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mmander of the Space Gamer RAW novel - Chapter 212
209. 증명하라 (2) >
209.
크락투부터 불꽃 괴수까지···. 참으로 역동적인 삶이다. 물론 지금까지도 황당함의 연속이었지만 앞으로 얼마나 더 기상천외한 것들을 맞닥뜨리게 될지 의문이 들 지경이다.
지금 자신의 모습 또한 그러하다. 허공을 아무렇지 않게 부유하고 있지 않은가? 원하는 대로 팔다리를 움직이듯이 이능은 어느새 자연스럽게 자신의 일부가 되었다.
이한은 자신을 느릿하게 스쳐 가는 불꽃을 무심하게 바라봤다. 불꽃 괴수가 아량을 베풀어 피할 수 있게끔 이한을 공격했을 리는 만무하니 당연히 느릿하게 보이는 건 이한의 동체 시력과 이능 때문이었다. 실제로는 너무나 가공할 속도라 거의 모든 존재는 놈을 맞닥뜨린 순간 소멸을 맞이할 것이다.
놈은 그야말로 모든 것을 불사르고 있었다. 불꽃으로 형상화하긴 했으나 일반적인 불꽃이 아니라는 건 너무나 명확했다. 자신에게 닿는 모든 것을 순식간에 잿더미로 만들어버리고 있었으니 말이다. 애초에 불꽃이 맞는지도 의문이었다.
어쨌든 이한은 공간과 공간을 오가며 자신을 소멸시키려는 불꽃 괴수의 공격을 피해냈다. 그는 허공을 자유자재로 부유했고 그의 뒤를 쫓아 매서운 불길이 모든 것을 불살랐다. 겉으로 보기엔 화려하기 그지없었으나 그 결과는 모든 것의 소멸이었다. 이한 역시 불길에 닿는 즉시 소멸하고 말 것이다.
【언제까지 도망칠 수 있을 것 같은가? 그것이 너를 증명하는 방법인가?】
그때 아훔의 음성이 다시 울려 퍼졌다. 물론 불꽃 괴수의 공격은 멈추지 않고 지속 되었다. 이한 역시 연신 놈의 공격을 피해내고 있었다.
【가장 작은 개체도 대항할 수 없는 네가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당장 우리 엘더가 이들에 대한 통제를 놓아버리면 이들은 봉인을 부수고 모든 것을 집어삼키기 시작할 것이다. 우주는 광활하니 그 일이 당장 이뤄지진 않을 수도 있겠지. 하나 결국엔 모든 것이 종말을 맞이할 것이다. 모든 것이. 그것이 네가 원하는 결말이던가? 우리의 대안이 멸망을 피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너도 곧 그것을 인지하게 될 것이다.】
콰아아앙!
아훔의 말과 동시에 거대한 불꽃이 이한을 향해 쇄도했다. 이한은 불꽃이 쇄도하는 방향에 실드를 펼쳤으나 불꽃은 아무렇지 않게 실드를 파괴하고 이한에게 짓쳐 들었다.
강력해진 이한의 능력으로 만든 실드마저 단번에 부순 위력이니 아마 그 어떤 것도 이러한 공격을 막을 수 없을 것이다. 그건 주변 광경으로 이미 증명된 사실이었다.
이한은 급히 공간을 이동해 불꽃을 피해냈으나 심지어 불꽃은 공간 이동한 이한의 위치를 정확히 포착하거나 추격해 그곳을 불살라버리곤 했다. 공간이 왜곡되어도 불꽃 괴수가 쏜 공격은 그 모든 것을 무시하거나 파괴했다. 가공할 능력이 아닐 수 없었다.
이번에도 간신히 공격을 피해낸 이한은 급히 행성의 지표면을 바라봤다. 이제 한계에 달한 상황이었다. 그러니까 행성이 곧 폭발할 거란 소리였다.
이한이 그것이 인지하기 무섭게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잘게 갈라진 틈 전부에서 강렬한 빛이 토해지더니 이내 곧 거대한 굉음과 함께 폭발을 일으켰다.
콰아아아앙! 콰앙!
이한은 미처 피할 새도 없이 강력한 폭발에 휩쓸릴 수밖에 없었다. 그건 이한뿐만 아니라 불꽃 괴수 역시 마찬가지였다.
