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mmander of the Space Gamer RAW novel - Chapter 29
29. 나는 나의 일을.
이한은 엘린을 따라 움직이면서도 의아함을 감추지 못했다. 유니온의 도움을 얻고 싶다면 굳이 나를 돕지 않아도 가능한 일 아닌가? 왜 쓸데없는 위험을 감수한단 말인가?
“제 도움을 얻고 싶은 게 맞다면 서로 솔직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까?”
이한의 날카로운 발언에 엘린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하지만 그보다 저항군 병사의 말이 빨랐다.
“이쪽입니다.”
그와 동시에 앞서 이동한 다른 병사가 어딘가 지하로 향하는 문을 급히 열었다.
덜컹!
“잠시만요.”
그 모습에 엘린은 이한에게 양해를 구한 뒤 저항군에게 말했다.
“전기장은 어떻게 되었죠?”
“우리가 통과하는 시점에 맞춰서 해제될 겁니다. 서둘러야 합니다.”
잠시 고개를 끄덕이던 엘린이 이한에게 다시 말했다.
“일단 이동하면서 말씀드리죠.”
“설명부터.”
“시에라라는 동료를 구하려는 것 아니었나요? 이 통로는 그녀가 감금된 빌딩과도 연결되어 있습니다. 통상적으로는 통로 곳곳에 전기가 흘러서 통행이 불가능하지만, 전력차단과 더불어 예정된 폭발 등으로 당분간 눈치채지 못할 겁니다. 어떻게 하실 건가요?”
이한은 별수 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거린 뒤 엘린보다 앞서 지하 통로에 진입했다.
완전히 어둠으로 둘러싸인 곳이라 저항군들은 라이플에 달린 라이트를 켜서 통로를 밝혔다.
“서둘러야 합니다. 전력이 차단되긴 했지만 완벽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길잡이로 보이는 저항군이 다급한 어조로 말을 꺼내며 먼저 빠르게 이동하기 시작하자 이한 등도 그를 바짝 따라갔다.
엘린이 이한의 뒤에서 말을 꺼냈다.
“무엇이 알고 싶으신 건가요?”
“알고 싶은 건 무더기지만 간단하게 첫째 유니온의 도움이 필요하다면 그냥 도움을 요청하면 될 일인데 굳이 나를 돕는 위험을 감수한 일. 둘째 침투 임무 같은데 당신 같은 사람이 함께하는 이유. 아무리 봐도 전투훈련을 받은 사람 같지는 않군요.”
“저 역시 간단하게 말씀드리죠. 저는 유니온이 키아텍 스테이션을 점령하고 철저하게 수색해주길 바라고 있어요. 그러기 위해선 유니온이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의 보증이 필요합니다.”
키아텍 스테이션을 점령해? 확실히 민간그룹 소속의 연구원이나 저항군이 요청한다고 들어줄 사안은 아니었다. 뉴트럴에 속한 곳을 함부로 건드렸다간 상당히 복잡한 문제를 야기할 수 있으니 결코 간단한 요청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혹시 제가 누군지 아는 겁니까?”
“아니요. 제가 아는 건 당신이 유니온 소속의 한 이드라실이라는 점이 전부예요. 하지만 마이노르는 당신에게 백만 크레딧이라는 현상금을 걸었어요. 제가 알기로 마이노르 그자는 상당히 계산적이고 냉철한 사람이에요. 이 사실은 당신이 제법 중요한 사람이라는 방증이 될 수 있겠죠.”
“음.”
이한이 침음을 던질 때 엘린이 다시 말했다.
“하지만 당신이 중요한 신분이 아니라도 상관없어요. 유니온 소속이 확실하다면 그 자체로 우리가 전하는 정보에 신뢰성을 높여줄 수 있을 테니까요. 적어도 차선책은 될 수 있겠죠. 말했지만 이곳에서는 불법적이고 광범위한 생체실험이 자행되고 있어요. 반드시 멈춰야만 해요.”
저항군들은 삼엄하게 주변을 경계하며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반면 이한은 마실을 나온 것처럼 편안하게 이동하고 있었다.
다른 이들과 달리 방심하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예민해진 감각으로 주변의 정황을 눈으로 보듯 파악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생체실험을 막아야 한다? 뭐 그건 좋습니다만 연구원인 당신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일 같습니다만? 수석연구원이라면 회사에 보고해서 처리하면 될 일 아닙니까?”
