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mmander of the Space Gamer RAW novel - Chapter 25
25.
‘정신 차려라. 지금 이럴 때가 아니야.’
그런 이한의 모습에 거주민으로 보이는 한 사내가 비척거리며 다가왔다.
“어이 이봐! 다른 데 갈 것 없이 좋은 물건 가지고 있는데 한 방 맞을래? 이거 끝내주는 물건이라고! 아주 질질 쌀 거야.”
눈이 풀린 사내가 대체 뭐로 만든 건지 정체를 알 수 없는 물약 비슷한 것을 흔들며 이한의 앞을 가로막았다. 뭐 마약이겠지.
“그건 됐고. 가상현실 좀 이용하고 싶은데.”
“그깟 가상현실보다 이게 더 끝내주는 거야! 샘플로 하나 줄 테니까 일단 써봐! 써보면 생각이 확 달라질걸?”
이한은 그가 찔러주는 샘플을 받으면서 다시 물었다.
“좋아. 써보고 괜찮으면 구매하도록 하지. 그보다 끝내주는 가상현실 없어? 하다가 뒈져도 모를 정도로 현실적인.”
“미친. 아무리 쾌락이 좋다지만 목숨 걸고 그런 걸 왜 하는지 모르겠단 말이야. 저쪽 길로 따라가다 보면 하나 있을 거야.”
제 몸 상하는 줄도 모르고 마약을 꽂아 넣는 놈이 할 말은 아니지 않나? 이한은 내심 황당했지만, 제 인생 지가 살아가는 거 상관할 바는 아니었다.
이한은 다른 행인에게 말을 거는 사내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그가 알려준 방향 그대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
도착한 그곳엔 휘황찬란한 간판이나 광고도 없었고 사납게 생긴 사내들만 득실거리고 있었다. 그 가운데 자기 머리만한 팔뚝을 가진 사내가 팔짱을 낀 채로 이한을 노려보며 말했다.
“어이! 괜히 기웃거리다 피 보지 말고 저리로 꺼져.”
이한은 어깨를 으쓱거리면서 그에게 말했다.
“뭐든 가능하나?”
“꺼지라고 했다.”
그 말과 함께 사내들이 사방을 둘러싸기 시작했다.
기초훈련을 통달한 이한은 이들을 어떻게 때려눕혀야 할지 이미 머릿속에서 계산이 끝났지만 적을 더 만드는 건 어리석은 짓이었기에 싸울 생각은 애초에 없었다.
“워워 진정해. 단속국의 요원 같은 건 아니니까. 나는 극도로 현실적인 가상현실을 원할 뿐이야. 정 믿지 못하겠다면 얼마 전 정박한 헤러틱 함선을 조회해보라고.”
“그걸 무슨 수로?”
“이거 왜 이래? 불법 프로그램을 다룬다면 스테이션의 눈을 피해 신원조회를 하는 건 어려운 일도 아닐 텐데?”
팔뚝이 굵은 사내는 살짝 인상을 찌푸리며 이한에게 말했다.
“······. 이거 정신 나간 놈이군. 너 마이노르가 어떤 놈인 줄은 아는 거냐?”
남자의 말에 그사이에 이미 마이노르와 자신의 통신내용을 확인해봤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제대로 찾아온 모양이다.
“내가 알 필요가 있나?”
사내는 이한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대뜸 말했다.
“한이라고 했나? 난 코스타다. 그래서 뭘 원하지?”
“뭐든지?”
“뭐든지. 하지만 고객의 비밀보장 이딴 건 없어. 변태스러운 짓거리를 즐기는 것까지는 좋은데 우리가 그 비밀을 보장해줄 이유는 없지. 단 별도의 비용만 지급한다면야 뭐.”
환락가의 가상현실보다 더욱 현실적인 짓거리를 원하는 변태 새끼들이 주요고객층이었다.
대개는 이런 새끼들이 실제 현실에도 흉악한 범죄를 저지르는 경우가 태반이었지만 그건 자신이 알 바가 아니었다. 그 새끼들이 병신이라서 그런 거지 뭐 내가 그 새끼들보고 범죄를 저지르라고 말한 건 아니니까.
눈앞의 한이라는 놈 역시 앞뒤 가리지 않는 부류로 보이니 자극적인 것을 찾아온 것이 분명했다. 놈이 뭘 원하든 역시 알 바 아니었다. 서비스를 제공하고 돈을 받고. 그거면 된 거다. 잘못된 거 있나?
일단 코스타의 생각은 그랬다.
이한은 사내의 말을 끊고 입을 열었다.
