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mmander of the Space Gamer RAW novel - Chapter 26
26. 그래도 어! 내가 어!
양심의 가책? 없는 건 아닌데 일단 걔들도 날 죽이려고 했어. 그러니까 이건 여기서 끝난 문제다. 무엇보다 상황도 복잡한 마당에 머릿속까지 복잡하게 만들 이유가 없다.
‘결과적으로 3천 크레딧을 삥땅 쳤다는 점은 좀 걸리네. 이래 봐도 공정한 사람인데 말이야.’
걸음을 옮기던 이한은 스테이션 창밖으로 비친 우주를 바라봤다.
태양은 지구, 곧 테라의 130만 배에 달하는 부피를 지니고 있다. 그리고 그 태양은 1초마다 핵폭탄 1천조 개가 터지는 것과 같은 엄청난 양의 열에너지와 빛에너지를 내뿜는다.
그런 태양조차 우주의 관점에선 티끌과 같다. 일례로 UY Scuti라는 항성은 약 50억 개의 태양에 해당하는 부피를, 지구로 치면 6500조 개에 해당하는 부피를 지녔다. 간단히 이 항성 앞에 태양은 그냥 점이다.
이러한 각양각색의 별(항성) 수천억 개가 모여 은하를 이루고 다시 그러한 은하 수천억 개가 모여 우주를 이룬다. 이 또한 추정에 불과할 뿐, 대체 얼마나 많은 항성과 행성이 우주를 구성하고 있는지 감히 헤아릴 수도 없다.
불가능하겠지만 만약 핵폭탄에 해당하는 에너지를 사용할 수 있는 초인이 있다면 그를 당할 자는 없다고 봐도 되지 않을까? 더 나아가 태양이 품고 있는 에너지를 사용할 수 있다면? 그때는?
하지만 결론은 동일하다. 모두 티끌이다.
별 하나가 탄생하고 폭발하는 것보다 짧은 것이 인간사다. 위대한 자의 기억도 길어야 천년이며 만년이면 사라지고 없다.
그래서인지도 모르겠다.
우주를 바라보는 마음에 공허함과 거대한 고독이 고목의 뿌리처럼 깊숙이 얽혀드는 것은. 제 딴에는 방어기제를 사용한다고 사용했지만, 살인에 대한 후유증 때문인지도 모르지.
이한은 고개를 가볍게 흔들며 다시 걸음을 바삐 움직였다. 감정놀음에 휩싸여 시간을 낭비할 때가 아니다.
*
후루룹!
향긋한 커피향과 함께 입안을 감도는 쌉싸름한 느낌. 하… 한 잔의 행복이다. 한 모금의 행복이라 해도 좋고.
이한은 커피잔을 내려놓고 먹음직스러운 피자를 크게 베어 물었다.
우걱우걱.
이한은 피자를 입에 넣은 채로 말했다.
“그래서 수리는?”
빌리는 손으로 입가에 묻은 소스를 닦으며 이한에게 대답했다.
“한 사람의 이름밖에 들을 수 없었습니다.”
“누구? 설마 마이노르?”
“예. 하이퍼드라이브와 연동된 핵융합로 문제, 프로젤과 세라메틱 문제, 테라행까지 알아보는 족족 마이노르의 허가가 없이는 어떤 요청도 들어줄 수 없답니다. 거대한 스테이션이라면 뒷골목이라도 활성화되어 있겠지만 이런 수준의 스테이션이라면 동네 깡패 수준이 전부일 테니······. 혹시나 싶어 얘기를 꺼내봤습니다만 무슨 미친놈처럼 바라보더군요.”
이한은 미간을 좁히며 피자를 내려놓았다.
“이 정도 장악력이면 이미 그의 귀에 들어갔겠는데? 그나저나 시에라는 아직인가?”
상황이 이러하다면 더 자세한 것은 마이노르와 만나고 온 시에라와 반드시 상의해봐야 한다.
빌리가 단말기를 확인해보더니 이한에게 대답했다.
“협상이 길어지기라도 하는 모양입니다.”
“하긴 그 정도 권력을 지닌 자라면 요구하는 것도 평범한 것을 넘어설 테니······.”
시에라는 강단이 있는 여인이다. 손해보는 협상따위는 하지 않을 테니 그 일로 시간이 지체되는 모양이었다.
‘한데 어째 느낌이 싸한데······.’
이한은 빌리와 눈을 마주쳤다. 그의 눈을 바라본 이한은 자신과 비슷한 느낌을 받고 있음을 대번에 알아차렸다.