모든 것을 찢어발기는 강력한 폭발이 온몸을 휘감았다. 순식간에 살과 뼈가 불타오르고 녹아내리며 소멸했다. 행성이 폭발하는 순간에 휩싸였는데도 멀쩡할 수 있는 생명체가 있던가? 그건 이한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는 그야말로 순식간에 재가 되어 흩날렸다.
하나 한 존재만은 어떤 타격도 입지 않고 멀쩡했다. 바로 불꽃 괴수였다. 오히려 놈은 행성이 폭발하자 훨씬 더 거대한 형태로 변모했다. 마치 놈이 행성을 삼키고 그 몸집을 불린 것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지녔던 행성은 결국 마지막 빛을 토해내고는 먼지로 변해 영원히 사라졌다. 행성이 있던 자리에 존재하는 것은 불길한 불꽃에 휩싸인 기묘한 존재였다.
불꽃 괴수는 자신 앞에 불꽃으로 원을 그렸다. 그러자 그 원 안으로 기묘한 공간이 형성되었다. 그건 이한이 완성했던 워프 게이트와 매우 비슷해 보였다.
【그 어떤 존재도 안전할 수 없으니 네 애착을 끊어주리라. 그리하면 너 역시도 현실을 직시하리니.】
불꽃 괴수는 그렇게 만든 공간으로 자신의 몸을 던졌고 공간은 불꽃 괴수를 모조리 삼켜버렸다. 그 모습을 마지막으로 행성이 있던 자리에는 원래부터 주인이었던 공허만이 이곳의 모든 것을 채우고 있었다.
그렇게 모든 것이 암흑과 허무함 저편으로 영원히 사라지려는 순간 수없이 많은 입자가 일렁이더니 이내 곧 한 사람의 형상을 빚어내기 시작했다.
뼈가 완성되고 핏줄과 근육이 생성되더니 이내 곧 완전한 사람을 완성했다. 그는 바로 이한이었다.
눈을 감고 숨도 쉬지 않은 채 그야말로 어떤 미동도 보이지 않던 이한은 돌연 눈을 번쩍 떴다. 그러자 그의 앞에 불꽃 괴수가 만들었던 것과 같은 공간이 형성되었다.
이한은 어떤 망설임도 없이 그 공간으로 몸을 던졌다. 공간 안에 들어선 이한은 헤아릴 수도 없을 정도로 거대한 우주가 자신과 연결되는 충만한 감각에 휩싸였다.
아울러 거대한 존재를 인지할 수 있었다. 그 존재는 바로 이한보다 먼저 공간을 통과한 불꽃 괴수였다. 불꽃 괴수가 향하던 저편으로는 무수히 많은 함대가 서로 전투를 치르고 있었다.
이게 어떻게 가능한지는 모르겠으나 테라를 비롯한 그 속에 속한 무수히 많은 존재를 동시에 확인할 수 있었고 당연히 시에라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랬다. 불꽃 괴수는 테라와 연관된 모든 이들을 소멸시키기 위해 이동하고 있었다. 시간으로 따지면 찰나에 불과했다.
하나 이한에게는 영원처럼 늘어진 시간처럼 느껴졌다. 이 공간에 들어선 순간 모든 것이 멈춘 것처럼 느껴졌으니까.
그랬다. 이곳에서는 시공간의 경계가 의미가 없었다. 시간의 흐름이 무용하고 공간의 경계도 쓸데없으니 먼저 진입한 불꽃 괴수든 늦게 진입한 이한이든 같은 공간과 같은 시간에 놓여있었고 동시에 다른 공간과 다른 시간 위에 놓여있었다.
모든 것의 교차로 같은 느낌이랄까? 그것도 정확하진 않았다. 기존의 어떤 것으로도 이곳을 설명할 수 없었으니까. 설명한다고 해도 오해만 증폭시킬 것이 분명했다.
이러한 세계는 기존의 세계에 기존의 관념과 상식으로는 어떻게 형언하기 어려운 것들이었으니 직접 경험해보는 것 외에는, 아니 경험하더라도 이곳의 모든 것을 인지하기란 불가능했다.