“확인해볼 게 있어서 말이야. 초능력을 구현한 가상현실도 가능하나? 무공이라든지 마법이라든지 뭐든 간에 구현이 가능하다면······.”
코스타는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이한의 말을 끊고 되물었다.
“뭐?”
“안 되나?”
“그런 건 애들 게임만 뒤적거려도 숱하게 나오는 거다. 이거 정말 정신 나간 놈이네. 됐고 꺼져. 이 새끼야.”
코스타가 고갯짓하자 등 뒤와 좌우의 사내놈들이 이한을 향해 몸을 움직였다.
이한은 먼저 뒷발 차기로 뒤에 있던 놈의 배를 가격해 주저앉게 만듦과 동시에 돌려차기로 우편에서 짓쳐 드는 사내의 머리를 가격했다.
그리곤 그대로 공중으로 뛰어올라 제비를 돌며 왼쪽에서 짓쳐 드는 사내의 머리도 후려 찼고.
세 명의 사내가 순식간에 무력화되어서 바닥에 쓰러졌다. 기초훈련을 통달했지만 이런 움직임이라니······. 한 이드라실이 원래 단련된 육체를 가졌기 때문인지 아니면 레벨업 효과 때문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다.
이한은 긴장한 기색이 역력한 코스타 등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저들은 저마다 무기에 손을 올리고 있었다.
“코스타라고 했나? 알겠지만 그거 쓰면 너도 멀쩡하지는 못할 거다. 그리고 오해한 모양인데 내가 지금 너랑 장난이나 치려고 여기까지 온 게 아니야. 다시 묻지. 돼? 안 돼? 그것만 말해!”
“현실이 아니라 가상이다. 현실에서도 초능력자가 있는 판국에 그딴 것 하나 구현하지 못할까! 길게 말할 것도 없이 애들 게임에 조미료만 팍팍 치면 끝날 문제다.”
이한은 어깨를 으쓱거리며 코스타에게 말했다.
“그럼 지체할 것 없이 바로 가자고.”
눈매를 좁히며 이한을 바라보던 코스타가 입을 열었다.
“가격은 삼천 크레딧. 선불이다.”
“크레딧? 아아. 이걸 어쩌나? 지금 크레딧이 없어.”
“장난하자는 건가?”
“대신 헤러틱 함선을 담보로 걸지. 크레딧으로 지급하지 못하면 적당하게 부품을 떼어가. 하이퍼드라이브 고치지 못하면 어차피 팔아야 할 각이니까. 아마 그게 너한테도 남는 장사일거다.”
코스타는 이한을 다시 사나운 눈초리로 노려보다가 입을 열었다.
“······. 좋아. 따라와.”
*
코스타는 당황한 표정으로 부하에게 소리쳤다.
“텔모! 저 새끼! 저 새끼 바로 끄집어내! 어서!”
위이잉! 위잉!
요란한 경고음이 정신을 사납게 하자 코스타가 다시 소리쳤다.
“씨발! 경고음도 어서 꺼! 이 새끼 대체 뭔 짓을 한 거야?”
숙련된 해커이자 프로그래머인 코스타조차 지금 일어난 일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급히 로그를 확인해본 코스타는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이만한 에너지가 흘러 들어갔으면 이미 뒈졌어야 정상이다. 대체 가상현실에서 뭔 짓거리를 하는 거지?”
하지만 이한을 끄집어내려는 이유는 이한의 안전을 고려해서가 아니었다. 증거를 인멸하기 위해서였다. 스테이션 전체가 잠시나마 다운이 될 정도로 엄청난 양의 전력을 무단으로 도용한 셈이다.
그 원인이야 어쨌든 그게 자신이 만든 불법 프로그램 때문이라는 게 걸리면 최소가 종신형일 거다. 십중팔구는 사형일 테고.
수없이 많은 불법 프로그램을 돌렸지만 이런 경우는 단연 처음이었다. 그러니까 이건 자신의 실수도 아니고 자신이 만든 프로그램 때문도 아니다.
그러나 스테이션 관계자가 자신의 말을 믿어줄 리는 만무했으니. 한 마디로 X 된 거다.
“이 새끼!”
갈아 마셔도 시원찮을 놈이다.
“저 새끼 육체는 갈아서 비료로 재활용시켜버리고 짐 싸서 서둘러 뜬다. 잡히면 우리도 비료행이 될 거다. 서둘러!”
소리를 지르며 계기판을 두들기던 코스타는 여전히 과전력이 공급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곤 버럭 소리를 질렀다.
“텔모! 이 새끼야! 저 새끼 끄집어내라고! 뇌가 타버리든 육체가 병신이 되든 그냥 끊어! 새끼야!”
