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mmander of the Space Gamer RAW novel - Chapter 27
27.
말총머리를 한 메마른 중년 사내가 느릿느릿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알고 있나? 인간은 비이성적이고 충동적이다.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것처럼 가장할 뿐이야. 그건 인간에게 내재된 슬픈 본성이지.”
금발여인은 말없이 메마른 중년 사내를 바라봤다.
“그래서 기준이 필요하다. 습관이든 관습이든 법이든 무엇이든. 기존체계를 거부하는 자들조차 저들만의 최소한의 기준이 존재해. 그래야만 저열한 본능을 억누르고 통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메마른 중년 사내는 손을 들어 홀로그램을 시에라 앞에 띄운 뒤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그러나 슬픈 본성이 적나라하게 투영된 전쟁은 모든 것을 무너뜨린다. 그렇게 원초적인 본능이 격돌하는 전장에 익숙해진 자는 다시는 원래 세계로 돌아갈 수 없어. 그렇게 생각하지 않나? 시에라 중위?”
홀로그램에는 금발여인의 얼굴과 그녀의 이름이 선명하게 떠 있었다. 금발여인은 바로 시에라였다. 시에라는 여전히 침묵을 지키며 홀로그램을 바라봤다.
“한 이드라실, 시에라, 모두 유니온 소속의 장교들이었군. 심지어 한 그자는 사령관이라고? 제법 연기를 잘하더군. 현상금이 걸리지만 않았으면 아마 나도 속았겠지.”
손을 휘저어 홀로그램을 없앤 중년 사내는 다시 말을 이었다.
“그건 그렇고 너희에게 걸린 현상금이 얼마인 줄 아나? 정확한 위치를 제보하는 것만으로 천만 크레딧이다. 무려 천만 크레딧.”
천만 크레딧. 정확하지는 않지만, 원화로 치면 100억이 넘는 돈이다.
“너희는 이미 죽은 목숨이다.”
시에라가 여전히 침묵을 지키자 말총머리의 메마른 중년 사내. 마이노르는 다시 말을 이었다.
“유니온 놈들은 모르겠지. 고작 100크레딧을 얻고자 서슴없이 사람을 살해하는 곳이 척박한 우주민의 삶이다. 인류의 발원지! 모행성! 모든 것은 테라에서 비롯되었다! 보기 좋은 슬로건을 내걸고 착취에 착취를 거듭해 온갖 부를 누렸던 유니온 놈들은 전장과 일상의 구분이 없어진 삶이라는 건 절대 모를 거다.”
“그 나이 먹고 지금 징징거리는 건가?”
시에라는 시니컬한 표정을 지으며 마이노르를 비웃었다.
“징징거린다라······. 너희 눈에는 그렇게 보일 수도 있겠군.”
마이노르는 피식 웃음을 터트리며 시에라에게 대답했다.
“헛소리는 그만 늘어놓자고. 왜 신고하지 않았지?”
“돌아갈 고향이 없는, 아니 휴식을 취할 보금자리마저 없는 삶이란 얼마나 처절한가? 그런데 시에라 중위. 당신은 스테이션 출신이더군.”
시에라는 미간을 좁히며 마이노르에게 말했다.
“대체 무슨 궤변을 또 늘어놓으려고 변죽만 울리는지 모르겠군. 마이노르, 당신은 신고하지 않았어. 대체 왜? 키아텍 스테이션에 누구도 봐서는 안 되는 보물이라도 모셔놓은 건가?”
마이노르는 어깨를 으쓱거리며 시에라를 바라봤다.
“예리하군. 예리해. 인류는 위대한 발견으로 다음 시대로 도약해왔다. 불의 발견, 금속의 발견, 증기기관의 발견, 나아가 프로젤과 세라메틱의 발견까지 흥미롭지 않나? 한 그자를 사로잡은 뒤에 남은 대화를 이어가도록 하지. 아주 흥미로운 이야기가 될거야.”