혼자만의 느낌이라면 착각일 확률이 높지만 그게 두 사람의 느낌이라면 말이 달라진다. 그게 세 사람, 그 이상이라면 아예 혼란을 주도할 수도 있다.
‘제길.’
이한은 남은 커피를 모두 마신 뒤 빌리에게 말했다.
“엠파이어 놈들이 나를 노린다면 빌리 너는 그 이유가 대체 뭐라고 생각해?”
“글쎄요. 사령관님께 초인공지능 외에 뭐가 더 있는 겁니까?”
“그걸 모르겠어.”
“음. 초인공지능을 이용하면 불모지 행성을 테라포밍하는 것도 가능하다고 들었습니다. 아니 프로젤 세라메틱만 충분하면 인공 태양 인공 테라까지 만드는 것도 불가능한 일이 아닙니다. 단 천문학적인 수량의 자원을 요하기에 이론에 불과하지만 말입니다.”
“테라포밍?”
테라포밍은 생명체가 살아갈 수 있도록 지구화하는 것을 말한다.
“자연적인 순환시스템을 형성하는 것이 극히 어려워서 그렇지 불가능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여러 문제가 남아있긴 해도 마르스가 바로 테라포밍의 대표적인 성공사례 아닙니까?”
“그러니까 네 말은 초인공지능 때문이다?”
“사령관님이 사령관인 것과 민간인들이 그토록 초인공지능체를 오매불망하는 이유가 뭐겠습니까? 초인공지능은 문명과 생명을 아우르는 씨앗이라 할 수 있습니다.”
문명인들이라고는 하나 자신이 쓰는 기기를 직접 만들어서 쓰는 사람은 극소수이며 그 극소수조차 문명의 모든 것을 알고 있지는 못한다.
그러나 초인공지능이 있다면 불모지에서 첨단 도시, 나아가 불모지 행성 전체를 테라포밍하는 것도 가능해진다. 그 전에 엄청난 양의 프로젤과 세라메틱이 확보되어야겠지만.
이제는 이한도 초인공지능의 가치를 충분히 안다.
하지만 납득이 되지 않는 부분이 있었다.
“리퍼는 몰라도 엠파이어 놈들이 나를 추격하는 이유로는 부족해. 초인공지능의 특수성에 대해 모르는 것도 아니고.”
초인공지능을 해킹할 수 있는 건 초인공지능 뿐인데 역으로 해킹당할 수도 있는 노릇이기에 고위 등급의 초인공지능으로 해킹을 시도해야 한다. 심지어 이것 역시 확률을 높여주는 것에 불과하다.
무엇보다 해킹 자체가 두 초인공지능의 물리적 접촉이 있어야만 가능한 일이며 초인공지능은 인간의 판단과 정보습득 능력을 아득히 뛰어넘었기에 당연히 속임수는 통하지 않는다.
이것만으로도 해킹이 불가능하다는 말이 되지만 설혹 해킹이 되더라도 그 최후의 순간 초인공지능은 자신의 본체를 구성하고 있는 프로젤과 세라메틱을 폭발시켜 버린다.
이러한 초인공지능의 자폭은 핵탄두 몇십 개에 비할 수준 아니다. 단순히 컨트롤 센터를 부순다고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게 아니다. 말했지만 초인공지능의 본체는 사령관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어쨌든 간에 고위 등급의 초인공지능을 잃어버릴 위험과 자폭의 위험까지 감수할만한 정보가 대체 뭐 얼마나 있을까?
‘무엇보다 그토록 중요한 정보가 있었다면 유니온이 모를 리가 없다. 그러니 초인공지능이 목적일 확률은 아무래도 희박해. 대체 뭐지? 왜 한 이드라실을 쫓는 거지?’
이한은 생각을 이어가다가 여유롭게 주변을 둘러봤다.
그러나 그의 눈빛은 먹잇감을 낚아채려는 매의 눈처럼 날카로웠다.
“빌리. 아무래도 문제가 생긴 모양이다.”
이한의 손을 바라본 빌리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 웃음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하. 제길. 오해한 것이길 바랬는데······.”
“이미 우리 위치를 파악하고 있다. 섣불리 움직이지 말고 기다려.”
“저도 벌집이 되고 싶진 않으니 참아보겠습니다.”
빌리는 저 멀리 모습을 드러낸 병력을 바라보며 이한에게 작게 말했다.
“예전의 감을 찾았다고 해도 스틸아머도 입지 않았는데 대체 어떻게 파악하신 겁니까?”