“사실 좀 미안했는데 네 말을 들으니 마음이 편안해진다.”
정신없이 그간의 기록을 삭제하던 코스타가 뒤에서 들려온 낯설고도 익숙한 음성에 급히 고개를 돌려 음성의 주인공을 확인했다.
“한.. 한!! 이 새끼! 대체 뭔 짓을 한 거냐?”
주변을 바라보니 텔모는 물론 부하들이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피가 흥건한 것이 이미 죽은 모양이었다.
“글쎄다.”
이한은 코스타가 조작하고 있는 화면을 힐끗 바라본 뒤 다시 말을 이었다.
“과전력이라······. 음. 역시 워의 말대로 프로젤과 세라메틱과 밀접한 연관이 있는 모양인데······.”
“무슨 헛소리를 지껄이는 거냐?”
코스타가 권총을 뽑아 들며 이한의 머리에 겨누며 소리쳤다.
그러나 이한은 태연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가상현실을 이용하려 했을 뿐 죽일 생각은 없었어. 근데 상황이 바뀌었지. 너희도 가상현실을 이용하게 해주려 했을 뿐 죽일 생각은 없었잖아. 상황이 바뀌면 대개 선택도 바뀌더라고. 사람이라는 게 대부분 그래. 내 손해를 감수하면서까지 남의 입장을 헤아려 주지는 않거든. 그건 나 역시 마찬가지고.”
“이 새끼 뭐라는 거야? 그냥 죽어!”
코스타는 살기 어린 표정으로 손가락을 강하게 당겼다. 지척 거리였으니 이 거리에서 권총이 발사되면 이한의 머리가 박살 나는 건 기정사실이나 다름없었다.
턱!
그러나 코스타는 방아쇠를 당길 수 없었다.
방아쇠를 당기려는 순간 권총이 거짓말처럼 이한의 손에 들어가 있었기 때문이다.
“정말 내 요청에 딱 맞는 가상현실을 구현해준 게 고마워서 죽이기 껄끄러운 건 사실인데 아무래도 네가 죽어야 내가 편할 것 같다. 덮어씌우기도 편하고. 그러니 잘가!”
“자… 잠깐!”
텅!
털썩!
머리를 잃은 코스타의 육체는 그대로 스르륵 무너졌다.
“미안. 내가 좀 급해서 말이야.”
내가 아는 아이작은 복수에 미친놈이다. 아니 뭐 그전부터 미친놈이긴 하지만 어쨌든 아 씨발! 놓쳤네. 이러고 끝낼 놈이 아니다. 이곳 키아텍 스테이션뿐만 아니라 도주했을 만한 곳곳에 병력을 급파했을 것이 분명하다.
“그나저나 이건 좀 많이 황당하네······.”
가상현실에서 얻은 능력의 일부분을 내가 사용할 수 있는 거라면 무공, 마법 등 초능력에 관련된 능력 역시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시도한 일이었다. 바로 이 점을 확인해보고 싶었던 것이고. 왜냐고? 뭐라도 있으면 몸을 보호하기 더 쉬울 것 아닌가?
이번 역시 가상현실에서 극한의 상황을 겪긴 했지만, 적어도 이번에는 죽지는 않았다. 아무래도 유희를 목적으로 한 게임이다 보니 병사들의 훈련 프로그램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현실성만 많이 가미되었을 뿐이지.
‘하지만 이번에 죽었다면······. 높은 확률로 죽음을 맞이했을 거다. 워의 말대로 많은 에너지가 집중될수록 위험해질 테니.’
한 가지는 확실했다. 현실과 동떨어진 현상을 체득할수록 엄청난 양의 에너지가 필요하다는 점. 더욱이 워는 프로젤과 세라메틱을 필수요소라고 규정했다. 저번에도 그렇고 이번 역시 프로젤과 세라메틱을 소모했기 때문이다.
‘진천마신공, 초월의 마도서, SSS급 잠재력······. 진짜 모두 병맛스러운 이름인데······. 이름이야 어쨌든 꾸준히 레벨업만 할 수 있다면!’
일단 설정으로는 더하고 뺄 것도 없이 최강의 능력들이다. 그러니 현실에 그대로 구현만 된다면 크락투 그 개새끼들을 찢어 죽이는 건 일도 아니다. 기다려라. 이 새끼들아. 오함마 들고 내가 간다.
하지만 그전에 일단 좀 튀어야겠다. 키아텍 스테이션 놈들에게 밉보이면 오함마 들 시간도 없어진다.
어서 튀자! 여기 일은 코스타가 아름답게 해결해줄 테니. 헤이~ 브로! 뒷일을 잘 부탁한다.
26. 그래도 어! 내가 어!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