러가기 시작했다. 이한이 인상을 슬쩍 찌푸릴 때 누카라가 다시 말을 이었다.
【그렇게까지 네 종족을 살리려는 이유가 무엇이냐? 개인의 영달을 위해 아랑곳하지 않고 전체를 파괴하고 타인의 불행을 조롱하며 즐거워하는 족속이 너희 테라족이 아닌가? 그것이 너희의 본질이니 너희는 어차피 멸망하고 말 것이다.】
이한이 침묵을 지키자 누카라가 다시 말했다.
【너무 정곡을 짚으니 할 말이 없는가? 너희 종족은 번영할 가치가 없는 족속이다. 대체 너희 종족의 가치가 무엇이냐? 지금도 너희는 너희끼리 반목하며 서로 이득을 취하기 위해 짓밟고 죽이려고 들지 않은가? 심지어 그것을 당연히 여기고 그렇게 하지 않는 자를 어리석은 존재로 칭할 정도로 너희는 부패하고 나약한 족속에 불과하다.】
누카라는 손을 휘저어 함대를 움직여 테라의 함대를 압박하기 시작했다. 그 광경은 매우 먼 거리에 일어났지만 동시에 두 존재를 둘러싼 어떤 홀로그램처럼 그려지기도 했다.
【수많은 가치와 수많은 지식과 수많은 법이 있으면 무엇 하는가? 너희의 손길이 닿는 순간 부패하고 변질될 테니 누군가 너희에게 멸망을 가져다주지 않아도 너희는 너희 스스로 멸망을 자초할 것이다.】
누카라는 여전히 침묵하고 있는 이한을 조롱하며 다시 말했다.
【왜 대답이 없는가? 아 인정하기 싫은 건가? 이해한다. 부패하고 타락한 너희 자신을 직시하면 그 끝이 멸망뿐이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을 테니까. 그래서 너희는 외부의 것에 집착한다. 외부의 것이 너희의 자아가 된다. 화려한 것들을 가져다가 스스로를 치장하고 부족한 자를 밟아 자존감을 세우고 부패한 자에게 도에 넘치는 저주를 퍼부어 도덕심을 자랑한다. 그 모든 것을 짜임새 있게 성공적으로 잘하는 자가 바로 너희가 말하는 영웅이자 위인 아니더냐?】
누카라의 병력은 위협적으로 이한의 병력을 포위하기 시작했다.
【그걸 고려하면 동족의 미래를 위해 스스로를 희생한 우리 칼가로아족을 이해하지 못하는 게 당연한 일이겠지. 너희는 부조리하고 극도로 비효율적인 존재로다. 아직 멸망하지 않은 것이 기이할 지경이야.】
그때 이한이 지휘하던 테라 함대가 적은 숫자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칼가로아 함대를 밀어붙이기 시작했다. 누카라는 잠시 그 광경을 주시하다가 이한에게 다시 말했다.
【재차 숙고해봐도 그럴만한 가치가 없는 종족이거늘 대체 왜 그렇게까지 저항하는 것이지? 네가 승리하고 네가 초월구조체의 마스터가 되었다고 하자. 너희 종족이 그것을 통해 무엇을 할지 생각해 봤느냐?】
이한은 누카라가 무슨 말을 하든지 간에 함대가 가져온 우위를 바탕으로 지상군의 병력도 밀어붙이기 시작했다. 서로를 죽고 죽이는 극도로 치열한 전투가 계속해서 일어났다. 이것이 일종의 가상현실이라는 사실이 다행일 지경이었다.
누카라는 이한의 맹공으로 자신의 병력이 밀리고 있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설마 모르진 않겠지. 너의 그 승리가 네 종족의 멸망을 앞당길 것을 말이야.】
“인정하지. 아마 그럴 것이다. 아니 반드시 그러겠지. 지난 역사를 돌아봐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니까. 하지만 네놈들이라고 해서 우리와 다른 존재처럼 여겨지진 않는군. 아니 더 딱해.”