마이노르의 의미심장한 말에 시에라는 굳은 표정으로 생각에 잠겼다. 그런 그녀를 잠시 바라보던 마이노르는 방을 떠나면서 병사들에게 말했다.
”스펙터 교육까지 이수한 여인이다. 그러니 방심하지 말고 철저하게 감시해.”
“알겠습니다.”
“알겠습니다!”
*
빌리는 스테이션 벽에 붙은 시스템을 조작하고 있는 이한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러면서도 그의 눈은 쉴 새 없이 주변을 경계하고 있었다.
“아시겠지만 놈들의 무기는 사용할 수 없습니다.”
띠딕! 띡!
이한은 계기판에 시선을 고정하고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나도 알아.”
“제 말을 이해하지 못하신 모양인데 두 주먹만으로는 시에라는 중위님은커녕 저희 목숨도 부지하지 못합니다.”
이한은 여전히 스테이션 시스템을 조작하면서 다시 말을 이었다.
“여러 집단에서 동등한 능력의 상위 1%만 모아서 한 집단으로 구성하면 구성원 모두가 동등한 능력을 보유한 집단이 될 거로 생각하기 쉽지만, 그 집단에서도 다시 상위와 하위로 계층이 갈라져.”
빌리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면서도 황당하다는 기색을 감추지 않고 입을 열었다.
“저는 사회 시스템이나 역학에 관련된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 무기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만?”
“같은 맥락이야.”
대체 어딜 봐서? 라는 말이 목구멍 끝까지 밀고 올라왔지만 빌리는 반문하지 않고 말을 경청했다.
“아울러 사람이라는 존재는 자신 위에 누가 있는 걸 좋아하는 존재가 아니야. 상관을 존경하는 사람이 뭐 얼마나 될 거 같아? 존경할 만한 행동을 해야 존경? 까놓고 존경스러우면 존경스러운대로 혐오스러우면 혐오스러운대로 싫어할걸?”
빌리는 고개를 좌우로 저으며 입을 열었다.
“뭐 제 고백을 듣고 싶으신 거라면 예. 저도 사령관님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뭐 그래도 전우니까 부담스럽다라는 정도로 순화시켜 드리죠.”
“큭큭큭. 이해해. 나라도 나같은 상관은 싫을 거야. 어쨌든 마이노르와 같은 독재자라면 반대 세력이 있기 마련이지. 대개 그 세력은 밑바닥 계층에 뿌리를 두고 있는 경우가 많고.”
빌리는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이한을 휙 돌아봤다.
“거참. 처음부터 그렇게… 후우 됐습니다. 그러니까 지금 반란을 계획하고 있는 겁니까? 하지만 저희는 유니온의 군인입니다. 심지어 그 숫자는 둘뿐이고 말입니다. 뉴트럴에 속한 이들이 유니온과 엠파이어 두 진영 모두 좋아하지 않는다는 건 너무나 자명한 일이니.”
이한은 빌리의 말을 끊으며 입을 열었다.
“내 얼굴에 금칠을 하려는 건 아니지만 그중에 한 명은 유니온의 사령관이지.”
“음.”
빌리는 침음을 뱉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두 명이라고 무시할 계제가 아니었다. 사령관이 주는 무게감은 일개 마린 소대가 끼치는 영향력 그 이상일 테니까.
“반란까지는 아니더라도 도움을 주는 것을 거절하지는 않을 거다. 네가 말한 무기를 얻을 수도 있을 테고. 운이 좋다면 스틸아머도 얻을 수 있겠지.”
“허. 적의 적은 친구다. 이 말이 하고 싶으신 겁니까? 하지만 반란 세력이 없을 수도 있는 노릇 아닙니까? 마이노르라는 자의 스테이션 장악력이 대단하던데 말입니다.”
“그걸 지금 확인······. 제길.”
“하아. 제발 일이 잘 풀렸다고 말씀해주셨으면 좋겠군요.”
“잘 알면서 묻지마.”
“대체 뭔데 그럽니까?”