그때 아훔의 목소리가 다시 울려 퍼졌다.
【초공간의 불꽃 괴수는 허상이나 엘카힘의 초공간에 들어선 이상 실제가 되었다. 이곳을 벗어나는 순간 네 모든 세계를 파괴할 것이다. 너는 결정해야 할 것이다. 네 세계가 모조리 파괴된 후 더 이상 지킬 것이 없는 좌절감으로 우리의 계획을 바라볼 것인지 아니면 네 결단으로 우리와 함께할 것인지를 말이다.】
이한은 아훔의 말에서 이곳이 엘카힘의 초공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룰 수 있는 의지만 있다면 무엇이든지 이룰 수 있는 공간이 바로 초공간이라는 곳이다.
칼가로아나 엘더가 형성한 초공간은 엘카힘으로 인해 제약이 있었으나 이곳이 정녕 엘카힘의 초공간이고 불꽃 괴수가 이곳을 통과해 원래 세계에 도달한다면 아훔의 말대로 불꽃 괴수는 더 이상 아훔 등이 엘더의 초공간에서 창조한 허상 따위가 아니라 실체를 가진 진짜가 되어 모든 것을 초토화시킬 것이다.
자신이 완전히 소멸했음에도 다시 육체를 가지고 살아난 이유에 대해 생각할 겨를 따위는 없었다. 마찬가지로 아훔이 그것을 어떻게 짐작하고 있었는지도 말이다.
불꽃 괴수를 막지 못하면 테라의 모든 존재, 아니 시에라가 죽는다.
“아니. 너희의 계획은 쓰레기다.”
【그런가? 그렇다면 증명하라!】
“너희가 쓰레기라는 것을?”
【증명하지 못한다면 네 모든 것은 영원 저편으로 사라지리라.】
그 말을 끝으로 불꽃 괴수가 자신을 둘러싼 막을 찢어내기 시작했다. 겹겹이 둘러싸인 투명한 막들이 불꽃 괴수의 힘을 이기지 못하고 요란하게 찢겨나갔다.
“그렇게 두지 않아!”
이한이 버럭 소리를 지르며 손을 내뻗자 불꽃 괴수의 팔다리가 마치 결박된 것처럼 움직임을 멈췄다.
“크르르르르.”
불꽃 괴수는 자신의 움직임이 멈춘 것에 대해 분노했는지 이한을 향해 낮게 울부짖었다.
하지만 이한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허상은 허상으로 돌아가라. 주제넘게 세계를 넘보지 말고.”
“크워어어!”
이한이 말이 끝나기도 전에 결박된 불꽃 괴수의 팔다리가 흐물흐물 녹아내리더니 이내 곧 거대한 불뱀으로 변해 이한에게 짓쳐 들었다. 거대한 불뱀은 그 몸집만큼이나 커다란 아가리를 쩍 벌리며 이한을 씹어먹으려 들었다.
불뱀 앞에 이한은 너무나 나약하고 하찮은 존재처럼 보였다. 몸집이나 기세 모든 것에서 이한을 압도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한은 무심한 눈빛으로 불뱀을 바라보며 양손으로 뭔가를 찢듯이 허공을 잡아당겼다.
그 순간 당장에라도 이한을 삼킬 것처럼 짓쳐 들던 불뱀의 아가리는 반으로 찢어져 불뱀의 몸뚱어리를 둘로 갈라지게 만들었다.
우두두둑! 촤아악!
“크에에엑!”
바닥인지 허공인지 모를 공간에서 연신 꿈틀거리던 불뱀은 서로 합쳐지는 것처럼 보이다가 이내 곧 힘을 잃고 깔끔하게 소멸되었다.
그와 동시에 이한은 차가운 어조로 입을 열었다.
“꺼져라!”
그러자 아훔의 음성이 다시 울려 퍼졌다.
하나 전과 다르게 그 음성은 힘이 없었고 점점 더 약해지고 있었다.