【우리가 너희보다 딱한 존재다? 참으로 우스운 발언을 하는군. 적어도 우리는 네놈들처럼 이익을 위해 동족을 살해하지는 않는다.】
“연합? 협력? 하나가 되자? 좋은 말이지. 참으로 좋은 말이야. 하지만 진리는 쇠하지 않고 변하지 않는 법이다. 간단히 예를 들어서 모든 사람이 토끼 귀가 하나라고 부르짖는다고 어느 날 갑자기 토끼 귀가 하나가 되나? 부모를 공경하고 자식을 사랑하라라는 말은 너무 오래된 말이니 서로 합의해서 부모를 멸시하고 자식을 증오하자라고 바꾼다면 그게 새로운 진리가 될 수 있나? 그게 마음대로 된다면 그건 그것대로 미친 세상이겠지. 이게 무슨 말인지 네놈은 이해하지 못하려나? 어쨌든 말이다. 네놈들이 한목소리로 하나가 되어 하나의 이익을 위해 부르짖는다고 그게 무슨 진리가 되고 선이 되는 건 아니야. 부패했지. 맞다. 테라는 부패할 대로 부패했다. 네 말대로 멸망에 이르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면에서 보자면 서로 다른 목소리를 내고 다투는 우리가 너희보다는 건전한 종족 같은데? 너희는 부패한 채로 하나가 되었으니까. 정말 그게 좋은 걸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이한은 누카라를 노려보며 다시 말을 이었다.
“엘카힘이 어떤 종족이었는지는 잘 모르겠다만 초공간에 제약을 걸어놓은 이유는 확실히 알겠군. 너희 같이 뒤틀린 족속이 초공간을 이용하는 사태를 막기 위해서인 건 분명하다.”
그 말을 끝으로 이한이 발을 구르자 거대한 충격파가 형성되어 칼가로아와 테라의 병력까지 모조리 소멸시켜 버렸다.
【네놈!】
“장난질은 여기까지 하도록 하지.”
이한이 그 말을 꺼냄과 동시에 모든 초공간이 깨어졌다. 이에 이한은 주변을 슬쩍 둘러봤는데 끝없이 하늘을 향해 엄청난 에너지를 쏘아내던 장치가 어떤 에너지도 토해내지 못하고 연기와 함께 스파크를 일으키고 있었다.
누카라는 이한의 의지를 퇴색시켜서 어떻게든 초공간을 유지하려고 했지만 이한은 놀라운 통찰력으로 그 모든 것을 파훼한 것이다.
망가진 장치 주변으로 은빛 금속의 거대한 거인이 하나 서 있었는데 아마도 누카라로 보였다.
지이잉!
이한은 양손에 사이오닉 소드를 형성했다.
누카라는 다소 허탈한 눈으로 이한을 바라보다가 금세 분노에 찬 눈빛으로 이한에게 외쳤다.
【네놈 하나로 인해 우리의 원대한 계획이 무너지긴 했으나 네놈을 죽인다면 충분히 만회할 수 있겠지.】
누카라는 그 말과 함께 에너지 웨폰을 형성했는데 그 기세가 사뭇 남달랐다. 강대한 에너지가 그의 무기를 타고 흘렀는데 그 모습은 마치 번개를 들고 있는 것과 매우 흡사한 모양새였다.
【무한한 초자원은 여전히 내게 공급되고 있다. 네놈을 즉시 쳐죽이고 마스터 권한을 얻은 뒤 엘더 구역으로 향하리라.】
“그럴 수 있.”
슈아아앙!
이한은 말을 미처 맺을 수 없었다. 예지에 가까운 감각이 아니었다면 방금의 공격으로 몸이 산산이 조각났을 것이다. 그 정도로 엄청난 속도와 힘을 가진 공격이었다.
왜 칼가로아족이 세 마스터 종족 중 하나인지를 짐작할 수 있게 만드는 광경이었다.
이한을 스쳐간 누카라는 말없이 다시 이한에게 짓쳐 들었다. 은빛 금속으로 이뤄진 몸체에 번개처럼 보이는 창을 든 누카라는 음속을 넘어서는 속도로 이한에게 연신 공격을 퍼부었다.