“하아.”
엘린은 어두운 안색으로 말없이 한숨을 내쉬었다. 물론 어둠 속이라 어두워진 안색을 확인하기 어려웠지만 말이다.
그녀는 다시 말을 이었다.
“당신도 군인이라면 저희 제품을 써봤을 텐데요?”
“음?”
“힐링펙터라고 긴급 의약품이죠.”
힐링펙터는 세포재생력을 극단적으로 활성화해서 불과 몇 분 내로 상처를 봉합시키는 의약품이었다. 극심한 통증을 유발한다는 단점을 제외하곤 흠잡을 게 거의 없는 획기적인 의약품이었다.
민간기업이긴 하나 이러한 의약품을 생산하고 있는 제르카 기업은 상당히 거대한 기업으로 일단 뿌리는 유니온에 두고 있었다.
그러나 뉴트럴에 뿌리를 둔 기업이든 엠파이어에 뿌리를 둔 기업이든 기업은 기업이다. 이윤창출을 위해서라면 기존 삼대 세력권을 넘나드는 건 예삿일에 불과했다.
유니온이나 엠파이어가 이들을 통제하려 들지 않는 건 아니나 찔러주는 뇌물에 민감하지 않은 인사가 뭐 얼마나 되겠는가? 특별한 일이 발생하지 않는 한 유명무실한 통제에 불과했다.
따라서 거대 기업이라함은 세 세력권 모두에게 일정부분 영향을 미치는 기업이라는 소리다.
단 군수물자를 전담하는 방산(防産)기업은 예외로 이러한 기업들은 각 세력과 밀접한 연관을 맺고 특별히 관리되었다.
참고로 생필품을 생산하는 기업을 제외하고 이러한 방산기업 등은 상당수 기형적인 구조로 운용되는데 자금의 대부분을 연구에 투자할 뿐, 생산 활동을 거의 하지 않는다.
그건 바로 가장 막강한 생산자인 초인공지능 때문이었다. 초인공지능의 마스터에게 사령관이라는 상당한 권한을 부여하면서 품에 안으려는 이유가 이것과도 밀접한 연관이 있었다.
어쨌거나 초인공지능은 실존하는 거의 모든 기술을 사용할 수 있지만, 당연히 그 기술은 공짜가 아니었다.
따라서 사령관은 지적 재산권이나 특허권 등에 따른 비용을 정산하여 일괄적으로 소속된 세력에 지급했다. 만약 지급하지 않는다면? 생존할 자신이 있다면 그래도 상관없겠지만 그 일과 연관된 모든 세력이 가용한 모든 제재를 가할 것이다.
결론적으로 연합권이든 제국권이든 중립권이든 전쟁을 막을 이유가 없다. 누군가 죽어 나가든 말든 이윤이 발생하는데 부추기면 부추길 일이지 대체 그걸 왜 막겠는가? 거기에 초자원에 대한 탐욕까지 부딪치니 끝없는 전쟁은 필연적인 현상이었다.
“민간용으로는 HF-4까지 지급되고 있으니 효과와 부작용이 더욱 강한 HF-7을 써봤을 거예요.”
HF-7이라면 의료 시설 한구석에 쌓인 드럼통에서 본 적이 있는 것 같았다.
“제르카 기업이 제약기업이라는 건 알겠습니다만 대체 무슨 말을 하려는. 음? 연관이 있는 겁니까? 그 생체실험이라는 것과? 설마 당신!”
“오해하지는 마세요. 저는 그 생체실험과 일절 상관없으니까.”
“그럼?”
“상당히 복잡한 내용이에요.”
“두 눈은 주변을 살피고 두 팔은 라이플을 잡고 두 다리는 열심히 걷고 있습니다만 다행히 제 귀는 자유롭군요.”
“좋아요. 시간이 많지는 않으니 짤막하게 설명 드리죠. 마이노르는 신물질을 발견했어요. 그는 기밀리에 저희 회사에 공동연구와 신물질을 제공하는 대신 대량의 HF-7을 요청했고 회사는 그 제안을 받아들였습니다. 저는 신물질의 연구책임자로 이곳에 와 있었구요.”
“그런데 알고 보니 마이노르가 생체실험을 자행하고 있었다?”