【우리 엘더는 결국 엘카힘을 넘어설 수 없었다. 그 사실이 실망스러우면서도 다행스럽구나. 인정한다. 네가 엘카힘의 전승자임을···. 우리 종족의 희생을 기억해준다면 자비를 베풀어주길 바란다. 부디 네 선한 의지가 마지막 순간까지 꺾이지 않기를···.】
아훔의 음성이 사라진 순간 이한은 아훔이 영원히 소멸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와 동시에 이한은 자신이 초월구조체의 모든 권한을 가진 마스터가 되었음을 인지했다.
다시 말해 자기 마음대로 모든 것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거의 전능한 능력을 소유하게 되었다는 뜻이다.
하지만 그 사실은 이한에게 별다른 감흥을 안겨주지 않았다. 아훔이 깃든 불꽃 괴수, 곧 불멸자라 불리는 존재를 소멸시키기 전에 깨닫게 된 사실에 비하면 그건 별로 충격적인 내용도 아니었다.
‘믿기 힘들지만 나 역시 불멸의 존재였다···.’
자신은 엘카힘의 유물이라 불리는 산물을 얻기 전부터 불멸자와 비슷한 존재였다. 그러니까 이세계에 처음 떨어져 크락투의 습격을 받던 그 순간에 이미 불멸자였다는 소리다.
그 전에 한 번이라도 죽었다면 더 쉽게 깨달았을 수도 있었겠지.
하나 완전한 소멸을 맞이한 순간 자신의 일부분이 크게 떨어져 나가는 것을 느꼈다. 죽음을 통해 이 자리까지 오게 되었다면 지금의 자신은 자신이 아니었을 것이다.
“하아아···.”
이한은 모든 것이 멈춘 공간에서 한숨을 내쉬었다. 엘카힘이라는 존재들은 이 순간에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어딘가 숨어서 뭔가를 계획하고 있거나 어쩌면 아마 어쩌면 엘더가 그러했듯 엘카힘은 자신들의 과오를 되돌리기 위해 모든 것을 희생했는지도 모르지.
이한은 시에라를 바라봤다. 테라를 수호하기 위해 적들과 맞서 싸우는 그녀의 결의를 느낄 수 있었다. 그녀의 슬픔 역시.
엔두카함으로 이뤄진 함대가 자투, 시구루스, 볼테르안 함대를 밀어붙이고 있었다.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전쟁은 승리할 것이다. 뭐 특별한 일이 있더라도 초월구조체의 마스터가 된 이상 자신의 마음대로 승리를 가져올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했다가는···.’
봉인된 불멸자가 모조리 풀려남은 물론 새로운 불멸자들이 탄생할 것이다. 불멸자는 곧 엘카힘의 오만을 징치하기 위해 나타난 징벌자들이었다. 아마도 그럴 것이다.
그러니 저들과 똑같은 절차를 밟을 수는 없다. 엘카힘의 전승자가 된 이한은 엘카힘이 진정으로 무엇을 하기를 원했는지 알아차렸다. 저들은 자신들의 과오를 모조리 되돌리고 싶어했다.
“하지만 그건······.”
이한은 눈을 질끔 감았다.
“그건 둘째치고 일단 불멸자들을 처리해야겠지···.”
초월구조체의 모든 권한을 얻은 이상 일일이 찾아다닐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불멸자를 처리하는 일이 대체 얼마나 많은 세월을 요구할지는 이한도 짐작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나중으로 미룰 수도 없었다. 초월구조체의 권한이 모두 해제된 이상 불멸자가 봉인된 장치들이 모두 그 기능을 잃어버렸으니까.
다시 말해 엘카힘이 초공간을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없게 만드는 것이 곧 불멸자를 봉인하는 봉인구인 셈이었다.
그것을 고려하면 확실히 엘더는 모든 종족 가운데 엘카힘에 가장 가까이 다가선 종족이었다. 불멸자를 연구할 수 있었다는 건 일부분이나마 엘카힘의 봉인을 자력으로 해제했다는 뜻이니 말이다.
어쨌든 자신이 저들을 처리하지 않는다면 불멸자는 반드시 모든 문명과 모든 생명을 제거할 것이다. 아울러 모든 세계도.
한참 동안 시에라를 말없이 바라본 이한은 자신에게 다짐하듯 입을 열었다.
“···. 그렇게 오래 걸리게 하진 않을 거다.”
그 말을 끝으로 이한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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