펑! 퍼펑! 펑! 퍼퍼펑!
음속을 넘을 때 일어나는 소닉붐으로 인한 충격파만 해도 일반인은 버티지 못할 정도였으나 이한은 실드 등으로 그것을 상쇄하며 누카라의 강맹한 공격을 연신 걷어냈다.
슈우웅!
이한이라고 공격을 가하지 않는 건 아니었다. 예지에 가까운 감각을 이용해 누카라가 움직일 공간에 미리 공격을 퍼부었기에 누카라 역시 여러 번 위기에 처했었다.
이한의 사이오닉 소드를 피해낸 누카라는 왼손을 이한에게 휘둘렀다. 그러자 칼가로아족의 잔해가 순식간에 결합하더니 이내 곧 거대한 손으로 변해 이한을 후려쳤다.
콰아앙!
불의의 일격에 당한 이한은 빙글빙글 돌면서 바닥에 처박혔다.
쿠르르르.
바닥에 처박히기 무섭게 모든 땅이 진동하기 시작하자 이한은 몸을 살펴보기도 전에 누카라를 바라봤다.
사방에서 칼가로아의 잔해가 날아오더니 거대한 칼가로아족을 만들어 가기 시작했다. 그 크기가 50m는 넘어 보였다.
【반드시 네놈을 죽일 것이다.】
바닥에서 일어난 이한은 몸을 툭툭 털면서 커다랗게 변한 누카라에게 말했다.
“자충수를 두는군.”
몸이 거대해진 만큼 힘과 파괴력이 증강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한은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두 자루의 사이오닉 소드를 들고 바람처럼 누카라를 향해 달렸다.
【가소로운 테라놈! 그 대가를 묻겠다.】
누카라의 무기 역시 거대해졌는데 누카라가 무기를 휘두르자 주변 일대가 번개 폭풍으로 뒤덮였다.
콰지직! 콰직! 콰지지직!
가장 미약한 번개에 얻어맞더라도 잿가루가 될 정도로 강력한 에너지를 내포하고 있었다. 그런 번개가 사방에서 쉴 새 없이 내리치고 있었다.
이한의 실드 위에도 번개가 떨어져 내렸다.
콰지직!
무한한 초자원을 공급받고 있다는 말이 거짓이 아니라는 듯 이한의 실드는 번개를 얻어맞는 그 즉시 파괴되었다.
하지만 번개는 그저 허공을 꿰뚫고 지면을 강타했을 뿐이었다. 이미 공간이동을 통해 몸을 피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여러 번 몸을 피한 이한은 거대해진 누카라의 얼굴 높이 위에 모습을 드러냈다.
【죽어라!】
누카라는 이한을 향해 크게 외쳤고 그 음성은 강력한 충격파 되어 다시 일대를 휩쓸었다.
그뿐만 아니라 누카라의 온몸에서는 은빛 가시가 이한이 피할 공간까지 모조리 뒤덮었고 무한한 초자원으로 인해 번개처럼 타오르는 에너지 웨폰 역시 이한을 향해 휘둘러졌다.
어디로든 피할 수 없는 상황. 강력한 에너지 웨폰의 사거리에 들어섰기에 공간이동 역시 함부로 행할 수도 없었다. 왜곡으로 인해 끔찍한 사태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한은 이 모든 것을 예상이라도 했다는 듯 무심한 표정으로 사이오닉 소드를 허공에 가볍게 내리그었다.
사아아악!
이한의 검이 허공을 가르는 순간 거짓말처럼 모든 것이 갈라졌다. 이한 앞에 서 있던 누카라부터 수를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은빛 가시들과 번개처럼 타오르던 에너지 웨폰까지 모조리 갈라져 소멸해버렸다.
그렇게 모든 것이 소멸한 가운데 오직 누카라만이 반으로 갈라진 채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다.
【엘카힘의 전승자라고 해도···. 이건 놀랍군.】
그 말을 끝으로 누카라 역시 잘게 부서져 소멸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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