“말하자면 길어. 내가 지시를 내리면 그때 움직인다.”
빌리는 커피잔을 들며 이한에게 말했다.
“세 명입니다. 가능하겠습니까?”
“아니 여섯이다. 세 명은 이미 우리를 조준하고 있어.”
“허. 명령이 떨어지지 않기를 바래야겠군요.”
“그래. 지시하기 전까지는 엉덩이 딱 붙이고 있어.”
척척척!
경무장한 스테이션의 병사가 길거리에 앉아 있는 이한과 빌리에게 다가왔다.
“한! 당신을 스테이션 법에 의거 체포한다. 반항시에 즉각사살하라는 명령이 떨어졌으니 허튼 생각은 말도록.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나 뒤로 돌아라. 덩치! 너도 마찬가지다.”
이한이 순순히 자리에서 일어나자 빌리 역시 그를 따라 천천히 일어섰다.
“내가 대체 무슨 잘못을 저질렀기에?”
“환락가에서 불법 프로그램 사용에 참여했다는 정황이 포착되었다.”
“환락가? 설마 할 일이라는 게?”
빌리는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이한을 바라봤다.
“오해야.”
“예예. 뭐 이해는 합니다. 그래도 그건 직권남용 아닙니까? 하다못해 가려면 같이 가야지.”
“오해라고 말했다.”
“저 역시 이해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조용히! 너희는 지금 법집행 현장에 서 있는 거다. 더 이상의 잡담은 금지한다.”
병사의 강경한 태도에 이한이 태연하게 입을 열었다.
“그 전에 경관님. 하나만 묻겠습니다. 저는 불법 프로그램 사용으로 인해 체포하는 것이라지만 빌리는 왜 체포하는 겁니까?”
“상부의 명령이다.”
“상부라. 나도 사감(私憾)은 없어.”
“뭐?”
커억!
이한의 뒤에서 말을 꺼내던 병사가 고통스러운 비명과 함께 배를 움켜쥐고 바닥에 주저앉았다.
탕!
이한의 움직임을 발견한 옆의 병사가 급히 총을 쐈지만 병사는 괜한 시설물만 파괴했을 뿐이었다.
우두둑!
“으아아악!”
오히려 병사는 팔이 꺾이는 극심한 고통을 느껴야만 했다.
이한은 뒤로 돌면서 손바닥으로 뒤에 있던 병사의 배를 밀어쳤고 그것을 발견한 옆의 병사가 총을 사격하려는 순간 이미 몸을 피해 그의 팔을 휘감아 역으로 꺽어버렸다. 병사의 고통은 바로 그래서였다.
이한은 팔이 꺽인 병사의 손을 감싸쥐고 라이플을 사격했다.
퉁투퉁!
지문 인식 등과 같이 사용자가 아니라면 발포가 되지 않는 안전총기를 사용하고 있을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컥! 커억!
이한이 쏜 세 발의 총알은 조준하고 있던 나머지 병사들의 목숨을 단번에 앗아갔다. 그런 뒤 여전히 비명을 지르고 있는 병사의 턱을 주먹으로 후려갈겨 쓰러뜨렸다.
커억!
이한의 움직임을 예의주시하고 있던 빌리 역시 이한이 움직이기 무섭게 자신을 제압하려던 병사의 라이플을 빼앗고 개머리판으로 얼굴을 후려쳐서 제압한 상황이었다.
“제길. 이거 일이 갈수록 커지는데? 환락가라니 거긴 대체 왜 간겁니까? 아니 무슨 일을 벌였길래 이 모양입니까?”
“나중에. 아무래도 함정에 빠진 것 같다. 그도 아니면 그사이 우리에게 현상금이라도 걸렸던가. 그게 아니라면 조무래기에 불과한 우리를 상부에서 신경 쓸 필요가 없지. 아무튼 우리가 용병이 아니라는 걸 저들도 알았어. 아마 시에라는 감금되어 있을 거다.”
투둑!
빌리는 둔기로밖에 쓸 수 없는 라이플을 바닥에 던져버리며 주변을 살피다가 배를 부여잡고 기절한 병사를 바라봤다.
“이 병사 아까 손바닥으로 친 거 아닙니까? 아니 그건 됐고. 그래서 다음 계획이 뭡니까?”
“너도 알고 있잖아.”
“그게 설마 둘이서 시에라 중위님을 구하는 미친 계획을 말하는 건 아니겠죠?”
“제대로 알고 있네.”
“하! 돌겠군.”
27. 그래도 어! 내가 어!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