“예. 심지어 저희 회사 간부와도 연관이 있더군요. 상세한 내용은 유니온에 보낼 파일에 모두 있어요.”
“해고를 당하거나 법적 문제에 휘말릴 걸 두려워하지 않는 겁니까?”
그녀는 대기업, 그것도 우주를 오가는 초대기업을 상대로 법적 소송을 벌여야 할지도 모른다. 기밀 유출시 법적인 책임을 묻는다는 조항이 근무 계약서에 분명히 존재할 테니까.
불법을 행하긴 했지만 아마도 제르카 기업은 관련된 간부나 마이노르에게 덮어씌우고 꼬리를 자르는 것으로 마무리 지은 후 엘린에게 소송을 제기할 것이다.
실로 더러운 행태지만 딱히 막을 길이 없다. 제르카는 막강한 자본을 바탕으로 변호사를 계속 선임할 테고 엘린은 그 일에 얽매여 소중한 시간과 기회를 모두 잃어버리게 될 것이다. 제르카는 소송에서의 승리보다 그렇게 엘린의 삶을 파괴시키는 것이 목적일 테고.
하지만 엘린은 담담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해고를 당하거나 부당하게 감옥에 가더라도 그게 제 인간성을 부정하는 것보다는 낫겠죠.”
이한은 그런 엘린에게 상당한 인상을 받았다.
“음. 그렇다 하더라도 연구원인 당신이 침투 임무에 함께하는 이유는······.”
“저는 이곳 키아텍 스테이션 지부의 수석연구원입니다. 시설에 은밀히 침투하려면 제 도움은 필수적입니다. 이만하면 답변이 되었겠죠.”
“한 가지만 더. 침투해서 뭘 어쩌려고 하는 겁니까?”
“관련자료를 모두 삭제하고 관련시설은 모조리 폭파시킬 생각입니다.”
연구원이 아니라 무슨 테러리스트 같은 발언을 서슴없이 내뱉는 엘린이었다.
“죽을 수도 있습니다. 아니 당신 말대로 마이노르 그자가 그토록 치밀한 자라면 반드시 죽습니다.”
엘린은 여전히 담담한 어조로 이한에게 대답했다.
“한. 저는 지금 당신에게 같이 죽어달라고 요청하는 게 아닙니다. 곧 폭발이 일어날 겁니다. 당신 동료를 구한 후, 한 가지 일만 해주면 됩니다. 그 건물의 통신실을 점거한 후 연락을 주면 저희 동료가 마이노르가 설정한 키아텍 스테이션의 재밍(통신방해)을 해제할 겁니다. 그때 제가 드릴 자료를 반드시 유니온에 전송해 주세요. 그 정도 도움은 주실 수 있겠죠.”
걸음을 옮기던 이한은 잠시 걸음을 멈추고 엘린을 바라봤다. 뒤따라오던 엘린 역시 이한을 따라 걸음을 멈췄다.
“······. 그러니까 나는 일이 실패할 때를 대비한 보험인 셈이군. 왜 그렇게까지 하는 겁니까? 대기업의 수석 연구원까지 지냈다면 한 번만 눈 감고 넘어가면 그야말로 승승장구할 텐데요?”
엘린은 이한에게 다가와 작은 장치를 건넸다. 이한이 장치를 받자 엘린이 차분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저를 이해해달라고 요청한 적은 없습니다. 당신은 당신의 일을, 저는 저의 일을 하면 됩니다. 승낙한 것으로 알겠습니다. 이쪽으로 가면 당신 동료가 감금된 건물이 나옵니다. 건투를 빕니다.”
여러 갈래로 갈라진 길 한 곳을 가리킨 엘린은 이한의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고 다시 서둘러 걸음을 옮겼다.
이한은 거침없이 어둠으로 사라지는 엘린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대체 무엇이 여리여리한 연구원인 그녀를 강철보다 단단한 투사로 만들었던가?
하지만 그 생각에 오래 잡혀있을 여유는 이한에게도 없었다. 지금도 시시각각 아이작 그 미친놈의 부하들이 열심히 달려오고 있을 테니까.
‘차근히 한 번에 하나씩. 일단 시에라부터.’
우선순위를 마음속으로 되새긴 이한은 엘린이 가르쳐 준 방향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30. 나는 나의 일을 (2)