“백만 크레딧. 내 목에 백만 크레딧 걸렸다.”
“백… 백만. 후우. 내가 거주민이면 신고합니다. 당장 얼굴이라도 뜯어고치지 않은 이상······.”
“잠깐만. 잠깐만. 잠깐만. 이거 키아텍 스테이션에서 건 현상금이잖아? 으흠. 이거 이상한데?”
“그게 뭐 어쨌다는 겁니까?”
빌리의 반문에도 잠시 뭔가를 계산하던 이한은 빌리를 바라봤다.
“빌리!”
“예. 소위 빌리. 여기 죽지 않고 살아있습니다.”
“자세한 이야기는 생략하고 현상금을 건 주체는 키아텍 스테이션의 마이노르야.”
“그게 뭐 어쨌.. 음? 키아텍에 반란 세력이 존재한다면 마이노르가 내건 현상금에는 흔들리지 않겠군요.”
“백만 크레딧이면 흔들릴걸? 일단 넘기고 활동자금으로 사용할 수도 있잖아.”
“하아. 대체 무슨 소리를 하고 싶으신 겁니까?”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빌리 네게는 현상금이 걸리지 않았어.”
이한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눈치 챈 빌리는 진지한 눈빛으로 이한을 바라봤다.
“혼자 괜찮으시겠습니까?”
“괜찮아. 이번에 내가 좀 업그레이드 됐거든. 크락투 그 개새끼들만 아니라면 아주 괜찮을 거 같아.”
빌리는 황당하다는 듯 이한을 바라보다가 실없는 웃음을 터트렸다. 그래 웃자. 웃어. 이 상황에서 뭘 어쩌겠는가?
“큭큭큭. 그래서 제가 정확히 뭘 하면 됩니까?”
“경관에게 얻은 키로 스테이션의 로그도 살펴봤는데 상업지구나 주거지구는 일단 아니고 환락가 지구가 유력해. 오! 가서 소원 좀 풀고 와! 상관으로서 허락한다!”
“그럴 여유나 주고 그런 말씀을 하시죠!”
“그래······. 나도 그 망할 여유가 없었어!”
“큭큭!”
“접선하게 되거든 네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유니온에게 우리의 위치와 상황을 전달하는 거다. 저쪽에도 머리가 있는 놈이 있다면 그 정도 도움은 거부하지 않을 거다.”
“병력 지원이 아니고요?”
“너 같으면 병력 지원하겠냐? 둘을 돕고자 병력을 움직일 정도라면 반란이 일어났어도 벌써 일어났어야지. 불가능한 소리야.”
“다른 대안은 없는 겁니까?”
“잘 알면서 또 묻는군.”
빌리는 이한을 바라보며 진지하게 말했다.
“사령관님께서 혼자 뭘 어떻게 하려고 그러는 건지 감이 오지 않지만 어쨌든 버티고 계십시오. 어떻게든 지원 병력 만들어서 가겠습니다.”
이한도 웃음기를 지우며 빌리에게 말했다.
“기대하지. 빌리. 너도 조심해.”
*
“한 이드라실? 잡으면 백만 크레딧이라고? 그야말로 걸어 다니는 뽀나스로군.”
“잡으면 반띵! 어때?”
“나야 좋지. 그래도 오십만 크레딧인데.”
“좋아! 그렇게 하는······ 커억!”
우두둑!
웃으며 말을 뱉으려던 스테이션 병사는 하던 말을 마저 다 잇지 못하고 목이 기괴하고 돌아갔다.
“이.. 이 새끼!”
그것을 바라본 병사가 어둠 속에서 나타난 적을 향해 라이플을 겨누었지만 이미 온데간데 없이 사라졌다. 정확하게는 사내의 뒤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우두두둑!
또다시 소름끼치는 소음이 울려 퍼지고 어둠 속의 사내는 급히 어디론가 이동했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일단 시에라부터 구출한다. 일단.’
그는 바로 이한이었다.
28. 그래도 어! 내가 어!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